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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에 대한 갈증인가! <요 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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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대한 갈증인가! <요 4:7-14>

- 김이봉 목사(상도교회) -


□ 무엇에 대한 갈증인가  요 4:7-14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
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
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
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
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
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7-14절)

1. 모든 사람들은 삶에 있어서 갈증에 시달립니다.
갈증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바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바람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성취해 보려는 갈증은 더욱 더 심합니다.
갈증이 있다는 것은 바라는 바가 이루어졌어도 그것에 만족함이 없음을 의미합
니다.
인류역사에 등장했던 독재자들과 그들의 부귀 영화도 그들을 만족케 할 수는 없
었습니다.
또 갈증이 있다는 것은 갈등(葛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갈증과 갈등이 인류역사를 발전시키고 진보와 향상을 낳
기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행으로 몰아넣었는지 모릅니다.

갈증은 성공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별처럼 빛나는 스타들이 자기들의 성공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기에, 저들은 자
신의 인기관리를 위하여 얼마나 전전긍긍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요즘 대권을 잡으려는 사람들에게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인기가 얼마나 상승하느냐에 따라 표 차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
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민감한 것은 그들에게 그만한 갈증과 갈등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
다.
                               
요즘 가끔 신문에서 보면 연예인들이 마약에까지 손을 대는 것을 볼 수 있습니
다.
왜 그런 행동이 나오겠습니까? 모두가 무엇인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큰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쫓기며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갈증과 갈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갈증과 갈등이 있는 한 만족함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말입니다.

정신적인 갈증과 갈등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부정적입니다.
더욱이 신앙에 관하여 더 더욱 부정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갈증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신앙은 또한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수가성의 여인처럼 무엇인가 인생의 갈증을 느껴야 합니
다. 
인생의 갈증을 느끼고 있었기에 주님이 그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말을 먼저 걸
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인생문제 전반에 걸쳐 갈증이 있는 분들이라면 주님을 만나야 합
니다.

2. 문제는 무엇에 대한 갈증이냐가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현대인의 갈증은 물질적 풍요로움과 쾌락의 즐거움을 추구함에
있습니다.
흔히 상식적으로 인간의 사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행복 추구에 있다고 합니
다.
그런데 그 행복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에 대하여서는 물질과 육체적 쾌락에다
둡니다.
그래서 오늘 현대인은 무엇이 가치(價値)인가?
무엇이 의미(意味)인가? 보다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며 즐겁게 살
아가느냐? 에 대한 관심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사라진 인간의 원초적 모습이기도 합니다.

타락한 인간이 행복의 기준을 쾌락에 두고 산다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대로입니
다.
창세기 6: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한 것을 보
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아니함으로 그들이 육체가 되었다는 말이 무
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사라지면 남는 것
은 육체의 욕망뿐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채워지지 못하는데 대한 갈증이 대부분이란 말입니다.
육체가 되어버린 인간이기에 사람을 뽑아 쓸 때도 먼저 외모를 보고 택합니다.
그러므로 요즘 젊은이들을 보십시오.
모두 외모에 대한 갈증이 대부분입니다.
요즘 성형수술의 기술이 발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신적인 가치(價値)와 의미(意味)보다는 육체미에 모두를 걸고 있기에, 육체만
을 가꾸려고 합니다.
이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주경, 신학자들은 수가성의 여인의 갈증을 현대인들로 비유적으로 해석하고 있
습니다.
첫 번째 남편을 돈에 비유합니다. 돈으로 만족을 해 보려고 했지만 채워지지 못
했습니다.
두 번째 남편을 명예에 비유합니다. 명예로 갈증을 채워 보려했지만 그것도 아
니었습니다.
세 번째 남편을 출세와 권력에 비유합니다.
아무리 권세를 잡아보아도 불과 10년입니다.
네 번째 남편을 육체의 쾌락 추구에 비유합니다. 육체의 향락이란 것도 순간뿐
입니다.
이렇게 여러 남편과 살아보았지만 어느 누구에게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였던 것
처럼, 오늘의 현대인이 바로 그렇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옳은 해석이라고 봅니다.

