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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수 1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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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본 문 : 수 14:6-12   
       

한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충고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생동안 목회에 헌신해서 열심히 목회를 잘 하던 목사님이 병을 얻어서 죽게 되었을 때 생긴 일입니다.

의사로부터 이 병은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 병상에 누워있던 목사님이 하루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고 매일 더해오는 육신의 고통을 강력한 진통제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 목사님이 입이 거칠어지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신앙을 던져버리게 되고 함께 위로를 나누기 위해 예배를 인도하던 선배 목사님에게 저주를 퍼붓고 "나는 일생동안 헛것을 좇아왔으니 당신도 정신차리라"고 하면서 끝내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우선 선배 목사님이 끝까지 당신의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냐고 하면서 하나님이 당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실 때까지 믿음을 잘 지켜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주간에 2001년을 보내면서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간 데마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는 일생을 성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가요 복음 사역자였던 바울목사님과 함께 신앙 생활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바울의 노년에 좀더 편안한 신앙을 찾아서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인 종말의 신앙이 잘 세워져 있는 분들은 성경의 말씀을 잘 분별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되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준비할 줄 알게 됩니다.

데마와 바울이 사역하던 시기는 로마가 기독교를 심하게 탄압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로마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순교의 고통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을 때에는 함께 그림자처럼 함께 하던 데마가 바울이 기력이 쇠할 때쯤이 되자 그를 버리고 좀더 편한 믿음의 자리 이제 부흥이 일어나서 교인들이 계속 불어나는 곳으로 지금으로 말하자면 이미 성장하고 있는 대형 교회를 찾아서 선교 현장을 뒤로하고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믿음을 버리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그는 때를 분별할 줄 몰랐고 자신의 개인적인 종말의 신앙이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더 편하고 쉬운 길을 좇아가다가 신앙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가 그리고 전 세계가 되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성경을 자세히 읽고 있노라면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많이 긴장을 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의 되어져 가는 상황이 마치 노아의 홍수 사건이 기록된 현장과 나무 닮아있고 많은 목사님들이 밤의 거리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신문 사회면을 바라보면서 소돔 고모라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 시와 때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분명히 경고하시기를 기상대에서 천기를 예고하듯이 시대가 되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를 분별하고 항상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등불을 켜는 기름을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올 한해는 이렇게 여러분 개인적으로 그리고 교회가 함께 힘을 모아서 기름을 떨어뜨리지 않고 항상 준비하고 있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 해를 보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죽은 뒤에 저승사자가 데리러왔습니다.
그러면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택하겠느냐고 하면서 두 개의 집을 보여 주었습니다.

"천국"이라고 쓴 집에는 아주 아름다운 꽃과 탐스러운 열매가 가득 있었지만 사람들이 아주 적고 심심해 보이고 재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옥"이라고 쓴 집을 보니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밝고 환하고 사람들도 많은 데다가 신나는 음악도 틀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겉에는 네온사인으로 장식이 되어 있고 안으로 들어가니까 온갖 값비싼 장식이 되어 있어서 너무 좋아보였습니다.
너무 너무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나는 지옥을 갈 것입니다."라고 지옥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옥이라는 곳을 따라와 보니 아까 보았던 그 집과는 달리 모습이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어둡고 침침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는데 아까 본 것처럼 즐겁게 춤추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괴로워서 아우성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저승사자에게 항의했습니다.

"아니 얘기가 틀리지 않습니까?
아까 보았던 집과는 완전히 딴판 아닙니까?"

저승사자가 그 말을 듣고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그것은 모델하우스였지 요즘 누가 모델하우스 믿고 집을 사나?"
건축 부실 공사로 사회가 한참 시끄러울 때 누군가 만들어낸 조크라고 생각합니다.

