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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사와 싸워 이긴사람 / 창 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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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싸워 이긴사람(창32-22)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씨름에 대해서 하나님의 큰 뜻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일찍부터 씨름이 들어왔습니다. 씨름은 우리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모양은 다르지만 많은 민족 가운데 있었습니다. 인디언들에게도 있고 남미 사람들에게도 있고,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도 씨름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중국에도 있고요. 그런데 우리 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씨름은 일본과 함께 몽고에서 전해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우리 씨름과 일본 씨름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일본의 스모와 우리 씨름과의 차이는 일본 스모는 우리처럼 5판 3승, 혹은 3판 2승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판에 승부를 끝냅니다. 그냥 단판에 지면 끝나는 거예요. 일본 사람들의 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한번 지면 안 된다라고 하는 철저한 민족의 강인한 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의 차이점은 일본은 씨름에 이기든지 지든지 관중들이나 선수가 표현하지 않습니다. 진 사람도 그냥 그 자리를 빠져나가고, 이긴 사람도 웃지도 않고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모래를 뒤집어쓰거나 그런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는 사람을 보면 너무 낙심하고, 침울해합니다. 어떤 사람은 앉아서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또 이긴 사람은 소리를 지르고 모래를 날리고 곤두박질치고 절하고 너무 좋아서 감독을 끌어안고 엉엉 우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감정적입니다. 승리가 얼마나 어렵고, 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다음 게임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한번만 이기면 다 된 줄로 아는 우리의 국민성이 게임에서도 잘 볼 수 있습니다. 씨름은 민속 경기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성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일본 스모는 심판이 판결을 내리면 한 사람도 지금까지 반항하거나 불복하거나 다른 의사를 표현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만이 있고, 심판이 잘 못 됐다고 생각이 들면 경기장에서 나오지도 않고, 모래판에 눌러 앉아 있고, 달려들고, 소리지르고, 코치와 함께 뛰쳐나가고, 하는 일들이 항상 비일비재합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심판은 심판의 권위가 있어서 한 사람도 거기에 대해서 반항하지 않습니다. 질서에 대해서 철저하게 순종하고 적응해 나가는 이러한 모든 분야에 권위에 대해 인정을 하고 살아가니까 온 나라가 평안합니다. 게임도 잘 되고 관중도 모이고 좋지요.

구경하러 갔다가 싸움하고 불평하고 하니까 우리 씨름판 자체가 죽어요. 우리는 지금 씨름판이 안 되요. 서울과 대도시는 아예 안되고, 조그만 소도시들로 가는데 거기서도 안돼서 경로잔치에 노인들 모셔다가 무료로 티켓을 주어 운영할 정도로 안됩니다. 그러나 스모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고, 흥황합니다. 아주 발전합니다. 일년 내내 게임을 해도 티켓을 사기 어려울 정도로, 계속 잘되고 그 사람들의 대우도 높이 해줍니다. 우리는 한 때 프로선수들이 1400명 이였는데 지금은 44명밖에 없습니다. 다 가버리고 없습니다. 큰 회사에 씨름 팀도 다 해체해 버리고 없습니다. 우리는 지속적인면 연속성에 참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를 발전시켜서 세계적인 씨름으로 만들고, 또 관광객이 몰려야 하는데 우리마저도 등을 돌릴 정도로 씨름판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또 일본 씨름은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관중들에게 불 거리도 만들어 줍니다.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하는 동작은 자기를 정신적으로 담대하게 하고 상대방의 기를 죽이려고 하는 그런 동작이라고 합니다. 소금도 뿌리고, 배도 두드리며 관중들에게 볼거리를 주면서 이끌어 나가는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저가 일본 사람이 좋아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도 우리 씨름판이 안되어서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씨름에 대해 나오는 말씀이 있고, 인생의 씨름을 잘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인생은 씨름과 같습니다. 한 평생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샅바를 붙잡고, 땀 흘리며 생명을 걸고 싸우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경은 믿음을 씨름과 비유합니다. 신앙은 씨름과 같다라고 엡 6:1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약한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정말 씨름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씨름에 이기듯이 영적인 이 세상상의 온갖 유혹과 죄악과 불의와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야곱은 형을 속이고 하란,지금의 터키인데, 그 곳 외삼촌댁에 가서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면서 고생고생 하면서 양을 먹이고 소떼를 먹이면서 지내다가 하나님께서 다시 축복해 주셔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돈도 많이 벌고 큰 부자가 되어서 빈손으로 떠났다가 두 떼를 이루어서 돌아오는 축복을 받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는 돈 많이 벌고 성공하면 아무 부족함이 없고 무슨 걱정이 있겠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돌아왔는데 너무나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보다 더 큰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으로 인해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함께 씨름하게 됩니다.

