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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리아의 노래 / 눅 1: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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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마리아의 노래
본 문 : 눅 1:46-55
설 교 : 강동수 목사 (동신교회)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것을 알리고,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너무나 당황하고 두렵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나신 바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령으로 탄생하게 되고, 그가 야곱의 집에 왕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이내 마리아는 이를 수락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잉태한지 6개월이 된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그 때에 마리아는 본문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나 아름답고 심오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주후 507년에 “ 성 가이서리스”가 노래로 제작하여 천 여년 동안 예배의 찬송으로 불렀습니다.


1. 하나님은 왜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까?

하나님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까? 많은 이유가 있고, 또한 하나님의 자유선택일 것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마리아는 순수하면서도 정직한 믿음의 준비가 있었습니다. 그 증거로 몇 가지를 들 수가 있습니다. 그는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아 평소 믿음생활이 건전하였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내용을 보면 한나의 기도와 비슷하면서도 구약 창세기로부터 신명기, 시편, 이사야 등에서 많은 사상과 구절과 단어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구약 성경에 대하여 익숙하고 평소 이를 명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른 신앙, 좋은 믿음은 바른 신학에 기초합니다.

둘째, 마리아는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말씀에 순종하기에는 너무나 큰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위험을 무릅쓰고 순종하였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의 큰 일에는 항상 큰 위험이 동반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에는 큰 위험이 있었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에도 너무나도 큰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또한 그에게 복과 은혜를 주십니다. 성경 내용에는 하나님에 대한 정의보다는 순종하는 자와 순종치 않는 자의 삶과 그 결과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마리아가 믿음이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듣고 엘리사벳을 만나지 않고 다른 친구나 친척을 만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그는 멀리 유대에 있는 친척 엘리사벳, 즉 같은 믿음의 증거 있는 자를 찾아 만났습니다. 나사렛에서 유대 헤브론까지는 약 150Km나 되는 먼 길입니다. 아마 그 길은 예루살렘에 순례하면서 늘 다니던 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가는 길은 마리아에게는 새롭고 감격적이고, 많은 구약의 선진들의 음성을 들으러 가는 듯 하였을 것입니다. 그가 가는 길에는 저 멀리 엘리야를 연상하는 갈멜산이 있고, 구약의 종교개혁자 요시야의 무덤이 있는 무깃도를 지나, 드보라 여선지가 노래하던 기손강 가에서 잠시 쉬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마리아가 가는 길에 요셉의 무덤이 있고,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모압에서 돌아온 나오미와 룻이 이삭을 줍던 들판을 지나며 다윗이 양을 치던 헤브론 골짜기를 지나 엘리사벳을 만났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인사도 하기 전에 먼저 마리아의 잉태된 사실을 알아보고 성령에 감동되어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음이요 네 태중의 아기도 복이 있도다. 내 주 모친이 내게 나오니 이 어찌된 일인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마리아는 고백처럼 읊은 시가 바로 오늘의 본문 마리아의 노래입니다.


2. 마리아는 무엇을 노래하였습니까?

마리아는 다음 세 가지 내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46-48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노래입니다. 자기자신이 미천한 계집이요, 시골의 한갓 낮은 자임에도 돌아보시고, 하나님이 부르셨음에 대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기쁨과 감사를 나타냈습니다. 사실인즉 대통령이 한번 지나만 가도 유명한 지역이 되고, 하찮은 종이 한 장에 피카소가 그림만 그려도 아파트 한 채 값보다 더 비싸게 되고, 롱펠로우가 휴지조각에 시를 몇 줄 썼더니 그것이 육천불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마리아의 태를 이용하여 세상에 오시는데 그것을 알기만 한다면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비천하기 짝이 없으나 하나님의 구속사업에 쓰임 받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기쁘고 감사한 일임을 인식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49-53절, 하나님이 행하시는 크신 일에 대하여 노래합니다. 마리아는 “전능하신 이가 내게 큰 일을 행하셨다”고 선언하고,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주린자에게 좋은 것으로 배불리 먹이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한나의 기도와 같고, 이사야 선지서가 예언한 바요, 예수님이 누가복음 4:18이하에서 자신에 대한 말씀이라고 하신 내용입니다. 이것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요, 정의이며, 또한 복음입니다. 복음이야말로 세계와 세계인류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대책입니다.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행4:12)라고 하였습니다.

54-55절,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심에 대한 찬양입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메시야의 오심과 구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믿고 지금까지 인내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신실하신 하나님이 이것을 이루심에 대하여 감사하고, 기뻐하는 찬양을 드립니다. 마리아는 시골뜨기 연약한 여인이었지만 민족과 역사를 가슴에 품고 복음 앞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훌륭합니다. 지금은 대강절 셋째주일입니다. 마리아의 고백같은 신앙과 신학적인 의지로 이 역사를 새롭게 이루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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