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저 아래 저 사람을 보라 / 눅 10:30-37

  • 잡초 잡초
  • 545
  • 0

첨부 1


          저 아래 저 사람을 보라

                                           
누가복음 10:30-37

어떤 교인이 기차를 타고 가다가 같은 교인이 앞자리에 앉아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서로 기도하고, 인사하고, 가다가 식사때가 되어서 한 교인이 도시락을 꺼내 먹고 있었습니다. 옆에 교인이 생각하기를 교인이면 조금 잡수시라고 인사라도 하지 않겠나, 나누어 먹지 않겠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혼자만 먹는 거예요. 그래서 말했어요. '성경에 네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 하라고 했는데' 하면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 말을 듣고도 열심히 먹는거예요. 그러더니 성경에 그 말씀만 있느냐고 '십계명에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그랬는데.' 어느말이 맞습니까? 다 성경의 말씀이지요.

오늘날 우리 교인들이 이 두가지를 가지고 이렇게 믿는것도 믿음이요, 이렇게 사는것도 하나님 뜻대로 사는거다. 이렇게 모두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앞에 어떤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이냐? 성경말씀을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해석해서 자기 만족을 위해서, 자기를 편안하게 하는 말씀으로만 받아 들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온 인류에게 주시는 정확한 그 뜻을 분별해야 된다라고 로마서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두말할것도 없이 구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영생입니다. 천국입니다. 믿음이지요. 어떤 경우에도 이 믿음을 지켜야 되고, 주일도 지켜야 되고, 기도의 생활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만큼 또 이웃과의 관계도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큼 이웃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이웃도 사랑하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향하여서나 이웃을 향하여서 높은 수준의 삶을 살게 되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종 황제때입니다. 그때 심히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워지고, 국력은 심히 쇠하여져서 1895년 청일전쟁이 일어나서 일본은 청나라와 싸워 이기면서 우리나라를 손안에 넣으려고 합니다. 그때 우리나라에 일본의 뜻을 거역하는 수구세력이 누구냐, 힘있는 자가 누구냐, 움직이는 자가 누구냐, 그를 민비로 보고 민비를 아주 잔인하게 난자해서 불로 태워 우리 국모를 죽입니다. 이것을 을미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을미사화라 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후로 고종 황제는 불안하여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때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선교사로 들어와 있던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1884년 알렌이 1885년에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4월 6일 부활절 아침에 인천을 통해 들어오게 됩니다. 그 짧은 기간에 황제께서 선교사들을 누구보다 인정을 하게 됩니다. 위기를 만날 때마다 언더우드를 부르고, 그날도 밤에 총성이 들리니까 언더우드를 불러서 밖에 선교사님 안계시냐고, 황제가 소리를 질러서 선교사가 그 날 밤에 황제와 하룻밤을 함께 자고, 황제가 그 밤을 편히 주무셨다는 이런 기록이 교회사에 내려오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생활, 선교사의 삶이 믿을수가 있었습니다. 훌륭한 삶이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우리의 삶, 우리가 얼마나 유교의 훈련이 잘되어 충성하고, 도덕적으로 진실한 삶이라고 하지만은 선교사의 삶에 비추어 보니까 비교가 안되는 삶이었습니다. 믿을 이는 선교사 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사람도 귀합니다. 사람에게도 잘 보여야 합니다. 사람의 눈도 의식해야 합니다. 사람의 입도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교인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아서 잘 사는 것도 은혜요, 성공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잘 살고, 지위가 높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사람도 그대로 존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 존경할 일을 해야 존경하는 거예요. 낮아도, 가난해도, 존경받는 사람이 있어요. 힘이 없어도 우러러보는 사람이 있어요.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도 침을 뱉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이 세계를 오랜동안 1세기를 걸쳐서 세계를 지배합니다. 영국이 세계를 통치할 때 해가 떠서 지는 곳이 없을 정도로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유럽, 오세아니아주인 호주, 캐나다, 북미까지 미국까지 얼마나 넓게 점령을 했습니까? 영국이 지배했던 나라들이 모두 독립을 하고, 자유를 선포하고, 오늘 모두 훌륭한 나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놀라운 것은 그 나라들이 모두 영국을 존경하고, 영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영국 여왕의 초상화를 화폐에 사용하고, 영국 국경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영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중요한 행사때 마다 영국 여왕이 오고, 영국 총독이 가서 있는 나라도 있고, 우리가 볼때는 이해가 잘 안갑니다.

