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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립기념주일 메세지 / 고전 3:10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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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창립기념주일 메세지
본 문 : 고린도전서 3:10 ~ 17
설 교 : 박종화 목사 (경동교회)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와 같이 터를 닦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가 그 위에다가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각각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도 이미 닦아 놓은 터 곧 예수 그리스도 밖에 또 다른 터를 놓을 수 없습니다. 누가 이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으면, 각 사람의 업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보여 줄 것입니다. 그 날은 불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불이 각 사람의 업적이 어떤 것인가를 검증하여 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은 작품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삯을 받을 것이요, 어떤 사람의 작품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마치 불 속을 거쳐서 살아나오듯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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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교회 창립 57주년인데, 제가 57년 전, 첫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누구보다 감회가 깊습니다. 그 첫 예배 드릴 때 나왔던 사람들의 얼굴을 지금도 다 기억합니다만, 이 자리에는 저 외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오늘 여러분에게 하고싶은 말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두 장로님 임직식이 있고. 성찬식이 있어서 많은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장로 임직식을 한다고 하니까 생각이 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제가 이 교회 초대 장로인데, 제가 장로 장립을 받은 지가 55년이 됩니다. 어쨌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습니다만, 순서 때문에 줄여야 하겠습니다. 제대로 설교를 하자면, 구약성서도 읽고 복음서도 읽어야 되는데, 시간이 없기 때문에 기념사 형식으로 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경동교회가 이 땅에 세워질 때, 한국의 교회 수가 모자라서 하나 더 보태자고 세운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바로 요 건너편에도 교회가 있었고 저쪽에도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동교회는 이런 교회가 한국에 있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설립되어 오늘까지 온 교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은 경동교회뿐 아니라 이 지구상의 모든 교회는 오늘 사도 바울의 글에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터전 위에 세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점에서 경동도 세계 다른 교회와 다른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점을 명백히 하고 나서 말씀드리면, 사실 처음부터 우리 신학은 이런 것이다 하는 선언서를 발표하고 한 것은 아닙니다만, 결국 40주년 때 우리 교회의 공통된 신앙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것을 간단히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교회가 대개 세 줄기가 있는데, 하나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 줄기에서는 그리스도는 어떻게 믿느냐? 그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냈다가 세상에서 하실 일을 한 뒤에 도로 데려다가 자기 오른 편에 앉혀 놓고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에는 조금도 잘못된 것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이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이런 하늘에 있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그리스도도 그분의 아들로 세상에 왔다가 간 분이라고 보는데, 이것은 유대교와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가 왜 세상에 탄생하셨는가가 바르게 설명되지 않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가까이 할 수도 없는 그런 분인데, 그분이 사람이 되어서 세상에 오셨고, 그래서 우리와 꼭 같은 몸이 되셨고, 우리와 동등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외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육신한 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또 하나의 큰 줄기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아들을 세상에 보냈다가 데려가시고, 세상이 비어 있으니까,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서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구원을 얻게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 성령 하는 것입니다. 그것 잘못된 것 아닙니다. 다 맞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성령 신앙이 어디에 빠져버리느냐 하면, 우리 나라의 전통 종교인 샤머니즘, 무당종교에 빠져버립니다. 결국 성령을 받는다고 해서 흥분을 하고, 기도 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하면 그만큼 이 세상에서도 복 받고 저 세상에서도 더 좋은 데 가고 그런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성령을 믿는데 그 성령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와서 내 안에 들어오는데, 영으로 와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70년대 와서는 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 성령 이야기보다도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냐? 말구유에 태어나서 가난하고 억눌린 자의 편에 서서 불의와 싸우다가 정치범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당해 죽은 분이다, 그런 것입니다. 그 믿음 잘못이 없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치다 보면, 예수는 이 세상의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출현한 혁명가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소위 운동권 그리스도교입니다.

