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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을 가진 자가 미래를 본다 / 창 3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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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가진 자가 미래를 본다/ 창세기 37:5~11


새해가 시작되면 누구나 꿈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드러내 놓고 자기 꿈이 무엇인지 이야기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한 생을 살면서 어떤 꿈을 가지고 살까, 금년에는 어떤 꿈을 이루어볼까 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꿈을 먹고 산다는 것, 꿈을 위해서 뛴다는 것,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우리의 희망찬 삶을 살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꿈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해 줍니다. 꿈이 큽니까? 그 사람은 대인입니다. 꿈이 작습니까? 그 사람은 소인입니다. 꿈이 고상하면 그 사람도 고상하고 꿈이 천박하면 그 사람도 천박해집니다. 꿈이 선하면 삶이 선해지고 꿈이 악하면 삶도 악해집니다.
최근에 신문에 나온 기사를 보시지 않았습니까? 서른 한 살이면 한창 인생의 푸른 꿈을 안고 뛰어야 될 나이인데, "나의 꿈은 제 2의 신창원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의경을 찔러 죽이질 않나, 성폭행을 하질 않나, 남의 카드를 가지고 현금인출을 하질 않나, 새해 벽두부터 강도짓을 한 것입니다. 꿈이 그렇게 좋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악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선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꿈은 이만큼 우리 인간을 결정한다는 면에서 중요합니다.
금년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퍽 어려운 한해가 될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 하는 말은 100% 신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 밖에서 우리 나라를 바라보며 하는 말들을 들어야 합니다.
모 일간지 기자가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MIT의 돈 부시 박사를 찾아가서 금년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어떠하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돈 부시 박사는 사족을 전혀 달지 않고 간단하게 "비관적입니다. 아마 2001년은 한국 사람들에게 굉장히 힘든 한 해가 될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처럼 어둡고 전망이 흐릴 때일수록 꿈을 갖는다는 것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럴 때 꿈마저 포기한다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그저 누워서 먹고 마시고 밖에 못하는 식물인간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꿈이 있으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꿈이 있으면 어떤 역경 앞에서도 우리는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그만큼 꿈은 중요한 것입니다.
꿈 하면 우리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누굽니까? 요셉입니다. 그래서 요셉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집에 가셔서 요셉의 일대기를 한번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참 재미있습니다. 요셉은 열 일곱 살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밭에서 열 한 단이 일어나 자기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또 며칠이 지났는데 열 한 별이 자기를 둘러서서 절하는가 하면 해와 달도 자기에게 절을 하는 것입니다. 열 일곱 살이면 아무래도 아직도 어린 티를 벗지 못하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특히 막내나 다름이 없는 처지어서 어리광도 많이 피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꿈을 꾸자 너무나 흥분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런 꿈을 꿨다고 막 자랑하고 그럽니다. 그 꿈 내용을 한번 가만히 보십시오. 듣는 사람은 굉장히 기분 나쁜 꿈입니다. 꾼 사람은 신이 나지만 듣는 사람은 기분 나쁠 수 밖에 없습니다. 열한 단이고 열한 개의 별이면 자기 형들이 자기에게 절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해와 달이 자기에게 절한다면 틀림없이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에게 절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기분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호통을 맞고 나중에 형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미움을 받다가 드디어는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기구한 운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생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요셉의 일대기를 읽어 보면 그는 평생 하나님이 주신 꿈을 먹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치러야 될 대가는 아무리 비싸고 힘들어도 그는 최선을 다해서 치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후반기 생은 그 꿈을 이루는 복된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가져야 됩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한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환상을 보든, 예언을 하든, 꿈을 꾸든, 이 세가지 표현은 한 가지 의미를 삼중으로 표현하며 강조한다고 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 믿고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무언가 보고 산다는 것입니다. 