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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의 원칙을 지킵시다. /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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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누가복음 12 : 13~21
제 목 : 삶의 원칙을 지킵시다.
설 교 : 백장흠 목사 (독립문교회)


  사람이 성공하는 데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1. 시작을 잘 해야 합니다. 첫 단추부터 잘 끼우라는 말을 합니다. 이는 독일의 격언입니다. 시작을 잘 하면 그 일을 반이나 이룬 셈이 됩니다. 매사에 시작을 바로 해야 합니다. 한 번 잘못 시작하면 어려움이 계속되게 됩니다.

2. 비젼을 가져야 합니다. 위대한 꿈을 가진 이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비젼’이라 함은 과거를 회상하여 얻은 지혜와 현재를 바르게 보고 인식하는 통찰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선견지명이 종합된 것을 말합니다.
비젼을 가진 사람은 집중력을 갖게 됩니다. 집중력이 성패를 좌우합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은 집중력이 강한 학생입니다. 일에도 집중력을 갖고 하는 이들이 반드시 이루고 맙니다. 비젼이 있는 사람은 선택을 용이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삶에 맞는 게 있으면 선택합니다. 비젼이 있는 사람은 인내합니다. 잘 참고, 잘 견딥니다.
에디슨이 우연히 성공한 게 아닙니다. 수도 없이 실패하고 안되는 것도 다시 하고, 계속하다가 성공하였습니다.
비젼은 우리에게 지난 날의 잘잘못을 알려 줍니다. 비젼을 가지고 새 일을 시도할 때에 ‘그 때 그 일을 내가 잘못했구나.’ 그것을 알게 됩니다.

3. 계획을 잘 세워야 합니다. 집을 지을 때 중요한 것은 설계도입니다. 설계가 잘 되어 있어야 좋은 집이 지어지는 것처럼 인생도 삶의 계획이 잘 되어 있어야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일입니다. 왜 사람들이 실패합니까? 일시적인 충동에 의하여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원칙에 의하여 행동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 옵니다. 원리대로 일을 해 보세요. 사고 나지 않습니다. 원칙을 떠나니까 일은 되지 않고 잡음만 무성합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삶의 원칙이 무엇인지,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곳에 돈 많은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녀들에게 아버지 재산을 분배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형이 혼자 가지려고 합니다. 동생되는 이가 예수님께 와서 형이 혼자 갖고 있는 재산을 자기에게도 돌아올 수 있도록 분배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우리 주님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의 수입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그 많은 소득을 위하여 큰 창고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합니다. ‘이 많은 곡식을 어떻게 할꼬. 더 큰 창고를 지어 거기에 쌓아두리라.’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가 예비한 것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이야기를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라 합니다. 왜 부자가 어리석은 인간이 되었습니까? 원칙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첫째, 원칙입니다. 오늘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행복은 무엇입니까? 현대인들은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거짓말이 여덟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즉, 행복이 아닌데도 행복처럼 생각하는 게 있는데 (1) 돈이 많으면 행복할 수 있다. (2) 유명해지면 행복할 수 있다. (3) 딱 맞는 결혼 상대를 만나면 행복해 질 수 있다. (4) 친구가 많으면 행복할 수 있다. (5) 매력적인 외모를 갖게 되면 행복해 질 수 있다. (6) 건강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 (7) 가까운 사람이 죽지 않으면 행복할 수 있다. (8) 세상이 변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행복의 조건 중에 하나는 될지 모르나 반드시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나만 좋은 게 행복이 아닙니다. 남편이 불행한데 아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요? 형제가 재산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재판관을 찾아 갑니다. 얼마나 억울하면 재판관을 찾아 가겠습니까? 이 형제는 행복한 겁니까? 그렇지 못하다는 결론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 이기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버나드 림랜드’라는 이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남을 돕는 사람들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두 어린 아이들이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다닙니다. 그 새가 자꾸 도망갑니다. 찾아가고 또 달려갑니다. 도저히 잡을 수가 없습니다. 지치고 피곤하여 집에 돌아와보니 그 파랑새가 자기집 처마에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행복의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로 내 마음에 있다는 말입니다. 행복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건강, 풍성한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행복은 돈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25%, 한국 사람들은 46%라고 합니다. 아니면 마음에 드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라던지 혹은 건강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세요. 어떤 사람은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춘 것 같은데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행복의 조건을 갖춘 게 없는 것 같은데 아주 행복하게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남을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이 잘 될 때에 나는 기뻐하면서 살아갑니다. 나보다 당신을 위한 삶이 되면 행복하여 집니다.

