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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께 속한 나 / 렘 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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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주님께 속한 나
설 교 : 성완석 목사 (여수시민교회)
본 문 : 예레미야 13장 1~11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 가에 감추니라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취하라 하시기로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취하니 띠가 썩어서 쓸데 없이 되었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 없음 같이 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예레미야 13장 1~11절 말씀

  사람이 사람을 볼 때는 큰 차이가 납니다. 가진 재능도, 능력도 생활도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그런데 사람이 대단하게 생각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별거 아니더라는 거예요. 각 사람이 가진 재능이나 능력에 별 차이가 없어요. 어느 위치에 있느냐? 얼마나 가졌느냐? 다섯 달란트냐? 두 달란트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얼마나 믿음으로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생살이 복잡하고 거창한 것 같지만 원리는 간단해요. 믿음으로 살면 그 앞날이 열립니다. 주님이 복을 주시거니와 믿음으로 일하면 일도 잘됩니다. 주님 주시는 기쁨과 평안이 그 속에 있으면 음식을 만들어도 맛이 있어요. 젖을 먹이는 엄마의 마음에 믿음의 기쁨이 있으면 아이도 건강하게 잘 자랍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공부도 잘 되고, 장사도 잘 되게 되어 있어요. 살아가는 길에 어려움이 없다는 말 아닙니다. 때로는 꿈이 좌절되기도 하고 무너지는 아픔을 겪기도합니다. 잠시 넘어지고 패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절대로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고, 낙심하는 자리에 머무르게 하지 않더라는 거예요. 다시 일어나게 하고, 다시 힘있게 달려나가게 하시더라! 아멘! 시편 37:4-5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리로다" 주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힘을 더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크신 역사를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은 내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에요.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고, 만족을 찾으려 하지 마세요. 오직 예수 안에 참 만족도 기쁨도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인생 살이는 빨리 길을 찾아야 되요. 많은 불행을 겪고, 많은 고통을 겪고, 파멸을 당한 사람들은 자꾸 다른 길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이에요. 여기저기 되는 길이 있는지, 기쁨과 행복을 주는 길이 있는지, 찾아 다니다 보니 인생을 다 낭비해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 품을 떠나서는 아무리 가져도 늘 부족하게 되어있어요. 공허하고 허전해요.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부족함이 없이 할 수 있는 거예요. 별 다른 도리가 없어요. 교회에 나와서 말씀 듣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보면 힘없는 것 같고, 재미없는 인생 사는 것 같지마는 주님이 붙드시는 인생, 점점 더 강건해 지고, 풍성해 질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키시고, 생활을 회복시키시고, 더 큰 복으로 채워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 500 1.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3.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후렴)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베띠를 사서 허리에 띠고 있다가 얼마 후에 그것을 유브라데 물가의 바위틈에 감추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 날 후에 그것을 도로 파내라고 합니다. 말씀대로 꺼내어서보니 썩어서 아무 쓸모없이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힘으로 살아보려 했던 유다의 교만이 결국 썩은 띠와 같이 무익하고 쓸모없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베띠'는 제사장들의 '에봇'위에 매는 띠를 가리키는데 하나님 앞에서의 성결과 영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적 성격을 강조해 주는 상징물입니다. 구별된 존재라는 것이지요. 거룩한 백성으로 성별되어지고 하나님의 소유되어졌다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 가운데 자랑거리가 되어지고, 하나님의 영예가 되어지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떠나가 버린 거예요.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악의 자리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을 하찮은 것과 바꿔버린 거예요. 말씀을 거역하므로 이전에는 귀한 존재였는데 이제는 쓸모없는 썩은 띠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에스겔을 부르시고, 모세를 부르시고, 사무엘을 부르신 그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셔서 하나님의 소유 삼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거예요. 내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실 뿐 아니라 막을 것 막아주시고, 물리칠 것 물리쳐 주실 줄로 믿습니다. 

