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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도적과 목사 / 요 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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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도적과 목사
본 문 : 요 10:7-10
설 교 : 장영일 목사 (범어교회)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 도적은 죽이려고 오고 목자는 살리려고 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절)

      도적과 목자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목자처럼 와서 도적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찾아 남으로 오신 귀순자들이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합니다. 목자처럼 처음엔 친절하고 따뜻이 대해주어 의지했는데 나중 그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정착금을 때어 먹고 달아난 경우들이 뉴스 보도에 있었습니다. 중국의 조선족들에게 코리안 드림을 심어주며 한국으로 인도한 사람들이 나중 도적으로 돌변한 경우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즉 양의 탈을 쓰고 있는 늑대들이 있다고 말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초대교회 당시에도 사이비 메시아들이 창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이런 기록들이 있습니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행 5:36-37)

1910년에 일본이 우리 나라를 합병한 명분은 서양 오랑케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며 개량된 문화를 우리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우리들의 목자로 위장했으나 결국 우리를 수탈한 이리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미국은 과연 도적일까 아니면 목자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분명 한국 전쟁에서 미국은 우리들을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구해준 목자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50여 년 동안 지속된 북한의 남침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목자 같은 존재입니다. 뿐 아니라 헐벗고 가난했던 우리 나라를 선진 대열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경제적 후견인이 되어 주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금번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두 명의 여중생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과연 그들을 믿을 만 한가? 그들은 우리들의 목자일까? 하고 의심케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미국이 도적까지는 아니더라도 결코 우리들의 목자는 아니란 것입니다. 목자같지만 삯을 계산하는 삯군 목자입니다. 즉 그들의 국가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외교 정책을 쓰는 삯군입니다.

계산이 맞지 않으면 언제 우리를 버리고 떠날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삯군을 믿고 살 수는 없습니다.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시 118:9)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 146:3)

우리는 다윗과 같이 크게 외칩시다.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시 3:6-8)


2. 도적이 오는 것을 예방합시다

      도적이 찾는 대상이 있습니다. 즉 도적질하기 쉬운 대상입니다. 도적을 당하지 않으려면 도적이 노리는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나는 속기 쉬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리에게 쉽게 속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은 배고픈 예수님에게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런지 진리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탐욕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남에게 잘 속는 경우가 탐욕이 있을 때입니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순간에 이루려는 어리석은 꿈을 버려야 합니다. 그 때 바로 사기꾼들이 접근합니다. 탐심은 우상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저 크고 힘있는 자를 숭배하려는 어리석은 마음은 탐욕에서 나옵니다. 결국 큰 자에게 먹히고 마는 것입니다. 


3. 목자를 맞이하여야 합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 .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9-10절)

우리를 살리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우리를 살리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오직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케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하여 우리가 주님을 목자로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는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 가야 합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3-5절)

목자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의 음성을 듣고 아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자의 음성을 분별한 뒤에는 무조건 그 음성을 따라 가야 합니다. 목자는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또 하나는 목자가 우리에게 쉽게 올 수 있도록 평탄한 길에 서 있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양들에게 목자가 쉽게 올 수 있도록 목자의 길을 평탄케 하는 사명이었습니다. 우리도 주의 길을 평탄케 하며 곧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의미적 교훈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이 교만하거나 성품이 부드럽지 않으면 양이 아닌 줄 알고 주님이 부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양은 온유하며 순종하며 주님의 뒤를 따라 가는 양입니다. 이럴 때 양은 더 많은 꼴을 얻게 됩니다. 더 풍성한 삶을누리게 될 것입니다.


4. 마무리하며

      성도 여러분! 주님은 한결같이 우리가 생명을 얻고 풍성한 꼴을 먹어서 살찐 양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도록 우리를 시냇가로 푸른 초장으로 부르십니다. 그 음성 듣고 따라갑시다. 탐욕을 버리면 그 음성을 듣게 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목자와 도적을 분별합니다. 도적의 음성을 따라 가지 않도록 늘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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