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거절당한 기도의 경우 / 신 3:23- 27

  • 잡초 잡초
  • 423
  • 0

첨부 1



본문 : 신 3장 23절- 27절
제목 : 거절당한 기도의 경우
설교 : 강목사 (한길교회)


때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 참 야속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간절히 드렸던 기도가 제대로 응답받지 못할 경우인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감격스럽게 고백할 때가 주로 언제입니까? 하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시고, 원하는대로 이루어주실 때가 아닙니까?
우리가 또 낙심하고 좌절할 때는 언젭니까? 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이 풀려가지 않을 때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 삶을 이끌어 주시지 않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천지를 창조하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원하는 일들을 우리 소원대로 다 들어주시지 않는 것일까요?
혹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기도를 좀더 세게, 능력있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까?

우리는 흔히 생각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거나 기도에 응답하지 아니하시는 것이 우리 같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나 있는 일이지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원하는 일이 다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모세의 상황을 보면 이건 참 뜻밖의 일이고 기가막히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됩니다.
23절, 24절을 읽읍시다.

지금 모세가 드린 기도는 어떤 것입니까? 건너가게 하소서.....어디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들어가서 꿈에도 그리던 아름다운 약속의 땅을 눈으로 보고, 발로 밟게 해 주십시오....라는 소원입니다.

이건 단순한 소원이 아니라 모세가 지난 120년동안을 사모하고 기다려왔던 필생의 과제입니다. 모세는 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 일을 위해서 40년을 바로 왕궁에서 준비했고, 또 다른 40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세월을 보냈으며 무려 80년을 준비한 끝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서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서 또 40년을 행진한 끝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 바로 문턱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무려 120년 세월을 저 땅에 들어가는 이 일 하나를 위해 달려온 것입니다.
이제 눈 앞의 저 요단강만 건너면 가나안 땅입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 문턱에서 하나님께서는 '네 사명은 끝났으니 이제 지휘권을 여호수아에게 넘기고 너는 생을 정리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청천벽력같은 소리 아닙니까? 저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 일 하나를 위해서 120년을 달려왔는데 이제 그 문턱에서 그만 두고 정리하라....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의지해서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25절

그러나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단호했습니다. 26절

인간적으로 볼 때 이만큼 갑갑하고 원통한 일이 있겠습니까? 얼마나 기다려왔고, 얼마나 사모해왔는데 그 간절한 소원을 이룰 수 없다고 하니 얼마나 낙심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에는 이런 일이 없습니까? 하나님앞에 간절히 기대하고 소원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답답함이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믿음을 가지고 기대하며 기도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뀌지 않는 오래된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분들은 건강의 회복을 위해 오래도록 기도해 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또 어떤 분들은 사업의 번창과 성공을 위해 기도해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응답은 오지 않았고, 병은 더 악화되고, 사업은 번창해지기는 커녕 더 힘들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그런 상황에 빠져 있는 분들이 있는 것이 오늘 이 땅의 현실입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도하면 그대로 된다고 들었고, 또 실제로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을 받고 있는 것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왜 나의 문제에는, 왜 내가 가진 이 문제에는 그런 하나님의 응답이 오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고 또 거기에 의문을 품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의 이 모세의 기도를 보면서 여러분의 삶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성경을 이런 시각에서 읽어보면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서도,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꽤 여럿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세사람이 모세와 다윗과 바울입니다.

모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이 기도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자기 손으로 짓고 싶었지만 그러나 그 평생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영광을 넘겨주어야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그의 몸에 가시같은 질고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전도자로서 귀신도 쫓아내고 남의 병도 고치는 능력을 가진 바울이었지만은 정작 자기 몸안에 있는 질병은 치료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떠나게 해 주시기를 하나님앞에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단호한 것이었습니다. '네 은혜가 그만하면 족하다' 다시 말하면 그 병을 그대로 몸에 안고 살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서 우리와 비교할 수도 없는 믿음과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미완성된 소원, 이룰 수 없었던 꿈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주는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중에도 이루지 못하는 소원들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그대로 삶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설혹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도한다 할찌라도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삶의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빌었느냐 하는 열심의 문제도 아닙니다. 모세가 믿음이 없어서 응답받지 못했습니까? 바울이나 다윗의 소원이 간절하지 않아서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건 믿음의 문제나 열심의 문제가 아니라 기도의 본질에 관한 문제입니다.