  시편 118:24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주님 주신 복된 날입니다. 힘겨운 환경과 여건속에서도 주님께 예배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나아왔어요. 이 시간도 우리 각자 각자에게 넘치는 은혜로 충만하게 채워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시기에 때로는 손해를 겪게하고, 아픔을 주셔서라도 나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과일나무에 좋은 열매를 거두려고 하면 전지를 해 주어야 합니다. 거름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쓸모없는 가지는 잘라 내 주어야 합니다. 때로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내게 유익하지 않을 때 하나님 막아 주시는 것입니다.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거예요. 그 때는 다 몰라요. 지나고 보면 알게 되더라는 거예요. 같이합니다. "하나님이 막으실 때는, 더 좋은 길을 준비하십니다" 

  어느 자매가 전문대를 졸업하고 대한항공에 입사원서를 내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수백 대 일의 경쟁이에요. 그래서 목사인 오빠에게 특별히 기도를 부탁했는데, 오빠가 기도원 에 가서 3일 동안 특별기도를 하고 시험을 치르라고 합니다. 그대로 했어요. 친구는 합격을 하고 그는 떨어졌습니다. 낙심이 되고 원망이 됩니다. "내 친구는 기도도 하지 않았는데 합격을 하고, 나는 기도원에 가서 기도했는데도 왜 떨어졌습니까?" 섭섭한 마음이 들었는데, 1년쯤 지난 후, 대한항공의 비행기가 괌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났는데, 같이 시험을 보았던 그 친구가 그 비행기에 타고 있다가 죽은 거예요. 이때 주님의 막으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음 해에 다시 시험을 쳐서 합격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때를 따라 막을 것 막아 주시고, 더 좋은 길을 예비하십니다. 우리는 그 날 그 날 눈에 보이는 것 밖에 몰라요.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가는 길을 알고 계시더라는 거예요. 주님의 인도하심에 믿음으로 잘 순종하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띠는 허리에 띠고 있을 때 띠로서 의미가 있는 거예요. 유다 백성도 하나님께 매여 있을 때 가치가 있고, 영광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교만해서 듣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축복이 재앙으로 변하는 거예요. "내가 한 번 해보리라" 내 힘으로 한 번 잘 살아 보겠다고 어금니를 무는 것입니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한 나라도 그렇습니다. 사람에 의해 일이 되고 안되고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지 아니하면 헛수고라는 거 깨달을 때가 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들이 만든 체제로 잘 살아보겠다고 큰 소리치던 공산 국가들이 한결같이 다 망했어요. 체코는 세계 5대 철강국이었어요. 루마니아, 불가리아. 소련, 동독, 폴란드, 헝가리, 놀라운 나라, 세계적인 문화의 도시, 유명한 음악가, 과학자, 유명한 미술가가 한없이 쏟아져 나오던 세계적인 국가가 도시들이 이제는 폐허의 도시가 되고 거지들이 다 되어버린 저주가 어디에서 왔느냐? 하나님을 떠난 결과예요. 북한만 해도 그래요. 교회사를 보면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울 정도였고, 평안북도에 있는 교회만 해도 남한 전체 교회와 맞먹었다고 합니다. 한 개 도의 교회가 남한 땅 8개 도와 시의 교회를 합쳐도 못 따라갔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가난하고, 다 죽어 가는 도시가 되어 버려서, 탈북자들이 자꾸 생겨 나잖아요? 이런 비극이 어디에서 왔느냐? 여러 가지 이유 있겠지만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떠나고, 주의 품을 떠나니까 안 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의 품을 떠나지 않는 한 소망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약속하신 대로 은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심고 백이나 천을 거두는 것이 번성입니다. 창대 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도록 크게 우뚝 서는 것입니다. 창대와 번성에는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 있고, 하나님이 주신 창대와 번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오래갑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찬을 통해서, 예비하신 크신 은혜를 받고, 새로운 영적인 회복과 생활의 회복이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기적도, 역사도, 축복도 과거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을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내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위치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한 만큼 은혜가 임하고, 내가 변한 만큼 축복이 임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같이합니다. "내가 변한 만큼 은혜가 임하고, 내가 변한 만큼 축복이 임합니다" 문제는 밖에 있지 않아요. 잘못된 환경이, 잘못된 이웃들이, 주변이 달라지면 뭔가 나아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변화되기 어려워요. 내가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여 나가면 능력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국제광고회사 최고 경영자인 팸 메이피스 래릭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그 실수에 대응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상사가 당신의 잘못을 지적할 때 변명을 늘어놓지 말라" 하나님 앞에 서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나를 지적할 때, 변명하고 빠져나갈 생각을 한다면 소망이 없어요. 사랑받지 못해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잘된 사람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모세, 사무엘, 다윗같은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불순종하고 저주받은 사람들, 아담, 가인, 고라, 사울, 아나니아같은 사람입니다. 베드로후서 3:11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순종하고 복 받을 것인가, 불순종하고 저주받을 것인가. 순종하고 번영할 것인가, 불순종하고 패망할 것인가. 순종하고 영생을 얻을 것인가, 불순종하고 멸망을 얻을 것인가. 바로 나에게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축복의 길, 잘 되는 길, 후회하지 않는 길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감히 사탄이 손 못 대는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성찬을 우리가 받게 되는데,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가 있고, 성찬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가 있어요.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떡은 내 몸이요 포도주는 내 피니 이를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나 자신을 살펴보면, 허물이 많고 아직도 혈기가 남아있고 아직도 마음 가운데 불의한 것이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나의 죄 때문에,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받으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이냐? 믿음없는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과거가 어떠했느냐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과거를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신다면 아무도 덧떳하게 설 수 없어요. 