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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모의 책임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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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책임(엡6:1-4) 

엡6:1-4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뜻깊은 어린이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귀한 선물이요 상급입니다. 시127:5에 보면 전통에 화살이 가득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 자녀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믿음으로 잘 양육했을 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자녀는 오히려 우리에게 기쁨이 아니라 고통과 근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두 아들은 불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불경건한 짓으로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자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 제사장은 자기의 두 아들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엘리 제사장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해서 너의 두 아들을 나보다도 더 중히 여기느냐? 나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엘리 제사장에게는 두 아들이 우상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법궤를 들고 나가서 싸우다가 법궤도 빼앗기고 그들 마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그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앉아있던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서 죽었습니다. 자식을 잘못 키우니까 복이 아니라 화가 되고 만 것입니다.
6·25 동란 때 어느 가정에서 아들이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아들을 앞에 앉혀놓고 이렇게 간곡하게 당부했습니다.
"얘야, 네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서 너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겠다. 그러니 너는 어디를 가든지 매일 새벽5시가 되면 우리가 너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무릎꿇고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해라."
아들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전쟁터가 얼마나 위태로운 곳입니까? 언제 목숨을 잃을는지 알지 못하는 위험한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니까 쉽게 유혹된 길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서 언제나 기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는 전쟁터에서도 스스로를 지켰습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느 날 밤중이었습니다. 그는 보초를 서게 되었습니다. 새벽녘이 되었습니다. 불현듯이 그의 마음 속에 부모님의 얼굴이 선하게 떠오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부모님이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고 계시겠구나! 지금도 나를 위해서 말씀 그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해 주고 계시겠지." 그러면서 그의 마음 속에 진한 감동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어떤 힘에 이끌려서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부모님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경건하게 기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자기의 머리 바로 위로 총알이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 순간 무릎을 꿇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면 영락없이 그는 그 총알에 맞아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의 부모가 그 아들을 경건하게 신앙적으로 바르게 잘 키웠기 때문에 아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바르게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자녀를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가르쳐야 될 책임이 부모에게는 있습니다. 부모인 나를 본받으라고 가르치기에 앞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세상 지식으로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우리의 자녀가 이 땅에서 잘 되고 또 장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 자녀들에게 부모된 우리들이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부모는 자녀에게 순종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회사를 성공적으로 잘 운영하는 사장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회사가 잘 되는 비결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그 회사는 직원을 채용하는 방법이 좀 특이했습니다. 물론 지원자가 이력서를 내면 학력과 경력을 참조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것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부부 사이가 화목한가?"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면 무엇인가 그에게 결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품에 결점이 있던지 무언가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부모님에게 효도하는가?" 연로하신 부모님을 잘 모시고 있다고 하면 무조건 채용하고 본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잘 모시는 사람은 결단코 자기의 상관을 배신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면서 그 말씀에 잘 순종하는 사람은 공금을 횡령한다든지 또 뇌물을 받는 등의 일을 저질러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채용해서 회사가 날로 성장하고 잘 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하나님의 축복 속에 이 땅에서 건강한 몸으로 장수하기를 바라십니까?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상전처럼 받들어서는 안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그것은 옳은 것입니다. 다른 이유를 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순종하는 것을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매 끝에 효자 난다." 자녀들을 상전처럼 벌벌 떠받든다고 해서 우리의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나쁜 짓을 저질렀습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을 데리고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산에는 조상들의 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조상들의 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버지는 흐느끼면서 자기가 조상들 앞에서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켰다고 백배 사죄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는 자기의 바지를 걷어올렸습니다. 그 뒤 아버지는 미리 준비한 회초리로 자기 자신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자기의 잘못 때문에 아버지가 아버지 자신의 종아리를 내려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들은 무릎을 꿇고 엉엉 울면서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하소연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물론 그 아들은 두 번 다시 나쁜 짓을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들이 자라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부전자전이라고 그의 아들 역시 개구쟁이였습니다. 밤낮 사고를 치면서 부모의 속을 썩였습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자기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썼던 방법을 그도 쓰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을 안방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이미 매서운 회초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 앞에서 자기의 바지를 걷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사정없이 자기의 종아리를 내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들은 곧장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더니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엄마, 빨리 나오세요! 아무래도 아버지가 미치신 것 같아요!"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들이 상전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아이를 너무 귀여워해서 그렇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장래를 잘 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자기밖에 모르고 버릇만 나빠지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청소년이 이따금씩 잘못하면 파출소에 끌려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부탁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아저씨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저희 집에는 절대로 알리지 말아주세요."