야곱은 20년전에 형을 속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형의 마음에 원한이 있어 섭섭함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사람들을 형님에게로 보냅니다. 돌아온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형님이 야곱이 오면 죽이려고 군인 사백명을 훈련 시켜서 칼을 갈고 있다는 거예요. 야곱은 이 말을 듣고 놀라고 무서웠습니다. 나는 죽었구나 나는 끝났구나 나는 길이 없구나 이렇게 야곱은 생각합니다. 우리도 늘 그런 생각을 하지요. 이것만 잘되면 문제가 없겠다. 사업만 잘되고 돈만 잘 벌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가 60년대보다는 70년대, 70년대보다는 80년대가 훨씬 좋아졌어요. 90년대 와서는 80년대보다는 또 훨씬 좋아 졌지만 우리에게 문제가 없습니까? 더 큰 문제들이 많습니다. 수많은 청소년들은 방황하고 길을 잃어버리고 수많은 어머니들은 집을 뛰쳐나가서 온갖 죄악으로 방탕한 길을 가고 있고 아버지들은 원조 교제나 맺고 있고요. 온 나라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 있어요. 이것은 못살기 때문이 아닙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왔어요.

야곱도 잘 살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큰 어려움이 온 것입니다. 야곱도 이런 문제를 인간적으로 풀어보려고 노력을하지요. 어떻게 했습니까? 형님에게 많은 선물을 가져다주어서 마음을 돌이키려고 하지만 선물이 되겠습니까? 암염소가 200마리, 숫염소가 20마리, 암양이 200마리, 수양이 20마리, 약대 40마리,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 새끼나귀 10마리, 짐승들만 550마리를 보내지만 마음에 맺힌 원한을 물질로 풀 수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또 야곱은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하면 도망 작전을 폅니다. 도피하려고요. 모든 자식들과 아내들과 양떼들을 노비들을 다 보내어 놓고 싸움이 일어날 때 자기 혼자 도망을 치고요. 사람은 못 믿어요.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에 야곱은 그날 밤에 혼자 남아서 드디어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하나님 앞에 다시 엎드립니다. 기도합니다. 천사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축복해 달라고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나는 형 에서로 인해 우리 식구와 다 죽게 되었습니다. 살려 주세요. 매여 달렸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고난이 우리 앞에 닥치고 환난이 앞에 닥칠때에 방황하지 말고, 속히 하나님을 찾고 얍복강에 야곱과 같이 영적인 씨름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앞으로도 여러분이 잘 산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있을지라도 사람을 찾기 전에 하나님을 찾고,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 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이 쳐들어올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듯이 하나님 앞에 속히 손을 들어야 합니다. 시127편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나님이 지키지 아니하면 안 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짓지 아니하면 안 된다 라는 거예요. 모든 것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눅 12장에 보면 어떤 부자가 소출이 많고 사업이 잘되고 돈이 많으니까 나는 이제 걱정이 없다. 먹고, 놀고, 마시고, 잘살자. 그리고 앞으로 집을 많이 짓고 확대해서 천년 만년 잘 살자.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럴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밤에 너의 영혼을 내가 도로 찾아가리니 너의 계획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오늘밤에 데려 가겠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충고를 합니다. 너는 돈은 많지만은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하다라는 거에요. 땅에서 부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 앞에는 극히 인색하고 가난한 땅에서만의 부자가 있어요. 땅에 집은 큰데 하늘나라에는 오두막이에요. 하나님 나라에는 굴도 없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영적으로도 복을 받지 만은 영육이 다 같이 잘되길 바랍니다.