우리는 보기도 싫을 텐데 어떻게 영국을 이렇게까지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지.. 이것은 바로 영국 사람들이 지배했지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했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다가 갔습니다. 그들이 다녀간 발걸음이 아름답다라는 거예요. 그들의 지배가 훌륭했다라는 거예요. 어느 누구도 지나간 다음에 역사적으로 반항하거나 저항하는 세력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영국은 훌륭한 민족으로, 존경을 받는 민족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같은 지배자였지만 일본을 보십시오. 우리나라,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일본이 거쳐간 나라마다 어느나라 할 것 없이 이를 갊니다. 일본사람이라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일본놈이라고 말합니다. 일본인들은 가는 곳곳마다 잔인했습니다. 20세기의 야만인이었습니다. 악랄했습니다. 더러운 민족이예요. 자기밖에 모르는 민족이예요. 무섭게 짖밟았어요. 수많은 피를 빼앗았어요. 그래서 일본은 외롭습니다. 아주 고독하게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사귀지 않습니다.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힘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서로 사랑하며 기회가 주어 졌을 때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좋은 일 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높은 자리는 오래 못 있습니다. 낮은 자리는 모두 오래 있을 수 있지만은 모든 높은 자리는 잠깐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 가셨습니까? 좋을 일 하려고 해야 합니다. 오래 오래 있으려고 하는 것은 역사에 있을수가 없습니다. 오래 있으면 안될 자리가 바로 높은자리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때는, 아, 내 짧은 기간 좋은일 해야 되겠다. 좋은 소리 들어야 되겠다. 저 아래 있는 이웃을 향하여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앞에 잘 되어 잘 사는 것, 참 감사할 일이고, 축복받은 일이고, 성공한 삶입니다. 분명한 일이지만 이 축복을 하나님께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도 나눌줄 아는 성도들이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성도인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배고픈자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불쌍한 자들의 슬픈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과부의 애통하는 소리를 하나님은 듣고 있는 것입니다. 밤을 혼자 자는 고아와, 병든자와, 슬픈 모든자를 하나님은 외면치 않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런 것은 다 잊어버리고 교회에 나와서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 아무리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진실하게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예배를 좋게 받으시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이 주시는 귀한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셀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가 돈도 다 빼앗고, 때리고, 거반 다 죽게 된 것을 구덩이에 버리고 갔습니다. 그곳을 제사장이 지나갑니다. 제사장은 예배를 인도하고, 거룩하고, 그 당시 성전의 지도자입니다. 훌륭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금식기도 많이 하고, 성경많이 알고,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종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못본척하고 지나갑니다.

