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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는 자 /고후 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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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는 자 <2002.11.24 주일>
  고린도후서 6:1-10

  무적 군함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에서 불빛이 정면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군함은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이 무적함대를 몰라보고 정면도전하는 상대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무전을 칩니다. '만일 계속 돌진하면 받아버리겠다' 상대편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당신들이 피하라' 군함은 '너는 어디 소속이며 무슨 배냐?' 상대편에서 '나는 등대다 그러니 네가 피하라' 하는 수 없이 군함은 등대를 피해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정면돌파가 항상 능사만은 아닙니다. 상대를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면 됩니다. 환경을 변화 시키려하지 말고 나를 변화 시켜야 합니다.
  위대한 실천신학자 투루나이젠은 젊은 시절에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로 하여금 세계를 바꾸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랬더니 세계가 전혀 변화되지 않더랍니다. 그는 나이 마흔이 넘어서 '하나님 저를 바꿔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자신을 바꾸었더니 세상이 달라지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후일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세계를 바꾸려하지 말고 나를 바꾸려고 했다면 나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꾸려고 합니다. 내 목표를 먼저 세우고 하나님보고 따라오라고 합니다. 나를 바꾸려하지 않고 말씀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잘 안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말씀을 부인합니다. 마치 군함이 등대를 향해 비키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 아무에게도 거리끼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되는 비결을 은혜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서신에서 은혜라는 말을 93회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빼어 놓고는 성서를 기록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역사를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말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자기가 남보다 더 수고하고 괴롬도 많이 당했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성도가 되어질 때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는 자가 되려면,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합니다.
  히틀러 정권 당시 독일 고백교회의 젊은 목사인 디트리히 본훼퍼는 '제자의 대가'란 저서에서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적이다. 값싼 은혜란 싸구려 물건들처럼 아무 데서나 마구 남용되는 은혜를 말한다. 현대 교회의 값싼 은혜는 회개가 없는 용서의 설교요, 교회의 교육이 없는 세례요, 참회가 없는 성찬식이요, 개인적인 고백이 없는 신앙과도 같다. 값싼 은혜는 십자가 없는 은혜요,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이다. " 주님의 은혜가 우리의 공로 없이 값없이 받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겐세일처럼 값싸게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의 대가를 예수께서 대신 지불해 주셨음을 깨닫고 그 은혜를 간직하기 위하여 비싼 대가를 치루어야만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받는 은혜는 헛된 은혜가 되기 쉽습니다.
  회교도들은 일년 중에 라마단이라는 특별한 금식 기간을 갖습니다. 해 뜨고부터 해질 때까지 일체 금식하는데 해가 지면 밤새도록 먹고 마시기 때문에 이 기간에 가장 살이 많이 찐다고 합니다. 낮과 밤만 바꾼 것뿐이지 실제로 금식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주일날 한 시간 예배드리면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서는 언제 은혜 받았느냐는 식으로 여전히 옛사람의 삶의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헛된 라마단 금식을 하는 회교도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 했습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도무지 은혜를 받은 사람들처럼 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들 사이에 파당과 분쟁이 있었습니다. 성도들 사이에 음행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포르투갈은 기독교를 일찍 받아들인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주산물이 포도였기에 포도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큰 산맥에 큰 산불이 일어났던 일이 있었습니다. 포도원 농사를 짓던 농부들에게는 큰 재앙을 만난 셈이었습니다. 타 들어가는 불길을 바라보면서 농부들은 실망과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렇게 우리가 땀흘려 노력하여 일구어낸 포도원을 저렇게 망쳐놓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과연 우리를 보호하시는 걸까하며 심히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심한 불길로 인하여 산의 바윗돌이 깨지면서 그 틈새로 이상한 빛이 나오는 것입니다. 빛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확인해 본 결과 그것은 바위 속에 함유되어 있었던 은이었습니다. 농부들은 그렇게 값비싼 은이 자기들 주변에 많이 깔려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포도원이 불타는 것을 보며 낙심했던 농부들은 자신들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도리어 더 큰 감사를 하나님께 돌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하나님 은혜로 받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고 살아야 합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에게 어떤 여인이 찾아와서 안타까운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님을  뜨겁게 믿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부흥회에도 참석해보고 은혜를 받아 보려고 애를 썼는데 은혜가 오지를 않습니다.