보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꿈이 있다는 겁니다. 미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처럼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무슨 꿈입니까?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꿈입니까?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꿈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예수님 탄생 수백년 전에 하나님 나라의 환상을 바라보면서 예언한 내용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기쁜 소식을 듣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병들고 상한 자들이 고침을 받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갇힌 자가 놓임을 받고 눌린 자가 자유를 얻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상처입고 고통 당하는 자들이 위로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이루어지고 완성되어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는 영광스러운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지도록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이 꿈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요, 이 꿈은 성령이 우리 마음에 심어주신 꿈입니다. 그러므로 저나 여러분이나 다 가지고 있어야 되고 분명히 이 꿈을 먹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꿈은 너무나 황홀한 꿈이기에 이 꿈 때문에 한 생을 완전히 주님 앞에 나실인처럼 바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꿈 때문에 숨을 쉽니다. 우리는 이 꿈 때문에 기뻐합니다. 우리는 이 꿈 때문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 꿈 때문에 세상에서 기가 죽지 않습니다. 이 놀라운 꿈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독특한 삶을 선택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자기의 젊음을 바치는 자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야망이나 세상적인 꿈을 접어두고 오로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일을 위해서 한평생을 불태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도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건강마저도 돌보지 않다가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꿈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서 자기를 활활 태우다가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명령하신대로 그들은 주머니를 차고 다니기를 거부했습니다. 두벌 옷을 입고 지팡이를 들고 다니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생을 선택하고 그 가난을 가지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 생을 바치는 위대한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많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꿈은 황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꿈에 매료를 당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한 사십오년 전, 우리나라가 선교사를 보낼 생각도 잘 안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 때에 고신 교단에서 참 훌륭한 선교사 한 분을 대만으로 파송했습니다. 그 때 파송받은 분이 김영진 목사님입니다. 대만으로 가서 지난 40년이 넘도록 본토인들과 또 유입된 중국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대만에 대해서 잘 아시겠지만 우상숭배가 엄청나게 활개치는 곳이고 무속 신앙이 사람들의 영혼을 꽉 쥐고 있는 어두운 세계입니다. 거기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수년 전에 이제 나이가 많으셔서 은퇴를 하셨습니다. 그분에게 아주 총명한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딸도 대만에서 자랐기에 중국어를 얼마나 잘 하겠습니까? 거기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후에 성인이 된 다음 자신도 아빠처럼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서 선교사로 지망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선교사가 되겠다는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딸 부부가 아버지가 하던 그 선교 사역을 이어서 지난 수년 동안 선교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그 따님이 암에 걸렸습니다. 자기 남편은 선교지에 두고 자기는 암을 고치기 위해서 나이 많으신 아버님을 모시고 호주로 이주를 했습니다. 조그마한 집을 하나 얻어서 가난하게 살면서 투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가지고 젊음을 바치는 사람에게 웬 암입니까?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안 됩니다. 자기도 평생 하나님 나라의 꿈을 안고 모든 것을 바쳤고 딸도 그렇게 살려고 하는데, 그 딸이 흉악한 병에 걸린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목사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우리는 의인의 고통에 대해서 굉장히 신비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어떤 뜻을 갖고 계실 지 우리는 모릅니다. 분명히 그것은 선한 뜻임에 틀림없지만 우리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인이 고통 당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보면 그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자 하는 경외감이 생깁니다. 