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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세성도의 세 가지 스타일 / 마 24: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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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성도의 세 가지 스타일
(마태복음 24:32-51)

(마24장)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을 때의 여러 가지 징조를 설명해주는 성경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졌듯 이 세상은 무너질 때가 온다는 것을 가르치며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3절) 모든 피조 세계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날 때가 있는가 하면 죽는 때가 있습니다. 어느 것도 누구도 영원한 피조물은 없습니다. 우주도 세계도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이므로 끝이 있습니다. 지금은 성경이 말하는 징조들이 일어나고 있는 말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세를 사는 신앙인들의 삶의 태도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망각형

현실주의 신앙인입니다. 말세임을 망각하고 현실에 만족하는 현실 안주형 신앙인이 있습니다. 말세라는 말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혹, 남들이 말하는 말세란 말에 동의를 한다 하여도 말세를 준비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이런 신앙인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는 일상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홍수 때 노아의 사위들이나 다른 주변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본문에도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 생각한 종이 술친구들과 어울리고 먹고 마시고 하다가 주인이 오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멸망당하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그땐 이미 늦습니다.

(눅16장)의 나사로와 부자비유에서 나오는 부자는 이런 종류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눅16:19)라고 그의 삶의 모습을 말해줍니다. 그렇게 이생에만 관심을 갖고 살던 그는 준비하지 않았던 천국의 삶을 결코 살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사로의 손끝에 물을 찍어 자기 혀에 대달라고 하지만, 그것조차 거부당합니다. 하나님은 그 이유를 아브라함의 말을 통하여 전해줍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눅16:25)라고. 망각형의 특징은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일에 바쁘고 집이나 돈, 물질에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이나 주님의 재림에는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계3:14-22)의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로 이런 모습의 신앙인들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지근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소아시아에서 제일가는 금융의 도시입니다. 양모의 산지로 의류 제조업이 성행했고 향료와 제약업이 활발해 물질이 풍부했습니다. 배금사상이 판을 치고, 돈으로 만족하는 사회입니다. 그들은 외칩니다. ‘나는 부자라 부족함이 전혀 없도다.’ 그러나 영적 세계에 대해선 눈멀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에 감사치 않았고 구름을 타고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없습니다. 영원한 나라를 대비치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십시오. 먹고 마시고 춤추고 즐기는 것이 전부이지 않습니까? 이런 사회에 동조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큰일입니다. 롯의 때,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습니다(눅17:28). 불과 유황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풍조로 사는 세상입니다. 말세를 예비치 못하는 현실 만족주의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궁핍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수치의 삶이라고 예수님은 지적하십니다. 현실안주는 소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합니다(사22:13). 육체주의, 향락주의, 쾌락주의, 정말 곤란합니다. 말세를 잊지 말고 준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도피형

광신주의 신앙인입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미래의 주님 도래에만 광란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땅 팔고 집 팔아 자신들의 아지트로 모여듭니다. 예전에 한참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다미선교회 같은 집단이 바로 이런 형태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다른 말은 광신주의입니다. 광신은 결코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미지근한 신앙도 문제지만 광신은 손쓰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미지근한 신앙은 성령의 능력으로 달구면 되지만, 광신과 비뚤어진 신앙은 바로잡기가 참 힘듭니다.

이런 종류의 신앙인은 예수 재림에 대한 소망에 너무 흥분하고 초조하여 신경과민 증세를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재림이 관심사의 전부여서 세상의 직장을 버리고 가사를 돌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외칩니다. ‘예수님 재림이 박두했으니 썩어질 세상 것 다 버리자. 하늘 문이 열렸고 하늘 보화가 우리의 것이다. 세상일을 집어 치우자. 기도만 하자. 은혜 생활만 하자.’ 그럴듯하나 광신일 뿐입니다. 1992년 이래 아직도 언제 종말이 온다고 하며 날짜까지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징조들을 보고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알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36절) 내세에 대한 감정과 흥분으로 가득 차 현실을 소홀히 해선 됩니다. 내세와 현실을 조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세상에 있지만 천국을 사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천국 백성이지만 세상을 안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조화로운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잘못 생각하여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바람직한 태도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변형되었을 때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17:4)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말세에는 도피형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망각형도 도피형도 안 됩니다.

준비형

충성주의 신앙인입니다. (계2:8-11)의 서머나 교회가 바로 이런 형태의 교회입니다. 박해자들에 의해 환란을 받고 궁핍한 생활로 생명까지 위협받았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부요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부요함, 충성심이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존재는 충성에 있습니다. 죽기까지 곤란과 궁핍 속에서 충성했습니다. 충성은 진실이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바른 관계는 세 가지 관계를 잘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로 신앙으로 출발하여 충성으로 보좌합니다. 둘째, 인간과의 관계로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유지합니다. 셋째,  물질과의 관계로 주어진 물질을 청지기로서 잘 관리하고 주님을 위해 사용합니다.

이 모든 관계는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거둬 다른 이에게 줍니다. 노아는 주어진 재물로 끝날을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고 자신과 가족을 구하는데 썼습니다.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아직 재림이 까마득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때가 바로 주님을 경외하며 믿음의 방주를 예배할 때입니다.

주님 재림 시 신자들도 일하다가 들림 받아야 합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40,41절) 망각해서도 그렇다고 도피해서도 안 됩니다. 현실에 충실하면서 말세를 준비해야 합니다. 지혜 있고 충성된 종은 주인의 일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입니다(45절). 불신자는 자기를 위해서 일하나 신자는 하나님을 위해서 일합니다. 그 결과 신자는 들려가고 불신자는 버려둠을 당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뉩니다. 우리의 과거는 주님이 이미 죄 가운데서 구원하셨습니다. 현재와 미래가 우리가 살아야 하고 참되게 해야 할 시간입니다. 현재의 기초 위에 미래가 있습니다. 현재에 충실하여 미래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쾌락을 위주로 하는 현실 만족주의는 안됩니다. 역시 현실을 망각한 광신주의도 안됩니다. 현재를 규모 있게 살므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주어진 현실이 힘들고 어렵지만 깨어서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든 심은 대로 거둡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노라”(벧후3:12,13)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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