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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처럼 고백합니다 / 창 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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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야곱처럼 고백합니다
본 문 : 창 28:10-22
설 교 : 김삼환 목사 (명성교회)


야곱이라는 이름은 우리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우리의 본성을 말하고 있고, 또 예수 믿기 전에 우
리 자신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이라는 사람은 너무나 잘 살고 싶고. 복
을 받고 싶고.. 이런 욕망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능력이 많습니다. 머리 회전도 빠르
고 지혜롭고 재치 있고. 기회를 잘 포착해서 살리고. 어려운 일들도 슬기롭게 잘 대처하면서 안 되는
것도 잘 되게 하는. 이런 능력이 많은 분이 야곱입니다. 그러나 이런 야곱의 삶은 한편으로는 되면서
한편으로는 안 되고. 한쪽은 집을 지면서 한쪽은 또 부서지고 몇 년 동안 이루면 또 한순간에 무너지
면서 생각지 않았던 문제들로 늘 부딪히게 되고, 그의 삶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던 그런 삶
이었습니다.

  야곱은 두 형제밖에 없지 않습니까? 에서와 야곱, 오늘 이스라엘과 아랍의 조상이 바로 넓게 보면
바로 야곱과 에서의 그때 싸움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형이 장자인데도 어떻게
하더라도 장자의 권을 빼앗고 축복을 빼앗으려고 그렇게도 노력했던 분이 야곱이지요. 그래서 야곱
은 형제간에 관계가 나빠집니다. 부모와의 관계도 불효를 저지르게 되면서 상당히 많은 것을 얻었지
마는 부모를 잃어버리고 형제와의 관계를 잃어버리니 더 큰 외로움과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었습니
다. 야곱은 지금 터키 지역인 하란이라고 하는 곳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먼길을 집을 떠나서 가게
됩니다.

  사람이 직업 하나 옮기는 것도 쉽지 않듯이 집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를 떠나서 이
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수백, 수천리로 이제 떠나갑니다. 얼마나 허무하고 절망이고 앞날에 불안과
무사히 그곳까지 갈 수나 있을지 여러 가지 얽히고 설킨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루는 벧엘, 루스라고 하는 이 곳에서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위로부터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위로부터 자기에게로 길이 사다리가 열려지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어
요. 야곱아, 하고 이름을 아는 거예요. 야곱아 나는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이삭의 하
나님이야. 나는 너에게 복을 주겠다. 네가 얻으려고 했던 복 다 없어졌지 않느냐 내가 너에게 복을 주
겠다. 네가 누워있는 이 땅을 너에게 주겠다. 앞으로 너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너는 못 돌아올
줄 알지만, 내가 너를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끝까지 너를 지켜줄 것이다 이
런 약속을 받게 됩니다. 야곱은 여기서 새로운 인생으로 거듭나게 되고,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자가 나와서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내가 찾아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
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 마음을 두드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모든 사건을 통하여 나를 찾아오시는 거예요. 야곱이 집을 떠났던 불행했던 이 사건
은,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는 거예요. 유명한 키에르 케코르가 말하기를 인간은 사색을 통해서 하
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사상이나 도덕이나 윤리나 고행이나 수행이나 인간의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종교가 아닙
니다. 죽어도 교회 가기 싫은데, 목사 꼴도 보기 싫은데 하나님이 가게 하는 거예요. 나는 교회 안나가
겠다 하는데 하나님이 부르시는 거예요. 그것이 성도예요. 나는 교회 나갈 자격이 없는데 그런데 하나
님이 나를 부르시는 거예요. 이것이 성도예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한번 하나님을 찾았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은 거예요. 모세가 하나님을
찾은 거예요? 아니에요. 모세는 그냥 양을 먹였는데, 하나님이 모세를 찾으신 거예요. 전부가 다 그래
요. 100%가 자기가 하나님을 찾아간 사람은 없어요. 우리 인간은 형이하학적인 이 세상의 것을 찾아
가다가, 거기에서 아프고 상처받고 실패하고 고통 당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찾아가는 사람은 없습니
다. 우상은 찾아가는 종교예요. 우상은 내가 가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
셔야 만나는 거예요. 야곱은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여러분 기독교 역사에 유명한 사건들. 유명한 인
물들, 아니 앉아 있는 여러분도 다 마찬가지예요. 내가 하나님 믿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
이 저에게 문을 두드리신 거예요.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나를 불러주신 거예요.