세상에서 솔로몬 왕보다 더 부귀 영화를 누리고 간 왕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도 나중에 하는 말이 '해 아래 새것은 없나니 모두가 바람을 잡으려
는 것과 같이 헛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대학시절에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솔로몬은 자기는 다 해본 후에 그런 말하는데 누군들 못하랴, 해 보지도 못한
나로서는 우선 해 보고야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
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좁은 생각이었고 철모르는 생
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1:9절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
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
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하였습니다.
"청년의 때를 즐거워하며 네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하
나님이 심판할 줄 알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네 젊은 날의 네 눈으로 보는 대로 하고싶으면 다해 보
라, 그러나 그 일로 너를 하나님이 심판할 것을 알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젊은 날의 자유를 마음껏 즐겨 보라, 그러나 네가 뿌
린 대로 거두어 드리게 되리라는 그런 뜻입니다.
즉,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처럼 철저한 실존주의 사상이 들어있는 책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갈증이 어떤 종류의 갈증입니까?
이 수가성의 여자처럼 영혼의 가책을 묻어 둔 채 육체적인 것들만의 갈증입니
까?
아니면 영원한 진리의 대한 가치와 의미에 대한 갈증입니까?
어떤 종류의 갈증입니까?
물론 우리는 육체를 벗어나 살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이 육체는 속 사람의 영혼이 잠시동안 거처할 흙집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속 사람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기를 원한다'고도 하였습니다.
육체가 잘 됨과 같이 영혼도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는 어디까지나 썩어질 흙집입니다.
흙집은 아무리 가꾸어도 흙집일 뿐입니다.
이 흙집만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다가는 인생들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속에 참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3. 영원한 갈증 해소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수가성의 여인에게 주님이 하셨던 말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
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
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
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 안에서 인생의 갈증을 해결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인생의 모든 갈증 해소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생수이기 때문입니다.
가물어 타 들어가는 곳에 한 줄기 빗물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생
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는 곳에는 생명 운동이 일어납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먼저 가정이 살아납니다.
사회가 변화합니다.
문명과 문화가 발달해 집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됩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것은 이미 입증된 일입니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 우리 민족은 세계 열강들 틈새에서 낙후된 민족이었습니
다.
그래서 한때는 나라의 주권도 뺏기고 망국민의 슬픔도 경험해야 했었습니다.
온통 방방곡곡에는 미신 투성이었습니다.
마을마다 무당이 있었고, 가정마다 미신 단지들이 있었습니다.
현대 교육과, 과학기술, 의술, 문화 예술, 모든 방면에서 복음은 누룩처럼 우
리 사회를 변화 시켰습니다.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사람이 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죽었던 심령이 되살아납니다.
인생을 포기하고 죽으려했던 사람들도 새 사람이 되어 의미와 가치를 찾아 살
게 됩니다.
인생의 방황자들이 말씀 안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됩니다.
갈증이 해소됩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배에서 생수가 되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샘의 근원이 안에서 솟아난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수가성 여인과 같은 우리들에게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라
고 보십니까? 
주님을 영접해 드리는 길뿐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 되면 우선 자기가 달라집니다.
새 사람이 됩니다.
새 사람이란 육체가 새로워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집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을 보면서 도리어 풍성한 은혜의 순간을 맛보게 됩니다.
즐거울 때는 더욱더 깊은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재미요, 기쁨이요, 영광이요, 축복입니다.

세상에서 방탕하며 술, 담배, 여자를 좋아하며 살던 어떤 사람이 죽을 때가 되
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틀림없이 지옥 갈텐데 큰일났구나”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 날 꿈
을 꾸었는데 자신이 정말 죽었더랍니다.
이 사람이 천국 문에 이르니 천사가 천국과 지옥을 구경시켜 주더랍니다.
이 사람은 먼저 천국을 구경했습니다.
천국에는 흰옷을 입은 성도들과 천사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세상에 살면서 이런 훈련이 전혀 안된 사람이 뒤에 앉아 있으
려니 좀이 쑤시고 따분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랍니다.
"아이고! 천국생활이 왜 이렇게 따분하고 지겹 다냐! 뭔 재미가 있어야지!”

이번에는 지옥을 구경했는데 지옥에는 술집도 있고, 캬바레도 있고, 카지노도
있고, 여자들도 많아 정말 신나더랍니다.
"야! 지옥도 이렇게 좋은 곳이 있네! 뭐! 지옥도 괜찮네!”
그래서 천사에게 "저는 아무래도 지옥 체질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지옥으로 보내주세요”그랬더니 정말 지옥으로 보내졌습니다.
막상 가보니까 굴 깊숙이 들어가서 뜨거운 유황불 속에서 일을 하라고 하는 것
입니다.
천사에게“이거 아까와는 틀리지 않습니까? 아까 왔던 곳은 이곳이 아닌데요.”
이때 천사가 하는 말이 “아까는 관광 비자로 구경왔기 때문에 마음껏 구경하고 놀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영주권을 가지고 이곳에 영원히 살러왔기 때문에
이곳 뜨거운 유황불 속에서 죽도록 일해야 한단다.” 이 사람이 깨어보니 꿈이
었습니다.
이때부터 이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끊고 정신 바짝 차리고 예수를 잘 믿었다
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11-13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 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
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란 세상 사람들과 같이 그렇게 살지 말고 구별되게 살라
는 뜻입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행동, 우리의 취미, 우리의 가치관은 세상의 믿음 없는 사
람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살다가야 할 것이 그리스도인들이란 말입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깊이 삭혀서 갈증 만난 시대에서 해갈의
은총을 누리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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