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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 롬 8: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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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본 문 : 롬 8:31-34 
설 교 : 박상훈 목사 (승동교회)


(롬8:31-34)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성경에 나오는 한 인물인 바사왕 고레스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는 인품이 훌륭한 덕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적들을 가혹하게 다루지 않고 유화정책을 펼쳐서 늘 적들을 포용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대로 그는 칙령을 반포해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국으로 귀향시키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한 번은 그에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이웃나라를 정복했습니다. 그 나라의 왕과 왕비와 그들의 자녀들이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그들을 심문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들을 죽이기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적국의 왕을 향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만일 그대를 살려준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적국의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를 살려주시면 제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절반을 왕에게 바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대의 자녀들을 다 풀어준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자 적국의 왕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제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왕에게 바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일 내가 그대의 왕비를 살려준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자 적국의 왕은 스스럼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제 목숨을 기꺼이 왕에게 바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매우 감동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자기의 목숨까지라도 바치겠다는 적국의 왕의 말이 그를 감동케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하들에게 이렇게 명을 내렸습니다.
"여봐라! 이 사람들을 다 풀어주어라. 죽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들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모두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면서 풀려난 왕은 왕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연 듣던대로 바사왕 고레스는 훌륭한 덕장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분명히 전세계를 제패할 것입니다. 내가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까 인물도 그렇게 출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하시오?"
그러자 뜻밖에도 왕비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얼굴을 전연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까지라도 아끼지 않고 바치겠다고 하는 한 믿음직한 남자의 얼굴을 황홀하게 쳐다보느라고 그 외에 다른 곳에는 전연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뭇 아름다운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의 초점이 어디로 가 있습니까? "연말연시를 맞이해서 어떻게 하면 좀더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인가? 백화점들마다 세일을 하는데 무엇을 살 것인가?" 이런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에게로 우리 마음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보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려고 높고 높은 보좌를 내놓으시고 낮고 낮은 이곳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탄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마음의 초점이 오직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맞추어지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지난 주 우리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얼마나 확실한지 말씀해 주었습니다.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미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알파와 오메가되신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하셨는데 누가 그 뜻을 감히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이미 영화롭게 되기로 작정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의 확실한 근거를 세 가지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아들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셋째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공의가 모두 만족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우리를 의롭다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차례대로 간단하게 살펴보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십니다.

31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두 개의 질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째 질문은 "그런 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입니다. 너무 감격하면 말문이 막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 더 이상 할 말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들은 말씀을 한 번 회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할 만큼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 있습니다.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할 만큼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아는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정하셨습니다. 우리를 불러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의롭다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아무런 말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그저 있다면 "아멘! 아멘! 아멘!"하면서 감격 가운데 이 말씀을 받을 뿐일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가슴벅찬 감격이 성탄을 맞이한 우리들에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질문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대적하는 것은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도전해서 감히 설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감히 누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나서서 "안됩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적할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나서고 싶으면 한 번 나서보라는 것입니다. 덤빌 테면 한 번 덤벼보라는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이 싸웠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다윗은 약합니다. 골리앗은 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시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은 순식간에 골리앗의 목을 베었습니다. 다윗이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대적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에게는 동족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사도 바울을 거꾸러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선한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머리에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위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틴 루터가 큰 힘을 얻고 용기를 받았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카톨릭이라는 거대한 조직과 대항해서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마음에 고통이 있을 때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는 이 말씀을 붙들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는 이 말씀을 붙들고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을 겪고 계십니까? 이 세상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환난 가운데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를 높이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32절 말씀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혹시 「천지창조」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거기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명하셨습니다. 그의 독자, 그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을 받고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뒷짐을 지고서 큰 바위 주변을 빙빙 돌며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제 아들을 통해서 저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창대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은 아직 장가도 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를 번제로 잡아서 제사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니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고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자고로 사람을 잡아서 제물로 드리라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제 손으로 저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라고 명하셨습니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큰 바위 주변을 빙빙 돌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은 비장한 결심을 합니다.
"하나님, 알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아들이니까 하나님의 명대로 제가 하나님께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 모리아 산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려고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자기 아들을 아끼게 만드셨습니다. 그 대신 여호와이레로 예비한 수양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실제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실제로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사람을 위하여 내주셨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병들어서 다 죽어가고 있다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차라리 내가 저것 대신에 아플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서 대신 아프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인 것입니다. "차라리 내가 죽어서 우리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라도 하고 싶은 것이 바로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우리가 어떠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했습니까? 우리가 연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경건치 못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지금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너희에게 나의 독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었지만 이것만큼은 너희에게 줄 수 없다." 하나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습니까? 무엇이 하나님에게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소중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후손입니다. 장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하나님 아버지 나라의 그 모든 영광을 공동으로 상속할 자들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된 우리들도 하나님은 지극히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말없이 감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33절 말씀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를 가리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15:16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내가 예수 믿기로 작정해서 그렇습니까? 내가 교회 생활하기로 결심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창세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우리를 미리 정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턱대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만족이 되었습니까? 3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다 만족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합법적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를 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이 네 가지로 설명되었습니다.

첫째로, "죽으실 뿐아니라"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정죄함을 받으실 것입니다. 나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모두 담당하시고 나 때문에 대신 예수님이 정죄함을 받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나 대신에 정죄함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공의는 만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입니다. 사망은 예수님을 삼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자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우리의 옛사람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살아나실 때, 우리는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거듭난 생명이 된 것입니다.

셋째로,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우편은 존귀한 자리, 영광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는 어떠합니까? 엡2:6의 말씀을 보십시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우리들도 하나님은 지극히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잠시도 쉬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아버지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순간까지 기도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그 누가 우리를 송사하고 누가 우리를 감히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속에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의 확실한 근거를 세 가지로 말씀해 주었습니다. 첫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합니다. 우리를 감히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필요한 것, 우리의 영화로움까지 왜 하나님이 주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셋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공의가 만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반드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감격에 찬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은 바울 한 사람의 독백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대합창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함으로써 우리에게 성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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