오늘 설교시간 때문에 얼마나 바쁜데, 예배시간 때문에 그리고 지나갑니다. 또 다른말 했을른지 몰라요. 교회에 나오지 않더니 저렇게 되었나봐. 그렇게 책망했을는지 몰라요. 또 다른말 했을런지도 몰라요. 무슨 죄를 지어서 죄값으로 저렇게 되었나봐. 그 다음에 레위인이 지나갑니다. 레위인은 성도예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예요. 찬양도 잘하고 기도도 잘했어요. 그러나 지나갔어요. 위험한 곳인지 몰랐나, 혼자 이런곳을 다니니까... 주님과 동행해야지, 여러 가지로 모두 수군거리고 지나갔어요. 훌륭한 분들이 지나갔어요. 거룩한 백성들이 지나갔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누가 지나갑니까?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갑니다. 지위도 없고, 계급도 없고, 거룩하지도 않고, 기도도 별로 안하는 사람이예요. 훌륭한 분이 아니예요. 좋은 사람도 아니예요. 돈 많은 사람도 아니예요. 굉장한 사람 아니예요. 많은 사람이 천하게 여기는 사람이예요. 그곳을 지나가다 사람의 신음소리를 들었어요. 사람이 피를 흘리고 있었어요. 급히 내려가서 자기옷을 찢어서 싸매어 주었어요. 자기의 나귀에 그 사람을 태웠어요. 조금 내려오면 지금도 그곳에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집이 있는데 그 주막으로 데려가 치료를 해주었어요. 모든 치료비를 다 되주었어요. 며칠동안 회복이 되었어요. 주인에게 모든 경비를 다 지불하고 가면서 다시 제가 올터이니 이 분을 계속 돌보아 주세요. 돈이 더 들면 다시 올 때 다 갚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제사장의 삶이, 레위인의 삶이, 하나님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잘 믿되, 이웃을 향하여서는 사마리아 사람 같이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오늘날 목사라고 할 수 있어요. 목사 가운데도 적은 교회 목사가 아니고 큰 교회 목사예요. 아마 설교를 김삼환 목사같이 잘했는지 몰라요. 그러나 엉터리예요. 잘하면 뭐해요? 이웃이 없는데 남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전혀 기뻐하지 않는 주의 종이예요. 오늘 우리에게 위에 하나님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래로 우리 이웃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 人자는 서로가 협력하며, 서로가 기대며, 서로가 손을 잡고 살도록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만왕의 왕이시지만 사마리아 사람 같이 살아 가셨어요. 약한자를 사귀고, 죄인을 위하여 죽으시고, 문둥병자를 가까이 하시고 실로암 못으로 가시고, 예수님은 병든자만 모여 있는 베데스다 못으로 가시고 문둥병자가 있는 더러운 곳, 저주 받은 곳으로 찾아가시고, 배고픈자, 슬픈자, 외로운 자,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모든 사람을 주님은 찾아가셔서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 되셔서 위로하시고, 용서해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그 많은 죄인을 어느 누구도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여주신 능력의 사랑의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신 분이 하나님과만 교제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만 살아가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웃에게 좋은 친구가 되셔서...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산 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것이 없어라. 내 마음 아플적에 큰 위로 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 것이 없어라. 내 마음 아플적에 큰 위로 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산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것이 없어라♪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눅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 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 이웃에 잃어버린자들이 참 많습니다. 마 25장에는 '갇힌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이런 모든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이 돌보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주님을 향한것'이라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갇힐 때 네가 나를 돌보고, 내가 병들었을 때 네가 나를 간호해 주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든자를 돌아보는 것은 주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불쌍한 자를 돌아보는 것은 주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성전에서만 만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길거리에서, 슬픈곳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버림받은, 저주의 낮은 곳에서 강도 만난자와 함께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물론 더 기도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믿음이 견고해야 할 것입니다.

금식기도도 많이 하고,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병도 고치고, 기사와 이적도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것이 있어도 후자가 없으면 그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너무 전자만을 가르쳤습니다. 기도원이 너무 차고 넘칩니다. 새벽기도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이웃을 향하여 가는 손길이 너무 적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자가 없습니다. 길거리에 쓰러진 자를 향해 주머니속의 것을 꺼내갈 생각이나 하고 그 사람을 옮기는 생명을 살려주는 친구가 너무 없는 이 시대입니다. 신앙은 신발과 같습니다. 아무리 신발이 좋아도 한 쪽 것만을 신고 다닐수는 없습니다. 양쪽이 다 있어야 되는 거예요. 날개와 같습니다. 한쪽 날개로는 못날게 되어져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 성경의 계명을 다 이루는 것은 계명은 하나라고 하셨어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남은 여생 얼마 안되는 세상을 어떤일에 여러분은 관심을 갖고 살아가려고 하십니까? 우리 교회는 앞으로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까? 더 많이 짓고, 더 많이 모이고, 더 굉장한 교회되고, 김삼환 목사, 유명한 목사 되어서 유명인이나 되고, 신문에 오르내리는 이런 삶이 저의 바라는 삶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문의 제사장과 다를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 우리 성도들이 저 낮은 곳, 약한 곳, 불쌍한 자, 할 일 많은 이 땅에 저들을 향하여 우리의 손을 내밀고, 그들의 친구가 될 때에 내게도 행복이, 하나님께도 영광이,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주면서 웃을 수 있는 웃음만이 값진 웃음인줄 믿습니다.