우리의 모습은 마땅히 징계받고, 진노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 아시면서도 주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붙드시더라는 거예요. 불순종한 나였지마는 나에게 새로운 출발의 은혜를 주시려고, 예비해 놓으셨더라는 거예요. 이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면서 무엇보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에 깊이 잠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용서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마땅히 내가 받아야 할 고통과 저주를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고통을 당하며 대신 값을 치르신 거예요. 단순한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버림받은 고통을 주님은 겪으셨던 것입니다. 레위기16장을 보면 죄인을 위해 두 마리 염소가 필요한데 하나님을 위한 염소는 안수하여 번제로 드려지고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안수하고 광야로 보내집니다. 사람도 없고, 물도 없고, 풀도 없는 곳으로 데려가서 버리고 오는 것입니다. "주인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결국은 광야에서 울부짖으며 헤매다가 견딜 수 없는 목마름으로 혀를 모래밭에 박고 죽는다고 합니다. 성찬의 거룩한 예식을 통해서 주님의 살과 피를 받는 우리, 먼저 하나님과 아무 가로막힘이 없는 활짝 열린 관계로 회복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람과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무너지는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직 씻지 못한 상처, 아직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다면 주님의 살과 피를 받으시면서 깨끗이 씻어버리고 풀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새 출발하시는 복된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 생활 잘 하는 비결은 어떤 경우라도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요, 십자가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절망스럽고, 한스럽고, 정말 죽고만 싶을 때라도 나를 위해 십자가의 뜨거운 피를 뚝뚝 흘리시던 주님 바라보면 새 힘이 납니다.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그토록 사랑하셨는데, 주님이 나를 위해 그토록 고통 당하셨는데, 그 은혜 입은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 때문에 주저앉아야 합니까? 십자가를 생각하며 감격하는 가슴 있어야 합니다. 이 감격 없으면, 이 감격이 식어지면 우리는 자꾸 흔들립니다. 주님이 주신 살과 피에 우리의 온 몸을 적시는 깊은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11절에 보세요.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게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 하였느니라" 주님의 원하심은, 주님의 계획은 주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게 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하고, 주님과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를 원하셨는데, "그들이 듣지 아니 하였느니라" 그 길을 버렸다는 거예요. 스스로 어두운 길, 안 되는 길을 가고 말더라는 거예요. 축복의 길을 등지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나의 모습이에요.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 속한 행복, 주님께 매여있는 행복,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어요. 주님께 매여있는 쓸모있는 띠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마세요. 잘 되었든 못 되었든 과거는 과거입니다. 지난 일에 매이지 마세요. 잃어버린 것 자꾸 생각하고, 과거에 연연하면, 힘있게 나아가지를 못해요. 물질에 목표를 두면 물질 있을 때는 괜찮아요. 물질 없어지면 절망하고 버틸 힘이 없는 거예요. 처음부터 못 살던 사람은 돈 없다고 자살하지 않아요. 있는 물질 믿고, 의지하고 살다가 그것 무너지니까 살 힘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낙심하고 자살하 거예요.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에 목표를 두면, 이룰 때 까지는 괜찮아요. 그런데 막상 이루고 나면 잘못된 길을 가기가 쉽고, 후회하는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자리에 앉는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I.Q가 0.3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무슨 말인고 하니 물고기의 I.Q가 0.3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옆의 동료가 낚시 바늘에 걸려 발버둥치면서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물고기는 그것을 잊어버린 채 또 다시 입질을 계속한다는 거예요. 동료 정치인이 안 받아야 할 것 받아서, 문제가 되고, 감옥에 가고, 인생 망치는 것을 보면서도 뒤돌아 서서 또 다시 안 받을 것 받는 다는 거예요. 내 영적 I.Q는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았어요. 후회하면서도 우리 쉽게 잊어버리고, 또 후회하는 길을 가게 되고, 주님 기뻐하시지 않는 길을 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난 날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되거니와 나를 향하여 주신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약속도 잊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우리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어요.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입니다. 잘 풀리고 열리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집니다. 자기 힘으로 사는 줄 알아요. 사람은 자기 평가에 깨어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잘 안 됩니다. 

  영국의 대문호였던 세익스피어가 한 번은 친구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 친구는 자기의 얼굴을 그린 자화상 두 장을 벽에 걸어놓고는 셰익스피어에게 그 그림을 보여주면서 어떠냐고 물어보았답니다. 셰익스피어의 마음 속에 친구를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내 생각에는 자네의 두 자화상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을 붙이면 더 좋을 것 같네"이 말이 무슨 의미예요? 예수님의 십자가 좌 우편에 있는 사람이 누구예요? 사형 당하는 강도들 아니에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친구는 셰익스피어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감히 자기를 예수님의 모습과 견주어서 말해준다고 황송해 하더라는 거예요. 사람은 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 사람이 많더라는 거예요. 잘 열리고 풀린다고 교만하지도 말고, 힘들고 어렵고 안 된다고 낙심하지도 말아야합니다. 그저 주어진 여건에서 충성하는 거에요.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사는, 주님을 중심하는 복된 가정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역대하 15:15을 보면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 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내 힘으로 하려면, 너무 힘들어요. 직장도, 사업도 내가 책임지고 살려고 생각하면 단 하루도 발뻗고 쉴 수가 없는 것이 인생 살이예요. 믿음으로 주님께 맡겨 버리세요. 주님이 책임지시는 인생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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