영어의 모델이라는 단어는 "모범"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모델은 본보기가 아닌 "겉보기"로 이해하고 그렇게 모델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모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직업이 패션모델, CF모델일 것입니다.
이러한 모델은 겉을 보이는 이미지를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 사회는 겉모양을 꾸미기 좋아하고 겉모양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겉모양을 본보기 삼아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물건을 살 때에도 멋있는 수퍼 모델이 입은 모습만 보고 좋아 보여서 샀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각계 각층에서 평소에 자신이 존경하는 어떤 모델을 정하고 그 사람을 닮아가기 위해 애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 본보기를 잘못 골라서 그 사람이 갔던 길을 그대로 좇아서 좋지 않는 길로 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조직 폭력배의 길을 좇아가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폭력배 선배나 보스를 흉내내고 좇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게 되는 종점은 감방뿐입니다.
이 땅에 수많은 정치인들도 좋게 그 마지막을 장식한 사람보다 좋지 않은 결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그들이 좇아가는 모델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모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의 모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직장인의 모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좋은 교회의 모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다운 성도의 모습을 가진 모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생들의 공통적인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평소에 존경하고 그 목회비젼을 배워보고 싶은 모델에 해당하는 선배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스승이 모델의 역할을 다시 찾아야 하고 사회 여러 곳에서 바로 이러한 모델을 간절하게 찾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확실하고 멋진 모델을 찾으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모델로 삼아서 그분을 닮아 가는 신앙을 구축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처음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죄가 들어오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형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면서 우리에게 안겨 주신 선물이 바로 그분을 좇아가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즉 그 분을 닮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 그 가운데 믿음의 한 획을 진하게 그었던 선배들 가운데 가장 자신있게 예수님을 닮았다고 말씀한 모델은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우리 모두가 이렇게 담대하게 많은 사람들 앞에 예수님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라고 인정을 받아야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인정을 받았던 모델을 꼽으라고 하면 노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의인에 속했고 또한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가 칭찬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데로 순종하는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고 그 말씀을 다 준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볼 때에 진노하십니다.
보통 진노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의 결과에 대해서 온 천지를 물바다로 만들어버리실 만큼 화를 내시는 진노입니다.

노아는 바로 그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피할 길로 들어갔다는 것이 노아가 받은 은혜입니다.
죄로부터 구분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숨쉬는 곳인 방주로 들어간 것이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노아의 것이 된 것은 바로 죄로 인한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방주를 세우는 일이었는데 노아는 자신의 모든 정열을 바쳐서 방주를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올해 본보기의 모델로 첫 번째는 노아를 선택했습니다.
세상이 점점 악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가고 있는데 이처럼 악이 극성을 부리는 세상에서 구별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질서를 잡아주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켜 주시는 방주로 들어가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방주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방주는 바로 교회의 모델입니다.
즉 교회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세우게 될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방주의 구조물 하나하나를 세웠듯이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원칙에 충실하면서 세우게 될 것입니다.

언제 어느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더라도 하나님께서 사도 교회 교인들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인정을 받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 올해는 노아의 발자취를 좇아서 갈 것입니다.

두 번째로 모델을 삼으려고 하는 모델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갈렙입니다.
갈렙을 모델로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갈렙이 감당했던 가나안 정복의 역사가 오늘 우리가 맡아야 할 세상 정복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렙이 가나안을 정복했던 그 정복의 비결이 곧 우리가 이 세상 우리 시대를 정복할 수 있는 정복의 비결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갈렙 자체가 성공적인 삶을 산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첫 번째 예배 시간에 만나게 되는 갈렙은 85세의 노인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젊은 시절에 잠깐 반짝 세일하듯이 성공한 것은 진정한 성공으로 착각하고 사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급하게 성공시대에 주인공으로 등장을 했던 인물 가운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좋지 않은 결과를 나타내었던 실패 스토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과 귀한 모범을 보여준 분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처음 시작부터 중년과 장년 노년을 거쳐서 인생의 유종의 미를 거두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성공적인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활주로에서 힘차게 이륙을 해야만 합니다.
또 잘 이륙한 뒤에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비행을 잘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정말 성공적으로 비행을 마치려면 마지막 도착 지점까지 와서 곤주박질해 땅바닥에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착륙까지 안전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비행은 성공한 비행입니다.
처음 시작도 중요하고 진행이 되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의 마무리입니다.
그래서 야구 경기에도 든든한 마무리 투수를 갖고 있는 팀은 좋은 성적을 냅니다.

특별히 수많은 믿음의 거장 가운데 올해 우리가 모델로 삼기 원하는 갈렙은 바로 그의 마지막을 잘 준비하는 모습을 통해서 귀한 교훈을 우리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는 여호수아를 도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맡아서 감당했던 지도자였습니다.
45년간의 야전 지휘관으로 열심히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한 갈렙이 이제는 그 수고를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고 나에게 편안한 안식을 주소서 하고 기도할 나이가 된 것 같은데 그는 그 80대 노인의 몸으로 또다시 도전할 제목을 갖고 자신에게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부터 나와서 1년쯤 되었을 때 가데스바네아라고 하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어 정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한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뽑았습니다.

