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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로 떠나 보내는 한해 / 마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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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제목 : 회개로 떠나 보내는 한해
성구 : 마태복음 4장 17절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회개로 떠나 보내는 한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큰 희망과 꿈과 기도로 맞이했던 2001년도도 이제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해가 지나가는 마지막 날에는 언제나 살아온 365일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시작할 때 가졌던 아름다운 희망과 꿈과 기대가 성취된 것보다는 미완성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는 수많은 상처와 회한과 죄책의 먼지를 청소해야만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또다시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새로운 희망과 꿈과 기대가 자리 잡을수 있도록 회개를 통하여 마음에 대청소를 해야만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돌이켜 보고 회개해야 될 것은 과연 내가 이 한해동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며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 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고 살지 못한 것을 우리는 크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관심사보다 우리 자신의 관심사를 먼저 구하며 살아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첫째 관심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경외하며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일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성호를 찬미해야 될 것입니다. 하루종일 살면서 우리의 가슴 한가운데 하나님의 성호를 흠모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불길이 타고 있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저녁에 잠들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하고 예배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재단에 항상 불이 타고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의 재단에 야웨 우리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감사와 찬양과 존귀와 예배의 불길이 타고 있어야 될것인데 우리는 까마득하게 하나님의 성호를 잊어버리고 살아온 너무나 민망스러운 죄를 짓고 살아 왔습니다.
(엡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榮光)을 찬미(讚美)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의 구원해 주신 그 은혜의 영광을 항상 찬미하는 마음의 재단위에 불길이 꺼지지 말아야 될 것인데 우리 마음에 재단에 찬미의 불길이 꺼졌을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우리는 황금의 신, 권력의 신, 쾌락의 신을 섬기고 그를 따라 간 적이 얼마나 많지 않아요?
프랑스의 애밀졸라는 "나나"라는 소설을 써서 일약 유명한 작가가 되었는데 그 나나라는 소설에 보면은 나나라는 한 여인은 연극 배우였으나 돈을 모으려고 미모를 이용했습니다. 그는 몸매가 아름답고 인물이 탁월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몸매와 인물을 사용해서 매춘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특징은 내일을 믿지 않습니다. 오늘 쾌락으로 살면 그뿐이지 내일이 있을 턱이 없다고 그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위에 그 유혹을 좇아서 많은 갑부들이 몰려오고 저명인사가 오고 군인들이 오고 젊은이들이 와서 그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돈과 지위와 명예를 그 발 앞에 다 던졌습니다. 종국적으로는 한사람, 두사람 패가망신하고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녀 자신도 궁전같은 집에서 암이 들어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을 따라가는 삶을 살면 종국적으로는 파멸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황금의 신, 권력의 신, 쾌락의 신을 섬기고 따라오며 많은 심신에 상처를 입고 살아온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기 우상에 무릎을 꿇고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자기의 속에서 끌어 오르는 욕망에 끌려가서 하나님보다는 먼저 자기라는 우상을 세우고 자기라는 우상에게 절을 한적이 한두번이 아니란 것을 이 해가 지나가는 이 시간에 가슴에 손 얹고 우리는 회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하기를 게을리 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려고 몸부림쳤지 하나님의 성호를 높이려고 애를 쓰지 않았습니다.

(딤후3:1-4)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 며 사나우며 선한 것 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 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정황이 아닐까요?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여 보고 돌이켜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둘째 관심사는 하나님 나라 전파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둘째 아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값주고 사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의의 나라를 회복했었습니다.
(골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주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의의 나라를 우리 속에 복구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보혈 공로를 통하여 성령충만과 성결의 나라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셨습니다.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 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 통하여 우리의 기쁨과 건강의 나라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우리 마음속에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해 주시고 생명의 은총을 넘치도록 채워 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고난 통하여 축복과 형통의 나라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시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주안에서 복되고 형통한 은총을 주님께서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고난 통하여 영생 천국의 나라를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고난을 통하여 이룩하신 천국이 우리의 가슴속에 가정에 사회에 국가에 세계에 임하시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우리가 과연 그리스도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확실히 알고 믿고 소유하고 이를 우리의 이웃에게 전파하며 살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될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보다도 내 인간의 개인적인 욕망의 나라를 세우는데 더 많은 노력과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살아왔지 않은가 우리는 회개해야 될것입니다.