하나가 있는데 하나가 없으면 불구자이지 않습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빠지는 것이 큰 것입니다. 어떤분이 결혼을 하는데 신부 친구가 성경 말씀을 절수로 축전을 보냈어요. 피로연을 마치고 축전을 하나하나 읽는데 그 내용이 요한일서 4:18절입니다. '사랑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아주 좋은 말씀이예요. 그런데 우체국에서 요한일서의 '일'자를 빼고, 요한복음 4:18절을 보냈어요. 그곳에는 '네가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한 자가 빠진 것이 기가막힌 거예요. 하나가 있었을때는 사랑이 있고 행복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 일자를 빼버리고 그냥 요 4:18절로 하니까 사마리아 여인처럼 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으나 지금 있는것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 이웃 빼버리면 이것은 남편 다섯이나 있는 사마리아 여인과 같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교회는 주님을 본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주님의 자녀들이 주님의 삶을 본받아 사마리아 사람의 이 선한 행실을 본받아 살기를 주님은 기뻐하시고 한국 교회를 향하여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는 거룩한 사람, 깨끗한 사람, 훌륭한 사람만 나오는 집이 아닙니다. 교회는 강도 만난자가 나와서 위로받는 곳입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교회에 금가락지를 끼고 오는 사람은 안내를 잘하는데 헐벗고, 죄많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오면 안내도 하지 않았다라는 것이 야고보서에 나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 사람의 눈에서 새로운 주님의 눈으로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합니다. 낮은 사람을 높일줄 알고, 천한 사람을 귀히 여길 줄 알고, 헐벗은 사람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봉사의 눈을, 사랑의 눈을 가져야 됩니다. 정욕의 눈은 그런 것을 보지 않습니다. 교만한 눈은 그런 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높은 사람 사귀는 것이 좋은 것만 아닙니다. 권력이 바뀔 때마다 한동안 높은 사람 사귀었던 사람들은 다 불리어 갑니다. 검찰에 불려가서 그 사람을 언제 만났느냐 물으면 만나지 않았는데요. 모르는데요. 골프장에서 만나지 않았느냐. 아닙니다. 그때 골프장 앞을 차타고 지나갔을 뿐입니다. 권력이 바뀌면 오리가 없어요. 너무 오리를 많이 잡아가지고, 어떻게 오리발을 내미는지요.

약한자를 찾아보세요. 가난한 자를 만나 보세요. 그런 말을 듣지 않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제 깨닫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느때보다 더 손을 펼쳐야 할 이웃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이 전 국민의 10%인 450만 정도입니다. 여기에다 해마다 늘어나는 장애인이 아주 많습니다. 교통사고로 일년에 만명이 죽고, 오만명은 평생 불구자가 됩니다. 뇌를 다친 사람, 척추를 다쳐 일어나지 못하는 분이 오만명이나 됩니다. 산업재해로 삼만명이 불구자가 됩니다. 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하고 기계에 손, 발이 잘린 사람이 일년에 삼만명이나 됩니다. 질병과 의료사고로 일년에 삼만명 나옵니다. 기형아 100명의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4.7명이나 됩니다. 뇌성마비, 소아마비 등...

일년에 2만명의 기형아가 생겨 납니다. 노인 장애인들도 해마다 3만명씩 생겨나고 있고요, 또 에이즈 환자가 얼마나 많고, 알콜 중독자가 전 국민의 10%이고, 마약 중독자가 지금 얼마나 늘어나고 있습니까? 교도소에 갇힌자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에 수많은 가정이 파탄하고, 사업이 실패하고 소년, 소녀가장 까지 하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정부가 감당할 수 있습니까? 1200만 우리 성도들이 깨어서 우리 이웃을 돌봐야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지.. 나라가 이것을 다 해줄 수 있습니까? 우리 교회도 정신을 차려야 되고, 지금까지 하는척하고 했지만은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런일을 더 열심히 더 많이 해야되고, 지금 경제는 여러 가지로 어렵다고 하는데 금년 겨울 노숙자들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리는 생각하면서 이 겨울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침대가 좋아야 잠이 잘 온다고 생각하며 침대를 바꾸고, 냉장고가 새 것이 나오면 또 바꾸고, 자동차도 바꾸고... 전부 위로 올려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이제 마지막 더 갈 곳 없는 사람, 더 이상 덮을 이불도 없는 사람, 더 이상 팔아 먹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우리 이웃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래서 저희 교회도 여선교회 회관을 새롭게 공사를 하고 있는데 11월 첫주부터는 매일 점심은 모든 분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머리를 자르고, 파마도 해 드리고, 또 병원 하시는 성도들이 많으신데 하루씩 나오셔서 무료로 그 분들을 진료해 주시게 될 것입니다.