민 13: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탐지 하게 하되 그 종족의 각 지파 중에서 족장 된 자 한 사람씩 보 내라

그 열두 명 중에 두 사람이 여호수아와 갈렙이있었습니다.
나머지 열 명의 이름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남아 있지 않는 인물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열두 명이 40일 동안 정탐을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보고했습니다.
20세 이상의 장정들만 60만 명이 모인 군중 앞에서 보고를 합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보고를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았더니 키가 3미터가 넘는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다,
우리와 같은 천막을 치고 사는 유목민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두께가 11미터가 넘는 견고한 여리고 성 같은 벽돌 성읍이 있다.
막대기로 소나 양떼를 몰던 우리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칼과 창을 갖고 있는 호전적인 민족이 살고 있다."
는 보고를 합니다.

그 보고를 들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그 땅에 들어가면 다 죽는다.
애굽으로 돌아가자 모세를 갈아치우고 우리가 뽑은 지도자 한 명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

모두 다 이 말에 동조를 합니다.
60만 명 몽땅 그 열 명의 정탐꾼들의 보고에 동조합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작정합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군중 틈에 뛰어들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의지하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외칩니다.

이것이 민수기 14장의 장면입니다.

이것은 이렇게 평범하게 이야기할 내용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지금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60만 명이 각자 돌을 하나씩 들고서 두 사람을 때려죽이려고 합니다.
모두가 순식간에 폭도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을 막지 않으셨다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돌무덤 속에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여호수아과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60만 명은 모두 다 광야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까지는 불과 며칠이면 들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로 그곳은 가나안의 남쪽 경계 지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며칠이면 들어갈 수 있는 그 자리에서 그들은 180도 회전해서 40년 동안 광야를 유랑합니다.

그 후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후에 태어난 세대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정복한 후에 열두 지파가 땅을 나눌 때 갈렙은 선봉장으로 나서서 가장 정복하기 힘든 험한 산지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수14장은 바로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여호수아라는 장군과 갈렙이 85세의 노인이 되어서 주고받는 대화 내용입니다.
이 대화에서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 시대의 정황을 살펴볼 수 있고 또 그 시대적 정황 속에서 갈렙이라는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살았는지 짧은 본문이지만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갈렙의 인생 목표입니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비젼을 인생 목표로 삼고 살았습니다.
8,9 절이 그 삶의 목표였습니다.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 였나이다

이것은 지난 45년 동안 갈렙의 삶의 바탕에 깔려 있었던 말씀입니다.
이것은 그가 40세의 나이에 헤브론 땅을 밟았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약속입니다.

"네 발로 밟는 땅"은 원어를 보면 "네 발로 밟은 땅"이라고 번역을 해도 좋습니다.
"네 발로 밟았던 그 땅은 영원토록 너와 네 자손의 땅이 되리라"
이것이 하나님이 갈렙에게 주셨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갈렙에게 약속하셨던 비젼이었습니다.
지금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하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갈렙은 한 평생을 이 목표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지난 45년 동안 한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고 단 한 번의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 45년 동안 함께 살았던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만 보고 살다가 삭막한 광야에서 비참하게 죽어갔지만 자신은 그 목표를 분명히 하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나이가 85세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불러 가시는 날까지 오직 그 목표만을 위해 살겠다는 것입니다.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에 등장한 인물들의 대부분이 성공의 비결이 인생의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달려가다보니 성공의 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중고등학생은 입시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공부합니다.
직장인들은 직장인들대로 장사하는 분들은 그분들대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단기 목표는 있지만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만한 비젼도 목표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이 잘 먹고 잘 사기 위한 목표는 있지만 인생의 최종적인 확실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드림랜드, 비젼의 땅을 바라보면서 오직 그 목표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인생의 황혼 길에서도 엄청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플로렌스 체드윅이라는 유명한 수영 선수가 있습니다.
영국 해협을 수영해서 건넌 사람인데 1952년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캘리포니아 해안으로부터 35킬로미터 떨어진 카타리나 섬에서 해안까지 수영했습니다.

16시간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면 수영하는 초인적인 힘을 요구하는 일에 도전을 했습니다.
상어 떼가 우글거리는 바다에서 양쪽에 있던 구조선이 상어 떼를 내쫓으면서 1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수영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반 마일을 남겨놓았을 때 짙은 안개가 몰려왔습니다.
앞이 캄캄해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 마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그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도착한 뒤에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아니 왜 포기했습니까?"
그는 변명 같지만 안개만 없었다면 그래서 내가 방향을 분명히 볼 수만 있었다면 반 마일이 아니라 십 마일도 수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개 때문에 목표를 보지 못하는 순간 내 온몸에서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뒤인 9월 4일에 그는 다시 도전을 했습니다.
바닷물은 더 차가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짙은 안개가 끼어서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가이드해 주는 구조선이 방향을 잡아주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거뜬히 16시간 만에 성공을 했습니다.
같은 기자가 물었습니다.
"아니 이번에는 안개가 처음부터 짙게 깔려있었는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

