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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된 앉은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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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변화된 앉은뱅이
설 교 : 이석권 목사
본 문 : 행3:1-10

      (행 3: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행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행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행 3: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행 3: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행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행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행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행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행 3: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성전 미문에서 사도 베드로에 의해 고침을 받아서 건강한 사람으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변화되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부축 받는 앉은뱅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기 때문에 자력으로는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타인에 의해서 옮겨지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차례씩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제 9시 (오후 3시) 기도 시간에 기도하려고 성전에 가다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가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앉은뱅이는 성전 미문이 유일한 삶의 근거지 였습니다. 왜냐하면 신체 장애자이기 때문에 자력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장애자일지라도 먹고 입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로서는 비교적 쉽게 동정 받을 수 있는 성전 미문을 삶의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그날도 다른 날과 같이 성전을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열심으로 구걸을 하다가 베드로와 요한 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앉은뱅이는 타인의 부축을 받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몇 날, 몇 달, 몇 년을 가도 아무런 변화를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변화가 없는 개인이나 단체는 모두 앉은뱅이와 같은 것입니다. 일어설 때가 되면 일어서야 하고 뛸 때가 되면 뛰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를 할 수 없고 늘 현실 만족에 안주해 있다면 이는 분명히 부축 받으면서 살아가는 앉은뱅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2, 구걸하는 앉은뱅이

비록 앉은뱅이 기는 하지만 먹어야 하기 때문에 구걸 행각을 했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노동할 수가 없어서 비교적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성전 미문에서 구걸을 하는 것입니다. 우선 먹는 문제가 급했고 그 이상의 좋은 것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좀더 좋은 것 즉 건강을 구했더라면 벌써 고침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한데 그는 언제나 현실 안주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구걸하는 앉은뱅이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바로 나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우리는 먹고, 입고, 사는 것에 급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기껏 썩어질 땅엣 것만 구하고 있으니 앉은뱅이가 아니냐는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물론 육신을 위한 빵이 있어야 하지만 그러나 결코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는 이 땅에는 육신을 위한 빵(양식)은 많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사회가 혼란한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가 수립된 후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과 비리를 척결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들이 구걸하는 삶을 살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의 과거가 구걸하는 삶이었을 지라도 이제는 바꾸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장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앉은뱅이는 남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왔으나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건강하고 정상적인 신앙 인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제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나 단체들에게 관심을 갖고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3, 걷고 뛰는 사람

구걸하는 앉은뱅이 앞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갔습니다. 이때도 이 앉은뱅이는 여전히 구걸 행각을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앉은뱅이에게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앉은뱅이는 무엇을 얻을까 하는 심정으로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보았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일어났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걸어 보지 못한 사람이 자력에 의해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그런데 이 앉은뱅이를 걷게 한 베드로의 말의 뜻을 분석해 보면

첫째는 "우리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장애자의 정신을 집중시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님께 전적으로 정신을 집중시키고  따르면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말씀입니다. 장애자의 정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접근시키고 만나게 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이 환자뿐 아니라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가능케 하시는 능력이십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들이므로 그 뜨거운 감격과 가슴으로 걷고 뛰며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힘껏 뒤며 충성하여 우리의 삶이 주안에서 변화되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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