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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기뻐하는 교회 / 딤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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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 기뻐하는 교회
본 문 : 딤전 3:1-7
설 교 : 김이봉 목사 (상도교회) 


□ 하나님 기뻐하는 교회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 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하믕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디모데전서 3장 1-7절>

우리 나라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나라임으로 교회에 대한 핍박이 없는고로 그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아직도 아시아 지역의 여러 나라들 중에는 기독교 신앙을 지키기 어려운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힌두교권, 불교권, 이슬람권 그리고 공산권 등의 나라들 중에서는 아직도 기독교를 핍박하고 박해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은 어떻습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교회가 많다는데 문제가 있는 줄 압니다.
외국 사람들이 첫 한국의 인상을 말하라면 곳곳마다 십자가 건물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라고 합니다. 십자가가 상징하는 것은 <사랑>과 <희생>과 <봉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있다면, 그렇게 많은 십자가들이 있는 한국이 얼마나 변해가고 있느냐? 하는데는 문제가 항상 있습니다.

요즘 서가에서는 "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는 책이 많이 읽혀진다고 하길래 저도 한번 읽었습니다. 신학을 한 사람으로 목회는 하지않고 전직 언론인이요 교회 장로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몇몇 대형교회들의 특별한 케이스를 다루면서 그래도 본인 저자의 말 중에 "다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를 펼치는 많은 진실한 교회들이 상처를 입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라는 말을 한 것을 보아, 그래도 교회는 진실한 교회들이 있다는 것을 그도 말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보면 교회는 인간의 생각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의 평가에 괘념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고로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몸인고로 하나님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교회를 사랑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침노하지 못하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찬송가 245장처럼 "허락하신 말씀대로 주가 친히 세운 교회"요, "생명 샘이 흘러나와 부족함이 없는 곳이요", "주의 자녀들이 받을 복이 영원무궁한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하여 성도들이 받는 은혜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교회다운 교회를 선택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손해를 봅니다.
환자는 병원을 잘 선택해야 되고, 학생은 좋은 학교를 선택해야 되고,
샐러리맨은 좋은 직장을 잘 선택해야 되듯 성도는 교회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교회를 제일 사랑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친히 자기가 몸을 버려 값 주고 산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이어야 하겠는가?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는 먼저 '성령이 지배하는 교회'라야 합니다.

교회가 크다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건물이 아름답다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않고 중심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다른 것보다 영적 권위가 있는 교회라야 하겠습니다.

'영적 권위'란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신앙 수준을 말합니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보면, 교회를 <거룩한 공회>(Holy Community)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모임의 단체와 다른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인간의 의지가 아닌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권위란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씀>이 명령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라야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란 말입니다. 이것이 영적 권위가 있는 교회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씀>이 명령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라야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란 말입니다. 이것이 영적 권위가 있는 교회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가 될 것이고, 그 반대로 인간적인 생각이나, 인간적인 뜻이 좌우하는 교회가 될 때, 그 교회는 영적 권위를 상실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현대 교회들이 깊이 반성해야 할 점은 바로 이 성령의 지배를 얼마나 받느냐? 하는 점입니다. 이 말은 내 자신이 얼마나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에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교회 안에 세상적인 요소들이 없을 수 없지만, 그런 것들이 지배하지 못하도록 날마다 성령으로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지난번 우리 교회의 모 집사님께서 이번 교회 봉사관 설계에 응하였다가 탈락된 후, 저를 찾아와, "목사님! 처음 순간에는 서운한 감도 있었지만, 지금은 도리어 가벼운 마음입니다" 하면서 매우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도리어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성령의 지배하심으로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교회는 바로 저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렇게 스스로 세워져 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부안의 어떤 교회에서는 장로님 한 분이 그 교회의 모든 건축과 수리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데, 집사들 몇몇 사람이 그 밑에서 벌어먹고 있기에 그 장로님의 말대로만 하는데, 새로 부임해간 목사님이 그런 관행을 버리고 공개입찰하려고 하니, 그때부터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데 오늘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란 어떤 교회이어야 할까? 하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에게 속한 지체들이라면 머리되신 주님의 몸을 세워나가도록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 나가야 합니다.