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해도 은혜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목사님께서 묻습니다. "뭐라고 기도하십니까?" "기도제목이야 많지요." "그렇게 하지말고 딱 한가지 제목으로만 기도하십시오" "무슨 기도요?" "하나님 아버지, 나 자신을 알게 해주세요. 자신을 똑바로 알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그녀는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나 자신을 알게 해주세요. 나 자신을 바로 보게 해주세요."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녀의 모습을 보도록 하셨습니다.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지 머리끝서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더러움, 시기, 질투, 명예, 욕심, 게다가 거짓, 너무너무 더럽고 추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목사님께 와서 "목사님, 너무 창피해서 살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다음 기도를 하세요. 십자가를 알게 해주세요. 십자가의 은혜를 알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세요. 십자가를 생각하세요."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대신하여 피 흘리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며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실 때 너무 감격했습니다. 기뻐하는 그녀에게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이제 비로소 당신은 충만한 은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난 후에 은혜를 은혜되게 하기 위해서 다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 됩니다. 나의 나됨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습니다. 누구를 비방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감사할 뿐입니다. 참으로 은혜를 알 때는 나 자신의 모든 것이 부정됩니다. 내 공로도 아니고 내 의도 아니고 내 노력도 아니고 내 지혜도 아니고 오직 은혜인 것을 고백하고 됩니다. 누구에게나 거리낌이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찌르는 가시 때문에 하나님께 세 번 기도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것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살아도 죽어도, 잘되어도 못되어도. 범사에 그를 높이고 감사하며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거치는 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모든 것을 가진 자로서의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동네에 넘어지면 3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3년 고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이 고개를 넘다가 잘못해서 그만 넘어졌습니다. 이 사람은 이 일로 인해 좌절하고 낙심되어 죽을 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세워보며 지냅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죽을 날만 헤아립니다. 그때 한 지혜로운 노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 걱정할 것 없네. 한번 넘어지면 3년이니, 백 번 넘어지면 3백년을 살 걸세.” 이 말을 들은 청년은 너무도 기뻐서 뛰어가서 하루종일 그 고개에서 뒹굴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용기를 얻었고, 3년이 지나도 죽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운명을 아름답게 창조해 나가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조건으로 보면 비참한 사람이요, 고난의 연속 속에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행복하게 산 사람입니다. 그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부요한 자로 살았습니다. 그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인정해 주시고, 나를 통해서 하늘의 일을 이루신다' 는 믿음 안에 살 때 모든 것을 가진 자로서 부요하게 살았습니다.
  인생의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에게 있습니다. 병을 치료하는 병원에도 영안실이 있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병원이라도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면만 보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죽는 사람을 보지말고 건강을 회복해서 퇴원하는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고 해서 다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교인 가운데도 온전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교인이 더 많습니다. 만일 교인의 나쁜 점만을 지적하면서 교회를 비판하고 신앙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결국 자신만 손해보게 되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무에게도 거리낌이 없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거리낌이라는 말은 거슬려 부딪히거나, 넘어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사람들 앞에 걸림돌로 나타나서 남을 넘어지게 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은 마귀에게 쓰임을 받되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실족합니다. 그 사람 보기 싫어서 교회 나오고 싶지 않습니다. 그 사람만 보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은혜를 바르게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바로 세우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바로 세우는 줄 믿습니다.
  은혜를 바르게 받은 사람은 아무에게도 거리낌이 없는 사람입니다.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됩니다. 이제 여러분이 아무에게도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되십시오. 당신 때문에 힘을 얻고, 당신 때문에 위로 받고, 당신 때문에 용기 얻으며, 당신 때문에 신바람 난다면 당신은 분명히 디딤돌입니다. 거리낌이 없고 오히려 넘어지는 사람을 붙잡아 일으켜 주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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