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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교의 위대한 힘 / 롬 5: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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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독교의 위대한 힘
본문 : 로마서  5: 5~11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최대 소망은 메시아가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 예언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가 하루속히 오셔서 다윗 왕국을 회복시켜주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생각한 메시아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는 메시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늘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보았지만 똑바로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13:15-17을 보면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특별히 바리새인을 비롯한 제사장들과 서기관, 장로 등 그 당시의 지도자들은 영적으로 매우 어두워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을 눈앞에 보면서도 메시아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보면 누구나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게 됩니다. 맹인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신이 쫓겨나고 바다를 육지처럼 걸어오시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이 아니면 도무지 행할 수 없는 큰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그들의 교만한 눈을 가리워 메시아를 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단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도 밤낮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한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성경의 진리를 깨닫고 말씀을 똑바로 알고 믿어 구원 받게 되었으며, 날마다 은혜 가운데 살게 되었으니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이 세상 지혜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박사라 할지라도 세상 학문이나 지식으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이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고전 2:8). 
고린도전서 2:9-12을 보면 좬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합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칭찬하시며“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가 이 오묘한 비밀을 알고 믿게 된 것은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9-13에서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시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자들입니다. 이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 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주 특별하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모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이후 성도들이 있을 곳을 예비하시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봤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지냈고 또 승천하시는 것을 눈으로 분명히 보았던 제자들과 수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실제로 체험한 사실들을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급속도로 복음이 전파되고 기독교가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약 300년 동안 기독교는 로마 황제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기만 하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굶주린 사자굴에 던져 사자의 먹이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흥왕하여 로마가 기독교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때로부터 기독교는 전세계로 힘차게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메시아”라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해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을 중심으로 해서 연대를 주전과 주후로 표기했습니다. 이때 주전을 나타내는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이고, 주후는 A.D로 라틴어로 Anno Domini로 “in the year of our Lord, since Christ was born”을 뜻합니다.
따라서 역사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 빼놓고 인류역사를 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무리 위대한 영웅 호걸도 권세 있는 황제도 잠시 나타났다가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영원한 왕권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린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우리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경외하는 위대한 존재로서 오늘날 이 세계를 정복하고 영원히 다스리십니다.
기독교가 끊어지지 않고 약해지지 않고 갖은 핍박 속에서도 전세계를 향하여 힘있게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십니다.

로마를 뒤집은 기독교의 위대한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1. 노예까지도 형제로 대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옛날에 노예들은 짐승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주인의 재산목록 중의 하나였습니다. 로마시대에는 그 당시 인구의 1/3이 노예였다고 합니다. 주인들은 자신들의 노예들을 마음대로 부리다가 싫으면 팔아버리고 말을 안 들으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4:9에서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노예 신분인 오네시모를 가리켜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짐승 취급을 받고 밤낮두들겨 맞기나 하고 고생만 하다가 죽는 인생이 노예인데, 교회에 가면 다 형제로 불러주고, 예수님을 잘 믿으면 신실한 형제로 대접해주므로 많은 노예들이 생명 걸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교회에 나온 이들에게 사도 바울은 좬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으로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좭고 가르쳤습니다(골 3:22). 따라서 노예들이 예수를 믿더니 주인들에게 더 아름답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상전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연히 상전들도 기독교에 좋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같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한편 노예들을 향해 훈계했던 사도 바울은 교회에 나오는 상전들을 향해서도 좬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라고 권면했습니다(골 4:1). 다시 말해서 너희들이 세상에서 주인이라고 큰소리치고 종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 주인이시고 너희들도 하나님의 종인 것을 생각하고 종들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말고 이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7:21-24을 보면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주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 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예수 믿는 주인과 머슴에 관한 아름다운 일화가 있습니다. 김제에 이자익이라는 사람이 조덕삼이라는 부잣집에 머슴으로 들어가 마부노릇을 했습니다. 그곳에 최의덕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외국선교사가 열심히 전도를 하여 금산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자익이 얼마나 열심히 예수를 믿었는지 비록 머슴이었지만 얼마 후 그 교회의 영수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1908년에는 자기 주인과 함께 장로 후보가 되었습니다. 투표결과 머슴이 장로가 되고 주인은 떨어졌습니다. 주인도 덕이 있는 훌륭한 사람이었으므로 그 다음 해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이자익의 믿음이 너무 좋은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를 평양신학교에 보내어 공부를 시켰습니다. 나중에 이자익은 훌륭한 목사가 되어 우리나라 장로교회 역사에 총회장을 세 번이나 한 유명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오늘날도 이 세상에서 큰 회사 사장님으로, 또 공부를 많이 한 박사 교수님으로,  아무리 신분이 높다 할지라도 일단 교회 안에 들어오면 세상 지위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누구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 받았고 한 성령으로 한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 여자들을 사람 대접해 주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인구수를 셀 때 남자의 숫자만 세고 여자의 숫자는 세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열 두 광주리가 남았을 때, 모인 군중들의 숫자를 셈하면서 여자와 아이들을 빼고 5000명이라고 집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남녀평등을 주장하시고 오히려 여자들을 아주 귀하게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7을 보면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내는 연약한 그릇과 같이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므로 조심해서 다루며 특별히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은 자로 알고 귀히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더구나 아내에게 함부로 했다가는 자신의 기도가 막히게 된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도 교회 안에 여자들이 얼마나 잘 믿습니까? 세계 어느 나라에 가 봐도 여자 성도의 수가 남자성도의 서너 배나 많습니다. 아마 천국에 가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3. 죄인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준 사랑이었습니다. 
기독교가 전세계로 급속히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죄인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세리를 가장 악질로 여기는 시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리 마태를 제자로 택하셨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 지도자였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장로들에게,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세리와 창기들이 너희들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대단히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마 21:31). 
누가복음 7:37 이하를 보면, 바리새인의 집에 예수님이 초청 받아 가셨을 때에 그 동네에 소문난 죄인 여자 하나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드렸어요.
이를 본 바리새인들이“예수님이 선지자였다면 저 여자가 얼마나 더러운 여자인줄 알았을 텐데...”라고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만일 사람들이 빚이 있는데 500만원과 5억원의 빚을 탕감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중에 누가 더 주인을 사랑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5억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주님을 열렬히 사랑했던  이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또 머리카락으로 닦고 거기에 입을 맞추고 200-300 데나리온이나 되는, 그 당시 노동자가 일 년치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는 매우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 드렸습니다. 이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축복하시며 좬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죄를 많이 범했다 할지라도 구원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죄사함을 받습니다. 새 사람이 됩니다.
로마서 8:1을 보면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죄와 싸워 이기는 사람은 거룩한 자가 됩니다. 복음을 전하며 날마다 주안에서 거룩하게 사는 사람은 장차 하늘 나라에 가서 면류관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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