아브라함도 부자입니다. 이삭도, 야곱도 부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잘사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잘 사는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부자들입니다. 요사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고통이 어느 계층만이 아닌 우리 전체 가정과 사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KBS에서 특집을 다루었습니다. 신문에서도 특집을 다룬 것을 계속 모아 보았습니다. 오늘 청소년의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 각계의 전문가들과 학자들 학부모 교사들, 학생들이 모여 계속해서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산더미처럼 많은 문제가 있지만 압축을 해서 보니 그 하나의 내용은 가정의 문제라는 거예요. 낳은 어머니가 한 두명의 자녀를 해결하지 못하는데 학교 선생님이 40,50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가 50만 100만의 학생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가? 낳은 자가 책임을 안 지고 버리면 누가 책임을 지겠느냐 하는 거예요. 가정에 문제가 있다라는 거예요. 그러면 가정에서는 누구가 책임지느냐? 아버지냐? 어머니냐? 할아버지냐? 할머니냐? 고모냐? 이모냐? 누가 책임이냐? 오늘 이 시대에 가정의 문제 중에도 누구의 문제냐? 어머니의 문제라는 거예요.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여러 번 제가 보면서 아버지가 길을 잃고 타락해도 어머니가 가정을 지키는 아이들은 문제가 없어요. 설령 아버지가 잘 지키고, 성실하고, 근면해도 어머니가 방황하고 길을 잃고 집을 뛰쳐나가면 아이들은 그대로 방탕 하는 거예요. 잘못되는 거예요. 어머니가 집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시128편에는 여자의 제일 큰 축복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네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고 했어요. 아내의 위치가 어디냐? 아내의 축복이 어디냐? 내실이라고 했어요. 집안에 축복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보화는 내실로 들어가게 하셨어요. 하나님이 가정에 들어가도록, 내실에 있는 어머니가 누리도록 만들어 주셨어요. 가정 안에 어머니 손이 아니면 입을 것이 어디 있고 먹을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어머니는 가정의 내무부 장관이에요. 집의 장관이에요. 하나님은 어머니의 축복을 집에 복을 주셨어요. 내실에 복을 주셨어요. 그런데 현대의 어머니들, 한국의 어머니들은 내실을 무시하고, 내실을 뛰쳐나가는 거예요. 외실을 좋아하는 거예요. 음란한 실을 좋아하는 거예요. 타실, 타락의 실, 방실, 방탕의 실, 사실, 사치와 음란의 실, 우리 한국의 어머니들이 Love Hotel을 다 점령하고 있다고 하잖아요?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가정을 지키고, 내실을 지켜서 여성운동이나 남녀차별 그런 말 전혀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내려오는 유대인들은 세계 최고의 인물들을 길러내고 있습니다. 지상에 있는 여자 중에 가장 행복한 여자가 유대인이고 가장 여성적으로도 만족하는 자들이 유대여자들 이래요. 내실에 행복이 있는 것이지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그런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속히 내실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의 심각한 문제들을 어디에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세계에 가장 타락한 어머니가 한국의 어머니예요. 전세계에 가장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음란한 여자들이 한국의 어머니들이에요. 어머니들은 옷을 입어도 어머니같이 입어야 합니다. 나와서 다녀도 내실에 있는 것처럼 다녀야합니다. 요사이 보면 저분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요. 내실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에요. 내실에서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를 축복하고 자녀를 잘 기르고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을 귀히 받들고, 저도 목사이지만 집에 가서 파란 고무신이 없으면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집사람 신이 있으면 기분이 좋고 없으면 허전합니다. 교인들도 교회 너무 와서 돌아다니지 말고, 쓸데없이 필요한 일 제외하고는 남편 오기 전에 기다리고 있다가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벧전3장 말씀에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잘 믿는 거룩한 부녀들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최고의 믿음의 생활 잘한 부인들도 남편에게 순복하였다 라는 거예요.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이 여자의 아름다움이라는 거예요. 자기를 단장하는데 남편을 무시하는 것은 아무리 얼굴이 아름다워도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를 어떻게 여자가 단장하느냐? 자기의 아름다움이 어디 있느냐?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을 부면 그것이 아름답다라는 거예요. 사라는 자기 남편 아브라함을 주님 이라 했어요. 남편을 임금처럼 생각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라가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가 더 큰 복을 받았는데 사라의 이름의 뜻이 Queen, 여왕이란 뜻이에요. 하나님께서 사라에게는 남편이 왕이니까 부인도 여왕 되는 것이지요.

