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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기 십자가 / 눅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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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십자가
(누가복음 9:23)

몇 해 전 남산에 밤에 올라갔던 적이 있습니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고층건물들 사이 여기저기서 반짝이는 것은 모두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의 색깔도 여러 가지였습니다. 교회마다 십자가를 높이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진정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성도들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십자가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나타낸 사랑의 증거물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십자가를 가지고 그 사랑의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요구하십니다. 주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심은 곧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십자가로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아야 지지 않겠습니까. 나무로 무겁게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날마다 지고 다니라는 말이겠습니까. 고통과 자기연단으로 자신을 내몰라는 말이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아니라면 무슨 뜻입니까. 그것도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이 아침,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살기 위해 주님께서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

부모가 어떤 말을 자녀에게 했을 때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면 자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예수님의(자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겟세마네의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겟세마네에는 두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생각이고 하나는 예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고, 예수님은 안 지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십자가를 지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생각(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따릅니다. 바로 이게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요 명령이요 뜻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평생 그 십자가를 지고 살았습니다. [요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십자가를 지기 위해선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위해 겟세마네에서와 같은 기도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핏방울 같은 땀방울을 흘리셨습니다. 기도 없이 자신을 부인하거나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똑 같은 십자가를 질 수 없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 그는 잠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을 포기하는 게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

우리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있으면 그게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못 진 사람들은 패배합니다. 이 십자가를 진 사람들은 승리합니다. 이혼한 가정이 있다면 부부가 십자가를 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뜻입니다. 힘들 때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생각하고 다르지만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는 게 십자가를 지는 생활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이 대치될 때 불순종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면 죄는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죄를 짓든지 아니면 십자가를 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십자가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입니다. 영생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찾아온 청년의 십자가는 재물입니다. 지붕 위를 거닐던 다윗의 십자가는 밧세바입니다. 문둥병이 낫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온 나아만의 십자가는 낮아지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하던 요셉의 십자가는 보디발의 아내입니다. 어떤 이는 제대로 자기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성공과 실패로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이 ‘자기 십자가’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져야 합니다. 본문은 “아무든지”라고 말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성도는 안 져도 되고 목사는 져야 하는 게 아닙니다. 어린이는 안 져도 되고 성인은 져야 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누구든지 져야 합니다. 또, 남의 것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의 것을 져야 합니다.

십자가는 각 교회에 달린 십자가의 모습이 천차만별이듯, 그 생김새가 각자에게 다 다릅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이 십자가이지만, 거지 나사로는 가난이 십자가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자녀가 십자가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자식 없음이 십자가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지식이 십자가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무식함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그 어떤 십자가도 자기 십자가가 제일 무겁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고통스런 일이 있을 때 자신만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십자가치고 가벼운 십자가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처럼 십자가를 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질 수 없습니다.

무리와 제자

예수께서는 제자의 조건으로 십자가를 지라 하셨습니다.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진정한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고 자기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제자입니다.

또, [막8:34]에서도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하십니다. ‘무리와 제자’ 모두에게 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무리는 그 말씀을 안 들을 것이고, 제자는 들을 것입니다. 무리와 제자는 바로 이 십자가를 지느냐 안 지느냐가 판가름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무리는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마10:38]에서 그 사실이 명백해집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합당치 아니하다”는 말은 주님의 마음에 안 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교회에는 네 종류의 직분자가 있습니다. 직분은 없지만 제자인 사람(제자), 제자는 아니면서 직분자인 사람(무늬만 직분자), 직분자도 아니고 제자도 아닌 사람(새 신자), 직분자면서 제자인 사람(좋은 일꾼)이 그것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사람은 제자가 아닌데 직분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직분자라면 더더욱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남의 십자가까지 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주님은 자기의 십자가만을 지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과 다를 때 과감히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날마다 지는 것입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일생 같은 십자가도 있지만 자꾸만 바뀌는 십자가도 있습니다. 매 순간순간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굴복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큐티가 그래서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자기 십자가를 집니까? [고후10:4,5]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예, 이것이 구체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방법입니다. 우선 자신의 이론(생각)을 버리십시오. 하나님 아는 것과는 다른 생각은 교만입니다. 그것을 버리십시오. 모든 생각을 예수님의 생각으로 갈아 끼우십시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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