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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단할 수 없는 선교사업 / 눅 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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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중단할 수 없는 선교사업 
본 문 : 누가복음10:25-37
설 교 : 강재식 목사 (구미등대교회)


저는 작년 선교 주일에 본문을 중심으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자"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었는데, 금년 선교주일에 똑 같은 본문으로 "중단할 수 없는 선교"라는 다른 제목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저는 이 본문으로 선교에 관한 설교를 여러 차례로 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성서 신학원에서 공관 복음을 가르치면서 이 말씀으로 "선교란 무엇인가?"를 정리하라는 것을 숙제로 내고 정리한 것을 제출 받아서 선교가 무엇인지 설명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본문은 선교에 비젼을 제시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이웃을 필요로 하는 강도 만난 자와 같은 자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 님의 비유의 말씀으로 한 강도 만나 자를 레위인도, 제사장도 피해갔는데, 사마리안 사람 하나가 그를 발견하여 그를 치료하고 돌보는 내용인데, 예수 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면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고 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사마리아인이 한 것 같이 하라."는 말씀은 바로 교회에 주신 선교의 사명입니다.

저는 이번 한 주간의 희비가 교차되는 주간이었습니다. 목회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 때문에 깊이 자책하며 회개를 하는 우울함과.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일들이 얼마나 신비하고 오묘한 것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기쁨이 교차하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월요일에 꿈나무방 주인으로부터 기한이 되었으니 비워 줬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화요일에 문화쉼터가 경매에 넘어가 새 주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어떻게 좀 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것이 넘어가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교회건축의 때가 임박하였음에 대한 하나님의 재촉이었습니다. 지난 금요 기도회에 복음성가에서 너무나 놀라운 것을 발견하고 참여한 모든 성도가 신기해 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라는 가사를 보면 어떻게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재촉하실 수 있는가?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인자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우리를 재촉하십니다. 우리가 조급하여 좌절하고 실망할까봐 막 몰아가지 않으시고,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우리를 재촉하십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자책하며, 회개하는 우울함은 어디서 왔겠습니까? 문화쉼터가 동절기를 맞아 한 주간 휴관을 할 때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절기를 맞으면서 문화쉼터를 일시적으로 휴관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세 가지 정도였습니다. 첫째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둘째는 봉사자가 부족하며, 셋째는 찾는 사람도 없는데 연료가 많이 들어가는 거였습니다. 이 정도면 닫을 이유가 충분히 됩니다. 인력과 시간과 연료의 낭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충분한 이유를 이해하고, 목요일 서예교실과 필요할 때 언제든지 개방을 하기로 하고 휴관하는 것을 제가 허락을 했는데, 허락을 하고 나니 마음이 이상하게 초조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이 얘기를 했더니 쉼터 봉사장도 그랬다고 하였습니다.
문화쉼터 건물주가 부도가 난지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2년 전에 경매에 붙여진다고 했을 때 우리가 기도하기를 우리는 돈 보다 계속 문만 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유찰이 되어 계속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경매 소식이 왔고, 우리는 역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문을 닫아 놓고 가만히 생각하니 '이걸 닫아 놓으면 계속 하나님께서 돌보실 이유가 뭐 있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면서 하루, 하루 긴장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빨리 문을 열어야 되는데, 하루를 지나고는 다행이야! 이튿날도 다행이야!하면서 지나오는데 한 주간도 채 되지 않아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입니다.
제가 자책하며 회개하며 우울함에 빠진 것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루라도,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문을 열어 섬기지 못한 것이 하나님 앞에 죄스럽고 부끄럽고 후회 막심했습니다. 물론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수요일부터 당장 열기는 했습니다. 기름 아끼지 말고 가져다 때면서 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만 부끄러움을 어찌할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자책하며 회개하는 중에, 저는 너무나 귀한 교훈을 한 가지 얻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이었습니다. "선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중단되면 안 돼!, 우리가 중단시켜서 안 돼!" 알고 나면 '당연한 거 아니야!' 할 수 있지만요 저에게 비수같이 꽂혔습니다.

선교주일을 앞두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에 저는 너무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본문 말씀을 생각게 하셨습니다. 수없이 보고 전한 말씀이지만, 또다시 읽는 중에 이미 이 말씀 속에 이 귀한 교훈을 담아 놓으셨음을 발견하고, 한 발 늦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을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증거합니다. 이 귀한 것을 발견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사마리아인의 행동에 보편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1.사마리아인이 하는 행동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강도 만난 자를 위해 시간을 쏟아 붓고, 온 몸으로 돌보고, 돈까지 사용하는데, 아무리 그렇게 해 봐야 그 일에는 돌아 올 소득이 없습니다. 이익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 시행하고 있음입니다.
2.중간에 충분히 그만 두어도 되는데 그만 두지 않습니다.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레위인도 제사장도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갔으며,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어 주었습니다. 참으로 잘한 일입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가도 그를 칭찬하지 욕할 사람 하나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짐승에 태워 자기는 걸어서 주막까지 데리고 갑니다. 거기까지만 하고 관청에 신고하여 인계해 주어도 이 사람은 모범시민으로 시장 상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를 하루 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돌보며 간호합니다. 이튿날입니다. 강도 만났던 사람은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되겠습니까? 내가 꼭 갚겠습니다.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다행입니다. 기운 차리는 대로 잘 가시오'하고 갔다 한들 누가 손가락질하겠습니까? 오히려 추천하여 도지사 표창장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중단하지 않습니다.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이 사람을 계속 돌봐 주시오.' 지금까지 치료하고 돌보느라 상당한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자기 돈을 씁니다. 그 돈 안 주어도 아무도 그를 탓할 사람 없습니다. 그만해도 할만큼 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계속 돌보라고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지 않더라도 그는 그것만으로도 이제 대통령 표창장 감입니다.
그런데 그는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돈만큼만 돌보시고 집으로 돌려보내시오.'라는 것이 아니라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 그 비용을 내가 갚아 드리겠오!'라고 합니다. 소득이 없지만 끝까지 완전할 때까지 자기 돈 써가면서 돌볼 작정입니다.

이 얘기는 예수 님께서 만들어 비유로 든 얘기입니다. 왜? 예수 님께서 이 사마리아인을 등장시켜 그렇게 소득도 없는 일을, 그만해도 욕할 사람 하나 없이 칭찬듣기에 충분한데 끝까지 하도록 설정하였을까요?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이 바로 선교다"라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선교는 소득이 돌아오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고, 선교는 절대로 중단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 님께서는 누가복음14:12-14에서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선교의 사명은 "네게 갚을 수 없는 자에게 시간과 몸과 돈을 아낌없이 쏟아 붓기를 중단하지 말고 하라"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칼로 찌르듯 비수같이 제 마음에 깊숙이 꽂혔습니다. 여러분 마음에도 깊숙이 박히시기 바랍니다.
시간 없어서 이 몸이 바빠서, 돈이 없어서, 아까워서, 이만큼이나 했으니, 이만하면 할만큼 했잖아! 하지 말고, "우리 사전에 선교사업에 중단은 없다"라는 각오로 선교사업에 최선을 다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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