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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훼방꾼들을 잠재워야 합니다 / 엡 6: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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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훼방꾼들을 잠재워야 합니다
성 경 : 엡6:13-14
설 교 : 윤일문 목사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과거 80년대 초에는 나라전체가 살벌한 때였습니다.
식당이나 택시 안에서 정부에 대한 조금의 비판적인 말을 해도 쥐도 새도 모르게 검은 색 찦차에 실려서 어디론가 끌려가서 치도곤을 당하곤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강단에서 설교를 할 때도 조심해서 해야 했고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도 강의 시간에 녹음을 하면 교수님들이 상당히 싫어했었습니다.
어떤 교수님들은 노골적으로 자기는 잡혀가는 것이 싫으니까 제발 녹음하지 말아달라고 사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장신대를 포함한 신학교에는 교수님들의 가짜 스캔들을 만들어서 일간지나 기독교 신문에 흘리면서 그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꾼들이 실재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공연히 일정 시간에 한 번씩 교수님들을 협박해서 수금을 하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지금 분당에서 갈보리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박조준 목사님의 경우는 그 때 당시의 설교 테이프를 지금 들어보아도 어떻게 이러한 설교를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감한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러자 묘하게 사건을 꾸며서 본인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외화 밀반출이라는 사건에 휘말려서 한때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지만 후에 다 꾸며낸 일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모함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큰 교회 목사님들을 음해 하기 위해 때를 지어 옮겨다니면서 일을 저지르고 있다고 합니다.
강남의 한 대형교회 목사님은 똑같이 어려움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묵묵히 대꾸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그 일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더니 얼마 후에 진실이 밝혀지고 오히려 모함하던 사람들이 쫓겨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억울한 소문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바로 연예인들입니다.
스캔들이 찾아올 때는 그들도 마찬가지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지나간답니다.
오히려 억울하다고 맞대응을 하다보면 고통이 더 커지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은혜 가운데 죄를 씻김 받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러 가지 죄들을 안고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서로가 안고 온 죄를 못 본척하고 넘어가 주면 좋은 데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다가 교회를 떠나게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교인들끼리의 갈등 때문에 떠나게 되고 그렇게 떠난 분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면 대부분 같은 말을 합니다.
사람들 보기 싫어서 교회에 나가기 싫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러한 현상에 관한 말씀입니다.
억울하게 수군거림의 대상이 될 때도 그렇고, 또한 자신의 잘못이 침소봉대가 되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때 많이 힘들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장본인은 우리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사람하고 자꾸만 사이가 멀어지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사단의 공격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니까 공연히 사람들끼리 만나서 다투게되고 심지어는 원수와 같이 사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단은 거짓말쟁이고 참소자입니다.
그는 참소함으로써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을 무너뜨리기를 좋아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지은 죄와 실수들을 계속 기억나게 함으로써 우리 마음을 괴롭게 합니다.

이런 과거의 죄에 계속 얽매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미 받은 용서를 잊어버리고 자기가 주님을 섬기는 데 합당치 못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때 사단은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참소자를 잠잠하게 할 수 있는 무기 즉 의의 흉배를 주셨습니다.
흉배는 로마 군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그것은 목 주위로부터 허벅다리까지 군인의 몸의 앞뒤를 덮어 주던 갑옷이었습니다.

몸에 가장 중요한 기관들이 집중해 있는 상체를 골고루 덮어주는 무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갑옷은 어떻게 입을 수 있습니까?
이 갑옷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받게 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전가된 의"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는 두 종류의 의, 즉 전가된 의와 분여된 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가된 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즉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지만 그 죄 값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아직도 죄인이지만 의인이라고 인정해주시는 것을 전가된 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분여된 의는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공급받아서 우리가 점차 그 은혜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 그러니까 성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롬3:19-24에서는 전가된 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 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 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전가된 의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그분의 의를 나눠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옛 기록을 그분의 기록부에서 완전히 지워 주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의로 새롭게 채워주심으로써 그 페이지에 아무것도 좋지 못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 주셨습니다.

한번 그렇게 기재되면은 절대로 그 기록은 지울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기록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의 기록부에는 저와 여러분들의 이름 아래에 이렇게 기록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
원래는 죄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옴으로 완전한 의가 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칭의가 되는 것입니다.

일단 칭의를 얻었으면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이 피 값으로 세워주신 그분의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의의 갑옷을 입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입지 못하고 더러운 죄의 때묻은 옷을 입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증거가 열매로 나타나게 되어있다는 말씀입니다.

롬 6:12-14절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 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 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 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 혜 아래 있음이니라

바울은 이 구절을 통해서 날마다 우리의 말과 행위와 동기, 즉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면에 있어서 의를 나타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의롭게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 반면, 자신의 의 자체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그분의 의를 공급받고 그 의의 옷을 잘 손질해서 입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루라도 공급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너무도 소중한 전신갑주를 사단의 좋아하는 도구로 내어주는 경우가 많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번 공급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요즘 매일 아침 이 귀한 양식을 공급받아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를 체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교훈을 충분하게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빌립보에 있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 3:4-9절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 로 여길 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서 난 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나누어주시는 하나님의 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할 만큼 광장한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러한 의에 경지에 이르러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릴 줄 아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바로 교회가 세워진 목적이 이처럼 세상의 모든 좋아 보이는 것들을 십자가 아래서 배설물로 버릴 수 있는 성도들을 세우는 곳이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정반대의 모습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날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흉배를 붙이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신분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선행보다도 그리스도의 의를 의존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이 의를 필요로 합니까?