채드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는 목표를 내 마음 속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큰 장애가 오자 힘을 잃었고 이번에는 처음부터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나아갔기 때문에 어떠한 장애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목표를 향해서 달려갈 때 우리를 좌절시키고 실망시키고 낙심시키고 그래서 포기하게 만들려고 하는 인생의 안개가 몰려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속에 깊이 심어놓으신 그 상급을 향해서 그 목표를 향해서 계속 달려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귀한 고백을 했습니다.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 푯대라는 말이 바로 목표입니다.
"푯대를 행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를 향하여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급을 향하여 아무리 인생의 안개가 짙고 장애물이 거세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목표를 향해서 끊임없이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갈렙에게는 바로 그러한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목표를 바라보고 사는 갈렙의 또 하나의 성공비결은 인생에 대한 다른 시각과 자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0-12절에 보면 갈렙이 놀랄만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 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 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 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갈렙의 나이가 몇입니까?
85세입니다.
85세에는 무엇을 하는 나이입니까?
은퇴한 나이입니다.
이제 생을 정돈하고 여생을 차분하게 돌아보아야 할 나이입니다.

85세 노인이 벤쳐기업을 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견고한 성이 우리를 가로막는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넉넉히 감당할 수 있다는 목표와 믿음이 있었기에 이러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입술에 어떠한 말을 하고 사는 가 하는데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항상 힘들다고 "아이구 죽겠다"하면 죽겠다고 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수가 있습니다.

입술에다 항상 불평과 불만만 가득 채우고 욕을 하면서 살면 욕된 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항상 긍정적인 표현만 하면서 삽니다.

대중 가요 가사를 만드는 작사가들의 모임인 "노랫말 연구회"라는 단체에서 글을 발표했는데 재미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일찍 요절하거나 슬픈 운명을 걷는다"는 것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읽겠습니다.

1926년 현해탄에서 연인이었던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동반 투신자살을 한 한국 최초의 여가수 윤심덕은 자신의 죽음을 찬미하듯이 "사의 찬미"라는 노래를 부르고 죽었고. "애수의 소야곡"등 숱한 히트곡을 남긴 남인수는 1962년 "눈감아 드리오리"라는 노래를 남기고 41세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며,
영원불멸의 가수로 지칭되는 이난영은 그녀의 모래 "목포의 눈물"처럼 슬픈 인생을 살다가 가슴앓이 병으로 49세에 숨졌다.

1978년 가을 뇌의 염증으로 인해서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차중락은 "낙엽따라 가버린 사람"을 불렀으며 신장염으로 세상을 떠난 배호는 "마지막 잎새"를 마지막으로 남겼다.

골수암으로 숨진 양미란은 "흑점"이라는 노래를 남겼는데 이는 그의 노래 가사 "태양의 흑점처럼 어두운 내 마음"이라는 가사에서 이미 암의 불길한 징조를 보여 준 것 같다.

1985년 폐결핵으로 숨져간 김정호는 이미 죽음을 예견한 듯 "간다 간다 나는 간다"라는 가사의 "님"이라는 노래를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33세의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다"

이외에도 수많은 가수들의 삶을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글이 보여주듯이 부정적인 사고를 갖고 부정적인 언어를 담고 살면 그 삶은 부정적인 불행한 삶을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결론도 부정적인 마지막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처럼 내 나이 늙었지만 내 앞에 3미터의 거인인 아낙 자손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난공불락의 철옹성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며 힘차게 나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갈렙은 항상 미래 지향적인 고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그는 "쫓아낼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쫓아내 주실 것이다" 하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미래를 볼 줄 아는 시각, 미래를 바라보면서 사는 시각,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믿음의 본질입니다.
믿음의 본질입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과거입니까?
현재입니까?
그것은 미래입니다.
천국을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랍니다.

올 한 해는 교회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것을 바라고 많이 기도할 것입니다.
함께 힘을 모아서 중보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모델로 하며 그분을 좇아가기 위해 힘썼던 성경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 가운데 노아와 갈렙이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한 인물입니다.
그 인물들의 삶을 본받아 하나님의 방주를 하나님의 교회를 반듯하게 세워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위에 주신 표어의 말씀처럼 우리들 앞에 가로막힌 답답한 장애물과 기도 제목들이 모두가 년말 송구영신 예배 시간에 감사의 제목으로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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