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

  • 잡초 잡초
  • 325
  • 0

첨부 1



제 목 :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
본 문 : 신 1:1-8
설 교 : 장희종 목사 (명덕교회)


1이는 모세가 요단 저편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2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에까지 열하룻길이었더라 3제사십년 십일월 그달 초일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으니 4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바산 왕 옥을 쳐죽인 후라 5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6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한 지 오래니 7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지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남방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하셨나니 8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지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
사60:4-7

  첫째. 신명기는 기독교의 사상과 관습을 형성시키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신명기의 교훈은 구약성경의 기초가 됩니다. 선지자들은 신명기의 교훈을 늘 묵상했으며 신명기의 분명하고도 명료한 요구들로 자기시대 사람들에게 도전했습니다. 엘리야는 7:5의 말씀에 의거하여 바알 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멜산에서 처단했습니다 (왕상18:19-20).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신7:5)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으니라"(왕상18:19-20) 

아모스는 14:28의 말씀에 의거하여 그 정신을 잃어버리고 경직되고 교리화 되어버린 그 시대 신앙인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 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신14:28).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암4:4)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하여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암8:5)

호세아는 19:14절의 말씀에 의거하여 지계표를 옮기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물같이 부으시리라고 도전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신19:14) "유다 방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같이 부으리라"(호5:10) 미가선지자는 25:13-16절에 의거하여 정직하지 못한 상행위를 하는 당시의 선민을 향해서 질타합니다.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 하리라 무릇 이같이 하는자, 무릇 부 정당히 행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신25:13-16) "악인의 집에 오히려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미6:10-11) 

왕들도 신명기의 높은 이상을 사모했으며.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신17:18)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복명하여 가로되 왕의 신복들이 전에 있던 돈을 쏟아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였나이다 하고 또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신 아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왕하22:8-13) 

요직에 있는 관리들은 국가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 신명기의 진리들을 강조했고(느8:1-9:38), 시편 기자들은 그들의 고백과 노래 속에 신명기의 메시지를 엮어 넣었습니다. 신명기는 신약성경에 가장 많이 인용한 구약 책 중의 하나입니다.(창,신,시,사) 신명기는 신약27권 중 17권에 인용되었으며. 총 인용 수는 80여 회나 됩니다. 예수님은 신명기의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고 계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사적으로 공적으로 그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6:13, 16; 8:3; 마4:1-11) 예수님은 신명기의 구절들을 암송하셨습니다. 유대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그것을 사용하셨습니다.

스데반은 산해드린 공회의 적대적인 청중 앞에서 설교할 때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복음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 라고 했습니다. 여기 "우리에게" 란 히브리민족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스데반이 속해 있던 믿음의 공동체, 새 이스라엘을 두고 한말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메시지는 바로 오늘 새 이스라엘이 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신명기가 1세기의 기독교 공동체에 중요한 하나님이 말씀이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과 사고를 개발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는 첨단의 정보과학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이지만 이 신명기의 메시지는 영원한 진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둘째. 그러면 신명기서가 다루고있는 영원한 진리가 무엇인가?
첫째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균형 잡힌 하나님 교리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의 제한된 영적, 지적능력으로 하나님을 다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교리는 균형 잡힌 하나님교리를 보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마다 삼위 하나님의 각위에 대해서 그 강조를 달리해 왔습니다. 성자 하나님에 관심을 집중하다가 다른 두 위격에 대해서 소흘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가 탄생한 초기의 몇 세기 동안에는 성자의 인격에 집중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유일하심, 거룩하심, 권능과 자비하심, 그리고 창조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해서 유대인들과 꼭 같이 믿고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관심을 갖게된 것은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가 사람이신가? 하는데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이때 온 교회가 거듭되는 회의를 통해서 "예수님은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온전한 사람이심"을 성경의 사상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주장을 끝까지 주장하던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한 것입니다.

중세에 들어와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권위와 위엄을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성도들은 하나님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분으로 생각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죄 된 인간이 어떻게 엄위하신 하나님의 보좌에 직접 나아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예수님을 가까이 모신 성모 마리아나 사도들과 성자들 그리고 천사들에게 접근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나님에게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숭배, 성자숭배, 천사숭배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부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는 믿었으나 예수님이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내세에서 심판자가 되실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그들의 구주가 되심을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시대에는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보사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과 한 영혼의 구원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개혁자들은 그리스도안에서 누릴 구원과 내세의 심판에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죄 사함과 자유에 관심을 집중했던 것입니다.

이때까지는 성령에 대해서 마땅히 기울여야할 관심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종교 개혁 때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자극되었고, 그 뒤 후계자들과 청교도들에게서 성령이 강조된 것입니다. 고의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지식의 일부를 주장하다 다른 교리를 약화시키는 잘못을 범해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으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균형 있게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천년 동안 끊임없이 경건한 신앙 선배들이 밝혀준 토대 위에 겸손하게 성경을 연구하여 숨은 진리를 밝혀야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긴급히 회복해야할 신앙의 요소 중에 하나가 하나님지식입니다. 이천년동안 밝혀온 장엄한 하나님 지식을 우리는 다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지식이 얕기 때문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주관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우리의 인격과 삶에 끼치는 영향에 의해서 그 가치가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끼치는 영향에 의해서 판단되는 사조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인간의 감정적인 요구를 채워주려는 유혹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인간요구에 집착하게 되면 인간 중심으로 전락되고 결국에는 인간 철학이나 미신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주의 교회는 하나님주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을 생활원리로 설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에서 떠나면 그 신앙은 미신으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책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균형 잡힌 지식을 줍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신명기는 우리에게 온전한 하나님 지식을 풍성하게 알려줍니다. 신명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의 200번이나 나옵니다. 신명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존재를 알려줄 뿐 아니라 장엄한 하나님 지식을 갖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행동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해줍니다.

