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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 딛 3:3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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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 정철원 목사 (빛과소금교회)
제 목 :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본 문 : 디도 3:3 - 7



지난 6일에는 수능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 당국에서 난이도 조절에 또 실패해서 고3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이런 생각을 해봅시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나 좋지 않은 학생들이 다같이 대학교에 갈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살기 좋은 나라가 될까요? 아니면 불공평한 나라가 될까요?

우리가 이 세상 살다가 누구나 다같이 죽어서 그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이 공평한 일일까요? 아니면 불공평한 일일까요? 누구는 그렇게 많은 죄를 짓고, 죽이고 착취하고 빼앗고, 거짓말하고 배신하고 괴롭히다가 이 세상에서 그렇게 위선과 가식으로 살다가 그냥 똑같이 죽어버린다면, 이 세상만큼 불공평한 세상이 어디 있을까요?
인류 역사가 5천년 역사라하지만, 선사 시대를 제외하고는 기껏해야 3000년 정도 밖에는 역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세월 속에서 인류는 전쟁과 싸움 속에서 끊임없이 살인하고 죽여왔습니다. 그리고 가진 자들은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들, 노예들을 착취하고 짓밟아오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를 생각해보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대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착취를 당하며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았습니까? 인간은 인간을 죽일 수 없음에도 죽여왔고, 인간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음에도 짐승처럼 부려먹고 물건처럼 사고 파는 짓을 했습니다.
  이 선과 악을 구분해서 심판하시며 재판하실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신론자들이나 유물론주의자들이 주로 그런 주장을 합니다.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지옥에 가느냐? 며 소리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주장합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고민을 한 두 번쯤 하게 됩니다. 과연 기독교만이 유일한 진리인가? 이 세상에는 진리가 하나 뿐인가? 다른 종교에는 길은 없는 것인가? 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정말 예수만이 참 생명의 길입니까? 성도들은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그러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예수밖에는 길이 없고, 예수밖에는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을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초대 교회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말씀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유대인들의 대제사장 앞에서 재판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많은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당당히 성령에 충만하여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이것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지만, 나도 이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나는 다른 종교를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가 사람에게 많은 유익을 주고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정말 많은 위로를 주고 힘이 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인간이 이 세상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인간적 평안이요 기쁨일 뿐입니다. 거기에는 영원한 생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많던 성현들도 한결같이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석가모니도 죽었고, 공자도 죽었으며, 소크라테스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죽었지만 다시 사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예수밖에는 우리를 구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금요일 밤마다 디도서 말씀을 나누다가, 오늘 본문 말씀이 얼마나 은혜스럽던지, 복음의 진수를 발견했구나, 하며 정말 기뻤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성도들에게 정말 예수만이 우리의 구원의 주가 되심을 성도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왜 정말 예수가 우리에게 그렇게 구원의 주가 되시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오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사람의 '과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3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이 말씀들을 자세히 보면, 우리들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고,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인간은 얼마나 악합니까? 그래서 바울도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며, 인간을 짓밟아 살해하던 일에 동참하던 인생들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인생이 탐욕과 욕심 속에서 미련한 인생을 살아가기에 그런 인생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이 자기를 살리는 길임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인생 길을 사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시편 14장 1절에, "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그리고 우리도 전에는 속은 자였습니다. 세상일이 최고인 줄 알고 속았습니다. 돈이나 명예가 최고인 줄 알고 속았습니다. 무조건 성공만 하면 다 된 줄 알고 사람들은 성공의 꿈에 빠져서 속아 살아갑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허망하고 가치 없는 것에 속아서 살아가는지 말입니다.

3번째로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술을 좋아하던 나라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길거리마다 마을마다 골목마다 술집이 가득합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방탕한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닙니까? 술과 오락에 노예가 되어 그것에 종노릇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밤낮을 안 가리고 어디에서든지 방탕한 인생들을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전에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며 서로 질투하면서 그렇게 처참한 인생들을 살아갑니다. 사람들의 인생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한탄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가정이 깨어지고, 파괴되어 가는 이 세상이 악하고 독한 질투심으로 미움으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비참한 인생을 우리도 살았고, 나도 살았었습니다. 예수 없이 살아온 그 인생이 얼마나 처참하였는지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래요. 내가 살아온 인생 속에서 예수님이 안 계셨다면, 나는 정말 절망적인 인생을 살았을 겁니다. 정말 허망하고 허무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다같이 4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우리 구주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며,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이 자비하신 분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하다가도, 내가, 나를 바라보면 참, 하나님은 자비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나 같은 것이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지, 참 하나님이 자비롭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았을까요? 죄를 짓고, 방탕하며, 욕심과 탐욕 속에서 사람이나 미워하면서 아주 인간적인 인생이나 살면서 저속하고 천박한 인생을 살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은 또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값지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어떻게 해야 쉽게 우리가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요?