  톨스토이도 50세까지 허무주의에 빠져 전혀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50세에
톨스토이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거기에서 깨닫고 세계적인 작품들이 나왔어요. 솔제니친도 하나님을
떠나 살 때 생각지도 않을 때 주님이 나타나 주신 거예요. 베토벤도 마찬가지예요. 기독교 역사에 가
장 위대한 인물이 어거스틴인데, 그 분이 얼마나 귀한지 아세요? 바울, 어거스틴, 마틴루터. 이렇게
이어지는 거예요. 이 정도로 어거스틴의 위치가 큰 거예요.

  누가 우리를 찾아옵니까. 내가 멀리 나대로 길을 갈 때,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사랑하고, 이제 절
망과 허무함으로 걸어가는 이 길에 주님이 나타나신 거예요.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거예
요. 이것이 신앙인의 행복이에요. 여기서 우리는 신앙에 눈을 뜨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
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새로운 용기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하나님을 만났다,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굉장한 우리에게 힘이 되는 거예요. 조그마한 주머니를 의지하고도 힘을 쓰는
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이 놀라운 싸인은 내게 비교할 수 없는 자유
요. 평안이요. 능력이에요.

  내가 어디 갈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이 놀라운 약속, 기독교는 사다리의 종교예
요. 사다리의 역할이 뭡니까? 올라가게 하는 것이지요.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하는 거예요. 야곱은 자기
의 힘으로 사다리를 만들어서 잘살고 행복 하려고 하다가 늘 떨어졌어요. 우리가 사다리를 높이 한들
얼마 올라가요. 요사이 아파트에 이사하는데 보니. 사다리가 높습니다. 높은들 얼마겠어요? 몇 십층
이지요. 몇 백 미터이지요. 야곱이 본 사다리는 그 정도 사다리가 아니에요. 저 높은, 하나님께로부터
이 땅에 놓여진 거예요.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높이 계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길이 열려진
거예요.

  우리의 문제는 땅에 있는 사다리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그래서 다 올라가 보면 불만을 갖는
거예요. 올라가 보면 그것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얼마나  많은 분야에서 성공하셨습니까? 그
러나 사다리에 올라가서 내가 만든 사다리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
신 사다리예요. 이 사다리는 구원의 사다리예요. 그래서 이것은 앞으로 오실 우리 인류의 사다리가 되
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사다리 역할을 하잖아요. 죄인이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길에 주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죄인이 아버지께 나가는 이 구원의 사다리. 영영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은혜의 사다리. 나를 믿는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주님
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사다리 역할을 합니다. 갈 수 없는 곳을 가게 합니다. 축복을 주십니
다. 건강을 주십니다. 기적을 주십니다. 믿는 자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다리 역할, 교량
도 어떻게 보면 사다리입니다. 여기서 저기까지 못 가는 곳도 가게 합니다. 바다하고 육지를 섬에서
육지까지.(바닷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 )

  내 앞날에 다리만 놓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이 아쉬움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야곱이 자기
인생에 전반전에 하나도 거두지 못했던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건널 수 있
었습니다.  벧엘 사건 이후에 성경을 읽어보세요. 어떤 일이 일어나지요? 야곱은 하란에 정착합니다.
인도해 주시지요. 축복을 받습니다. 장가도 갑니다. 내가 말을 못해요. 몇 번 갔는지. 하여튼. 아들 르
우벤을 비롯 12아들을 주시지요. 잘 됩니다. 끝까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야곱이 나중에 130세에 누
구에게 복을 줍니까?  애굽에 가서 바로에게 복을 기도를 해 주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사다리,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이렇게 놀
라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경험이에요. 가정과 교회는 경험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어
로 믿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원어가 똑 같아요. 가정도 부부만의 경험을 해야 되요. 사
랑을 경험해야 되요. 그래야 가정이 행복한 거예요. 사실 가정 같은 짐이 없습니다. 가정은 진짜 정신
차리고 보면 살 곳이 못 되는 곳이에요. 그렇게 힘들고 그렇게 어려운 나라에 직장에 그 3분의 1만 하
면 회사 안 일으킬 사람 없어요. 가정같이 어려운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옥 같은 곳이 가정이 왜 행
복하냐. 사랑하니까. 그런거에요. 둘이 서로 사랑하면 180도 달라지는 거예요. 그렇게 좋을 수가 없
는 곳이 가정이에요.

