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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귀히 쓰이는 그릇 / 딤후 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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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2:20-22
귀히 쓰이는 그릇

- 임대식 목사 (평강교회) -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우리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릇이란 어떤 물건이나 음식을 담는 기구입니다. 밥그릇은 밥을 담고 국그릇은 국을 담습니다. 큰 그릇은 많이 담고 작은 그릇은 조금만 담습니다.

어느 집에든지 여러 형태의 그릇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넙적한 접시들로부터 길쭉한 병이나 항아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그릇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만든 재료에 따라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그릇이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사기 그릇, 플라스틱 그릇 등 참으로 많은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이 많은 그릇들은 각기 필요한 용도에 따라 여러 형태와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든 모양이나 색깔이 아주 투박스런 뚝배기라는 질그릇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를 좋아합니다.

며칠 전 모임이 있어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유달리 그 집 설렁탕이 참 맛이 있었습니다. 다들 하는 말이, 설렁탕은 이렇게 밑창을 긁으면 덜그럭 덜그럭 소리가 나는 뚝배기에 담아야 제 맛이 난다면서 맛있게 식사를 합니다. 모양도 별고 없고 깨끗해 보이지도 않지만, 뚝배기는 뚝배기 나름대로 쓰일 곳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위층의 사람도 있고 노동자도 있습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젊은이도 있고 노인도 있습니다. 어느 모임이나 회장이 있고 회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대통령도 필요하지만 수위나 근로자도 필요합니다.

또 교회에는 여러 직분이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과 직분은 나름대로 다 중요하고 이 세상에 꼭 필요하며, 교회에서도 우리 각자의 역할과 위치에 따라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릇으로서의 나의 존재됨, 우리는 그 의미를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은 그릇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모두 같은 그릇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처럼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금 그릇이냐 나무 그릇이냐 하는 그릇의 종류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의 그릇으로서 주인 된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 그릇이냐, 버림을 받는 그릇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밥상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상 위에는 여러 그릇이 필요합니다. 밥그릇은 밥그릇대로, 국그릇은 국그릇대로 식탁에 꼭 필요합니다. 찌게담은 커다란 냄비도 필요하고, 간장 고추장 담는 작은 종자기도 필요합니다.

만일 작은 그릇은 소중하지 않다고 하여 간장 고추장 담는 작은 그릇을 상 위에 올려놓지 않는다면, 아무리 밥그릇 국그릇이 훌륭해도 그 밥상은 맛없는 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또 밥그릇에 간장이 담겨 있고, 고추장 그릇에 국이 담겨 있다면 우스꽝스런 밥상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부자의 화려한 식탁이나 가난한 사람의 소박한 식탁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그릇은 그 크기에 상관없이, 그 모양에 상관없이 다 필요합니다. 제각각 그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 용도에 따른 내용물이 담겨 있을 때, 곧 국그릇에 국이 담겨있고 간장 종자기에 간장이 담겨 있을 때 그릇은 제 역할을 훌륭하게 잘 감당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어떤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가, 우리는 그것을 잘 분별해서 그것을 잘 갈고 닦아야 합니다.

내가 큰 그릇이냐 작은 그릇이냐, 금 그릇이냐 질그릇이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게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펼쳐 나가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합니다.

여기 피아노가 한 대 있습니다. 이 피아노는 많은 부속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널빤지도 있습니다. 건반도 있습니다. 속을 드려다 보면 철사 줄에, 솜방망이에, 심지어 조그만 나사못도 있습니다.

나는 건반이 아니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만일 나사못이 제 역할을 다 감당하지 않으면 피아노는 해체되고 말 것입니다. 철사 줄이 솜방망이를 당겨주지 않으면 고장 난 피아노가 되고 맙니다.

이렇듯 피아노의 부속품들이 모두 제 역할을 잘 감당할 때,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피아노 한 대가 되는 것입니다. 깨끗한 소리가 나는 하나의 악기로서 피아노가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역할을 얼마나 잘 감당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과연 나는 하나의 그릇으로서 얼마나 내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또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이 사회에 유익을 주는 그릇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 달란트, 역할을 있는 자리에서 감당해 나가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그릇의 용도는 무엇을 담는데 있습니다. 아무리 크고 좋은 그릇이라도 음식이나 기타 필요한 물건을 담을 수 없다면 그릇으로서의 가치는 없습니다. 만일 그릇이 엎어져 있다거나 새는 그릇이라면 아무 쓸모도 없이 버려지고 말 것입니다.

그릇이 음식을 담는 기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릇의 외모로 평가되고 만다면, 그 그릇은 이미 하나의 골동품으로 끝나고 말게 되는 법입니다.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과연 나는 무엇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어떤 값진 내용물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우리의 가슴 속에 담고 모시고 살아야 제 역할을 다하는 법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고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간직하고 살 때 하나의 그릇으로 귀히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미래를 담고 살 때, 비로소 나는 나됨의 가치를 누리며 사는 법입니다.