  가령, 옛날에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노예들은 물건처럼 돈주고 사고 팔고 할 수 있었습니다. 노예들에게는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하나이며, 또 한결같이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서,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 아득한 2000년 전에, 어떻게 여자의 인권이 있었으며, 노예의 인권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고 말씀하시므로, 하나님이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는지 잘 나타나지 않습니까?
검찰에서 조사를 받다가 죽은 사람의 시신을 찍은 사진을 보니, 그 사람이 다름 아닌 조폭이더라구요. 내 허리만한 허벅지와 굵은 종아리에 시퍼런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깡패 놈 하나 정도는 죽도록 패도 괜찮고, 또 물 고문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초유의 사건이 아닙니까? 피의자를 조사하던 검찰이 구속된 건 건국이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인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국민의 정부에서 일어난 일 아닙니까? 아마도, 그 검사나 경찰 관계자들이 기독교 인 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인권이 짓밟히고, 사람이 욕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또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분이십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귀중하게 보시며, 얼마나 아름답게 보시는지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그 찬양이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들은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으며, 우리들은 또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태어났다는 것이 아닙니까?
5절에 무슨 말씀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저주와 사망과 슬픔과 질병과, 절망과 미움과 싸움의 수렁에서 우리를 하나님이 구원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까?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완전해서도 아니라, 우리가 선하고 착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의 긍휼 하심이 있어서, 그의 자비하심 때문에, 우리가 거듭났습니다. 오직 그의 은혜로 우리가 중생하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격적이고,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내가 구원을 받았다니요?

  중생의 씻음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거듭나게 나의 죄를 다 씻어주셨다는 뜻입니다. 내 상처와 내 고통마저도 다 씻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곧 중생의 씻음이 아닙니까? 내 안에 더러운 것들을 다 깨끗이 청소해 주시는 분이 우리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물처럼 우리에게 있던 더러운 것들과 악한 것들을 깨끗이 씻어주십니다.

성령은 또 불같아서, 냄새나고 썩어있던 내 안의 죄악스런 것들을 다 태워주십니다. 내가 전도사 시절에 학생들과 수련회를 가면, 장작불을 태우며 거기에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의 죄들을 종이에 적어서 불길에 집어 던집니다. 그리고는 그 종이들이 다 타버립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 저것이 바로 성령의 은혜의 불길이구나, 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성령은 우리의 죄악들을 다 태워버린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새롭게 하심입니다.
6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십니다.

또 다시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세상의 명예와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온갖 인기를 다 누려도 온갖 즐거움과 쾌락을 다 누려도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으로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세상의 일로는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 차도 그것이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나도 참 외로움을 많이 타던 사람이었습니다. 10월만 되면, 갑자기 세상이 슬퍼지고, 늘 고독하며 우울하던 인생을 살았습니다.  나는 늘 예수님 사랑 따로, 인간적 사랑 따로 그렇게 나누어서 생각했습니다. 신앙이 깊더라도 내 외로움만은 해결이 안되었습니다. 내 안에 예수가 계셔도 왜 외로움도 가득한지, 잘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것이 아니더라구요.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내 근본적 외로움이 사라지고, 예수님이 계심으로, 내 원초적 고독감이 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예수님이 나에게 성령을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인생의 갈증은 없었습니다. 더 이상, 생애의 고독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풍성하게 부어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의 궁극적 구원이며,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진정한 축복입니다. 이제 비로소, 세상 욕심과 탐욕, 저주와 욕망, 인간적 고통과 절망, 사망의 어두운 그늘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얻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예수 앞에 돌아와야만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다 구원받아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 예수 없는 인생들이 다 불쌍합니다. 예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다 비참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예수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며, 그들에게 예수를 전해야만 합니다.

이제 꼭 두 주가 남았습니다. 11월 24일은 새 생명 전도의 날입니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합니다. 상하고 찢긴 마음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입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자비를 베풀어 줄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로 삼아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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