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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4중애(四重愛) / 요 15:9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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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중애(四重愛)

본문 : 요한복음 구절 : 15장 9 절부터 17 절까지 말씀


본문을 통해서 4중애 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네 겹의 사랑 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본문 9절을 보세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 신 것같이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중보자로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아들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특별히 예수께서 세상을 구 속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기에 앞서 주님께 새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세상에서는 미움을 받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10절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을 받으셨습니다. 그가 고난을 받으실 때에도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왜 사랑했습니 까?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계속 사랑하시었고, 예 수님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는 생활을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42장 1∼4절의 말씀을 보세요.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 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 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사실 우 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으므로 하나님의 사랑 밖의 사람이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 리를 위하여 구속의 법을 순종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둘째는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9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 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놀랍고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요. 아까도 말씀했지만 예수님은 하 나님의 계명을 어김없이 그대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무가치한 인간을, 아니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간을 사 랑하신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이상한 일입니까? 에베소서 1장 5∼6절에 보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 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 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했는데 예수님은 이대로 사랑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가 장 큰 사랑을 성취하셨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사랑할 때는 눈이라도 빼 어 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의 제자인 우리를 위하여 베푸신 사랑은 그런 사 랑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안다 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5장 7절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 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 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사 랑하신 주님의 사랑은 가장 고귀한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모든 사랑 위에 뛰어난 사랑입니 다. 사람이 친구 된 사람을 위해 죽는 사랑도 크다고 했는데 주님은 원수 된 우리를 위하여 죽으 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 어 화목하게 되었다 고 하였습니다. 존 칼빈은 하나님의 놀라운, 비할 데 없는 사랑을 가지고도 부드럽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돌이나 쇠보다 더 굳던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현으 로 녹였다 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그의 제자인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14∼15절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 니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했습 니다. 여기 보세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친구들입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입니까? 세상에서 친구처럼 좋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친구 사이에는 간격이 없습니다. 계급도 없습니다. 따라서 비밀도 없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소돔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내려온 하 나님의 사자가 소돔성을 향해 가면서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면서 모든 것 을 다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제자들에게 찾아오셨고, 그들과 친구로서 말씀을 나 누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의 친구로 부르셨습니다. 종으로 부르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그러나 우 리 편에서는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고 우리 자신을 종으로 인정합니다). 친구에게는 모든 것을 다 말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는 그 전보다 더 사랑스럽게 그의 친구인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20장 17절에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들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21장 5절에도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너희에 게 고기가 있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그의 친구로 대해 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들은 것을 우리에게 다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숨김없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사실 예수 그 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비밀이십니다. 1장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 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7절에 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 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택하시고 기름 부어 세우셨습니다.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주님 편에 서 먼저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의 지혜나 힘으로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에 게 무슨 선이나 덕이나 공이 있고 가치가 있어서 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우리를 택한 것은 전 혀 은혜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도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 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 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었다 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의 은혜가 예수 그리 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 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 라 그러나 내게 긍휼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했 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이 선민의식이 있기 때문에 역 사를 통해서 어려운 일이 거듭거듭 되어서도 아주 망하지 아니하고 그럴수록 더욱 그들의 선민의 식이 강해지고 역사를 거슬러 가며 사는 것입니다. 아무나 택하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 게는 택함 받은 자로서의 긍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왜 그의 제자로, 친구로 택하셨습니까? 사명이 있어 택하였습니다. 디 모데후서 1장 11절에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 고 하였습 니다. 사도 ( )는 영어로 ambassador, 대사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로 임명되었다 는 말입니다. 대사의 권위는 보냄을 받은 나라에 있습니다. 순경에게 무슨 힘이 있어서 모든 사 람이나 차들이 그의 지시에 따릅니까? 그에게 권위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서 긍지를 가지고 너절하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에서처럼 배가 좀 고프다고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헌신짝 벗어 던지듯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귀한 것은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라고 택함 받았습니다. 본문에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려고 택하 였다고 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우리를 택한 것이 아닙니다. 가서 일하라고 택하였습니다. 열매 맺게 하라고 택하셨습니다. 열매 맺었으면 일했다는 증거요, 열매 없으면 일을 안 했다는 증거입니다. 15장 8절에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하였습니다. 열매를 얼 마동안 맺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그 열매가 계속 맺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는 일시적으로 일어났다 없어지는 단체가 아닙니다. 세대를 통해서 계속 열매가 맺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의 제자 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부족한 우리를 은혜의 보좌로 인도하십니다. 내 이 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도 되시고 우리의 아버지도 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 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이루어 주시 겠다는 보장을 받았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사랑입니까? 이렇게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 니다. 셋째는 주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9절에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기쁨과 평안의 근본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님의 말 씀을 지키는 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사랑 가운데서 일하는 것은 수고가 아닙니다. 야 곱이 라헬을 사랑하였으므로 그를 위해 일하는 7년이 힘들거나 지루한 것을 하나도 몰랐다고 했 습니다. 7년을 하루같이 지냈습니다.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주님 위해 일하는데 왜 소리가 많이 납니까? 왜 힘들어 합니까? 사랑이 부족해서 그럽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계명을 사랑으로 지키면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요 한일서 5장 3절). 넷째는 제자 된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12절에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고 했고, 17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 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요한일서 4장 20∼21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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