아무리 하늘에서 소낙비가 쏟아진다 해도 그릇이 뒤집혀 놓여 있으면 물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고귀한 음식을 담으려 해도 깨진 그릇이라면 음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늘을 향해 바르게 열려진 온전한 그릇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활짝 열려진 가슴을 안고 사는 우리 모두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정결한 그릇, 깨끗한 그릇이어야 귀중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금 그릇이나 은그릇이라도 더러워진 그릇이라면 쓸 데 없습니다. 절대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그릇은 오히려 그 내용물을 못 쓰게 만들 뿐입니다. 하지만 비록 질그릇이나 나무 그릇이라도 깨끗하면 귀히 쓰일 수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시골 어린이들이 번데기를 먹고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번데기를 담았던 자루에 농약이 묻어 있었기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독이 묻어있는 그릇, 그것은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깨끗한 그릇이어야만 주인이 인정하는 그릇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더럽히는 것으로 5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요, 둘째는 지나친 야망, 셋째는 질투, 넷째는 욕심 곧 소유욕이요, 다섯째는 지나친 자존심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지배할 때, 그 마음이 더러워진다고 합니다.
세상 물건이나 사람의 마음은 더러워지기는 쉬워도 정결해지기는 참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 1분 동안에 더러워지고 일생을 두고 씻지 못하고 더러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 한 2년 자취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밥은 어느 정도 하겠는데, 설거지 하기는 정말 싫었습니다. 그 때 깨달은 바는, “아, 더럽히기는 쉬워도 다시 깨끗하게 하기는 어렵구나”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항상 깨끗하게 보존하기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이 그릇을 밥그릇으로 쓸까, 반찬그릇으로 쓸까를 결정하는 일은 주인이 할 일입니다. 즉 내가 어떻게 쓰임을 받느냐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나는 하나의 그릇으로서 정결하게 내 자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또 깨끗하다는 말은 온전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깨진 그릇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실과 청결이 먼저요, 그 다음으로 인내와 순종과 충성이 따라야 합니다. 그릇에다가 무엇을 담았는데, 그대로 새어버리고 만다면 무엇에 쓰겠습니까? 이미 그릇으로서 가치를 잃은 것은 금 그릇이나 은그릇이라도 아무 소용이 없는 쓸모없는 것에 지나지 못합니다.

우리 주위에 이런 깨어진 인격이 얼마나 많습니까? 진리의 귀한 말씀이 그 마음속에 가만히 담겨있지 못하고 줄줄 새어 사라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은 한번 말씀을 받아들이면 꾸준하고 변치 않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 글을 읽지 못하는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습니다. 이분의 신앙은 참 단순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교회에 나오는 것이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나, 건강하나 몸이 좀 피곤하나 때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교회에 출석하십니다. 이것 단순한 신앙입니다만, 참으로 대단한 변치 않는 신앙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나도 입맛이 까다롭습니다. 너무나 비판적이고 실리적입니다. 그 그릇이 너무나 얇아 마치 알루미늄 냄비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좀 지조가 있고 긍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실 교회에 나올 때마다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졸다가 갈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이런 생각 저런 염려로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공연히 나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또 어떤 때는 설교 말씀에 큰 은혜를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한 신앙인이라면 꾸준히 교회에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직스럽고 튼튼한 그릇이 되어야 하나님이 보다 귀한 것을 넘치도록 담아 주실 것입니다. 지식이나 재주보다도, 두뇌나 미모보다도 더 귀한 것은 진실입니다. 깨어지지 않은 온전한 마음입니다. 깨끗한 그릇입니다.

그렇다면 깨끗함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에는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이 곧 깨끗한 것입니다. 시기와 미움과 다툼과 정욕, 이런 것들이 더러운 것들입니다.

깨끗한 영혼은 오직 사랑과 화평에 있습니다. 의와 진리와 사랑과 화평을 좇아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 가운데 우리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하고 긴요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의 의미와 영광이 깃들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한 가지 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사람이 그릇과 다른 점이 있는데, 세상의 그릇은 그 크기와 모양과 용도가 이미 정해져 있지만, 사람이란 그릇은 끊임없이 그 모습을 키워 나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대기만성이라, 큰 그릇은 쉽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란 말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큰 그릇으로 사용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바다에 나가 낚시질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큰 고기가 잡히면 놓아주고, 작은 고기가 잡히면 그것을 담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작은 고기는 놓아주고, 큰 고기는 가지고 가는데, 왜 당신은 거꾸로 합니까? 이 사람 말이, “우리 집 국그릇은 작습니다. 30Cm 이상 되는 고기는 요리할 수 없어서 큰 고기를 잡으면 놓아 주는 것입니다”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힘써 우리 자신을 키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집에 큰 그릇 되기에 힘써서 하나님의 큰 미래와 비전을 담아 나가는 하나님의 그릇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부족하고 모자라고 추한 우리를 불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겨 주시고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그릇으로서의 귀한 사명을 위탁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로 하여금 사랑과 믿음과 화평을 좇아 정결하게 하시고, 오로지 주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일에 우리의 보람과 가치, 삶의 의미와 행복이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 평화 교회에 귀히 쓰임 받는 그릇이 되기에 힘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일군들 모두 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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