남편을 짓밟으면 여자도 짓밟히는 거예요. 우리 교인 집에 심방을 해보면 남편이 장로님인데도 님자를 안 붙여요. 우리 장로가, 김 장로가, 이 장로가 장로 하나님이 세워 주셨는데 님자 붙이면 죽나요. 남편에게 전부 말을 놓는 거예요. 개를 부르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남편을 높여봐요. 최고로 높여봐요. 이것부터 고쳐야 됩니다. 내실에 들어가서 아내는 사랑하고 남편은 존경하고 그러면 여자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여왕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여왕의 복을 내려주신 다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딸을 기르시는 어머니들도 바로 가르치세요. 너의 남편 잡아라 처음부터 잡아라. 닭을 잡아요. 무얼 잡겠다라는 거예요. 아예 처음부터 잡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남편을 존경하고 받들어 주는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예요. 하나님의 뜻이에요. 오늘 이 시대의 문제를 우리는 영적으로 풀어나갈 때 진정한 답을 찾을 줄 믿습니다.

이 사회가 나라가 건강하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회복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영적인 얍복강의 역사가 없으면 21세기에 우리 나라가 잘 살아 세계를 향해 나갈수 없는 것입니다. 지하자원이 많아서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사람다워야 되고 사람의 가치와 존엄성과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영적 힘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런 면으로 심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참으로 귀한 것은 일생동안 하나님을 의지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평생동안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야곱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예배의 사람입니다. 늘 단을 쌓습니다. (♬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 단을 쌓은 것 본 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길 원합니다. ♬) 하나님 앞에 단을 귀히 여기고 예배를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일을 만날지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이 야곱의 자손이듯이 또 야곱은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바꾸어서 전 민족을 오늘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야곱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평생동안 하나님을 떠나면 죽는 줄 알고 하나님 제일주의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들 길러보면 초등학교 반장까지 하다가도 중학교때 타락하고요 중학교때 1,2,3등 하다가도 고등학교때 타락하고요. 고등학교때 전교에서 수석을 하다가도 좋은 대학 들어가서 대학가서 아주 방황을 해서 인생을 잘 못 걸어가는 사람이 많이 있듯이 신앙생활도 주일학교 청년 때는 잘 다니다가 그 다음에 타락하는 분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의 발걸음 주님앞에 서는 그날까지 변함없이 내 머리가 백수가 되고 하나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영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만 붙잡고 하나님과 씨름하는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하나님 앞에 씨름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야 됩니다. 저도 아이들을 기르면서 아이들이 내게 상담하고 내게 진지한 문제를 의논해 올 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요. 특히 나의 아내가 전화를 받았을 때 아이들이 어머니를 찾기보다 아이가 아버지 바꿔주세요 하면 그때 기분이 더 좋아요. 저는 어떤 때보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찾아 진지하게 문제를 논의 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너는 내게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장래의 문제를, 그리고 여러분의 어려움을 갖고서 하나님 앞에 내어놓으십시오. 하나님과 씨름하십시오. 기도로 씨름하세요.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단을 쌓으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세요. 이스라엘의 살아 계신 하나님은 여러분을 언제나 응답하시고 도와 주셔서 야곱을 일으켜 이스라엘로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땅에 있는 문제도 영적으로 건강하면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어떤 것도 바울이 말한 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는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저가 종합검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M. R. I도 찍었고 피검사, 소변검사, 나중에는 간디스토마 검사까지 하더라구요. 그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의 기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릅니다. 혹시나 간이나, 신장이나, 폐나, 무슨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제가 하루를 기다리면서 아버지 이번에 아무 문제 없으면 다음 주일 100만원 감사헌금 하겠어요.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아무 문제없다 라는 것. 내 몸에 아무 병이 없다면 세상에 이렇게 좋은일이 어디 있을까? 