3.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는 영적 지도자들이 있는 교회라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이상적 교회의 모델로 지금도 꼽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초대교회가 오늘의 현대 교회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빈약했던 교회이었습니다. 건물에서도, 시설에서도, 재정적인 면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를 구성하였던 인물들이 어떤 인물들이었는가?
처음 집사를 선택할 때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여 세웠는가?
사도행전 6: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한번쯤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지적으로, 윤리적으로 흠 잡힐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집사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들 모두가 성령의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권능과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영적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도 교회의 일군들은 성령과 지혜와 칭찬 듣는 사람들이 교회를 이끌어 나갈 때 그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할 것입니다.
교회의 일군은 이렇게 영적 지도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감독의 직분을 받을 사람들은 이러이러한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감독의 직이란 오늘의 목사와 장로의 직분입니다.
목사나 장로가 되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 직분을 사모한다는 것은 더욱 좋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직분이 영광스러운 직분이 되기 위하여서는 초대교회에서는 3가지를 각오해야 했습니다.
첫째는 순교할 각오요, 둘째는 이단 방어요, 셋째는 나그네 대접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을 잘 할 때 그 직이 영광스러운 직이고, 복된 직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 순교를 각오해야 하였습니까?
초대 교회는 안으로부터, 그리고 밖으로부터 모두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안으로부터라 함은 유대교로부터의 박해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저를 따르는 무리들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여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죽였습니다.
그런가하면 밖으로 부터의 핍박이란 당시 로마제국은 점령지 통치수단으로 로마황제를 신의 아들이라고 하여 황제의 신상을 만들고 거기에 절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천황을 섬기도록 한 것과 꼭 같은 이치였습니다.
그러니 초대교회 교인들은 안으로, 밖으로 모두 핍박과 멸시와 조롱과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그런 때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의 일군이 되고, 교회의 감독이 된다는 것은 제일 먼저 잡혀갈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그뿐아니라, 2세기가 되어 오면서 교회에 이단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의 그리스 철학사상에 입각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가 없이 영으로만 왔었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파들이 생겼습니다.
얼른 보면 그럴듯한 주장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의 구세주가 못되는 한 낮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같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이단사상을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그것이 영지주의자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뿐아니라,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 전하는 전도자들이 순회하면서 머물었던 곳은 감독의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감독의 집은 날마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 끊일 사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감독의 직분을 감당하려면 ①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교회를 돌보아야 했고, ② 이단들과 싸워야 했고, ③ 또 늘 손님들을 대접하면서 지내야 했으니, 그 직이 얼마나 어려운 직이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직을 사모하는 자들이 있다면, 얼마나 그러한 마음이 갸륵하고 아름다운 마음인가! 바로 그 점을 오늘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개역 개정판에는 "미쁘다 이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라고 하였고, 또 표준 새 번역에는 "어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하면 그는 훌륭한 일을 바란다고 하겠습니다"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무슨 말인고 하면, 그렇게 위태롭고, 그렇게 어려운 감독의 직분을 맡으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는 어떠합니까?
집사에서 장로가 되면 신분상승이요, 교회계급의 상승이요, 목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목사의 하는 일을 감독하는 감독자로 착각하는 그런 경우들이 종종 있음을 현대교회들에서 보게 됩니다.
집사로 있을 때와 장로가 된 후에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말을 듣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달라졌다는 말이 좋은 의미에서 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목에 힘이 들어갔다는 말로 교만해졌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가하면 신학교 나와 목사만 되면, 교회에서 제왕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독재를 자행하는 경우들도 오늘의 현대교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법대로 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불법을 행하는 일이란 말입니다.

마태복음 7:23절에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본문의 말씀대로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기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군들이 우리 교회 안에서 많이 생겨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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