---물론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 가운데는 분명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열심히 간절히 기도하고 부르짖어야 하는데 적당히 부르짖고, 기도하는 흉내만 내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우리 기도에 응답이 없는 대부분의 경우는 진짜로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의 간절함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소원을 두고 정말 간절히 부르짖어 보셨습니까? 목이 쉬도록, 밤이 맟고, 새벽이 진동하도록 간절하게 외쳐보셨습니까? 그정도로 기도 안해 보고서 기도의 응답이 있니 없니, 왜 내 소원은 안 이루어지느니 운운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간절히 부르짖었고 정말 믿음으로 간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못하는 기도도 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깁니다.

이것은 우선적으로 기도의 본질에 관한 문제입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내 소원을 이루고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영적인 수단이 기도입니까? 우리가 기도를 이렇게 알고 있는 한 우리 삶엔 온갖 의문과 혼란이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앞에 무릎꿇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 '무릎꿇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무릎을 꿇습니까? 하나님은 높으시고 나는 낮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고 우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시고 우리는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시고 우리는 불완전하고 모자랍니다.그렇기 때문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는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완전하신 지혜를 구하고, 우리의 모자람을 채워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요구사항을 마구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높으신 하나님쪽에서 나에게 말씀과 지혜와 온전하신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기도 가운데 우리 생각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의 뜻이 나타났다면 우리는 낮고 어리석은 우리의 생각과 소원을 버리고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기도자의 자세입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는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무엇이 우리 삶을 유익하게 하는 것인지도 우리 계산이나 생각보다 하나님이 더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 중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에 즐거이, 그리고 기꺼이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사도바울은 건강한 몸이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줄로 알고 건강을 위해서 기도했지만은,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건강한 몸때문에 교만하다가 망하는 것보다는, 약함을 안고 기도하며 사는 것이 그의 인생전체를 성공하게 하는 비결이 됨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시고 육체의 가시를 안고 살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자기 손으로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지어드리는 것이 가장 유익할 것 같았지만은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셨습니다. 군인으로서 전쟁터에서 피를 많이 흘린 다윗이 성전을 지어드릴 때 그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곳이 아니라 정복자의 영광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화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 솔로몬의 손으로 성전을 짓게 하는 것이 하나님 받으실 영광이 더 온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다윗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이나 간구가 높으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일 때 즐거이 그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구하는 소원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모자라고, 하나님의 지혜에 미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소원과 반대되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간구와는 전혀 방향이 다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돈을 구했는데 돈이 아니라 가정의 화목을 주실 수도 있고, 건강을 구했는데 병약한 대신에 굳건한 믿음을 주실 수도 있는 겁니다.

성전 미문앞에 앉은 앉은뱅이를 보세요, 그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한 것은 동전 몇 푼이었습니다. 그게 그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앉은뱅이에게 주신 것은 그가 원하던 동전 몇 푼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걸을 수 있게하는 건강이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뛸 수 있게 된 앉은뱅이가 '달라는 돈은 안 주고 뭐 이런 뛸 수 있는 다리를 주나?'하고 불평했겠습니까? 그가 원했던 것은 돈이었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은 돈이 아니라 돈과 비교할 수 없는 구원과 육신의 치유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었고 하나님의 지혜였고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판단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으면서 언제나 하나님의 판단이 옳다고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높으며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믿고 그 하나님의 뜻앞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놀라운 것은 '다시 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모세가 순순히 순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순순히 물러날 상황이 아닙니다. 평생 이것 하나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도 눈앞에 가나안땅을 바로 두고서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결정에 모세는 순종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아닌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임이 밝혀졌을 때 모세는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그랬고 바울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이 더 옳다는 것을 그들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기도에 성공하는 길입니다. 기도 가운데 밝혀진 하나님의 뜻앞에 자신의 뜻을 복종시킬 수 있는 순종의 결단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나아가되 먼저 그 소원이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인지, 하나님도 정말 그렇게 원하고 계시는지를 묻고 살펴야 합니다. 혹 우리가 충분히 살피지 못한 가운데 기도한다하더라도 계속된 간절한 기도에 응답이 없고, 하나님의 해답이 주어지지 않을 때 에 이 문제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즐거이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옳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를 유익하게 할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소원을 거절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심을 우리가 확실히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때로 우리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뜻들을 즐거이 따르고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된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