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뢰성의 좌표 (창 24:1-9)

  • 잡초 잡초
  • 335
  • 0

첨부 1


신뢰성의 좌표 창24 : 1-9

심리학은 인간 혹은 물건과의 사이의 사람이 두는 거리를 개인공간,

Personal-space라고 부릅니다. 이 개인공간이라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싼

공간 중에서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는 범위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

공간을 네 종류로, 네 단계로 이렇게 구별해서 설명합니다.

첫째단계가, 밀접 거리입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 마치 연인의 관계처럼

서로 사랑하고 밀착된, 그런 마음의 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

한 행복이 있고 신뢰가 있고, 참 평안이 있습니다.

둘째단계는 개인의 거리입니다. 개인거리라고 하는 것은 손 을 뻗으면 닿

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입니다. 내가 마음을 열면 됩니다. 그러나 열지 않

습니다. 한 평 생 같이 살지마는 아직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을 수 있

을 것 같은데 믿을 수 없고, 꼭 일치된 것 같은데 보니까 그게 아니요. 동

상이몽입니다. 이 거리가 바로 개인거리입니다.

셋째단계는 사교 거리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부득불 우리는 원하

건, 원치 아니하건 많은 사람과 만나야 됩니다. 필요에 의해서, 사업상으

로 또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서로 만나며 삽니다. 그것은 함께 만나는

것 같지마는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사교적으로 필요

에 따라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런 거리가 있습니다.

네 번째는 공중 거리입니다. 공중거리, 공간적으로는 가까이 있는 것 같

지마는 마음은 전혀 멀리 있습니다. 이러한 거리, 먼 거리에서 우리가 세상

을 서로 이렇게 알고 사귀며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얼마 만의 거리를 두고 삽니까? 내가 남을 얼마나 믿

을 수 있으며 저는 나를 얼마나 믿어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대단

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뢰성이라는 것입니다. 신뢰성은 마음

의 거리입니다. 온전히 믿으면, 혹은 나 자신처럼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요,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믿음을 별도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

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사랑하면 믿어지고, 믿으면 사랑하게 됩니다.

믿음없이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사랑일

뿐입니다. 그것은 인격적 관계가 아닙니다. 믿음 없이 사랑하는 것은 애완

동물입니다. 내가 그를 믿지 못한다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

다. 그런고로 그런 사랑을 받을 때에 우리 마음은 평안 할 수도 없기 때문

입니다.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세 가지 말로 흔히들 정리합니다. 전적으로 수락

하고, 전적으로 따르고, 전적으로 위탁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러

분, 하나님을 얼마나 믿습니까? 전적으로 믿고 보면 아무 걱정도 없습니

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남이야 날더러 뭐라고 하던 말던 나는 조용히 내 길을 가는겁니다. 내 감

정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 감성은 고요하게 지켜지는 겁니다. 여러분 내

기분 내가 믿을 수 있어요? 그 얼마간의 능력도 지혜도 있건만 주위 환경

에 이끌려 가지고 칭찬한다고 뭐 잘 됐다고 기고만장했다가 뭐 좀 잘 안

된다고 기가죽어 가지고 살고 이렇게 흔들려 가지고야 뭘 하겠습니까?

진실도 중요 하지만 문제는 능력입니다. 그 사람의 능력, 그 나라의 경제

력을 믿을 수 있어야 되고, 또는 오늘 아무리 큰 소리 쳐도 소용없습니

다. 오랜 경력, 축적된 신용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돈만 있다고 신용지

수를 높이 평가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가정에 있었던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이 건 백세에 얻은 소중한 아들입니다. 이 아들이

커서 이제 장가를 보내야겠는데 며느리를 맞을 때 그는 지금 이방 땅에 살

고 있기 때문에 그 이방족속들 중에서 며느리를 택할 수가 없어서 자기 고

향, 갈데아우르에 사람을 보냅니다.

"늙은 종 하나를 보내서 거기서 처녀 하나를 데려오라." 이렇게 말합니

다.

자 보세요. 오늘 아브라함은 아들도 아니에요. 늙은 종을 믿고 노예를

믿었습니다.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어떤 아가씨든지 좋으니까 네가 알아서 잘 선택해서 데려와라. 그게 내 며

느리다." 얼마나 귀한 믿음입니까. 뿐만 아니라 이 두 사람이 다 같이 하나

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

다. 이 늙은 종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갑니다.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 기도하

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믿었습니다. 형편없

는 제자들인데.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는 베드로를 비롯해서 십자

가를 질 때에 다 도망가는 이런 시시한 제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믿었습니다. 전적으로 믿어주었습니다. 그들은 다같이 주님을

위하여 순교합니다. 여러분 미래가 암담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맡깁

시다. 잘살고 못살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오래살고 짧게 살고 건강하거

나 병들거나 그리 중요한게 아닙니다. 다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깨

끗하게 헌신하고 생명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고 바쳐버리고 오직 주

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고 덤으로 이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

다. 여기에 새로운 창조적 역사가 있고 새로운 용기가 함께하는 것입

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