(딤후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사망을 철폐하고 복음으로써 우리에게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주신 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하는데 우리가 전심전력을 기울이며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 번째 관심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하늘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이미 다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뜻대로 살지 말고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기도하며 노력했는지 생각해 봐야 됩니다.

(시139:16) "내 형질(形質)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여러분의 일생이 태어날 때부터 벌써 하나님의 책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기록된 뜻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았는지 그렇지 않으면 내 뜻대로 살았는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고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삶을 살지 않고 내가 내길을 예비하며 하나님이 주신길을 따라가지 않고 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서 살려고 애를 쓰면서 하나님을 저항하고 살아오지 않았는지 우리는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용서와 사랑에 너무 인색한 삶을 살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고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용서의 터전에서 피어난 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용서가 없이는 살수가 없고 사랑의 꽃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정죄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정죄하고, 아내는 남편을 정죄하고, 자식은 부모를, 부모는 자식을, 이웃은 이웃을... 계속 우리는 서로 정죄하고 서로 물고 찢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뉴스 미디어를 통해서 국가 정치에 있어서도 하루도 정죄하는 손가락질이 없는 날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정죄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過失)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 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사람들은 언제나 주머니 둘을 몸에 차고 있어서 앞 주머니에는 다른 사람들의 모든 잘못을 담아 넣고 항상 그를 보고 정죄하고 뒷 주머니에는 자기 잘못을 담아 놓고 자기 잘못은 없다고 숨겨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관대하지 않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마7:1-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 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 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外飾)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 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 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이 글을 읽을때 우리 가슴속에 찡하는 부딪힘이 다가 옵니다. 정말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은 회개하지 아니하고 남의 잘못만 계속 정죄하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의 삶속에 자기의 잘못을 알고 자기가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살아가려면 하나님 앞에서 서로 거룩한 바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5:38-42)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 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정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 오른뺨을 치는 왼빰을 돌려 대야 되며, 송사하여 속옷을 빼앗는데 겉옷을 주고, 오리를 가려는데 십리를 가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합니까?
이러한 내게 사소한 손해가 오더라도 화평을 가지는 것이 우리에게 크게 유익하다고 주님이 정하기 때문에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바보가 되어야 됩니다. 거룩한 바보가 된 남편은 가정에 평화를 가져오고, 거룩한 바보가 된 아내는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지 않습니다. 거룩한 바보가 된 사람은 단체에서 물의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 내가 거룩한 바보가 될지라도 손해를 입더라도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얼마나 좋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용서치 않은 자의 불행을 성경은 마태복음 18장 21절과 35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 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이거 정말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게 범죄한 사람이 와서 잘못했다고 회개하거든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라. 이것은 무한한 용서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용서를 베풀어 주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예를 들어 말하기를 한 임금이 자기 신하를 불러서 "너 빚진 것을 다 청산하라"고 했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을졌습니다. 빚을 청산할수 없다고 하니까 "그러면 이 사람을 잡아서 몸을 팔고, 처자도 종으로 팔아서 빚을 다 변상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무릎을 꿇어 빌며 "주님! 시간만 주면 분골쇄신 하더라도 빚을 갚겠나이다." 왕이 불쌍히 여겨서 이 사람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왕궁에서 나갈 때 의기양양해 나가다가 자기에게 조그마한 금액인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친구를 만났습니다. "야, 빚을 갚아라." "내가 지금 형편이 못되니 빚을 갚을수가 없습니다. 말미를 주십시오." "뭐, 어짜고 어째?" 