2) 사랑할 때에 행복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사랑을 받을 때에 행복하고 어른이 되면 누군가를 사랑할 때에 행복합니다. 청소년들이 왜 잘못되어 비행 청소년이 됩니까? 사랑 받아야 할 때에 사랑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밥만 먹고 옷을 입고 살집이 좋다고 행복한 게 아닙니다. 사랑 받고 살 때에 행복합니다. 행복하고 싶으십니까?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하십시요. 그리고 사랑 받는 삶을 살아 가십시요. 예수님을 사랑하세요. 그 분의 사랑을 받으세요. 그리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 가십시요. 그리스도 인들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때에 행복해 집니다.

3) 항상 만족한 마음을 가져야 행복합니다. 만족은 성령의 선물이요, 불만은 마귀가 주는 선물입니다. 받을 것을 받아야 하지요. 아무거나 받았다가는 후회하는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하여 만족하고 감사하는 이는 행복합니다. 만족이 있으면 웃음이 있습니다. 웃음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웃음으로 대할 때에 정이 통합니다. 우리는 웃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입으로도 웃고 눈으로도 웃습니다. 눈웃음이라고 합니다. 웃으면 기쁨이 있습니다. 웃으면 암세포가 사라진답니다. 웃으면 병이 낫는답니다. 웃으면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웃지 않습니까? 왜 화를 냅니까?

4)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부자인데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예수가 없으면 누가 해결하여 줍니까?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쇼펜하워’ 라는 이가 있는데 그는 그가 지은 유명한 ‘행복론’에서 기본적으로 네 가지를 가져야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명랑한 정서라고 하였습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사물을 볼 때에 좋게 보는 정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음은, 건강한 몸이라 하였습니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은 동서고금 같은 말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감사해야 합니다. 셋은, 만족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넷은, 외부적인 자산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이 볼 때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 분이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시면 그 사람은 행복해 집니다.


둘째, 원리는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형제와의 관계가 좋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재산을 많이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까지 문제를 가지고 온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웬만하면 형제와 좋은 관계를 맺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왜 형제간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인관계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를 가져 옵니다. 대인관계가 잘못되면 불행을 가져 옵니다. 성경을 보세요. 다윗과 요나단이 좋은 관계를 맺었고, 다윗은 사울과의 관계를 나쁘게 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 인들은 서로 간에 원만한 사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몇 가지를 갖추도록 힘써야 합니다.

1) 편안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 입어도 편한 옷 같이 언제 만나도 무엇을 부탁해도 편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소탈하고 서민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무슨 말을 하던지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결코 잘난체 하지도 않고, 알면서도 아는 체 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2)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사건건 남의 잘못을 따지고 그 때 마다 화를 내는 사람은 분명 좋은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실수를 너그럽게 대하여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상대방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비난은 인간관계에 적입니다. 칭찬은 인간관계에 윤활유입니다. 잘못했다고 남이 비난할 때에 옹호해 주고 변명해 주어 보세요. 곧 친구가 됩니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서로 한 말들이 상대방에게 들어갑니다.

4) 오해 하였으면 즉시 풀어야 합니다. 표현의 부족으로, 때로는 성격 차이로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면 누가 한 말이 잘못 전해져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확인하여 보고 잘못된 게 인정되면 즉시 사과하여야 합니다.

5) 항상 위해 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위해 주는 말을 하십시요. 위해 주는 일을 하십시요. 그러면 가까워 집니다. 좋아집니다.

6) 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무엇이라도 남에게로부터 받으려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도와주려고 하십시요. 협력해 주려고 하세요. 세계 역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무엇이라도 주고 간 사람입니다. 주려는 사람에게 무슨 원한이 있겠습니까? 받으려고 하고 자기만 갖겠다는 생각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삶의 원칙은 좋은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관계 중에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정립되어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은 나의 구주요, 나의 생명입니다.


