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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유하는 종 / 갈 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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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자유하는 종 (갈라디아서 5장 13-15절)
설 교 자 -  김홍도 감독 
본문말씀 - 자유하는 종 
 

옛날 노예 상선이 노예를 싣고 가다가 대양 한 가운데서 노예들이 폭동을 일으켜 선장과 기관장을 다 죽이고 나서 자기들은 이제 해방이 되었다고 기뻐 뛰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기관을 운전하는 사람도 없고 배를 운항하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배는 침몰하고 노예들은 바다에 다 빠져죽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되고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6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이상히 여기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죄와 율법에 해방되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곧, 혼돈(Chaos)과 무질서, 무정부(Anarchy) 상태로 들어가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은혜(Grace)와 자유(Freedom)는 함께 가는 법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은혜와 자유를 죄를 맘대로 지어도 된다는 면허증(Licence)처럼 생각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다 지켜야 된다고 하는 율법주의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양극단을 다 경계하며 이 두 극단에 빠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서 4절에 보면 “이는 가만히 들어 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값없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도 된다는 죄의 면허증을 얻은 것처럼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되고, 반대로 율법을
다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율법주의로 돌아가서도 또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양극단은 다 이단입니다. 

어떤 부자가 노예 시장 앞을 지나다가 한 흑인 노예가 팔려서 사랑하는 처자식과 헤어지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보고 그 신사가 노예 값을 후하게 지불하고 자유의 몸을 만들어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더니, 너무너무 감격하여 엎드려 절하면서 자원하는 맘으로 주인의 종이 되어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노예에서 해방은 되었으나 주인의 은혜에 감사해서 자원하여 사랑으로 종이 된 것입니다. 오늘 제목이 어찌 보면 모순된 것처럼 보입니다. “종”이면 종이고 “자유인”이면 자유인이지 “자유하는 종”이 무엇이냐고 생각되겠지만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죄에서 해방된 자유인이 되었지만,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종이 되어야 합니다. 


1. 하나님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마귀의 종, 죄의 종이 되거나 하나님께 속하여 스스로 하나님께 종이 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종이 되지 않고 독립한 자유인이 되겠다”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로마서 6장 16절에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고 한 말씀대로 마귀에게 속하여 죄를 짓다가 멸망에 이르거나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다가 천국에 이르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의 종으로 멸망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마귀의 종노릇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므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의 반열에 서서 살다가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를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했고 로마서 6장 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서 하나님께 종이 되지 않으면 마귀에게 속하여 마귀의 종노릇 하다가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갈라디아서 6장 13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값없이 은혜로 구원받은 자유인이 되었지만, 그 은혜를 죄를 지어도 무방하다는 면허증(license)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종”이란 자기의 뜻대로 못하고 주인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며,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이며 교만하지 않고 언제나 주인 앞에서 겸손해야 되는 존재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종이 되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예수 믿어서 새사람 된 것 같았는데, 다시 술 중독자가 되고, 담배에 중독이 되고, 심지어 도박에 중독 되거나 마약에 중독 되어서 멸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종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됩니다. 기차가 좁은 철길만 달리는 것이 답답하다고 철로를 벗어나면 전복하고 파멸되고 마는 것처럼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만, 참 자유를 누리고 참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비극과 불행의 원인은 “내 뜻대로 사는데”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간섭을 받으며 사는 것이 답답하고 불편해 보여서 아버지의 품을 떠나 제멋대로 살아봤으나 큰 불행과 고통에 빠져서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마귀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처음에는 달콤하고 행복한 것 같지만, 후에는 큰 고통과 불행이 오는 법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처음에는 쓰디쓴 맛 같고 부자유스러운 것 같지만, 후에는 참 평안과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자유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죄 사함 받아 율법과 죄에서 해방이 된 사람이지만,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주님께 종노릇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치 고마운 신사가 자기를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켜 줄 때 자원하여 따라가서 기쁜 마음으로 그 주인의 종노릇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귀한 피를 흘려
우리의 죄 값을 치루어 주시고 우리를 죄와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유인이 되었다고 우리 맘대로 해선 안됩니다. 그리스도께 종노릇해야 됩니다. 이것은 불행한 종이 아니라 행복한 종이 되는 것입니다. 멸망에 이르는 종이 아니라 천국에 이르는 종입니다. 

주님께만이 아니라 사람들 간에도 종노릇해야 합니다. 즉 이웃을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남편은 아내의 종이 되고, 아내는 남편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피차 종노릇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부당해 보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면서 “너희가 나를 주님이라 선생이라 하지 않느냐 그 말이 옳다 내가 너희의 주가 되고 선생이 되지만 너희의 발을 씻는 것같이 너희도 이렇게 피차 섬기는 생활을 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말씀하셨고 또 그렇게 실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뭘 잘났다고 섬기는 생활을 못하겠습니까? 자유인이 되었으나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3.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십계명을 둘로 나누면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의 대강령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 앞에 절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가 없지요.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없고, 하나님의 성일을 범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또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부모를 공경치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할 수 없고, 간음할 수 없고, 이웃의 것을 도적질 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모함하고 거짓말할 수가 없고 이웃의 재산이나 이웃의 아내를 탐낼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율법에서 해방되었지만 사랑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는 사람이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 드리는 일이 어려운 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거듭난 사람이 되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율법 아래 있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받았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에는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 이단이 들어왔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1장 6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강력하게 책망하며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신앙이 조금도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은혜로 구원받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받았으므로 이 육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사랑의 종노릇을 해야 합니다. 이 종의 도를 실천할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되며 그 교회는 평화롭고 은혜로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4. 겸손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겸손한 생활을 할 때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질 때 아내도 무시하는 것 같고, 남편도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고 자식도 부모를 멸시하는 것 같아서 기쁨이 없어지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만 불손한 사람은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미움을 받습니다. 
종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의 뜻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8-19절에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않는다”고 했고,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종의 마음은어쩔 수 없이 겸손합니다. 종은 일하고 수고했다고 공치사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7장 9-10절에 보면 종이 밖에서 일하고 돌아왔다고 다른 사람이 발씻어 주고 섬겨주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명 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찌니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종은 겸손한 법입니다.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큰공을 세웠어도 겸손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하는 겸비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어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섬기고 발까지 씻어주시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어주셨는데 우리가
남을 위해 종노릇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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