멱살을 잡고 끌어다가 그 친구를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너무나 괘심해서 임금에게 가서 그 사실을 다 고했어요. 임금이 분노해서 그놈을 당장 끌어들여 끌어들이니까 앞에 꿇어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야, 이놈아! 네가 눈물을 흘리고 애걸하고 간구하기 때문에 내가 일만 달란트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거늘 너는 마땅히 나가서 너의 동료가 백 데나리온 빚진 자가 와서 말미를 달라고 하면 탕감해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이 놈을 당장 잡아서 옥에 집어 놓고 그 빚을 다 청산할 때까지 고생의 떡과 물을 먹게 하라."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도 각각 너희 이웃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제게 인터넷으로 질문해 옵니다. "왜 나는 기도가 안나옵니까? 아무리 해도 기도가 나오지 않고 마음이 답답합니다. 왜 내 마음은 늘 우울하고 슬프고 고통스럽습니까? 왜 다른 사람은 기도하면 육신의 병이 척척 잘 낫는데 나는 병이 잘 낫지 않습니까? 나는 늘 기도해도 생활이 어려움이 다가오고 첩첩이 고난이 다가 옵니까?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그 많은 이유중에 특별한 이유가 용서하지 않은 마음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내가 이웃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감옥에 갇혀 버린 것입니다. 영적인 감옥, 마음의 감옥, 질병의 감옥, 생활의 고난과 시련의 감옥속에 가두어 놓아 버린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눈에 안보이는 감옥에 갇히어서 지금 고통 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하지 않은 마음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마음속에 원한을 다 풀어놓고 이웃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마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용서가 사랑의 대문을 열어 젖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찢어 피흘려 용서 안했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 올 리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실 때 미움의 댐을 헐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파도가 우리 마음속에 넘쳐 왔습니다. 우리도 용서를 통해서 이웃에 대한 사랑의 댐 문을 열어 젖혀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파이낸셜 뉴스 12월 29일에 기록한 것을 보니 월남 전쟁때 미군이 네이팜탄을 마을에 투하하여 마을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 불길 속에서 겁에 질린 한 소녀가 울부짖으며 알몸으로 도망 나오는 모습을 아마 사진으로 여러분 보았을 것입니다. 저도 그 사진을 본 기억이 뚜렷이 납니다. AP통신 한 기자는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쟁의 참화를 생생하게 보여준 사진을 내었기 때문에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이 사진의 소녀는 바로 올해 37살 나는 킴폭 여사입니다. 이 킴폭 여사가 우리 교회를 찾아와서 저와도 장시간 자기의 경험담을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그녀는 세계 평화를 호소하는 UN명예 대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한때는 17번이나 수술을 받으며 미국을 증오하고, 미국 사람을 증오하고, 전쟁을 증오했습니다. 마음속에 미움이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기를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나날이 그 증오로 말미암아 자기 마음이 죽어가고 몸이 시들어 가고 생활에 좌절과 절망이 꽉 들어찼다는 것입니다. 마치 눈에 안보이는 감옥속에 들어가서 옴짝할 수도 없는 그러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 받고 십자가 앞에서 눈물을 흘려서 자기 죄를 자백하고 그리고 미워하는 죄를 다 고백하고 미움을 청산하자 눈에 안보이는 감옥의 창살에서 벗어나서 그때부터 그는 진실한 행복과 사랑이 넘쳐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제게도 한 것을 들었습니다. 그 얼굴에는 광채가 나고 행복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왜? 용서하지 아니할 때 그는 좌절과 절망의 감옥에 들어 있었으나 용서할 때 해방과 자유와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해를 지나면서 미움이란 마음의 앙금을 다 청산하고 용서와 사랑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면서 새해를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너무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인생을 산죄를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의 노예가 되어서 살고 있지 않았습니까? 언제나 삶의 모자라는 것과 어두운 면을 찾아서 강조하며 산 죄가 많습니다. 보세요. 우리가 배가 부르면 얼마나 좋습니까? 배불러서 감사하다고 하면 좋은데 반드시 부정적인 사람은 그 뒤에 부정적인 말을 붙입니다. '배불러 죽겠네' 좋으면 좋아서 할렐루야 하면 좋을텐데 부정적인 사람은 '좋아서 죽겠네' 어떤 사람이 "야~ 저분 굉장히 미인이구나" 그렇게 말하면 부정적인 사람은 "그래 얼굴은 미인인데 몸 스타일은 형편없어" 왜 꼭 몸 스타일을 또 그 뒤에 붙입니까? 어떠한 사람이 "자~ 저 사람은 성공한 사업가다"라고 말하면 옆에 앉아서 "물론 성공한 사업가지 그러나 많은 부정을 했겠지" 꼭 부정적인 생각을 붙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야~ 얼마나 저 사람이 선한 생활을 많이 했는데 그 선하고 착한 행실이 신문에 났더라" "물론 했겠지. 그러나 무슨 꿍꿍이 속이 있겠지"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면에 부정적인 꼬투리를 붙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지 않았어요? 진실로 마음이 밝고 맑고 환하고 긍정적이 되지 못하고 무언지 모르게 언제나 어두운 점을 찾고 모자라는 점을 찾고 못된점을 찾는 그런 마음을 갖고 살아왔지 않은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찌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마음이 부정적이면 그 인격이 모두다 부정적인 인격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더 밝고, 맑고, 환한,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살수 있도록 회계해야 될것입니다.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그랬지만 한해 동안 너무나 소극적인 인생을 살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발전과 향상을 저항하는 마음이 소극적입니다.

