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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택이 기도응답을 낳습니다 / 고후 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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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 기도응답을 낳습니다
(고린도후서 12:7-10)

성경은 무수히 많은 곳에서 기도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살 전5:17)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필두로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모범으로 기도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요14:13)에는 또한 응답과 파급효과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기도란 빼놓을 수 없는 신앙덕목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오래하느냐 짧게 하느냐, 기도를 큰 소리로 하느냐 작은 소리로 하느냐, 앉아서 하느냐 서서 하느냐 등 여러 가지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도응답이라는 사항에 연결됩니다. 이왕에 기도를 했는데 응답받지 못한다면 굳이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기도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고 또한 응답에 대하여도 오해하고 있습니다. 잘못생각하고 있으니 기도를 잘못하고 응답도 못 받게 됩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다루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해가 있습니다

기도에 대하여도 그렇고 기도응답에 대하여도 그렇고 오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도는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이라는 오해를 합니다. 내가 어떤 요구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요구에 응답하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그 반대입니다. 기도는 나의 요구에 하나님이 무릎 꿇게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에 내가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항복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항복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습니다” 하는 외침의 크기만큼 빨리 하나님이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심지어는 철야기도나 금식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협박하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이를 악물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에는 엄청난 오해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주장하면서도 한 치도 물러설 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아뢰는 것입니다. (골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기도합니다. 이게 옳은 기도입니다. 성령께서 우릴 위해 간구하시는데 그분도 주님의 뜻대로 구하십니다. (롬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기도가 자신의 뜻(생각)을 관철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당연히 응답도 오해합니다. 자기 뜻이 관철되면 응답이고, 관철 안 되면 응답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응답이란 내 생각에 하나님의 생각을 대치시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눅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기도와 응답에 대한 오해를 먼저 풀어야 합니다.

그럼 소경이 보기를 원한다고 할 때 그의 소원대로 눈을 뜨게 해주신 것은 무엇이냐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소경의 생각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같을 때는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다를 때는 내 뜻을 죽이고 하나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두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처음에는 가시에 대하여 하나님의 생각과 바울의 생각이 다릅니다. 바울은 가시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게 그의 기도 내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시가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십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생각을 버립니다. (7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나니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뜻(생각)을 버렸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나니 기쁩니다. (9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항상 기뻐하는 삶은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대치할 때 가능합니다. 만약 바울이 계속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다면 응답은커녕 하나님을 무시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전쟁 중입니다. 그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입니다.

똑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사람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선악과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따먹지 말라 따먹으면 죽는다.’는 생각과, ‘따먹으라 그러면 산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생각이고 하나는 사탄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사탄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응답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자유의지란 하나님의 생각을 따를지 사탄의 생각을 따를지 그것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다는 권리입니다. 아담은 이 권리로 사탄의 생각을 따랐습니다. 반대로 바울은 이 권리로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아담은 마귀의 편이 되었고, 바울은 하나님 편이 되었습니다. “편이 된다 함”은 그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 편이 될 것인지, 마귀의 편이 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항상 본인에게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생각을 선택했고 그 책임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을 안했는데 책임만 따르면 원망하게 되어있습니다. 하기 싫은 결혼을 중매로 하고선 평생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기에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신앙이란 매순간 하나님의 생각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복은 그 결과로 주어집니다.

마귀의 편을 선택하면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 편을 선택하면 의로워집니다. (눅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잘 아실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합니다. 세리와는 다름을 감사합니다.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않았다고 자랑합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자랑합니다. 그게 그의 기도 내용 전부입니다. 자랑으로 시작하여 자랑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자신을 죄인이라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리새인보다 세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바리새인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고, 세리의 기도는 응답됐다는 말입니다. 기도에 나타난 바리새인의 생각은 하나님과 다릅니다. 그러나 세리의 생각은 하나님과 같습니다. (시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기도응답은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기도를 제대로 하면 당연히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잘못하면 응답을 못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가 내 생각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십시오. 기도는 주님의 생각이 어떠신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은 내 뜻을 관철시키는 행위라는 생각을 바꾸십시오. 기도응답은 내 뜻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같은 기도를 하면 ‘yes'로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기도를 하면 ’no'라고 응답하십니다. 둘 다 응답입니다. 기도는 그러니까 100% 응답이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그 응답을 어떻게 받아드리느냐가 문제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택의 문제입니다. ‘yes'이든 ’no'이든 하나님의 생각을 선택하면 기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였기에 행복합니다. (9절)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자신의 뜻, 즉 사탄이 좋아하는 자신의 뜻을 선택하는 순간 불행해집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응답에 어떻게 하시려는지 이제 선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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