그러나 아버지가 소식을 듣고 찾아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오면 대개는 아이를 몇 대 때리고서 나무라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청소년들이 파출소에 오면 제일 먼저 집에 연락 좀 해달라고 그들 자신이 먼저 부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찾아옵니다. 그러면 절대로 자기 아이를 꾸짖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혹시 다친 데는 없느냐? 순경이 너를 구박하지는 않았느냐?"
그것부터 확인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는 부모가 떠받들어야 할 상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자녀를 가르치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자녀는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우리의 자녀들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부모는 자녀에게 공경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2절 말씀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순종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입니다. 반대로 공경은 마음의 자세입니다.
어느 가정에 며느리가 셋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시부모님에게 잘들 해드렸습니다. 그들은 시어머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손가락에 큼지막하고 값비싼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탐이 났던 것입니다. 또 시어머니도 지혜로웠습니다. 며느리들이 집에 오면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은근히 과시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큰며느리가 오면 자기 손가락에 있는 다이아몬든 반지를 큰며느리에게 물려줄 것처럼 넌지시 암시를 했습니다. 작은며느리에게도 그렇게 하고, 또 막내며느리에게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그 반지를 물려받기 위해서 시어머니에게 온갖 정성을 다해 효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세 며느리는 땅을 치면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알고 보니까 다이아몬드 반지가 진짜가 아니고 형편없이 값싼 가짜 반지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속은 것이 너무나 원통해서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는 것입니다.
공경이 없는 순종은 위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속 중심을 보십니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순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의 공경입니다.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렇게 키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이 웃어른을 공경해야 합니다. 본을 보임으로서 우리 자녀들도 우리를 절로 공경할 수 있도록 그렇게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라함 링컨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아버지 토마스 링컨은 신발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집은 늘 궁핍했습니다. 그 바람에 에이브라함 링컨은 어릴 때부터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일평생 동안 받았던 학교교육은 다 합쳐도 일년이 채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20세가 되기까지 도끼자루를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힘든 노동을 해야 되었습니다.
그런 에이브라함 링컨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제 링컨이 상원의원들 앞에서 취임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상원의원들은 대부분 학벌이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가문이 좋은 귀족출신들이었습니다. 그런 상원의원들이 배우지도 못했고 또 비천한 신분출신의 링컨을 대통령으로 섬겨야 하니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링컨이 막 입을 열어서 취임연설을 하려고 했을 때였습니다. 조금은 거만한 듯이 보이는 상원의원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링컨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더니 자기가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들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링컨에게 보이면서 이렇게 빈정대었습니다.
"이 구두를 누가 만든지 아시오? 바로 당신 아버지가 만든 것이오. 당신이 어쩌다 운 좋게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당신 아버지가 신발 만드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소."
그 소리를 듣고 여기저기서 비웃는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에이브라함 링컨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눈물은 아버지에 대한 수치의 눈물은 아니었습니다.
"의원님, 감사합니다. 의원님 덕분에 제가 잠시 동안 잊고 지냈던 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새로워졌습니다. 정말 우리 아버님은 훌륭하신 분이셨습니다. 아마도 이 가운데는 우리 아버님이 만드신 신발을 신고 계신 분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혹시 신고 계신 신발이 불편하시거든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물론 돌아가신 아버님의 기술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그래도 아버님의 어깨너머로 저도 기본적인 기술은 다 배웠습니다. 아버님이 만드신 신발에 대해서는 아들인 제가 책임지고 최선을 다해서 고쳐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숙연해졌습니다. 더 이상 링컨 대통령을 깔보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 진정으로 공경하는 그 마음에 모든 사람들이 깊은 감화를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부모를 공경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우리 자녀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잘 되게 할 것입니다. 장수하게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피아노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법을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할 것입니다.