여러분 서양문화와 동양문화의 차이점은 적극적인 생각과 소극적인 생각에 있는 것입니다. 서양문화는 "네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데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말합니다. 남에게 나가서 모험적으로 발전적으로 먼저 대접하면 대접이 돌아 올 것이라는 그러한 적극적인 태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문화는 "나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 소극적입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 나아가서 하지말고 너 혼자 조용히 살아라. 소극적인 안정적이고 전통주의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사람은 모험적이고 발전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극적인 사람은 언제나 나 홀로 그리고 전통주의적으로 안전 제일 주의로 보수적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소극적으로 살았지 않았습니까? 소극적인 사람들은 모두다 님비주의입니다. 님비주의는 NOT IN MY BACK-YARD. 우리 뒤뜰에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무슨말이냐? 핵폐기 처리물이라든지, 쓰레기장 소각이라든지, 화장장 건설은 한 동네와 도시를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그것다 우리가 다 느껴요. 그러나 우리 근처는 안된다. 우리 앞마당에는 안된다. 우리 뒷마당에는 안된다. 다른데 가서 하라. 대국적인 면에서 민족적인 면에서 국가적인 면에서 좀 적극적으로 모험적이고 발전적이고 생산적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소극적으로 오그라 들어서 우리에게는 안돼, 우리 쓰레기는 치워야겠지만 우리 뒤뜰은 안돼, 이러한 님비주의 현상이 팽배합니다. 이것이 온 국가와 민족을 소극적인 위치속에 세움으로 국가와 민족의 발전이 저해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좀더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희망을 향해서 모험도 하고, 발전도 하고, 생산적으로 자기를 희생하고 나가서라도 조국과 민족이 잘살수 있는 길이면 협동하는 그런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되겠는데 우리는 너무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지 않았는가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남편이 되었습니까? 긍정적인 아내가 되었습니까? 긍정적인 자식이 되었습니까? 부모가 되었습니까? 우리 가정생활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적극적인 남편이 되어 가정을 이끌고 더 나은 삶을 향해서 모험도 하고 발전하고 계획을 하고 나가는 그런 남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소극적인 남편입니까? 나는 최근에 편지를 받았는데 자기 부인하고 더 살아야 될지 그만 둬야될지 알지 못해서 편지를 한다는... 왜 그러냐고 하니까 직장에서 돌아오면 씻지 않은 그릇이나 설거지 아니한 그릇들이 씽크대에 쌓여 있다는 것입니다. 빨래가 그냥 이구석 저구석에 늘어나고 있고 애들방은 어지럽고... 그러면서 부인은 들어오면 텔레비전 틀어놓고 그 앞에 딱~... 텔레비전 시작해서 저녁에 땡 할 때까지 쳐다본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좀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집안도 좀 깨끗이 하고 생활도 정리하고 몸도 단장을 하고 우리가 좀 창조적으로 인생을 살자고 하면 당신이나 그렇게 살아라. 나는 이로써 만족한다. 현실 안주, 소극주의적인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므로 집에 오기도 싫고 가정에 행복을 추구할 수가 없다. 나는 이 여자와 살아야 됩니까? 안 살아야 됩니까? 그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소극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가정에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개발하고 개혁하고 새로워지는 삶을 향해서 나가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되는데 이렇게 못한 삶을 우리가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네 번째로 우리는 기도하기와 말씀 공부를 게을리 한 것을 회개하고 이해를 보내야 되겠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식물인간이 되고 맙니다. 기도할 수 없으면 주기도문을 반복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기도문을 주셨습니다. 주기도문을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오늘 아침 여기 설교하러 오기 전에 내 사무실에서 주기도문 100번을 하고 왔습니다. 