이 투병 생활을 하는 김난나 선교사가 저하고는 별로 안면이 없지만 저에게 가끔 기도해 달라고 편지를 합니다. 며칠 전에도 편지가 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지난 몇 달 동안 아버지와 자기는 사랑의교회 테잎을 놓고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마 출입하기가 조금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썼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참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부끄러움도 느끼고 감동도 느끼고 해서 여러분에게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제 많이 회복되었어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나 봅니다. 저도 아버지처럼 맡겨주신 사명을 다 감당하고 갔으면 합니다. 제 나이 오십이 되었는데 이 나이에 다시 새로운 선교지를 개척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실패를 해도 한번 선교다운 선교를 하고 물러서고 싶어요. 저 중국 미지의 산악지역으로 들어가 한 사람만 전도하고 나와도 값진 일이 아니겠어요? 아버지가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시면 저도 곧 선교지로 출발하려고 합니다. 목사님, 상상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 느낌이 황홀해요. 선교사의 피를 물려 받았나 봐요. 감사할 일이죠? 모르긴 하지만은 우리 아이들 중에도 선교사를 지망할 제 3대 선교사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목사님."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웬만한 사람 같으면 내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암이 걸려 가지고 투병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계십니까? 안계십니까? 하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면서 항의를 하고 불평을 해도 아마 화가 안 풀릴 지 몰라요. 그런데 이 선교사 보세요. 황홀해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어요. 감사할 일이죠." 아직도 낫지 아니한 병을 가지고 산악 지대에 가서 복음 전하겠다고 하는 그 열정을 한번 보십시오. 미친 사람입니다. 누가 이렇게 미치게 만듭니까? 하나님의 나라, 꿈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꿈이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꿈이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이 김 선교사처럼 완전히 헌신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선교사로 부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 알아 두십시오. 우리 각자의 소명은 달라도 꿈은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도 다 소명을 가진 것과 동시에 꿈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입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가 일제의 압제 아래 고통 당할 때 뜨거운 피가 끓는 젊은이들은 만주로 달려가서 독립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리고는 생명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까? 한번 물어 보십시오. 백 명이면 백 명, 천 명이면 천 명 똑 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 조국의 해방입니다. 이것이 꿈입니다. 또 당시에 벽촌에서 밭을 갈며 평범하게 사는 농민들을 찾아가서 꿈이 무엇인지 한번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우리 조국이 독립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생명을 바쳐 싸우는 젊은이나 농사를 짓는 평범한 농민이나 꿈은 같았습니다. 조국이 독립하는 것이고, 해방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김 선교사와 같은 사람은 독립군이요 우리는 농민입니다. 나름대로 소명이 다르지만 꿈은 같아야 됩니다. 무슨 꿈입니까?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신년에는 이 꿈을 더욱더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그 꿈을 가슴에 품은 열정을 가지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나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면 칠팔십년 살다가 갑니다. 한 생을 살면서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의무를 갖습니다. 또 그럴 만한 가치를 갖습니다. 이런 이유로 30년을 열심히 준비하고 또 40년간은 열심히 뛰고 그 다음 나머지 10년은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존재 법칙입니다.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의 차이가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 법칙을 따라 살다가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누구나 한번 살다가 가는 인생이지만 어떤 사람은 꿈을 가지고 사는데 어떤 사람은 꿈이 없이 사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훨씬 건강하게 살고 또 도전적이고 창조적이고 미래를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옆에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역경을 헤치고 나가는 힘이 남다르다는 것도 우리는 발견합니다. 왜 그럴까요? 확실한 목표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똑 같은 인생을 살지만 무언가 자기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하고 꿈도 없이 그저 되는 대로 사는 사람 중에 선택을 하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까? 두말 할 것도 없이 꿈을 가지고 사는 편이 훨씬 낫다는 말입니다.
