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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 왕상 7: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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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7:13-22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 임대식 목사 (평강교회) -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한 나라나 교회나 언제나 사람이 가장 필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 사람을 찾는 일을 말씀하고 있고, 또 많은 경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을 하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일군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일군을 찾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은 값비싼 보화가 아니라 인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얼마든지 보여줍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공생애을 시작하실 때에,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제자를 택하시고 그들이 큰 인물이 되도록 가르치고 훈련했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저들을 12 기둥으로 세우고 오늘의 세계 교회를 꿈꾸며 하나님 나라 큰일을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의 모범이라 할 수 있는 초대 교회가 부흥 발전해 갈 때에 가장 시급한 일 중의 하나는 교회를 위해 사도들의 하는 일을 협력할 일꾼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일이 많아지자,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하고 교회 살림에만 매어있게 되면,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교회의 일군을 택해 안수해서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려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7집사로 피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최초의 직분자를 세운 신약 성경의 기록입니다.

또한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 계시록에 보면 그 당시 세워진 7교회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7교회 중에서 2교회만 예수님의 칭찬을 받습니다. 하나는 서머나 교회요 또 하나는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이 땅에서 시련이 많았지만, 순교자의 영광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면류관을 받은 교회로 주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한편 빌라델비아 교회는 든든한 기둥들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칭찬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교회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교회의 기둥인 일군들이 든든하고 많은 교회였기에 온 교회가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이렇듯 교회는 기둥 같은 일군들을 필요로 합니다. 든든한 기둥들이 교회를 떠받칠 때, 교회는 흔들림이 없이 강건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기둥 같은 일군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이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서 요긴한 기둥 같은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솔로몬 왕의 주도 하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과 솔로몬 2대에 걸쳐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로 준비하고 기도하여 드디어 이 위대한 일을 감당합니다.

성전의 구석구석을 견고하고 아름답게 세워 나가 당시 세계적으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전을 짓되, 특별히 성소 앞 기둥에 대해 극진한 정성을 기울입니다.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기둥이 든든해야 건물이 든든하고 기둥이 아름다워야 건물 전체가 아름다워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는 기둥 같은 일군을 필요로 합니다. 21세기를 맞으면서, 교회 창립 30주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담아 나가며 교회를 떠받쳐 나갈 새로운 일군들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기둥이 되기 위해서는 기둥으로서의 구비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로 교회의 기둥은 자기 부정으로 세워집니다.

일반적으로 기둥은 베임을 당한 나무라야 합니다. 나무가 아무리 튼튼하고 좋은 나무라 할지라도 산에 들에 서있는 나무 자체로는 기둥으로 세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베임을 당해야 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나무가 큰 집의 큰 기둥이 되려면 반드시 베임을 당해야 합니다. 돌기둥은 바위에서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놋 기둥은 풀무 불에서 녹아져야 합니다.

나무가 기둥이 되려면 나무가 태어난 땅과 뿌리에서 베임을 당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으로 쓰임을 받으려면 자신의 생각과 습관과 이기심을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부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 기둥은 세상 정욕의 뿌리에서 베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무가 죽는 원리는 다름이 아닙니다. 바로 영원히 살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 산에 있는 나무는 결국 고목이 되어 썩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베임을 당해 주춧돌 위에 세워진 나무는 수천 년 보존됩니다.

둘째로 기둥은 튼튼해야 합니다. 기둥으로 쓸 나무는 그 목질이, 내용이 비어있지 않고 알차야 합니다. 무른 나무나 약한 나무는 압력에 견디지 못합니다. 기둥이 튼튼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속이 단단히 채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큰 건물이든 작은 건물이든 기둥은 튼튼해야 합니다. 기둥이 튼튼해야 건물이 튼튼합니다. 기둥이 약하면 그 집은 쉽게 무너집니다. 썩은 기둥으로는 무거운 집을 버틸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썩은 생각, 타락한 성품,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지저분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은 하나님의 전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수 없습니다. 성도는 바른 생각, 강한 믿음을 가지고 몸 된 교회를 떠받쳐야 합니다.

그리고 나약한 성도는 결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버틸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시험이 오면 흔들리고 시험을 받고 믿음이 약해지는 그런 성도로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굳건히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런 성도들로서는 교회가 쉽게 상처를 받고 맙니다.