모든 우리 이웃을 향하여 한국 교회가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면 이 나라 좋은 나라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예요. 하나님만 기쁘게 하는게 아니예요. 내가 잘되는 길이예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 일 많은 이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교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 2:3-4에 '아무일에나 타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다시 사람의 일을 돌아보라. 엡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이웃간에 용서해 주는 것도 참 좋은 일입니다. 엡 4: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모두가 이웃에 대해 말합니다. 인자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 주고,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이 귀하다라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해를 주지 않습니다. 딤전 5: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교회의 직분이 일류대학을 나오고, 돈이 많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하여 좋은 일이 있는 증거가 있어야 그 사람을 직분자로 세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웃이 없이 혼자 교회에 나와서 아멘. 할렐루야. 하는 자를 직분자로 세우지 말라는 거예요.

딤전 6: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하라.' 딤전 6: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남을 돕는 것은 나를 돕는 것입니다. 남에게 주는 것은 내 자녀에게 주는 유산보다 더 큰 보화로 자녀들까지 복을 받는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라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듯이 우리가 불쌍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마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없는 양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고 했습니다. 잠 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들입니까? 남을 돕고 사랑하는 것은 큰 은혜를 안 받아도 되고요, 많이 안 배워도 되고요, 인물이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알바니아라는 가난한 나라, 가난한 마을에 가난한 한 소녀가 있었어요. 이 분은 배운것도 없어요. 인물도 형편 없었어요.그런데 이 소녀는 이웃을 향하여 어려서부터 좋은 일을 하는 거예요. 좋은 일은 가난해도 할 수 있어요. 못 배워도 할 수 있어요. 이분이 하루는 인도라는 나라가 그렇게 어렵다는 뉴스를 듣고 기도하는 거예요. 아버지, 제가 인도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런데 가는 길이 없어요. 가는 길이 신부가 되어야 가능한 거예요. 아니면 수녀가 되는 길이 갈 수 있는 길이예요. 그래서 그는 수녀가 되었어요.

인도에 가서 가난한 사람을 도왔어요. 빈민촌으로 가서 도왔어요. 모두가 우습게 여겼어요. 모두가 비웃었어요.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거기에서 소문이 났어요. 소문이 온 세계로 번져 나갔어요. 얼마 지나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모두가 그녀를 귀히 여기는 거예요. 나중에는 노벨상을 받았어요. 온 세계 인류가 제일 존경하는 여자가 되었어요. 세계의 대통령들이 세계의 최고의 영광스러운 분들이 모두 그녀를 만나려고 하는 최고 자리에 올라갔어요. 그녀의 이름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테레사 수녀예요. 작년에 그 분이 돌아가시고 온 인류가 얼마나 울었습니까. 온 인류가 우는자가 되었어요. 온 인류의 사랑을 받았어요.

이웃사랑, 이것은 못 배워도 가능하구요, 인물이 없어도 가능하구요, 또 가난해도 가능해요. 주님의 사랑만 있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예요. 좋을 일 많이 할 때 이 나라 좋은 나라 될 수 있는 거예요. 너무 배부르면 안돼요. 어떤 여우가 포도원에 좁은 구멍으로 겨우 들어갔는데 포도를 배부르게 먹고 너무 배가 불러서 나오지 못했대요. 그래서 잡혀 죽었대요. 한국교회, 큰 교회 우리 모든 성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21세기,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같이 살아라.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