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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택의 복 (엡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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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복 

(엡1:3~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하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를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선택의 복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신 것을 찬송한 바울의 찬송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시고 또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주셨는데, 그 복은 땅에 속한 복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복이고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복이 아니라 신령한 복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속한 물질적인 복, 육체적인 복을 인하여서도 감사하고 찬송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좋고 확실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에 대해서는 더욱 더 감사하고 찬송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가운데 하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택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 의해서 선택을 받은 기쁨을 누려 보셨습니까?
제가 우리 아이들을 기르면서 그들이 어릴 때 동네에서 놀던 것이 생각납니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편을 갈라 잡아먹기를 하는데 편을 가르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대장 급 되는 아이 둘이 나와서 가위 바위 보를 합니다. 그리고는 이긴 아이가 먼저 한 아이를 선택하고 진 아이는 나중에 선택을 합니다. 또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이긴 아이가 한 아이를 선택하고 진 아이는 그 다음에 선택합니다.
그렇게 해서 편을 만들어 놀이를 하는데, 그 때 아이들은 가위 바위 보하는 아이가 자기를 선택해주었으면 합니다. 특별히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애가 뽑아주기를 바라는데, 서 그 아이가 자기를 뽑아 주면 "예!" 하면서 좋아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이들은 선택에 의한 기쁨을 누리고 그렇지 못하면 매우 낙심하고 우울해합니다.

어린아이들만 그런 것 아니고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개각이 있었을 때 어떤 장관이 그 자리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요. 기자가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그 분이(당시 대통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잊지않고 불러주고 택해주어 너무 감격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사람이 모두 누군가 자기를 인정하고 선택받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서를 시작할 때 '찬송하리로다' 하면서 감격해 한 것도 이런 복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누가 우리를 선택해 주었기 때문에 이렇게 찬송하고 감격해 하고 있습니까?

선택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지요?
그 분은 만 왕의 왕이십니다. 만 주의 주이십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우리도 그 분이 창조하셨습니다.
바로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어찌 찬송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찬송하리로다!' 탄성을 질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을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어떤 사람에 의해서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만 왕의 왕 되시고 만 주의 주 되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의해 선택을 받아 기뻐하고 찬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언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까?

