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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 (엡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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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 

(엡1:1~2)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찌어다



오늘부터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에베소서 강해를 합니다.

에베소서는 기독교의 진수를 잘 요약해 놓은 책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잘 소개해 줍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역사 하셨는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책이 이 에베소서입니다.
거기다가 구원받은 우리들이 어떻게 교회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 교회의 성격과 특징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서 그 교회에 속한 우리들의 삶은 어떠해야 한지 자세히 가르쳐 주는 책이 이 에베소서입니다.
그래서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이 책을 가리켜 '인간의 글 중 가장 거룩한 글'이라고.
또 사무얼 코울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는 '서신들의 여왕'이라고 했습니다.
아미테이지 로빈슨(Armitage Robinson)은 '사도 바울의 서신들의 왕관'이라고도 했습니다.

오늘부터 이 에베소서를 강해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비록 이 서신이 쓰여진 때와 지금 사이에는 근 2천년의 간격이 있어도 (AD 62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짐), 그 때 이 말씀을 기록케 하셨던 성령님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말씀하셔서 우리로 주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백성, 곧 교회가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에베소서의 서문입니다.
그 당시 편지를 쓸 때 늘 그랬듯이, 이 편지도 편지를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문안의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먼저, 편지를 쓰는 사람에 대해서 무어라고 하고 있습니까?

여기 1절 초두를 보십시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이 말에 따라서 우리는 이 편지가 바울이 보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 비평가들 가운데에는 이 편지가 바울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령, 이 서신에 쓰인 어휘나 문체 가운데 다른 서신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
또, 역사적으로 보면 바울은 에베소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목회했는데 이 서신에 보면 개인적인 문안이나 그 교회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다른 서신들과 다른 점들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바울의 친저성(親著性)을 부인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어휘나 문체에 관해서는 바울과 같이 독창적인 사람이라면 주제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단어들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개인적인 문안이나 그 교회의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편지를 회람서신이라고 부르듯이 에베소 지역의 많은 교회들에게 회람을 시키기 위해서 보낸 편지라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인 차이도 강조점의 차이이지 저자가 달라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복음주의자들의 견해입니다.

이 편지는 처음부터 바울이 저자인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 바울이 자기를 어떻게 소개합니까?

자기를 '사도'라고 합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누구의 사도라고 했지요?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철저히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바울은 자기가 그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결단이나 어떤 사람들의 충고에 의해서가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갈 1:1에 보면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바울의 이런 표현은 자기의 권위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사도가 된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그런 말을 했지요.
"나는 죄인 중의 괴수로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바울은 또 자기의 소명감을 확인하려는 뜻에서도 이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 되었으니 그 뜻을 다 이루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 20장에 보면, 그가 에베소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갈 때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렇게 바울은 그의 편지 초두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되었다고 말합니다.

바울만 그런 것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요 17:18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다"고.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이 보내신 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을 하고 예수님의 뜻을 행하며 예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보잘것없는 우리들을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면서,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라), 예수님의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곳이 가정이면 가정에 가고, 직장이면 직장에 가고, 학원이면 학원에 가고, 농어촌이면 농어촌에 가고, 군대이면 군대에 가고, 심지어 외국이면 외국이라도 가서, 주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명을 아는 사람들, 우리도 적은 사도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 다음에,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했습니까?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당시 에베소라는 도시는 소아시아의 수도였습니다.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고 문화도 대단히 발달된 도시였습니다.
그런 반면에 그곳은 영적으로 몹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특별히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도시로서 아데미 신전을 중심으로 우상숭배가 성행하던 도시.
그래서 신앙을 지키기 어려운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사는 '성도들'에게 편지한 것입니다.