  교회도 그래요. 하나님에 대한 영적 경험을 야곱처럼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다윗처럼 사도 바울처
럼 할 때에 교회는 내게 힘이요. 능력이요. 지혜요. 권능이요. 축복 이예요. 행복 이예요. 할렐루야! 경
험 없는 교인이 교회 생활이 힘이 드는 거예요. 예배가 힘든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믿으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은혜를 줄 테니, 부어 주
겠다 라는 거예요. 내가 네게 해 주겠다 라는 거예요. 좋으면 OK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이 놀
라운 은혜를 우리 나라도 115년 전에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것처럼. 자자손손 하나님의 축복이 우주
에 넘치는 이 충만하신 은혜가 저와 여러분과 이 민족 앞날 위에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 함께 하시는 이 경험. 사닥다리의 경험. 이것은 내 영혼에 속
사람에 내 생애에 최고의 순간이요 기쁨이요 행복인줄로 믿습니다.

  제가 시골에 갈 때. 아이들이 셋 다 연년생으로 태어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추석에 생신에 구정, 방
학에 일년에 몇 번씩은 꼭 가야 하는데. 언제나 청량리에 10시 45분에 중앙선 야간열차가 뜹니다. 그
러면 안동까지 7시간이 걸립니다. 8시간도 걸리고. 거기서 버스로 3시간을 갑니다. 그리고 3시간을 걸
어가야 우리 마을입니다. 저의 과거를 묻지 말아요. 너무 깊은 산골이예요. 아이들 데리고 가면 문제
가 뭐냐 하면 명절에는 티켓을 못 구합니다. 좌석은 한번도 구한 일이 없고, 구할 수가 없어요. 그래
서 입석을 갖고 아이들 셋을 데리고 집사람은 몸이 약하니까 막내를 안고. 나는 둘을, 하나는 안고 하
나 업고, 이래 가지고 기차에 올라탑니다. 그러면 좌석이 있겠습니까? 8시간을 어떻게 서서 갑니까?
기차를 많이 타니까 기술이 생겼어요. 양평 원주에서 타는 사람의 좌석이 몇 개 남아 있어요. 원주까
지 가는 것도 상당히 긴 거리이니까. 금방 앉으면 안 돼요. 눈치를 보다가 차가 떠나려 할 때에 자연스
럽게 앉는 거예요. 그러면 눈치를 못 채요. 그런데 문제가 어디 있느냐. 차장이 순회를 해요. 쉬지 않
고 순회를 하는 거예요. 기차는 차장이 오는 것이 보여요. 뻘건 모자가 보이는 거예요. 기차는 타면 10
분내에 다 잠들어요. 다 자는데 나 혼자만 못 자는 거예요. 왜냐하면 티켓이 없이 앉아 있으니까 이건
나만 아는 비밀 이예요. 얼마나 불안한지 몰라요. 차장 올 때마다 일어나야 되요. 지나간 다음에 앉
고, 얼마나 힘들어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별것 아닌 티켓 이것이 우리를 그렇게 불안하게 만드는
거예요. 잠을 못 자게 만드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이 별것 아닌 믿음이 이 경험이 밤에도 잠 잘 자게 하고, 사업을 해도 무엇
을 해도 만나도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일어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오늘 이렇게 불안하고 염려하고 허무주의에 잡혀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감사하며 찬송하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뭐냐, 믿음 이예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예요. 이 경험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놀랍게 우리를 인도하시고. 축복하고 계시
는 것입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이시다. 이 땅을 다 주겠다, 너는 사라지고 끝
나는 것이 아니야, 돌아오게 하겠다. 네 자손이 잘되게 하겠다. 너를 언제나 해치지 못하도록 끝까지
너를 도와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이 야곱의
길은. 승리의 길이였습니다. 담대한 길이였습니다.