여기 보니, '창세 전에', 그러니까, 만물이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렘 1:5에도 보면 예레미야를 가리켜서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나기 전에, 아니 이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벌써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절대 즉흥적인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당장에 즉흥적으로 나를 선택하셨다고 해도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창세 전부터 벌써 선택하셨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이 창세 전에 나를 선택하셨으니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 아닙니다.
선택은 먼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저는 처음 예수를 믿고 제가 예수 믿는 것을 선택한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참 내가 예수 믿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보니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요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 같지만, 내가 자의로 예수님을 선택한 것같지만 알고보면 그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도 잘 했다고 생각되어 감사한데,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 하나님이 창세 전에 나를 선택하셨다고 하니, 이 선택은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 우리가 무엇을 잘 해서가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롬 9:11에 보면 바울이 야곱과 에서의 관계로 선택을 설명하면서 그런 말을 합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 전에, 그들이 잘하고 잘못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해서 자랑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잘난 것을 보고 선택하신 것이 아니기에 겸손히 감사할 것 밖에는 없습니다.
바울처럼 찬송할 것 밖에 없습니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선택한 것이 힘이 세기 때문에, 자신들의 수가 많기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민족을 멸시했습니다. 자신들은 선택받은 민족이요, 다른 민족은 버림받은 민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들을 세운 것은 강해서도 아니고 수가 많아서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먼저 선택하셨고 공로를 보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선택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해야 합니까? 나같은 죄인, 나같이 보잘 것 없는 것을 선택해주셨으니 우리는 감사하고 찬송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누구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또 6절에 보면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개인적으로만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선택을 입은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우리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우리는 선택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우리를 선택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여 주셨으니 우리를 위해 자기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선택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도 찬송하고 예수님께도 찬송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선택의 동기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선택하셨느냐는 말입니다. 왜 창세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택하셨습니까? 이세상에서는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나를, 여러분을 선택해주셨을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여기 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이 말은 짧은 말이지만 깊은 뜻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선택하셨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사랑'이라는 말은 우리를 얼마나 뭉클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가령 어느 처녀가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와서 결혼하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는 벌써 오래 전부터 당신과 결혼할 것을 작정하고 당신을 내 신부감으로 택해놓았습니다." "언제부터입니까?" "당신이 대학다닐 때,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때도 보았죠. 유치원때도 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당신을 선택해놓았습니다"
깜짝 놀라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왜 나를 선택해놓았습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왜 나를 사랑했어요?"라고 묻지 못합니다. 사랑에는 더 이상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굉장히 잘생기고, 세상에서 제일 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날 어릴 때부터 사랑해서 선택해놓았다면 이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선택해놓으신 것이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나를 선택해주셨습니다. 왜 날 선택하셨나 하니 나를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성경에는 자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왜 사랑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찡긋이 웃으면서 아무 말씀도 안하십니다.
또 5절을 보십다.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
우리를 선택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못해서 의무감에 얽매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창세전부터 자발적이고 기쁘신 뜻대로 우릴 사랑하고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찬송하리로다로 말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선택은 목적이 없는 선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다른 아이를 택해 자기 편을 삼는 것은 놀이를 잘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를 선택하는 것은 결혼을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여기에는 우리는 흠이 있고 거룩하지 못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또 5절에는 이런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의 종으로 삼고, 일꾼으로 삼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려고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특권이고 귀한 일입니다.
이런 특권을 받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떤 사람은 내가 하나님의 선택을 입었으니 이제 걱정 없다고 하면서 아무렇게나 살아갑니다.
물론 선택 사상이 우리로 담대하고 확신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 말합니다.
(롬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아무나 송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랑만 하고 아무렇게나 살라고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선택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아까 말한 것처럼 우리의 모든 흠을 지우고 거룩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보다 거룩하게 살고 흠이없게 살고 아들답게 살아야 할 거룩한 책임감이 있는 것입니다.
귀한 분이 불러주셨으니 함부로 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 축구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바뀌었습니다. 하딩크 감독, 히 딩크라고 해서 생각하는 축구를 한다고 하는데, 앞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경기에 출전할 선수  Best Eleven을 뽑기 위해서 여러 경기에 선수들을 선택하여 출전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번 4개국 친선대회에서도 보니까 각 경기마다 선수들을 뽑아서 경기장에 나가게 하여 기량테스트를 하는데 거기에 뽑힌 선수들이 어떻게 하던가요?  자기를 뽑아준 감독에게 잘 모이기 위해서 얼마나 최선을 다 합니까? 자신을 뽑아준 감독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뜁니다.
지난 번 4개국 친선경기에서 아랍에미리크(UAE)와 경기할 때 송종국이라는 선수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이 선수는 그동안 한번도 뛰어보지 않다가 히딩크 감독이 그에게 기대를 걸고 처음부터 경기에 내보냈는데, 해설하는 사람이 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동안 부상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하다가 이번에 히딩크 감독의 선택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니 잘 뛰어야 합니다. 지금 아주 잘 뛰고 있습니다. 아, 골을 넣었습니다." 0:1로 지던 시합에서 동점골까지 만들어 내고 더욱 심을 내어 결국 팀을 4:1로 이기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축구 선수로서 감독이 선택해 주었을 때는 그에게 거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선택해 준 감독을 생각해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뛰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날 우리들이 무책임하게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며 살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아들을 삼기위해 우리를 선택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흠이 없고 거룩하게, 하나님의 아들들답게 살아야 합니다.

또한 6절에 보면 최종적인 목적이 나옵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의 사랑하시는 자(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여 주신 것은 거저 주시는 은혜인데 바로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택하신 하나님을 찬미하는 데 있습니다.
노래로 찬송하는 것도 찬미지만 입술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감사하고, 찬양하며 입으로 감사하는 말이 나오고 생활 자체가 찬미의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보면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는지 어떻게 아는지 물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또 어떤 사람은 "제가 예배에 나오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데, 나는 버림받은 자일까요?"라고 묻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올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확신의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확신을 가져보려는 마음 자체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선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 조건없이 선택하셨습니다. 이유를물으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선택된 우리는 선택받은 자의 영광을 찬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이런 선택의 확신을 가지고 감사하며 찬양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들로 부끄럼없는 삶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도할 때 선택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이 글을 쓴 사도 바울 자신도 사도행전에서 사도로 부름받아 이곳 저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 때 바울은 가는 곳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13:48)
전도를 해서 믿는 사람들을 보니 그들이 다 바울 자신이 잘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알고보니 다 하나님이 선택해놓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선택 때문에 위축되서는 안됩니다. 더 열심히 전도하면서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후에 알게 됩니다.

이런 선택의 교리를 바로 이해해서 우릴 선택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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