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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른편에 던지라 / 요 21:1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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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 이순환목사    번호 : 11
본 문 : 요 21:1-11
제 목 : 오른편에 던지라


1994년 9월 17일 교통사고로 6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냈던 전용기 씨가 의식을 회복한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사고 당시 31살의 나이로 식물인간이 될 확률 100%라는 병원의 진단을 받았을 때, 부인 성정식 씨는 결혼한지 5개월만에 돌아가신 시어머니와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모태 신앙인 아들과 불신자 며느리와의 결혼을 그렇게 불안하게 여기셨는데 어머니가 돌아 가시자마자 약속을 어기고 교회에 안나간지가 5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며 간호하던 끝에 남편은 의식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식물 인간으로 누워버린 극단적인 절망 상태에서 견딜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은 시어머니 때문에 몇 달 동안 억지로나마 부득이 다녔던 교회의 생활과 5년만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초보 신앙자의 절망 속에도 주님은 찾아와 주셨던 것입니다. 6년만에 남편이 의식을 회복했을 때, 처음 했던 말이 '아멘'이었을 만큼, 부인이 인간의 한계를 넘는 인내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만난 체험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사람들의 지치고 피곤한 삶의 현장에 찾아와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눅 5장에 보면, 예수께서 많은 무리들과 함께 게네사렛 호숫가에 오셨습니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의 배에 오르신 예수님은 배를 조금 띄기를 청하셨습니다. 피곤하였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옹위하고 있으니 분위기 때문에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앉으시니 배의 주인 된 입장에서 그 배에 함께 올라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리에게 가르치시기를 마치시고 주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어도 건져 올린 것이라고는 떨어진 신발짝, 쌕쌕 오렌지 빈깡통에 비닐 봉지 같은 쓰레기뿐이었는데 다시 저 한가운데 깊은 곳까지 한참을 노 저어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금 막 씻어 놓은 그물인데... 또 바닷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상식이 물고기란 원래 밤에 잠을 자기 위해 조용하고 깊은 곳으로 갔다가 동이 트면 볕이 드는 얕은 곳으로 나오는 법인데 이 아침에 엉뚱하게 저 깊은 곳으로 다시 가서 그물을 던지라니, 그 자리는 이미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 고기가 없는 것이 분명한 곳인데 왜 하필 그곳으로 다시 가서 이 피곤한 몸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하는가? 그러나 호숫가에는 많은 무리들이 서서 바라보고 있으니 무어라고 대꾸할 수도 없고 해서 결국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ꁹ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베드로의 고백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주님 앞에 해야할 고백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기력함을 주님 앞에 겸손히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밤새도록 수고하였으되 결국 잡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베드로의 고백. 우리는 일생토록 무엇을 잡기 위하여 부지런히 뛰어다니는데 결국 죽을 때 보면, 빈 손밖에 없습니다. 아무 것도 잡은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간혹 일시적으로 잡았다 하더라도 곧 놓쳐버리고야 말 것들뿐입니다. 또 잡았다는 것들도 보면, 걱정거리에 괴로운 일, 그리고 저주스러운 것들밖에 남지 않습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했다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지냅니다. 밤새도록 열심히 수고하였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한 시몬 베드로에게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쿠바 해안에 살며 멕시코 만에서 낚시질로 생활하는 노인이 3개월이 되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았습니다. 그래서 먼바다에 나가게 되었는데 자기가 타고 있는 조각배 보다 더 큰 물고기를 사흘에 걸친 사투 끝에 잡아 항구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상어에게 다 뜯기고 결국 뼈다귀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닙니까? 우리 인생에서 남는 것이 이 뼈다귀밖에 더 있습니까? 이럴 때에 우리는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오른편이라 하는 것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오른편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오른편이란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자리를 말합니다.