이 '성도'라는 말은 굉장한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장례식 때 어떤 교우의 아버지를 성도라 불렀다가 혼이 났다고 합니다.
왜 우리 아버지가 성도냐고, 우리 아버지는 장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로라는 말이 더 귀합니까? 성도라는 말이 더 귀합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성도라는 말이 더 귀합니다.
사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이런 말은 직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는 이런 직분 다 놓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사실 성도냐 아니냐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나라에 가서도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따질 것입니까?
아닙니다! 거기는 오직 성도만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혹시 장례식 때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고 하지 않더라도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성도라는 말 듣는 것을 귀하게 여깁시오. 그것보다 더 좋은 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성도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 말은 그냥 들으면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원래 의미는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뜻.
영어로 하면 Saint가 아니라 Separated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은 비록 세상 문명이 발달되고 우상숭배가 성행하는 에베소에 살고 있지만 그곳에 사는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된 사람들,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또 무어라고 합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신실한 자들'이라는 말(헬.pistos)은 '믿는 자들', 혹은 '믿음직스러운 사람들'이라는 말.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어서 믿음직스러운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에베소에서 살지만 성도라 불리움을 받는 것은 그들이 원래 다른 사람들보다 거룩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까닭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의 신실한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 사람들과 별로 차이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요 17:16에서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 하였삽나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는 있어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도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거짓말을 해도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물질만을 위해 살아도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살아도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세상 유행만을 좇아도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사람들 다른 점이 없게 사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가 성도인 것을 부인하는 일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성도입니다. 성도이기 때문에 다른 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첫 부분에서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된 사도인 것을, 또 그들이 성도인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도 된 것을 먼저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그들에게 축복의 인사를 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하여 특별한 축복을 기원합니다.

그는 이런 축복이 어디서 오는가를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그렇습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으로부터 오는 축복이 진정한 축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또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 나의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믿음, 이것이 진짜 믿음이요, 축복 받은 믿음입니다.

또 예수님을 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라 했고 예수님은 주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아들처럼 대하면서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하면서 마치 큰 은혜를 입은 종과 같이 사는 사람, 그 사람이 정말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들이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깝게 모시며 살고 또 예수님을 주로 섬기며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
그래서 그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오는 모든 축복을 다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축복을 기원하고 있습니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은혜이고 또 하나는 평강이었습니다.
이 은혜와 평강,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얻는 가장 큰 축복.

그러면 은혜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값없이 주시는 선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되었고 성도가 되었으면 우리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선물이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엡 2:8,9을 읽어 봅시다.

(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구원은 은혜입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이 누구에게 주어진다고? 믿는 자들에게, 성도들에게 입니다.

또 평강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은혜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인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말미암는 누리는 마음의 상태.

롬 5:1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했습니다.
이런 화평을 누리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평강으로 세상의 근심과 두려움을 이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빌 4:7에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지켜야 할 것 가운데 첫째가 우리 마음과 생각인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평강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그것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최대의 축복입니다.
은혜와 평강, 이 두 가지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는 구원입니다. 또 하나는 그 구원으로 이루어지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우리는 이 땅에서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절을 보면 바울의 찬송이 울려 터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도답게 살려고 애쓰는 그들에게 이 두 가지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저도 오늘 이 에베소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이 두 가지 축복을 하고 싶습니다.
은혜와 평강입니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우리도 넉넉히 이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습니다.
이 어려운 경제 여건 가운데서도 우리는 넉넉히 견뎌 나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앞에 어떤 시험과 환난이 있다 하더라도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 두 가지 축복,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먼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에베소 성도들처럼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로 말입니다.
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러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하세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세요.
또 예수님을 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어떤 자가 예수님을 주로 섬기는 자입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하세요.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오늘 말씀을 보면 편지를 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또 축복을 하는 데에 있어서 빠지지 않고 쓰이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편지를 쓴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그랬습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에게 대해서 말할 때에도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그랬습니다.
그리고 축복으로 인사할 때도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세 번 다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합니다.

편지를 쓴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축복 받을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에베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을 전하는 책입니다.

바라기는 앞으로 이 서신을 공부하면서 시간 시간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예수그리스도로 좇아오는 은혜와 평강을 충만히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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