한가지만 병들어도 병에 종이 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피를 걸르는 사람이 많은지 모릅니다. 다른 것 일체 못합니다. 젊은 사람도 5시간 누워서 피를 걸러 내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암 걸려서 항암주사 맞고 기도 받으러 오는 것을 보면 머리가 다 빠졌어요. 얼마나 약이 독한지 그 고통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머리에 손을 올릴 때마다 아버지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은 것도 너무 감사합니다. 여러분 불평 불만이 있으면 병원 한바퀴만 돌아와 보세요.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은지 몰라요. 다 문제가 있어도 건강하다면 하나님 앞에 마음껏 찬양하고,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육적으로도 잘됩니다. 잘 삽니다. 미국에 록펠러는 그 어머니가 록펠러를 신앙으로 잘 길렀습니다. 그 어머니의 10가지 유언이 있어요. 어린 아들에게 항상 이것을 가르쳤어요. 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할렐루야! 이것만 확실해 보세요.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내가 이말 하기 미안하지 만은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잘 받들어 손해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뜯어내서 덕 볼일은 하나도 없어요. 3. 주일예배는 반드시 본 교회에서 드려라.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영적인 고아입니다. 어디가도 항상 내 교회에 나와서 교회를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것 잊지 마세요. 예배가 우리의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거예요. 주일날 예배 드리는 주일 성수만 잘해도 여러분은 평생동안 건강하게 살 줄 믿습니다. 예배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한 시간이 아니예요. 영적 신비함이 여기 다 있어요. 예배를 통해 식사를 나누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참 기쁨과 배부름을 얻어요. 하나님이 배를 채워요. 예배 시간은 주님의 품안에 잠드는 시간이예요. 아주 큰 평안을 누리는 시간이에요. 예배 시간은 주님의 보혈로 내 죄를 사함 받는 시간이에요. 예배를 드리면서 내 더러운 옷들을 갈아입는 시간이에요. 교회는 탈의실과 같아요. 예배 시간은 능력을 받는 시간이에요. 성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성자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보혜사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갖가지 은사와 은혜를 주머니마다 그릇마다 채워주는 축복의 시간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배가 귀한 거예요.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언제나 정상적이며 건강한 내 위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배 드리고 나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길이 열리고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 아무 장애물이 없도록, 예배를 드리고 나면 좋으신 하나님이 되고, 축복의 하나님이 되고 사랑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신앙고백 할 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여러분 이말 한마디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내 아버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만 알아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이 지식이 많은데도 왜 이렇게 방황하고 인생의 길을 알지 못하여 이렇게 헤매이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분명한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어를 잘못하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별로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간단한 거예요. 몇 가지 중요한 것만 알면 어디가든지 되요. 어디서 왔느냐? 한국에서 왔다. 내 주소만 정확히 알면 되요. 어디 가느냐? 나는 어디 간다. 며칠 있다 가느냐? 3일 있다간다. 한 달만 영어 공부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인생을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다. 너는 누구냐? 하나님이 부르시면 하나님 나라에 간다. 이것만 알아도 어떤 시험 당할지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이것이 없어요. 기본이 없어요. 중요한 이것이 없어요. 예수님은 누구시냐?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나의 구세주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 하셔서 재림의 주님으로 구름타고 이 땅에 다시 오실 주님이시다. 한 주일만 배워도 이것은 알 수 있습니다. 머리 좋으면 한 시간이라도 되요. 성령님은 누구시냐? 늘 나와 함께 하셔서 나를 권고하시고 나를 가르쳐 주시고 인도하시고 내게 은사를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예수 잘 믿도록 이 세상에 실족하지 않도록 이 환난, 질고, 시험 많은 세상에 항상 나와 동행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할렐루야 확실한 믿음 위에 서서 영적인 씨름을 잘하여 이 혼란의 새시대 21세기 새시대라고 하지만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이 방황의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야곱과 함께 길이 길이 천대만대 복되게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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