이은성 씨의 "동의보감"이라는 소설에 동양의학의 대가인 허 준 의원의 일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허 준 의원은 사람의 인체를 해부해 보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해동제일의 명의로 꼽히던 유의태라는 사람은 제자 허준에게 자기가 지닌 모든 의학을 전수하였는데, 자기가 오늘날의 위암에 해당하는 '반위'라는 병에 걸리자 자기의 몸을 해부실습용으로 쓰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습니다. 그래서 허준은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밀양의 천황산 석굴에서 스승의 유해를 사흘 동안 해부하여 인체의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시계를 분해 조립해 본 사람이 시계의 내부 구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의원으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체험이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던지, 스승의 유해를 매장할 때 허준은 스승의 관을 끌어안고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하늘과 스승님은 제 맹세를 들어주소서. 만일 내가 베풀어주신 스승님의 은혜를 잠시라도 배반하거든 저를 벌하소서. 또 내가 의원이 되는 길을 포기하거나, 병든 사람들을 구하는 데 게을리 하거나, 약과 침을 빙자하여 돈이나 명예를 탐하거든 저를 벌하소서. 스승님의 이 고마움을 영원히 잊지 않으오리다." 스승의 큰 은혜에 사로잡힌 허준은 제자로서 자연스럽게 이런 맹세를 하게 되었고 이 맹세를 지키면서 일생 동안 훌륭한 의사로 지내었습니다.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스승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런데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버리신 위대한 스승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소명을 버리고 다시 옛날의 생활로 돌아가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그물을 던지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스승의 뜻은 모두 포기해 버렸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고백과 결단을 했던 수제자 베드로도 동료들을 이끌고 여기에서 다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중입니다. 그나마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배은망덕한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책망치 않으시고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가치 없이 죽었다고 낙심하여 이전의 어부 생활로 돌아갔던 제자들이 이제는 다시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제자로 바뀌어 졌습니다. 고기나 잡던 그들이 이제는 사람을 낚는 하늘의 어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의 오른편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삶의 전환점을 마련하라고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합니다. 삶의 방법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를 전환시키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나만을 위하여, 내 육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살아왔지만, 세상의 향락이 행복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왔지만,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서 하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내가 칭찬을 받는 것보다는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나 개인 육체의 유익함보다는 우리의 영적인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웃의 필요와 이익을 위하여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간절한 음성입니다. 바라기는 이 음성에 우리 모두가 귀를 기울여 순종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오른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서게될 자리를 말합니다.


마 25장에서 예수님은 비유로써 우리가 서 있어야 될 자리가 어디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을 심판하러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사는 사람은 오른편에, 불의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왼편에 세울 것이다. 오른편에 있는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혀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 때 거기 있던 사람들이 묻습니다. "주여 우리가 언제 그리하였습니까"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 저주를 받을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히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나 옥에 갇혔을 때에 나를 돌아 보지 않았느니라." "주여 우리가 언제 그리하였습니까?",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지금 오른편에는 누가 있습니까?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한 자가 서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걸어가야 될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처음 부르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제자의 길이었습니다. 3년 동안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저 깊은 데로 가서 많은 영혼을 건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지금 열심히 왼편에다가 헛된 그물질만 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제자들이 있어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셔서 돌보라고 명령하신 지극히 작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는 오른편이었습니다. 주님이 계신 자리도 보좌 우편이고 제자들이 서야할 자리도 역시 오른편입니다. 그리고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자들도 역시 오른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을 만나는 것이 곧 주님을 만나는 것이고 그들에게 행하는 것이 곧 주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양의 자리입니까? 염소의 자리 왼편입니까?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보좌 우편에서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주님이 말씀하시는 오른편에는 승리가 있고 복이 있는 자리입니다.


오른편은 주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이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깊은 데를 가리키셨지만 지금은 오른편을 가리키셨습니다. 전에도 이치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그물 가득히 고기를 잡아 올린 적이 있는 제자들입니다. 오른편이라고 해서 거역할 이유가 없습니다. 깊은 데를 말씀하시던, 오른편을 말씀하시던, 어디를 지적하시던지 주님이 지적하시는 그곳은 은혜가 넘칩니다. 지금은 오른편이 복된 자리입니다.

모나미 볼펜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거의 30년 이상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볼펜입니다. 그런데 그 모나미 볼펜에는 153이라는 숫자가 씌여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볼펜에는 153이라고 씌여 있을까? 모나미 회사의 초창기 일입니다. 모나미 회사 사장이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가서 완전히 망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장님은 어려서부터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 그만 사업상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신앙을 떠나서 살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파산해 버리자,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이라고 말하면서 주님 앞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를 부르면서 나왔습니다. 울면서 금식기도를 하는데 지쳐서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지 환상을 보았는지 그 앞에 153이라는 숫자가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그 뜻을 알 길이 없어서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제가 153이라는 숫자를 보았는데 이 숫자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런데 목사님도 기억이 날 듯 말듯 가물가물 하셔서 함께 좀 더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후, 성경을 읽는 중에 요 21장 11절에서 이 숫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장에게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서 잡은 물고기의 숫자가 153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회사 경영의 방향을 오른편인 순종의 방향으로 돌리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순종하여 그의 삶을 전적으로 오른편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볼펜에다가는 153의 숫자를 새겨 넣고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그 볼펜은 엄청나게 팔려나갔고 회사는 번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본문 11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고기가 153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받은 복과 은혜도 그물이 찢어지면 오히려 불행이 되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의 큰 축복을 받았으나 잘 끌어올리지 못하고 그만 찢어 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하게 만난 두 사람이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가정을 이루었으나 이 두 사람이 갈라져 가정이 찢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혹시 이 자리 신령한 은혜를 받았으나 곧 소멸되어서 안타까워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153의 복과 은혜를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물이 찢어지지 않는 것은 주님의 오른편에 서서 얻을 수 있는 승리이며 복이고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보좌 우편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는 스데반이 우러러보았던 주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스데반이 용기를 얻어 원수를 용서할 수 있었고 영혼을 주님의 손에 맡길 수 있었던 힘이 그 곳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유혹이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참다운 승리를 줄 수 없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보좌 우편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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