셋째, 원리는 미래를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사람은 준비하면서 삶을 이어갑니다. 어린 시절에는 학교 진학 준비를 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취업준비를 합니다. 성년이 되면 결혼준비를 합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노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게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이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죽음은 누구라도 두려워 합니다. 나폴레옹 같은 이도 죽는 순간에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세 가지를 말하였답니다. 곧 “내 조국 프랑스, 충성스런 군인, 사랑하는 아내 조세핀.” 그의 죽음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아쉬움을 말한 겁니다. 베토벤은 죽음을 맞으면서 “친구여. 이제 희극은 모두 끝났네.” 라고 하였고 톨스토이는 죽음의 불안과 공포에 몸을 떨었습니다. “이제 나는 어찌할 것인가?” 스탈린은 임종할 때에 두 눈을 부릅뜨고 왼손을 내 저으며 저항하였다고 합니다. 죽음은 누구라도 두렵게 맞이합니다. 그러나 준비된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1) 죽음은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겁니다. 죽음 앞에 자유로울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죽음에 대하여 너무나 큰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느날, 부하에게 세계에서 유명한 예언자를 불러오라 하였습니다. 그의 미래에 대한 예언은 100% 적중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빗나간 일이 없었습니다. 히틀러는 그에게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예언해 보라고 다그칩니다. 그는 눈을 감고 한참 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은 대인의 축제일에 죽을 것입니다. 당신이 떠나는 날이 유대인의 축제일이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이들에게 축제일이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났다는 겁니다.

2) 죽음은 비밀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눅12;20 하나님이 오라하시는 날에 가야 합니다. 연기도 없습니다.

3) 죽음은 순서가 없습니다. 올 때에는 순서대로 왔는데 갈 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부모가 먼저 왔는데 자식이 먼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4)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믿고 회개한 자는 용서함 받았기에 천국으로 갑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지옥으로 갑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천국을 포기하였거나 지옥에 가려고 작정한 사람입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국을 포기하는 것은 엄청난 도박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수학자이기에 아주 잘 계산하였을 겁니다. 천국이 없다고 하여도 믿고 살아야 하거늘, 있다는데 믿지 아니하는 것은 엄청난 손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여도 천국은 존재합니다.

준비하면 얼마나 큰 수지 맞는 일입니까? 어떻게 준비합니까? 예수를 나의 구주로 시인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내 마음에 영접하여야 합니다. 그는 구원을 받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면 신분이 바뀌어 집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이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그럽니다. 자녀의 권세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자녀를 길러보신 분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누구라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여도 더 사랑하신답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녀인 나를 사랑하신다.’ 자녀는 권세가 있습니다. 청구권이 있습니다.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 아버지는 무능합니다. 달라고 해도 줄 게 없어서 못줍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는 풍성하십니다. 못하실 게 없습니다. 자녀의 권세로 구하고 구하여 얻으실 수 있습니다.

자녀는 상속권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많은 재산을 누가 상속 받습니까?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버지의 나라 천국을 상속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는 겁니다. 오늘,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다닌 것만으로 만족할 게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여야 합니다.

요한복음 5:24절을 기억하세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나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늘나라 생명 집을 사서 내 앞으로 등기를 냈습니다. 그럼으로 천국은 이미 내 집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사망 집입니다. 생명 집이 천국인데 언제 이사 갑니까?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입니다. 괴로움과 죄만 있는 곳, 내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 곳을 날마다 바라 봅니다(찬543장2절).

예수는 길이요, 진리입니다. 그리고 생명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합니다. 누가23: 39-43을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강도 두 사람이 같이 못 박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편의 강도가 “주여. 주님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세요.”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때 우리 주님은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구원의 복음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도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기만 하면 너는 나와 함께 구원에 이르리라 하십니다. 믿는 자는 영생입니다. ‘누구든지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라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의 은총은 당신에게도 필요합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오늘 죽음이 나를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으로 가게 된답니다. 예수 믿고 후회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믿고 구원 받는 놀라운 축복의 은혜가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라고 물으실 때 우리는 “예. 우리는 천국에서 주님을 뵈옵게 될 겁니다. 할렐루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아도 원칙을 알고 지켜야 합니다. 세상은 짧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가족이 행복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행복해야 합니다. 이게 첫 번째 원칙입니다. 자족하고 감사하면서 삽시다.

둘째 원칙은, 서로 좋은 관계로 살아갑시다. 형제입니다. 우리는 피로 맺어진 거룩한 천국 가족입니다. 사랑하면서 도와주면서, 좋은 관계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게 원칙입니다.

세 번째 원칙,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오늘날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하실 때 “주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날 받아 주옵소서.”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음성을 듣고 영생을 보장 받은 복된 그리스도 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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