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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끝까지 견디는 자 (마 2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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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견디는 자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장 3~14절) 
<목회기도>
 
생명주신 하나님, 오늘도 기둥교회 예배실에 나올 만큼
건강한 몸으로 살게 하심 감사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부족하고 추하고 감출 것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구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여기 믿음 없어 의심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확신하는 날 되게 하옵소서.
여기 소망 없어 세상만 보고 한숨짓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하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소망으로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모두 사랑의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든 사람, 수해로 고통당하는 사람,
외로운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드러내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해를 당한 사람들을 위해 정성으로
[수재민을 위한 헌금]을 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언제나 돕고 살 수 있는 넉넉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병상의 환자들, 군대에 나가 있는 이들, 외국에 나간 이들…
이런 저런 형편과 사정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은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이 예배 시간 만사의 치료가 있는
치유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요즘에는 우리나라 인사의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작년 9월 11일에는 미국의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타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 테러사건으로 주저앉는 모습을 보고 전 세계가 놀랐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말에는 우리 나라에 태풍 <루사>가 엄청난 피해를 주었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무섭고… 사람이 만든 첨단 장비들도 무섭고… 
비도 무섭고 바람도 무섭습니다.
이제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 모두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옆의 사람과 "안녕하십니까? 평안하십니까?"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때(종말)"에 대한 궁금증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중요한 질문이 되어 왔습니다.
본문(마24:3~14)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어느 때에~ 또 그때(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것은 당시 제자들의 질문이지만
오늘 이 세대에 사는 우리들 모두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4절부터 14절까지, 열 한절에 걸쳐 상세히 하십니다.
저는, 이 예수님의 대답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언제까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어떻게 견디어야 하는지?
언제까지,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 본질상 변화가 없도록 주의하라
 
예수님은 종말을 묻는 제자들에게
먼저 <본질상 변화가 없도록 주의하라>고 가르치십니다.
4절에 보면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절에 보면  "많은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미혹하며"
11절에 보면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말세가 되면 본질을 흔드는 자가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 크리스챤의 본질, 우리의 신앙의 틀은
모두 성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의 근본은 [성경말씀]입니다.
성경말씀을 믿고, 성경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자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당신은 어떻게 믿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간단하게 "성경말씀대로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신경대로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사도신경>은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 교부들이 "이렇게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였던 것을 정리한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을 외우지 못한다고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라고 하면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도신경은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며, 눈을 뜨고 고백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교회 나온 지 얼마 안되는 분들을 위해
보고 하시라고 자막을 띄우는 것입니다.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고 외우기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사도 신경대로 믿음을 고백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근본인 성경말씀과 사도신경이 흔들리면
교회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우리들의 예배가 의미가 없고,
우리가 가지고 이는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불과하며
말 잘했던 청년 예수의 전기에 불과하며
그 예수에 미쳤던 사람들의 기록에 불과합니다.
만일 성경이, 우리들의 신앙고백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흔들린다면
오늘 제가 설교하는 것도,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도 무의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염려하셨던 것이 무엇입니까?
거짓 선지자들과 사람들의 미혹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 66권 1189장 40,000절이 넘는 말씀 가운데
자신이 좋아하는 성경구절만 외워서
"이렇게 믿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수많은 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쳤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이 완전하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하지만, 마침점을 찍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권위의 원천은 <성경>말씀이며,
그 성경말씀에 근거한 교회의 <전통>과 <이성>과 <경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말씀에 근거한 신앙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는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이미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리며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끔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도 다 못 드리면서
이상한 데서 오라고 하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에도 다 참석하지 못하면서
무료로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찾아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짜라면 무조건 좋아합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모임은 소홀히 하며
여기 저기 살피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하라는 대로 순종하는 자녀들치고 잘못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 눈을 속이고 밖으로 도는 자녀들이 잘 되던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중하게… 말씀대로 바르게 예배 드리고 가르치는 교회를 정하고 나면
그 교회 목회자의 지도에 따라 신앙생활하고
교회라는 울안에서, 목자인 목사의 인도에 따라 배우고 순종하는 자가
잔잔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함 받는 것입니다. 
 
신앙은 생활입니다.
생활 속에 나타나지 않는 신앙은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에 "모이라, 모여 신앙생활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이 생활속에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나가서 생활속에 실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0~15절에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집을 짓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이나 은, 보석으로 집을 짓고,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공력이 나타나는데 불로 시험할 때
타는 집을 지은 사람은 해를 받고
타지 않는 집을 지은 사람은 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0~15절>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여러분의 믿음의 집을 편안하고 빨리 짓는다고
나무나 풀, 짚으로 집을 세운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잘못 짓는 것입니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예배 생활, 기도, 섬김과 봉사하는 모습을 집으로 짓는다면
과연 어떤 집이 될까 한번 스스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집은 타지 않는 집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본질이 흔들리지 않는 집이어야 합니다.
바르게 탄탄하게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가 오면 쓰러집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은 불에 타버립니다.
 