  행복의 길이였습니다. 모든 일이 하는 일마다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었습니다. 가다가 틀어박고
무너지고 잘되는 것 같은데 또 안되고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 한 삼 년 잘 벌다가 또 무슨 일이 있으
면 싹 나간다는 거예요. 사기꾼에게 속든지 엉뚱한 일로 나간다는 거예요. 며칠 전에는 중학교 다니
는 아들이 늘 얻어맞고 다녀서 얘야, 누구든지 맞고 다니지 말고 때려라. 내가 책임질게 했더니 하필
그날 가서 때려 가지고 콧등이 부러졌대요. 그래서 삼년 번 것이 다 나갔대요.

  여러분 교회에 나와서도 하나님 믿지 않고 나오기는 하는데 자기의 방법대로 야곱처럼 계속해서 살
아 가구요. 종교인이 되지 마십시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으십시요. 한시
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예배드리는 한시간, 기도하는 한시간, 봉사하는 한시간 주님이 맡겨주신
일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경험하고 믿어야 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경험해
야 합니다. 교인의 3대 의무가 있어요. 간단해요. 주일을 지키는 거예요. 이것이 첫째 의무예요. 주일
을 쉬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만세 전에 이날을 정하셨어요. 날을 정한 거예요. 이 날은 여호와의 날이
라는 거예요. 일하지 말고 푹 쉬라는 거예요. 여러분, 쉬는 거 잘 쉴 줄 알도록 그것을 알고 쉬는 사람
복 받은 사람이예요. 그 선진국 사람이예요. 쉴 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은 어디 놀러 가야 쉬
는 줄 아는데 아닙니다. 놀러 가면 피곤합니다. 가족과 함께 좋은 대화 나누고 음식을 나누며 걱정하
지 말고 그 날은 될 수 있는 대로 뉴스도 보지 말고 조용하게 예배드리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어요.

  친구 목사님 한 분이 대공원, 영종도 공항 이런 곳에서 선교하고 있는 목사님이 있어요. 그런데요.
대공원에 주일이 되면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데요. 들어올 때는 똑같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
이 없대요. 아이들 데리고 고무풍선 5개, 6개 들고 다 좋아하고 노래부르고 뛰어 다니고 이렇게 온대
요. 그런데 저녁에 나갈 때는 안 싸우는 사람이 없대요. 이 놈의 새끼 다시 오나 봐라. 애들이 울고 부
인은 오지 말자고 하니까 와서 이렇다고 하구요, 욕하고 울고 야단이 난대요. 여러분 대공원 가서 쉴
줄 알아요? 어디 놀러 가면 쉰다는 개념을 버려야 되요. 놀러 가면 피곤한 거예요.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할렐루야! 잠자고 쉬고 공원에 가서 싸우지 말고 오늘 예수 앞에 나
와서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말씀 듣고 이것은 교인의 의무요, 축복이예요. 이 예배가 하나님 앞
에 바쳐지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이 사닥다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고 또 하나님은 우리
를 축복하여 주시는 거예요. 세계 선진국 치고 예배 안 드리는 나라가 하나나 있나요. 오늘날 이 지상
에 제일 가는 민족이 예배 안 드리고 제일 가는 민족이 하나나 있나요. 우상 섬기고 잘되는 민족이 하
나나 있나요. 하나님과 사닥다리 높여진 길로 예배의 길을 잘 닦아 나가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의무, 십일조예요. 하나님이 주신데 대해서 감사하는 거예요. 물질로 감사하는 거예요. 이
사닥다리로 올라갈 때 조금 물질을 올리지만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려주실 때 많은 것을 내려주시
는 거예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경험하면 십일조가 전혀 어렵지 않아요. 인간은 인격적으로도 서로
사귀려면 서로 thank 해야 돼요. 주고받아야 돼요. give and take가 되야 돼요. 그럴 때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거예요. 스승에게 큰 은혜를 받으면 조금 감사하고 위에 분에게 조금만 감사해도 그것이 얼
마나 기쁨인지. 하나님 앞에 만가지 은혜 받고 구속함을 받고 죄사함을 받고, 우리를 인도해 주신 하
나님 앞에 thank 하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죄를 짓는데는 얼마나 많이 갖다 버려요. 죄악을 짓는데는 빼앗기는 거예요. 술 먹으러 가지만은 먹
어요? 빼앗기는 거예요. 술잔에 인생, 건강, 가정, 다 빼앗기는 거지. 자기가 마시는 거예요? 빼앗기
는 거예요. 도박을 해서. 이번에도 누가 구속됐다는데 빼앗기는 거예요. 거기에 얻으러 다 가는 것 같
지만 누가 얻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마귀는 우리를 다 빼앗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에요. 좋은 것을 주시는 선한 목자인 줄 믿습니다. 물질을 아까워하
면 안돼요. 제가 명성교회 개척하기 전에 가까운 곳에 해양교회에서 목회를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하나님, 저도 혹시 앞으로 강사가 된다든지 부흥회에 나가서 사례금을 받는다
든지, 그런 일이 없겠지만은 혹시 있으면 내가 그 사례비는 하나님께 다 드리겠습니다. 물론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약속 안 하지요. 반을 드린다든지. 아휴 내가 정말 그 때 바보였어요. 이런
기적은 전혀 가능성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될 가능성은 인간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했으니까요. 하나님
이 하시니까 되는 것이지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 혹시 은혜를 주셔서 없겠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면 다 바치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런데 교회가 부흥하면서 온 세계가 오라고 하는 거예요. 수많은
곳에서 오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15년, 17년 전에 보니까 부흥회를 해서 헌금한 것이 일년에 한 4500
만원 되더라구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보여주고 낼 수도 없고. 그냥 늘 바치는데.. 나는 그렇
게 어려운데. 십 여년 꾸준하게 낙심하지 않고 늘 감사했는데 장로님들이 나중에 알아차렸어요. 목사
님이 이렇게 감사하는구나, 그리고 장로님들이 생각을 해주시더라구요. 진작 생각해 주셔야지.