둘째, 신명기서가 알려준 영원한 진리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지식입니다. 신명기는 서론에서 결론까지 '이는 ...말씀이니라',(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34:4)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줍니다. 그래서 신명기를 읽어 가면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몰라서 고민하거나 방황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신명기의 첫 세 장에서는 실제적인 교훈을 줍니다.(1:6, 21) 그의 택한 백성에 대한 세심한 위로(1:29)와 복된 약속(1:30, 3:22)을 주십니다. 지난날의 도우심을 상기시켜 주시고(1:31,2:7)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책망을 해주십니다(1:32-33). 그리고 두려운 경고를 주면서(1:34-46), 확실한 방향을 제시해주십니다.(2:2-3) 그리고 분명한 명령과 (2:4-6, 9-13, 16-19). 격려를 주십니다(2:24-25, 3:2-3).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제 사십년 십일월 그 달 초 일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으니"(신1:3)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은 "듣고...  준행하고... 가감하지 말고 ... 지켜야"만 합니다(신4:1-2). 

하나님의 말씀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되었음을 알려줍니다. 모세의 확신에 찬 설교를 통해서 전달되었습니다. 선포된 말씀은 각 가정에서 신실하게 가르쳐져야 했습니다(4:9, 6:6-7,20-25). 그 말씀은 기록되고 보존되어야했습니다(4:13, 10:1-5: 31:9). 그 말씀은 사람들이 늘 볼 수 있도록 걸어놓도록 했습니다(27:1-4,8).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전달되고 가르쳐 졌습니다.

셋째, 신명기가 알려준 영원한 진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진리입니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은혜교리를 강조하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명령이 거듭 강조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명기에 율법화된 엄격한 종교를 가르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명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 성경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기 앞서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해주신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서론에서 역사적 사건을 소개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시고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심을 강조해줍니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행동에 대한 반응입니다. 우리가 순종하고 무엇인가 해드렸기 때문에 구원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순종과 섬김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은 자가 감사해서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면 바알 종교에 직면하게 될 것을 알고있었다. 바알은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농경신이다. 바알신을 섬기는 자는 자기들의 신을 잘 대접하면 필요한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인간 중심적인 신앙이요, 공로주의 신앙이다. 그런 바알 신앙에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나안의 잔재를 철저히 제거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자손이 무슨 선한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먼저 행동하신 것을 알려줍니다.

신명기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행동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수적으로 많아서 택한 것이 아닙니다((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능력이 있어서 택한 것도 아닙니다(8: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도덕적으로 완전해서도 아닙니다(9: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오직 은혜로 그들을 친 백성 삼으시고 사랑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거룩한 소명을 주시기 위해서 친 백성 삼아주신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인간 자신의 행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내 친구를 회개시키기 원하지만 나의 부족 때문에 회개시키지 못하신다고 믿는 것은 비 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이 내 병을 고쳐주시기를 원하시지만 내가 부족해서 못 고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 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번창하기를 바라시지만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번창하지 못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자신의 공적을 높이고자 하는 바알적 신앙의 잔재임을 알아야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어떤 잘 된 점에 대해서는 자기의 공적을 앞세우는 자가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무엇을 하시기도 하시고 못하시기도 하시는 그런 무능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려고 하실 때 인간에게 의존해서 하시는 그런 불완전 분이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하나님은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특히 신명기서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우리가 우리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 우리가 무엇을 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쓴 이유는 은혜교리가 도전 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유대인 신자들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더불어 어떤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도 필요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한다고 다른 복음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주 격한 어조로 갈라디아서를 기록하여 보낸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7-8) 

그 이후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교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자기 공적을 앞세우는 행위 구원론 자들에 의해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명덕교회 성도들은 나의 구원은 나의 노력과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만 구원 받는다는 이 은혜교리를 굳게 붙잡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신명기의 가르침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먼저 가르쳐 줍니다. 신명기는 하나님 지식을 폭넓게 그리고 온전하게 알려주는 성경입니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해주는 성경입니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혀주는 성경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정직함, 친절함, 구제, 자선 등을 하나님 앞에 내 세우며 하나님의 은혜를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그것은 교만이요, 은혜를 모르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망각한 처사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우리의 행위나 공로로 획득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가치 없는 벌래 같고, 먼지 같은 우리들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저 믿음의 손을 내밀면 받게되는 것임을 믿어야합니다. Toplady는 찬송가 188장 2.3절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공을 세우나 은혜 갚지 못하네 쉬임 없이 힘쓰고 눈물근심 많으나 구속 못할 죄인을 예수 홀로 속하네 빈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 주심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주소서" 이것이 바로 된 신앙고백입니다.  -아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