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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로 인하여 / 하박국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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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 전준식 목사 (신림교회)
본 문 : 하박국 316-19
제 목 : 여호와로 인하여


지난 여름은 강원도 지방이 홍수로 인하여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여름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예년 같으면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교회 강단에 막 추수한 햇곡식과 햇과일들이 쌓여야 하지만 태풍이 쓸어가 버린 올해는 강단을 감사함으로 장식할 곡식조차 없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강원도 피해 주민들과 교회는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아픔은 아직도 해결되고 있지 않습니다. 해결되기는커녕 없었던 가을 장마가 심하게 내려 또 한번 이재민들에게 아픔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차가운 콘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예년 보다 날씨가 빨리 추워지는 바람에 집 짓는 것도 수월치가 않습니다. 모든 게 원망입니다. 더군다나 집 없이 세를 살던 분들은 콘테이너 박스도 얻지 못하여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 빈집에 들어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와 국민들이 성의껏 도움을 드려도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인 아픔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기원전 600년경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의 사회는 부정부패로 인하여 사회악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나라의 어려운 문제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도를 듣지도 않으시고 구원 하시지도 않는다 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이런 죄악을 싫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지금 이 사회의 타락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왜 침묵하십니까? 하박국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절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절규가 1:2절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답답해서 한숨소리가 나옵니다. 그 한숨소리가 1:3에 어찌하여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울부짖는 하박국이 1장을 지나 2장에 들어서면 그의 기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2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은 기다리고 바라보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하박국 선지자는 인내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3절에 너가 기도하는 기도 제목은 더디게 응답되어 질 것이다. 그리고 너가 원하지 않겠지만 이 나라는 속히 망하게 될 것이다 라는 응답이었습니다. 하박국이 그토록 울부짓으며 한 기도 응답은 나라의 부정과 부패를 해결하시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침공 할 것이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망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악의 축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바벨론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침공하다니요? 하박국은 더욱 더 화가 났습니다. 어려움이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일이 어렵게 꼬여가고 있었습니다. -16절 하박국은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에 몸이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뼈가 썩어나가는 고통을 고백합니다. 강원도 이재민들은 지금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가을 장마가 와서 더욱 힘들어 졌습니다. 이른 추위는 말미암아 더 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 보려고 했지만 일은 더욱 꼬여 가기만 합니다. 집에서 보내주던 학비도 집이 어려워지면서 학비 조달이 어려워지더니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이번 달만 해 달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사업하기도 힘든데 아내가 아파 병원에 눕기도 합니다. 창자가 흔들리고 몸이 부들 부들 떨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신실한 성도가 갖는 현실입니다. 신실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고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신실하게 신앙 생활하고 기도 생활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질문합니다. 하나님 어느 때 까지 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데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있어야 합니까? 왜 나는 병에 걸려야하나? 왜 나는 실패해야 하나? 내가 이렇게 실패하고 병에 걸리는 것은 혹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내가 내 뜻대로 간구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들어 주시지 않는 것 일거야.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뜻은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내 뜻은 어디까지인가? 회의와 의심을 갖는 것이 우리들의 연약합니다. 그런데 3장으로 건너온 하박국의 고백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하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오늘 본문입니다. 1장에서 어둠의 골짜기에 있던 하박국이 2장에서는 그 골짜기를 벗어나 성루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3장에 와서 하박국은 망루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19절의 말씀처럼 자신의 발이 사슴의 발이 되어 높은 곳으로 다닐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믿음이 3장까지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아도 하나님의 응답이 더디어도 하나님의 응답이 내 생각하고는 전혀 달리 응답되어도 마침내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발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사슴의 발이 되어 우리가 오르기 힘든 산이라 할지라도 뛰어 올라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3:2절을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우리는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상황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부터입니다. 왜 우리는 변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상황 탓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머리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놀라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경험했듯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불 내리는 경험을 체험했듯이 우리가 이런 경험이 있을 때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하박국은 소망을 갖습니다. 그것은 부흥입니다. 망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망을 잃어 버렸습니까? 긍휼함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놀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소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긍휼함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신림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복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회복이 무엇입니까? --17절-18절을 보십시오.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양식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없으면 생활이 위협을 받습니다.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면 어떻게 소와 양을 키울 수 있겠습니까? 농사군에게 열매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농사를 짓겠습니까? 사업하는 분들이 이윤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열매를 보기 위함이요 우리가 자녀들을 양육하는 이유는 아름다운 열매를 사모하기 때문에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에게는 이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하박국 선지자는 최악의 상태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는 서울역 노숙자 50여분들을 모시고 나들이를 했습니다. 그들은 배가 고픈 사람들이었습니다. 점심식사 시간에 제 생각보다 많이 먹는 것을 보고 이들이 배고픈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북에는 더 많이 있습니다. 아프카니스탄에도 굶주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배부른 사람들의 하나님이지 자신의 하나님이 더 이상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 보다 빵이 더 빨리 보이는 법입니다. 이처럼 자기 현실을 중시하고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이 크게 보이는게 아니라 빵이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하박국을 보십시오. 그는 현실이 크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박국은 열매에 자신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열매가 없어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댓가를 받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때문에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분명히 가지고 계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면서 동시에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실제로 무신론자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박국 선지자처럼 상황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놀라운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누가복음 10장 17절부터 20절에 나와있는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70인을 둘 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내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전도대원들이 돌아와서 다음과 같은 보고를 합니다. 주여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라고 말하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 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를 하면서 많은 열매를 맺고 성공 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주님 때문에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 된 것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우리의 환경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응답이 되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박국의 감사와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기뻐하십니까? 열매 때문에 기뻐하시는 분들입니까? 우리 주변에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떠 올려 보십시오. 여러분이 존경하는 사람들은 환경 때문에 울고 웃고 하는 사람이었습니까? 아니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족함으로 사시는 분들이었습니까? 얼마 전에 경제 부총리가 뼈있는 말을 한 적이 기억납니다. 경제 부총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천민 자본주의의 옷을 벗어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선 천민 자본주의는 투기해서 돈을 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부자를 아름다움 부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부자를 우리는 추하다고 말할 뿐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은 외형적인 조건에 만족하기보다는 내면의 세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았다는 확신으로 말미암아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이런 확신이 분명히 있는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왜 이상에서 비굴하게 살아가야 합니까? 나에게 힘만 있다면 우리는 부러울 것 없이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합니다.---19절 하나님이 나의 힘이기 때문에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고 선포합니다. 나에게 존이 없어도 나에게 좋은 자동차가 없어도 나에게 큰 집이 없어도 나에게 사회적인 명예가 없어도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입에서 이런 선포가 있기를 바랍니다. 돈이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고 선포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작은 일에 비굴하게 살지 마십시오. 작은 돈에 자신을 팔아 버리지 마십시오. 힘있고 당당하게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19절을 다시 보면 우리의 발을 사슴처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사슴의 발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사슴의 발은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길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슴은 산을 쉽게 달리고 웬만큼 달려도 지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사슴처럼 높은 산을 달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웬만한 인생살이에도 지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열매 없는 인생살이임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출발이 어두임이요 과정이 힘듬이라 할지라도 마지막은 힘있는 삶으로 마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신림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만이 힘이 되어서 높은 산을 오르는 힘있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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