야곱이라는 사람을 아시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요셉의 아버지입니다. 그 야곱은 이십년 동안 처갓집에 얹혀서 산 참 기구한 사람입니다. 처갓집에 한 이삼년 사는 것은 괜찮지만 이십년 사는 것은 정말 남자로서는 죽기 보다 싫은 짓입니다. 이십년 동안 처갓집에 얹혀 사는데 한 십오년 살고 나니 흥부처럼 처자만 주렁주렁 달려있지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마음에 꿈이 있습니다. 소박한 자기 꿈입니다. '언제 나는 내 집을 세울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언제 나는 처갓집에서 독립해서 내 처자를 내 손으로 먹여 살리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될까? 어떻게 하면 내가 한 재산 잘 장만해서 처자를 이끌고 아버지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고향으로 금의환향할까' 하는 것이 소박한 야곱의 꿈이었습니다. 이 꿈을 항상 마음에 담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기 외삼촌에 가서 자기 꿈을 털어놨습니다. "외삼촌, 나는 언제 내 집을 세웁니까?" 외삼촌이 듣고 보니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 생질과 계약을 다시 했습니다. "너의 생각이 꼭 그렇다면 우리 양떼 중에서 아롱진 것, 점이 있는 것, 까만 것은 전부 네가 가져라." 전체의 1/5도 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런 양들은 아주 소수였고 모두가 새털처럼 하얀 양이었습니다. "이 아롱진 것, 검은 것은 내가 너에게 줄 테니 앞으로 태어나는 것마다 이런 무늬를 가진 것은 전부 네가 소유해라." 그 때부터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있는 머리 없는 머리 다 짜 가면서 낮에는 더위와 싸우고 저녁에는 추위에 떨며 눈 붙일 겨를이 없을 만큼 있는 힘을 다해 일했습니다. 그랬더니 십년도 안 되어서 큰 재산을 갖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그저 복을 쏟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라반의 재산은 점점 줄어들고 야곱의 재산은 점점 늘어나는 기현상, 역전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드디어 야곱은 아내 넷과 아들 딸을 거느리고,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아주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봅니다.
이것이 인간적인 야곱의 꿈이었습니다. 자기 꿈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 꿈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것을 죄악이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자기 꿈을 접어야 되고 자기 꿈을 포기해야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꿈을 가슴에 담고 산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식으로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믿자마다 다 기도원으로 가서 하루 스물 네 시간 예배만 드리고 기도하다가 천국 오기를 기다리고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입니다. 가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으로서 꿈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꿈을 가져야 됩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입니까? 꿈이 있어야 합니다. 사업을 합니까? 꿈이 있어야 됩니다. 정치인입니까? 꿈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 나름대로 꿈을 가지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꿈을 가진 자에게 밝은 미래가 약속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자에게 밝은 미래가 보일 리가 없습니다.
그러려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를 천대하는 사람은 꿈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를 존경할 줄 알고, 자기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꿈이 생깁니다.
'나 같은 것은 머리도 둔하고 하니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절대 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자로 태어나려면 여자답게 태어나야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태어나서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시집도 못 갈 판국인데.' 이런 식으로 한다면 도무지 이 사람은 꿈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요즘 텔레비전에 가끔 나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남자들이 독점하던 영역에 과감하게 들아가서 프론티어 역할을 하는 여자들 말입니다. '해군사관학교를 들어간다, 육사를 들어간다, 아니면 파일럿이 된다, 아니면 기관사가 된다.' 또 어디를 보니 살벌한 건축현장에 현장 사무소장이 된다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들을 가만히 보니 조금 못났습니다. 그런데 잘 나면 무엇합니까? 못나면 어떻습니까? 내 하나님이 내게 준대로 사는 것입니다. 전혀 그런 것에 구애 받지 않고 나 자신이라는 것이 소중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어떤 영역에도 자신 있게 들어가서 터를 닦지 않습니까? 자기를 소중히 여겨야 됩니다.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을 여러분이 읽어 보셨습니까? 신체는 불만족이지만 인생은 대만족이라는 부제를 단 희한한 책입니다. 오토다께 히로타다라고 하는 저자는 사진으로 보면 깜짝 놀랄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지가 없습니다. 완전히 몸뚱이만 가진 인간입니다. 그런 자식을 낳아 가지고 그렇게 키운 부모도 위대하지만 본인도 참 위대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대학을 다니면서 한번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나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우리 보기에는 그런 고민할 가치가 없는 사람 같은데 고민을 했습니다. 그가 얻은 결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이 세상에 반드시 있다. 그것을 하는 것, 이것이 나의 꿈이다.' 그가 그렇게 자기 꿈을 발견했답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이 저자가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팔다리가 성한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장애인을 위한 복지 시설을 갖추려고 하니 동참해 달라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와 같은 사람이 휠체어에 앉아 높은 계단 앞에 서서는 "여러분, 이 계단의 한 단이 저 같은 사람에게는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더 높습니다. 여러분 도와주세요."라고 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찡 하면서 공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자기는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마음의 장벽 없애기 캠페인으로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습니다.