사단이 송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계속적으로 공격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 하나님의 의가 없이는 우리는 결코 악한 자를 대적하여 설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적으로 이 흉배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존 변연의 역작인 "천로역정"에서도 의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인 기독교인이 천성을 향해 가고 있는 도중에 "아폴리온"이라고 하는 사단을 만나게 됩니다.

사단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이미 하나님께 대한 네 봉사에 충성을 다하지 못했다.
그런 네가 어떻게 감히 그로부터 상급을 받겠다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기독교인은 다시 물었습니다.
"악마여
내가 그분께 충성하지 못했다고?"

사단이 다시 말합니다.
"너는 길을 떠나자마자 절망의 수렁에 빠져 거의 질식하게 되었을 때 마음이 흔들렸고 네 왕이 와서 짐을 벗겨 줄 때까지 한 곳에 머물러 기다렸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딴 길을 찾아 짐을 벗어보기 위해 시도했으며,
사악한 잠에 빠졌다가 귀중한 증거품을 잃어버렸고 사자의 모습을 보자 도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품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또 여행을 할 때 한 이야기나 여행 도중에 듣고 본 모든 것들을 늘어놓을 때의 네 모든 말과 행동은 네가 품고 있는 지나친 허영심의 발로였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악마는 이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그가 전에 지었던 수많은 죄들을 기억나게 하였습니다.
그는 이 기독교인의 불충성에 대해 그를 송사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답변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네가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은 전부 사실이다.
그리고 네가 말하지 않은 그 외의 여러 가지 과실도 나는 범했다.
그러나 내가 섬기고 경외하는 임금님은 자비가 많으셔서 그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너의 나라에서 너를 섬길 때 몸에 속속들이 베어 버린 여러 가지 약점들 때문에 늘 고통하며 슬퍼하고 있는데 나의 임금님께서는 그러한 약점들까지도 용서해 주셨다"

바로 이 주인공은 의의 흉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호막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단은 더 이상을 송사라는 방법으로 그를 흔드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 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 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사단의 송사자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송사하고 또한 우리 앞에 하나님을 송사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실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관해 우리에게 이야기할 때에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는 우리가 처한 환경과 성경적인 진리를 왜곡시켜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자 않고 그렇게 행하지 않으신 것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만듭니다.

사단은 송사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존 변연의 책에 나오는 주인공에게 했던 것과 같이 사단은 우리를 면전에서 송사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계략은 사람을 속이는 그 이상입니다.

사단은 세 가지 방법을 가지고 우리를 송사합니다.

1. 그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송사하도록 부추김으로써 우리가 스스로를 비방하게 만듭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과다한 자기 분석의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계속적인 자기 반성은 그것이 자주 자책감을 가져다 주기에 위험한 면이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들의 과거에 지은 죄들을 계속 기억나게 해줌으로써 우리들이 자신을 송사하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 상담실에 이러한 상담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전 처녀 때 커다란 죄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큰일이 났습니다.

전 제 자신이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적합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분은 예수 믿는 자매였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맡는 목사님은 그 자매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매가 지은 과거의 죄를 어떻게 하셨다고 생각합니까?"
"용서하셨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다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사단이 추억이라는 미끼로 자기를 송사하도록 그에게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날마다 의의 흉배를 가슴에 붙이지 않는다면 그러한 기억들은 주야로 우리를 송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기억들을 곰곰이 생각하는 일에 몰두한다면 끝내 우리는 버림받은 상태에 있게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항상 마귀의 노예가 되고 말 것입니다.

과거의 실수에 대한 기억 외에도 사단은 우리의 감정을 사용해 우리를 송사합니다.
수면 부족, 음식물의 섭취부족, 또는 운동 부족이나 질병으로 인해 지쳐 있을 때 우리는 의기소침 또는 자기 연민을 갖게 되고 그 사실이 스스로 분노라는 함정으로 몰고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의기소침해 있을 때 사단은 우리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 봐라 그러한 생각에 계속 불을 더 붙여라
너는 네 자신에 대해 불쌍하게 느낄 줄을 알아야 한다.
네가 행했던 모든 일과 또 사람들이 네게 어떤 했던 어떤 일을 계속해서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모두 추억해 내라는 말이다"

우리가 자신을 스스로 송사하기 시작할 때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의의 흉배를 붙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행했고 또 사단이 무엇을 송사했는지를 알고 싶어하시기보다 우리가 그러한 때 어떻게 잘 이기어 냈는지를 알고 싶어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억들과 감정까지 주님께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에다 놓아두십니다.
그렇게 되면 그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맙니다.