우리 경동교회는 이 세 조류 가운데 어느 한 조류도 타 본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아버지와, 그 하나님이 성육신하고 그리스도와, 그분이 우리 안에 영으로 와서 계신 성령, 이 세 분은 한 분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저 경동교회 깃발은 40주년 기념 때 만들었는데, 저 깃발은 삼위일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을 가지게 되니까, 우리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각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성부 하나님을 강조하는 소위 보수파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똑같이 읽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에 구약성서의 한 구절만 가지고도 설교를 합니다. 그러나 이 구약성서는 유대교 경전입니다. 모슬렘 교도의 경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것을 읽는 것은, 구약을 읽어야 예수가 왜 세상에 육신으로 오셨는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을 읽지 않으면 예수의 사건을 배경을 다 알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 예수와는 다릅니다. 간단히 말하면 예수는 자기의 입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한 적 한번도 없습니다. "아바 아버지," 아빠 하고 말합니다. 또 예수님이 하나님을 얘기할 때에는 "너희 옛사람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였으나 나는 너에게 말하노니 원수를 사랑하라." "내 아버지는 선한 자와 악한 자를 똑같이 사랑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소돔 고모라를 다 불태워 버리고, 노아 시대의 홍수를 일으켜 살아 있는 것을 다 없애 버리고, 진노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을 우리가 아빠 하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그분이 직접 우리에게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을 읽는 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구약과 함께 예수님이 어떻게 활동하시고 말씀하셨는지를 전해주는 복음서와, 성령을 받은 이후에 사도들이 그분을 어떻게 증언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도서신, 이 세 가지를 우리가 똑같이 읽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얘기하면, 예수님은 구약성서를 많이 알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성서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운동권 사람들이 성서 중의 성서, 나사렛 선언이라고 하는 누가복음 4장 16절부터 18절은 예수님께서 이사야서 35장의 내용을 읽은 것인데, 예수님은 그 내용을 바꿔버렸습니다. 진노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을 싹 빼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성서를 보는 태도는 이렇게 분명합니다.

경동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문화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교사를 통해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가져온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의 복음만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미국 사람들의 문화, 미국 사람들의 종교의식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흔히 화분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꽃을 기르는데, 그것은 화분 채로 전해 받은 꽃이다. 화분은 처음에는 좋은데, 오래 못 간다. 우리는 씨앗을 가져다가 우리 흙에다 심어야겠다, 그런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74년에 추수감사절을 추석으로 바꿔버렸던 것도 그러한 데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와 생활과 상황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를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우리 교회의 다른 점이였다면 다른 점일 수 있습니다. 달라지자고 한 것이 아니라 바로잡자고 하다 보니까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도 이제는 57년이라는 세월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 것만을 고수할 때에는 대단한 잘못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57주년을 맞이하면서 과거를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겉 사람은 날로 낡아가지만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오늘 제 메시지의 내용입니다. 저 자신도 57년 전 28세 청년이었지만, 오늘은 80이 훨씬 넘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육체가 상당히 노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살자는 마음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개인뿐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날로 새로워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57주년을 맞는 우리가 가져야 할 방향인 것입니다.

이제 한가지 덧붙일 것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많은 점에서 달라졌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질 때 한국 교회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을 믿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믿고 천당 가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교회가 한 일은 전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갖고 이 세상에 와서 이 역사 속에서 살았다. 그분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웃이란 이 사회 구조를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 이 사회 안에 잘못된 구조와의 대결이 없이는 정의와 사랑을 이룰 수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60년대부터 70년대에 정부에 의해 야당보다 더 미운 교회로 취급당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어떤 사회구조인가, 어떤 정의인가 이런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50주년 때 제가 한 얘기였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골로새서, 에베소서에서 잘 읽지 않습니까?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을 창조한 분이요 그것을 지키시는 분이요 그것을 완성하는 분입니다. 코스믹 크라이스트(cosmic Christ)! 우주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어졌고 우주만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마지막에 완성됩니다. 그래서 82년에 우리 교회를 지을 때 온 우주로 열린 공간으로서 여해문화공간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그대로 고수하고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것이 우리 교회의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번 얘기한 것이지만,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생각으로 제 얘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는 누구냐? 예수는 탐욕과 욕심과 비방만이 가득한 세상에 들어와 이 세상을 사랑의 인력권으로 바꾸어 놓으신 분이다, 그 사랑의 인력권이 형성된 것의 상징이 교회다, 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 교회는 무얼 하나? 이 교회는 정방향으로, 위를 향해서 부단히 전진해서 종국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서 쉼 없이 전진해나가는 것입니다.

경동교회도 이러한 종국을 향하여 부단히 정방향으로 전진해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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