셋째로, 부모는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자녀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부모에 대한 순종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르침도 배움도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배고픈 여우가 있었습니다. 여우는 먹이를 찾기 위해서 어슬렁거렸습니다. 여우는 연못가에 이르렀습니다. 보니까 연못 속에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서 놀고 있었습니다. 여우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 물고기를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물고기 형제들이여! 연못 속에 갇혀 있느라고 얼마나 답답하십니까? 용기를 내서 한 번 뛰쳐나오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너무나도 자유스럽습니다. 또 그 속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합니까? 큰 물고기들이 여러분을 잡아먹으려고 하고 또 어부들이 쳐놓은 그물에 잡힐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위태한 그곳에 갇혀 있지 말고 용기를 내서 뛰어 나오십시오. 여기는 안전합니다."
만일 물고기들이 그 말을 듣고서 연못 밖으로 뛰어나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우에게 잡아먹히고 말지 않습니까? 또 질식해서 죽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어머니의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백악관에서 어머니를 위한 생일파티를 열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외교관들이 많이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중 불란서 외교관이 워싱턴의 어머니를 보고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아들을 저토록 훌륭하게 잘 기르셨습니까?"
그때 워싱턴의 어머니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워싱턴으로 하여금 훌륭한 인물이 되게 한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바르게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사실 미국에 건너온 청교도들은 그들의 어린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가르쳤습니다. 예컨대 아이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얘야, 너 거짓말을 하면 얼마나 나쁜 줄 몰라? 거짓말하면 내가 매 맞는다고 했잖아?"
이렇게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얘야, 성경 가지고 오너라. 무슨 책 몇 장 몇 절을 펴보아라. 그리고 한 번 읽어보아라."
아이가 그 말씀을 읽습니다.
"보아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거짓말하는 것은 나쁘다고 하셨잖니? 거짓말하면 안돼.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란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성경 속에서 찾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자신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담아두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자녀들에게 영어도 가르치고 피아노도 가르치고 수학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 자녀를 복 주셔서 그들이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것입니다.
한때 세계 갑부였던 존 록펠러는 98세까지 건강한 몸으로 장수했습니다. 또 세계 제일의 갑부였습니다. 정말 말씀 그대로 그는 잘 되고 이 땅에서 장수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세 가지로 그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첫째, 너는 수입의 십일조를 반드시 하나님께 바쳐라."
어머니 자신이 그것을 실천하면서 자기 아들에게 꼭 십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가르쳤습니다.
"둘째, 너는 하나님께 예배 드릴 때 언제나 제일 앞자리에 앉도록 해라."
어머니 자신이 늘 앞에 앉으면서 아들에게도 예배를 드릴 때는 앞자리에 앉도록 가르쳤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뒤에 앉는 것하고 앞에 앉는 것은 벌써 마음 자세가 다른 것입니다. 늘 앞에 앉도록 가르쳤습니다.
"셋째, 너는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들을 때 목사님의 말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제나 들어라."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도록 가르쳤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 세 가지를 실천하면서 사랑하는 아들 록펠러에게도 이 세 가지를 늘 마음 속에 심어주면서 그것을 실천하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그래서 록펠러는 어릴 때부터 소득의 십의 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언제나 경건하게 제일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그 결과 록펠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풍성히 받았습니다. 그는 잘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가는 갑부가 되었습니다. 또 그는 9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늘 우리 자녀들이 주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가 자손대대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풍성히 누려서 이 땅에서도 잘 되고 또 건강한 몸으로 오래오래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나타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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