그분은 깊은 바다 속에 그것들을 던지십니다.

미 7:19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 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또한 그분은 빽빽한 구름이 사라지듯이 우리의 모든 죄들을 없애 주십니다.

사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 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 하였음이니라

예수님은 그 죄들을 이미 기억에서 지워버리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외롭게 받으실 만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은 어떤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신분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마귀는 그리스도인이 허락할 때에만 그들의 삶 속에 있는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단의 송사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에는 분명히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반면, 사단은 증오로써 우리를 송사합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사용해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지만 사단은 감정과 기억을 사용하여 우리를 송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실 때 그것은 우리를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하게 합니다.
그러나 사단이 우리를 송사할 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으로부터 더욱 멀리 떠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훈련과 헌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의 송사는 우리를 절망과 낙담에로 이끌고 갑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깨닫게 하실 때 우리로 하여금 앞을 보게 하심으로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그러나 송사할 때 사단은 우리가 뒤를 돌아보며 포기하기를 원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자신을 스스로 송사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럴 때 믿음으로 의의 흉배를 붙이고 그리스도의 의를 주장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이미 용서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의 기록은 모두 깨끗해 졌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므로 우리 또한 그와 같이 자신의 죄를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2.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를 송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이러한 억울한 송사를 당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느 6:6-7절
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7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 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 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또한 다윗은 그가 전혀 하지 않은 일들을 했다는 무모한 송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시편의 많은 부분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거짓을 지어내는 자들로 하여금 잠잠케 하소서 사울의 궁정에서 나에 관해 거짓을 고하는 거짓 송사자들로 하여금 잠잠케 하소서"

모세는 독재자라는 송사를 받았습니다.
그의 형과 누이조차 그가 자기 권위를 도용했다고 그리고 그것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짐을 지게 했다고 송사했습니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 또한 거짓 송사를 받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송사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 6:3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 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그 다음 그는 자기가 겪은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가 그처럼 억울한 송사를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까?

고후 6: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많은 거짓 송사로 인해 여러 가지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나의 대적들은 나에 관해 여러 거짓말을 지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를 전혀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의의 흉배를 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바대로 그들이 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송사케 하라"

주 예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거짓 송사를 받으셨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는 송사를 받았으며 심지어는 귀신들린 자라는 송사까지 받으셨습니다.

눅 11:14-19절
14 예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벙어리가 말하 는지라 무리들이 기이히 여겼으나
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 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단 이 스스로 분쟁하면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 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분명히 예수께서 겪으신 가장 큰 고난은 예수께서 붙잡히시고 거짓 증인들이 그분에 대해 거짓 증거하도록 소집되었던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에 있었습니다.
그분은 신을 모독한 죄로 사형집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알고 계셨기에 그들이 하는 말에 두려워하거나 초조해 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송사할 때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우리의 중보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예수님께서 우리편에 서셔서 확실하게 변호해 주실 것입니다..

롬 8:31-34절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 겠느뇨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 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 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 니라

의의 흉배를 달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중보자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변호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자신을 송사하도록 부추기고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송사하도록 충동질하며 때로는 환경까지도 우리를 송사하고 있다고 믿게 합니다.

3. 주변 환경 때문에 송사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렇게 말합니다.

"아 내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었다면 이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사단은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벌하시려고 고난을 당하게 하신다고 믿게끔 합니다.

예배에 한번 빠졌더니 들에 나가다가 다리가 부러졌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불순종한다고 해서 그때마다 이처럼 끔찍한 벌을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욥의 생에는 의인을 송사하기 위해 사단이 환경을 사용한 좋은 실례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이 시련이 그의 삶 속에 있는 어떤 죄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욥이 죄를 숨기는 것이라고 계속 송사했습니다.
실재로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환경이 이렇지만 않다면 우리는 너를 믿을 수 있지.
그러나 네가 겪고 있는 고난을 볼 때 네가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구나"

우리는 보이는 것에 따라 살 것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 의의 흉배를 달고만 있다면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든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보리지 않으십니다.

롬 8:35-37절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 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 히 이기느니라

어떤 어려운 상황들은 우리의 행동 때문에 온 결과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징벌하시기 위해 이런 환경들을 사용하시지 않으시며 또 곤혹에 처해 있을 때 우리를 버리지도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지 않으시며 또 내가 전에 지었던 죄 때문에 징벌하고 계신다고 느끼게 될 때 사단은 그 환경을 가지고 우리를 송사하고자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그러한 시련들은 만일 우리가 우리편에 누가 계신지를 기억하고 또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지키기 위해 주신 의의 흉배를 사용하기만 한다면 절대로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사단의 커다란 무기는 거짓 송사입니다.
이런 송사들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 오게 되든 아니면 우리의 환경을 통해, 혹은 나 자신을 통해 오든지 간에 우리는 그것들이 사단의 충동질에 의한 것이며 그런 사단의 공격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려면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써 옷을 입으며 그 의가 우리들을 그분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아들여지게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써 이 흉배를 계속 붙여야 할 것입니다.

엡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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