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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 눅 22: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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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말  씀 : 누가복음 22:14-20
설  교 : 임정석 목사 (대구평강교회)

오늘은 성찬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찬의 의미를 먼저 되새겨 보고 나서... 함께 성찬식을 거행하려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거행하려는 이 성찬식(聖餐式)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가지시면서
그 자리에서 새롭게 제정한 것에서 부터 시작되는데
사실 그렇게..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모였던 그 날 밤은.. 매우 의미 있는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우리가 광복절에 일본에게 36년 동안 식민지로 있다가 해방된 것을 기뻐하듯
이스라엘 민족은 36년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36년보다도 10배 정도나 되는 430년 동안이나
애굽나라에서 종살이 하다가 출애굽하였기에
그들은 우리의 광복절과 같은..
아니 우리의 광복절 보다도 더 의미있는 절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입니다.
다 함께 보십시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누가복음 22:7-13)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의미를 가진 유월절에!!... 
출애굽을 기념하며!!..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기억하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새로운 언약... 곧 성찬을 제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새 언약이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는 본문에 나타난 주님께서 새롭게 제정한 성찬과
성찬을 제정하시고 나서 말씀하신 새언약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구약시대의 언약 개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었던 하나님의 언약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31:33-34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에덴동안 이후 모든 인류는 다 타락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여 당신의 백성을 삼으시고
대화도 하시고... 축복도 하시며... 때론 채찍질도 하시면서 교제관계를 맺겠다는 약속인데
이것을 여기서... 언약(言約, covenant)이라.... 언약관계라... 하였습니다.

이렇게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으로 언약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갔는데
그것이 생활 속에서 어떤 것으로 표현되었는가 하면 계명과 제사로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또한 죄인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기에!
항상 죄를 속하며 살아야... 하나님이 우리와 교제해 주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죄를 억제하거나 죄를 속하기 위하여
계명을 지키고... 제사도 드리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구약의 계명과 제사는 사실 하나님과의 언약이라는 약속 위에서 보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하나의 교제였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하나의 교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은총으로 주신진 하나님과의 그 교제 방편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죄 짓고 제사드리고.. 또 죄 짓고 제사드리는 일만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해도.. 제사는 제사였고.. 교제도.. 교통도... 그냥 그렇게 이루어지긴 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죄를 밥먹듯 반복하면서..
또 피흘리는 제사를 통해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시도하는
그런 식의 교제는 원치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취하신 결단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짐승을 잡아 피흘리는 제사는 이젠 그만하게 하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여 제물로 드리게 함으로
단번에 모든 제사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도 구약의 제사와 같이 언약에 기초한 것이며
하나님과의 교제나 교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미 있던 언약과 비교하며 볼 때에 새언약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0절 말씀입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자 어떻습니까?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

이 말씀에 대하여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언약의 피”라고 까지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여하튼 이제...
옛언약인 제사법 시대는 끝났고.. 새언약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므로
우리는 이 새언약의 개념을 좀더 밝히 알 필요가 있기에
옛언약과 새언약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를 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옛언약은 짐승의 피로 하나님과 교제를 시도하였으나
    새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십자가 사건으로 교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둘째로 옛언약은 율법을 지킴으로.. 교제가 이루어졌으나
    새언약은 당신의 아들을 제물로 드린 그 십자가 사건을 믿음으로...
    교제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셋째로 옛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이라면
    새언약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이라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옛언약을 기준으로 말하면 우리는 언약의 백성이 아니지만
    이제 새언약을 주심으로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새언약의 약속과 축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옛언약은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하는 테두리 안에서 시행된 것이지만
    새언약은 민족을 초월하여 적용되는.. 정말 어느 누구에게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엣언약과 새언약을 비교해 볼 때 옛언약은 새언약의 그림자라고 밖에 볼 수 없으며 
또 이러한 새언약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지..
어떻게 옛언약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될 수 있는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의 십자가와 죽음이야말로...!!
모든 인류에게 정말 생명의 복음이며...!! 
그리고 새롭게 제정한 새언약인 성찬식이..... 또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말씀은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역사 2000년 동안 이 말씀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기념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냐?
그것이 말 그대로 단순한 기념이냐.. 아니면 상징이냐.. 아니면 화체냐... 하는 논란으로
수많은 세월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초기 기독교회인 로마 천주교회는 이것을 화체(化體)라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문자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절 말씀을 보십시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여러분은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후...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자,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말씀하셨어요.
빵을 가지고 기도하시고 나서는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 몸이다...”