  오늘날까지 제가 참 행복한 것은 큰 교회냐 작은 교회냐 이런 차별을 안 하구요 사람이 큰 데만 갈텐
데 어디든지 하나님 부르시면 가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그때 자유함을 얻는 거예요. 많이 받으나 적
게 받으나 내 것 아니니까 지금 보면 내가 받쳤던 액수가 전에는 많은 것 같았는데 하나님 저에게 주
신 은혜를 생각하면 돈으로는 계산 못하는 거예요. 어떻게 돈으로 계산하겠어요. 정말 만가지 은혜를
주신 거예요. 할렐루야!

  링컨은 어려서 만가지가 어려웠지만은 어머니 없이 8살부터 커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험하니
까 누가 뭐래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잘 이겨내는 거고 오늘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놓고 있
으면서도 절망하고 낙심하고 의욕이 없고 용기가 없고 꿈이 없고 비전이 없는 이유가 어디 있어요. 하
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예요. 록펠러 보십시요. 8살부터 교회에 나와서 가난한 아이가 어머
니의 유언대로 십일조 생활을 하고, 너는 주일을 잘 지켜라. 교인의 의무예요.

  여러분의 아이들 교육시킬 때 간단해요. 주일 잘 지켜라. 십일조 해라. 선교해라. 이것이 교인의 3
대 의무예요. 전도하는 거예요. 전도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거예요.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십일조는 하나님께 받는 은혜에 감사하는 거예요. Thank. 주고받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우
리 인간을 향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섭리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우리는 하나님
주신 은혜로 한없는 복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를 잘 되게 하시려고 불러 주셨어요. 한 분 한 분을 불러 주셨어요. 이 부르심에 감사하면서 남은 생애
를 야곱과 같이, 학자들에 의하면 야곱의 이때 나이가 한 70세 되었대요. 왜냐하면 외삼촌댁에서 20
년 살은 것하고 돌아와서 애굽에 갔을 때가 130세였거든요. 지금부터 한 삼천 칠백 년 전이니까 전부
견주어 보면 70세가 될 때까지 야곱은 방황을 했어요. 그러나 그 다음 인생, 늦게 믿어도 그 다음 인
생, 하나님에 대한 경험하고 나니 다 쉬운 거예요. 그 뜻대로 살아가면서 야곱의 인생처럼 2003년 남
은 생애가 형통한 사닥다리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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