사지가 없는 장애인도 자기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자기 삶을 귀하게 여기자 꿈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같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 꿈이 없이 인생을 산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꿈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열왕기상 3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내게 고하라." 다시 말하면 "네 꿈이 무엇이냐, 솔로몬아? 내가 들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기도해라. 구하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도대체 한 생을 살면서 무엇을 해야 될 지 분명히 떠오르지 않으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내 꿈이 무엇이라야 됩니까?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낼 때 무엇을 시키기 위해서 보내셨습니까?" 하고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십니다. '아,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하는 소원을 주십니다. 그 소원을 꽉 붙드십시오. 그것이 결국 우리의 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꿈은 기도를 먹고 자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우리의 꿈은 기도를 먹고 자랍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또 하나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꿈은 값을 다 갖고 있습니다. 꿈에는 값이 매겨져 있습니다. 어떤 꿈이든 값을 치러야 합니다. 큰 꿈이면 그 값이 비쌀 것입니다. 작은 꿈이면 아마 그 값이 조금 쌀 것입니다. 그 꿈이 특별히 고상해서 많은 사람이 감히 꿀 수 없는 그런 독특한 꿈이면 아마 그 값은 대단할 것입니다. 어떤 꿈도 값이 없는 꿈이 없습니다. 꿈은 큰데 싼 값으로 그 꿈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은 꿈을 꿀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꿈에는 외상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할인매점도 없습니다. 일단 내가 꿈을 찾았고 그 꿈을 성취하기를 원하면 그 꿈의 값에 따라서 내가 희생을 치러야 되고 내가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달성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꿈이 얼마나 비싼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어떤 값을 치루든 그 값을 치루는 데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값을 치루기 위해서 어떤 희생을 강요 당해도 그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요셉처럼 말입니다. 값을 치룰 각오를 하십시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과 나의 꿈이 하나가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지 조금 전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나의 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나의 꿈이 하나님의 꿈이 되고 하나님의 꿈이 나의 꿈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요즘 잘 나가는 병원을 경영하는 원장을 만났습니다. 나이가 아직 젊은데 병원이 그렇게 잘 됩니다. 그래서 또 다른 곳에다가 병원을 하나 더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그 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저에게는 꿈이 있어요." 속으로 앞으로 병원을 여러 개 더 만들어 가지고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꿈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분이 하는 말이 "목사님, 이제 아직 병원이 완전히 자리매김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잘 되면 이 병원에서 생기는 수익금 중에 병원을 경영하기 위해 필요한 운영비와 인건비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수익금은 교회와 연결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쓰려고 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갑자기 목사가 찾아오니 흥분해서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고 있는데 그 분이 말을 이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병원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여러 가지 은혜와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데 쓰려고 해도 신학이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인지 좀더 알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금년에는 그런 것을 배워보려고 야간 신학교를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입학 허가도 받아 놓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이 분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병원을 통해서 성공하겠다는 자기 꿈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꿈으로 끝나면 그것은 허탄한 것입니다. 허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과 자기 꿈을 연결시켜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구원받았습니까? 성령을 모시고 삽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꿈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꿈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여러분의 꿈과 하나님의 꿈이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그 두 꿈을 하나로 묶어서 위대한 목표를 설정하십시오. 그리고 큰 그림을 그려 놓으십시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하여 여호수아처럼 앞을 향해서 힘차게 힘차게 달려가는 한 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꺾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건강할 것입니다. 도전적일 것입니다. 남다른 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아무리 금년 한 해가 어렵다고 할 지라도 꿈을 가지고 전진하는 우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기적을 우리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한 가지 더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꿈을 가진 자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가진 사람을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금년 한 해 하나님의 꿈과 여러분의 꿈을 갖고 멋지게 달려가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정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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