 
▶ 두려워 말라
 
<본질상 변화가 없도록 주의>할 뿐 아니라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6절에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고 민족이 민족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들의 삶에 기초가 흔들리는 일이 일어날 것이고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것이고, 생존의 위협이 닥쳐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니,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주변에 신앙생활 잘 하던 사람들이
사람 때문에… 일 때문에…, 닥친 어려움과 환난 때문에… 고난 때문에…
쉽게 무너집니다. 너무 쉽게 넘어갑니다.
하긴 예수님 따라 다니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무덤에 묻히시니까
제자들이 모여 무서워 문을 잠그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투명한 미래를 예측하고 떨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따라서 하십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목사인 저도 마음에 두려움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염려로 가득찰 때도 있고, 속상해서 눈물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가슴에 손을 얹고 "평강이 있을지어다."하며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주님이 주신 평강을 바라는 마음으로
저 자신을 향해 평강을 선언합니다.
여러분, 평강을 선언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세계 도처에서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들려 옵니다.
테러와 전쟁과 천재지변의 소식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재난과 질병, 분쟁과 전쟁이 계속 되지만
이런 일들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하나님의 뜻은 세밀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고 애써야 하며
우리들의 신앙이, 믿음이 생활 속에 옮겨져야 합니다.
이 두려움 많은 세상, 걱정거리 많은 세상,
골칫거리 많은 세상에 사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선언해 주십니다.
너희가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것이고, 생명과 생존에 위협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하지 말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20)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제발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욕심 때문에 흔들리고,  세상 유혹 때문에 흔들리고,
마음에 안 드는 이웃 때문에 흔들리고,
불안과 공포를 주는 세상 때문에 흔들리고,
낭패와 실망, 실패와 불합격 때문에 흔들립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으면서 함께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때문에 흔들립니다.
우리 기둥교회에도 이런 저런 일로, 사람 때문에 삐지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눈물 나는 현실이지만
"결국(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롬8:28).
 
하나님께 맡긴 삶, 하나님께 의존된 인생의 길은
그 걸음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잠언 16장 9절 말씀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의 발걸음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 잘 견디라
 
본질의 변화 없이 두려워 말며 <잘 견디라>고 합니다.
왜, 잘 견디라고 하셨습니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잘 지키며 사는 것이
힘이 들고 어렵기 때문에 잘 견디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0절~12절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at that time many will turn away from the faith)
서로 잡아 주고(and will betray)
서로 미워하겠으며(and hate each other, ~)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성이 파괴됩니다.
도덕성이 타락하여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따르며 살지 않습니다.
결국 시험에 들어 버립니다. 
실수하고, 실족하고, 실패하고, 실망하고, 포기하여 시험에 빠져 버립니다.
자기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자기를 포기하며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탄(Satan)이 기뻐하는 꾀를 쫓고, 사탄이 가라는 길에 서며
사탄이 앉으라는 자리에 앉습니다.
- 시편 1편 1절에 보면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을 귀중히 여기지 않고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단계에 이르면… 자연히 남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자기를 깎아내리면 다른 사람도 깎아 내리게 되고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학대합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든,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게 됩니다.
사실 "남을 존경한다, 귀히 여긴다, 사랑한다"는 말은
자신을 존경한다, 귀히 여긴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 동안 어떤 사람과 가깝게 만나셨습니까?
말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의 흉을 보고, 헐뜯는 사람,
무슨 생각만 하면 남을 미워하는 것과 연결되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신다면
'그러지 말라'고 한 두 번 권면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에도 "지목하여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살후3:14).
그런 사람은 결국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에, 사탄의 도구가 되기가 쉽습니다.
더 깊이 빠지면 사탄의 쓰임을 받습니다.
기도 하지 않게 되고 예배가 기쁘지 않고, 봉사하지 않으며
교회와 거리를 두게 됩니다.
자연히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과 멀어지게 됩니다.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눈물 달고 살 만한 일이 많습니다.
사랑이 식고, 배신행위가 늘어가고, 실망되는 일이 눈앞에 있어도…
아직은 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신을 당하고,  미움을 받고,  빼앗기고 손해 보고
생명과 생존의 위협을 느껴도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남아야 합니다.
끝까지 견디어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이 변치 않도록 노력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으며
끝까지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며 견디어야 합니다.
 
요즈음 야구, 축구 경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월드컵 때 제 자신이 부끄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경기 중에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리나라가 지고 있었습니다.
마음 졸이며 지켜 보다가 질 게 뻔하다는 생각에 TV를 끄고 편안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다 깜짝 놀라서 일어났습니다.
아파트 전체에 "와~"하는 함성이 이어졌습니다. 골을 넣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날 회개했습니다. "게임은 끝나 봐야 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다 된 줄 알고, 틀린 줄 알고, 끝난 줄 알고 포기한 분들은
끝까지 견디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끝"이라고 선언하시지 않으셨다면 아직도 기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아 있음에 소망이 있고, 하나님이 살려 두신 것은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딱딱한 흙과 돌이 있어도
소망의 싹이 움트지 못하게 가로막는 가시가 있어도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방해하는 폭풍우와 벌레가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엘라 윌콕스(Ella Whealer Wilcox)의 시(詩)에
    "배 한 척은 동쪽으로
      다른 한 척은 서쪽으로
      같은 바람을 타고
      갈 길을 정해 주는 것은 돛이지
      바람이 아니라오."라는 시가 있습니다.
 
기계로 움직이는 배가 아닌 돛을 올려 움직이는 배는
바람이 한 방향으로 부는데 돛이 어떻게 올려졌고,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같은 바람이지만 한 배는 동으로 가고, 한 배는 서로 간다는 것입니다.
바람 때문에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돛과 키 때문에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풍랑은 여전히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고, 환란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다가오면 생명과 생존에 위협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가 결국 승리하는 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끝까지 견디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승리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승리"의 의미는 끝까지 견디고,
마지막 때에 "잘하였도다"라고 칭찬 받는 자리에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 복된 자리에, 그 칭찬 받는 자리에
여러분 모두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거룩한 주일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리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의 본질을 잘 지키며 신앙생활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끝까지 견디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끝까지 믿음 지키며 잘 견디는 삶을 살다가
"잘 하였도다" 칭찬 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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