믿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그 빵이 주님의 몸입니까? 몸으로 변했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몸이라고 상징하는 것입니까?

초기 기독교회인 천주교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성찬식에 있어서 기도하고 나면..
그냥 그 즉시 빵이 주님의 몸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께서 “이것은 내 몸이다...” 이렇게 말씀하셨겠는가?

이렇게 되서 나온 것이 화체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제 중세 종교개혁시대에 왔을 때...
종교개혁자 중 한 사람인 쯔빙글리는 이 주장에 강력하게 반발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건 정말 미신이다.
성찬식에서 떡과 포도주를 놓고 기도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상징일 따름이다.
이것은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자 주님의 몸인 떡을 받읍시다.
자 주님의 피인 포도주 잔을 받으십시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자 중 한 사람인 죤 칼빈은 이와는 또 다르게 보았습니다.
만일 성찬식에서 기도하고 떼어준 떡이나 나누어준 포도주가 단순히 기념만 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영적 의미가 있느냐!

그래서 그는 주장하기를
새언약을 기초로하여 성찬식에서 기도하고 떡을 떼거나.. 잔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기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영적으로 반드시!! 임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고 성찬을 거행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하셔서
마귀도 물러가기도 하고... 때로 질병이 낫기도 하며...
때로는 신비한 성령의 은사를 받기도 하고...
우리가 추측할 수 없는 놀라운 신적인 역사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그것은 다.......!! 성찬에 하나님의 능력이 영적으로 임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였습니다.

우리 장로교회는 이 칼빈의 견해를 따르고 있으며
저도 개인적으로 화체설이나 기념설보다는 영적 임재설이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찬식을 거행할 때도
주님이 거행하라고 하니까 단순히 기념식 치루듯.....
기도하고 떡을 떼고.. 기도하고 포도주 나누어...
비록 성찬식은 거행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
그러한 밋밋한 성찬식이 아니라!!...
기도하고 떡을 떼고 기도하고 포도주 나눌 때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역사하셔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고..
회개의 역사도... 변화의 역사도 일어나고...
지치고 병들고 상처받은 심령을 어루만져 주시는 역사도 일어나고..
간절한 기도 제목이 응답받는 축복의 역사도 일어나는.. 그러한 놀라운 성찬식..
축복의 성찬식.. 신비의 성찬식이 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자, 그런데
이제 옛언약이든 새언약이든... 여기에 중심 개념으로 등장하는 “언약”이란 뭐냐
그 언약의 실체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는 것이
성찬식을 거행하기 전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옛언약이든 새언약이든.. 그 언약을 찰떡 같이 믿고 있으며...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계명을 열심히 지키고 살았고... 제사도 열심히 드렸으며
신약시대에는 열심히 성찬식을 거행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게 되는 그 이유로서의 언약.. 그 언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부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언약하신 것이고, 무엇을 약속하신 것입니까?

옛언약이나 새언약의 내용을 간단하게 말하면... 이것입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 28:28)

무슨 말씀입니까?

계명 지키고 살고... 제사 지내고 살면... 항상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고
성찬식을 늘 거행하고 살면...  항상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인데...
이것이 무엇인가? 곧 임마누엘의 축복이라는 것으로서..
이 이상 더 큰 축복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언약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언약의 백성이 된 너희들을 세상 끝날까지 보호하고 지켜줄 것이다.

이 이상 더 큰 축복이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자, 이제 오늘의 본문을 좀 더 들여다 보십시다. 19-20절입니다.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은 다 아셨습니다.

옛언약이 새언약이 되고 ...
이방인도 이젠 복음의 은총 가운데 들어오게 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축복이 이 땅에.. 온 땅에.. 이 세상 가득히....... 채워지게 하려면..
자기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야 하며!!
거기서 살을 찢기고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태 26:38-42) 

그리고는 잡히시고 고난 당하신 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전적으로 우리 죄를 구원하기 위하여 달린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자유로와져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게끔 하기 위하여 달린 것이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하려고 달리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의 살은... 찢겨졌습니다.
피는... 흘렀습니다.
그리고는 완전히 돌아가셨습니다.

여기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4-6)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거행하려는 성찬은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살을 찢기고 피를 흘리신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과거에는 이스라엘 백성만 언약의 백성이었지만
이제는 우리도 십자가 아래서... 십자가를 통하여... 십자가와 함께...
새언약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에
주님께서 주신 말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는 말씀에 순종하여
과거에는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십자가 아래에서
믿음으로 성찬식을 거행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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