주기도문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얼마나 기름부음을 가져오며 기도의 문을 활짝 열어 주는지 모릅니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우리 과연 이 한해동안 기도를 힘써서 하면서 살아 왔는지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성북성전 김삼희 집사님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시어머니 권유로 한번만 교회에 가봐야겠다고 했으나 그 날로 설교 듣고 예수님 영접하고 남편도 예수 믿게 되었는데 결혼할 때 건강한줄 알고 남편하고 결혼하고 보니 그 남편이 대동맥 판막 협착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서 항상 두려움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병원에서 하는 말이 수술하지 아니하면 2년의 삶을 살수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병원에 입원시켜서 수술하는날 금식하며 병원에서 성도들과 기도했습니다. 아침부터 오후 5시가 넘어도 지혈이 안되어서 수술하는데 무척 애를 먹다가 나중에는 산소가 부족해지고 심장이 잘 안뛰고 피가 모자라서 병원에서 응급으로 방송을 해서 혈액을 공급할 여섯 사람이 나와 달라고 했습니다. 자원한 사람이 방송을 듣고 나와서 그래서 수술은 무사히 마쳤습니다만 계속해서 지혈이 되지 않습니다. 응급실에 갖다 놓아도 피가 자꾸 흘러 지혈이 안되니까 의사 선생님은 희망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이제 의학적으로는 할 수가 없다고... 그 부인과 그 셀원들이 모여서 기도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주님이여 이제는 '수인사대천명'으로 사람이 할 일은 다했으니 하나님께서 간섭하여 달라고 기도하니까 그만 덜컥 지혈이 되버렸습니다. 그래서 살아났어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이제는 건강해 지고 우리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습니다. 기도가 이런 큰 효과를 발생합니다. 사람으로 할수 없을 때 하나님이 와서 할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 읽기를 게을리 한 죄를 회개하고 지나가야 됩니다. 말씀은 영적인 양식입니다.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양식을 먹지 않고 살수 있어요? 영적인 영양실조에 걸려서 저항력을 상실하여 마귀의 공격에 넘어져 수많은 죄악이라는 병에 들립니다. 왜 마귀에게 집니까? 영적으로 영양실조에 걸려서 힘이 없으니까 저항할 수가 없죠.
(신30:9-10)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 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 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여러분! 우리 마음의 방을 청소할 사항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쓰레기와 먼지를 치우는 것이 급선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며 살지 못한 쓰레기 더미를 젖히고 용서와 사랑의 인색한 삶을 살은 쓰레기 더미를 치워야 됩니다. 너무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인생을 산 삶을 회개하고 기도하기와 말씀공부를 게을리 한 이 모든 잘못을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우리 깨끗한 마음의 방을 가지고 다가오는 2002년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이제 진짜 거짓이 없는 희망차고 꿈이 있고 기대가 넘치는 새해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잠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根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에 방을 청소하고 깨끗이 해서 다가오는 새해라는 손님을 마음속에 영접하여 위대한 승리로운 새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묵은해를 보낼때 우리 마음속에 회한이 많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 이루지 못한 꿈도 많고 입은 상처도 많고 아쉬움도 많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회개하고 자복하고 우리의 마음의 방을 청소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쓰레기 더미를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지 않게 도와주시옵시고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고 소지하여 새해라는 아름다운 손님을 맞이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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