기둥은 강해야 합니다. 강한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기둥같이 버티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기둥은 곧아야 합니다. 꾸불꾸불하게 비뚤어 진 나무는 재목으로 쓰지 못합니다. 휘어진 기둥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교회 일군도 비뚤어진 사람은 쓸 수 없습니다. 똑바른 믿음의 소유자,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사람에게 선하며 진실하게 사는 성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똑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아무리 곧은 기둥이라 할지라도 세워지기를 삐딱하게 세워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똑바로 세워지지 않으면 사람에게 거추장스럽고 오히려 위험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자기 신앙이 올바르다고 해도, 기둥 같은 성도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올바르게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자리에서 올바르게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올바르게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이단과 사설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올바른 진리의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흔히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 길이 바른 신앙의 길이다 해도 실상은 하나님을 팔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뜻을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곧습니다. 옆으로 인간과의 관계가 술수나 음모가 아니라, 바릅니다. 교회의 기둥 되는 이의 생활은 매일 매일이 진실 되게 사는데 있습니다. 교회의 기둥인 청지기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곧고 바른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넷째로 기둥은 주춧돌 위에서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의 기둥은 머릿돌 위에 세워집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성전의 머릿돌이 되셨고, 교회의 기둥은 이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려면 움직임이 없어야 합니다.

기둥이 흔들리면 집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 기둥은 마음이 견고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기둥은 주춧돌을 바탕으로 그 위에만 있어야 합니다. 흙 위에 있으면 기둥은 썩고 무너지게 됩니다. 내 자신의 전 삶을 주춧돌 되는 그리스도 위에 세워야 합니다.

자, 처음에는 열렬하게 주님을 따르고 섬기던 가룟 유다가 중도에 스승을 버리고 배반하여 넘어진 이유가 무엇이던가요? 그것은 시간적으로 오랜 기둥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란 주춧돌 위에 자신을 세운 것이 아니라, 썩어질 세상 것 위에 자신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썩어서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이기적 욕심이나 물질이나 명예에 기초를 둔 기둥은 무너지게 되고, 그 기둥이 무너지면 집이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믿음의 기초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기초 위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다섯째로 기둥은 기초 위에서 모든 건물의 무게를 버틸 수 있어야 합. 건물의 하중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수고를 감당하고 어려운 일을 맡아 할 수 있는 그런 성도가 기둥 같은 성도라는 말입니다.

수고는 하지 않고 영광만 얻으려고 하는 성도는 결코 기둥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십자가로 지고 버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기둥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둥은 기둥과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기둥은 혼자서 설 수 없습니다. 더불어 설 수 있는 그런 믿음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기둥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교회의 기둥 같은 장로 세분을 선출하는 공동의회를 개최하는 날입니다. 저는 신앙 생활하시는 성도님들이 장로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가짐은 좋은 것이라 여깁니다. 바라기는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평화교회 장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늘 하시면서 교회를 위해 헌신하시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준비된 분을, 누구를 평화 교회의 기둥으로 세우실지 우리는 모릅니다. 단지 지혜가 짧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 못하는 우리는 투표를 통해서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고 믿고 공동의회를 여는 것입니다.

설사 뜻이 있어도 선출되지 못한 분들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신앙의 노력을 기울여 교회의 기둥 같은 성도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혹 예상치 않게 선택된 분은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부족한 나까지도 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뿐입니다.

비단 오늘 공동의회를 통해 기둥 같은 성도를 선출하는 일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수고하는 봉사와 헌신을 통해 기둥의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큰 건물일수록 기둥이 많이 필요합니다. 기둥이 많은 건물은 든든합니다. 기둥은 모든 짐을 머리 위에 지고 겸손히 사명을 감당합니다. 바로 우리 성도님들이 모두 그렇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새로운 21세기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우리 귀한 자녀들, 청년들이 모두 참으로 기둥 같은 하나님의 일군들 모두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하지만 그 일이 우리의 바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만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른된 우리들의 모범과 본이 꼭 있어야 할 일입니다. 내가 비뚤어진 기둥으로 누워 있으면서, 우리 자녀들에게 바른 기둥이 되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그 말이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내 속이 이미 다 썩어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너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야 한다고 입으로 가르쳐도, 그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오늘의 우리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우리 후배들은, 후손들은 그 발자취를 배우고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교회의 기둥 같은 바른 성도가 되려 할 때에 그 모습, 그 노력을 우리 자녀들도 후배들도 배우고 익히면서 자라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법은 우리 가정과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저 우리 평화교회 믿음의 식구들 가운데 앞으로도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떠받치는 기둥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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