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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꿈꾸라 / 창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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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 채계관 목사 (유달교회)
제 목 : 이렇게 꿈꾸라 
본 문 : 창세기 12:1-5


어느 졸업식에나 가보면 교장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 가운데는 이런 말이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 말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학생들에게 항상 도전의식과 꿈을 갖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교장선생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불러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과 도전의식, 그리고 확신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셨던 이 비젼의 말씀이 곧 우리의 비젼을 촉구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개인적인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교회는 교회로서의 공동체적 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부 나름대로의 꿈과 비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뉴 비젼이라는 주제로 수련회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 비젼이 단순히 우리가 뭔가 되고 싶은 것, 장래 희망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부흥'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흥'은 하나님의 뜻가운데서 이뤄지는 것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기를 원하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비젼은 곧 '부흥'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비젼은 곧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흥은 개인적인 꿈이 될 수도 있고, 우리 교회 공동체적 꿈이 될 수도 있고, 우리 청년부나 중고등부의 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여 수년내에 부흥케하옵소서' 이런 구호나 외침으로 우리의 꿈과 비젼이 성취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아는 것이 필요하고, 그리고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 청사진을 보고, 그것을 목표로 삼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꿈이자 우리의 꿈인 부흥은 이뤄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 서부교회 청년들의 비젼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비젼을 향한 도식(diagram of vision)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의 도식. 꿈의 설계도

먼저, 첫단계는 꿈을 주십니다.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꿈이라고 하는 것, 비젼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입니다. "떠나 지시한 땅으로 가라" 곧 꿈이란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꿈의 내용입니다.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얼마나 위대한 꿈입니까? 일개 촌장, 족장일 수 밖에 없는 아브람에게 이런 위대한 꿈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복의 근원이 될지라." 어쩌면 부담스러울 수 있는 그러나 엄청난 위대한 꿈을 주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꿈을 향한 확신을 주십니다.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모든 여건을 내가 조성하겠다. 그러니 너는 염려말고 그 꿈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가라 이런 의미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순종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4절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는 꿈의 실현입니다.

이렇게 다섯단계를 통해 이렇게 꿈꾸라, 이렇게 비젼을 품으라 고 하나님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가지씩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꿈은 무엇인지 발견하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 단계, 하나님이 꿈을 주셔야 하고, 그 꿈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입니다.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이 말씀에는 꿈의 수여자와 수혜자가 나타나 있습니다.
꿈을 주신 분과 꿈을 받는 자가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꿈을 주는 분은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받는 사람은 아브람입니다.
그리고, 꿈이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젼에 대한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꿈은 우리가 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꿈을 우리가 꾼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욕심대로 원대한 꿈을 그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이 아니면 그 꿈은 아무 것도 아니고, 진짜 꿈일 뿐이라는 사실, 백일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모세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모세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킨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몇 년전에 타임지에서 현세계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모세는 이처럼 지금도 지도자로서의 모형을 보여주고 있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위대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 백성을 구원케 해 주십시오.' 하나님앞에 자신의 꿈을 말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출 3장을 보면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꿈을 주십니다. 출 3:10을 보십시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꿈을 모세에게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됩니다.
저는 어려서 많은 장래희망이 있었습니다.
과학자도 되고 싶었고, 대학교수, 선생님, 군인, 사업가, 운동선수, 심지어는 대통령까지.그러나 지금은 뭐가 되어 있습니까? 목사
초등학교 6학년때, 수련회에 가서 기도하면서 울다가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목사가 되게 해 주십시오. 선교사가 되게 해 주십시오." 제가 목사가 된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기 때문에 성취가 된 것 같습니다.
다른 꿈들은 그냥 어린 마음에, 또는 내 욕심에 이루고자 했기 때문에 그냥 흘러간 꿈이었을 뿐 이루어 지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 가지입니다. 한국의 있는 많은 교회들이 성장 최고주의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성장만이 최고다. 무조건 성장하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얼마나 큰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성령운동을 낳았습니다.
무속종교와 연합된 듯한 인상을 주면서 복을 빌어주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성도들도 굿판에서 무당이 굿을 통해 복을 빌어주듯이 교회에서 목사가 복을 빌어주기를 원하는 그런 현상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한 병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마치 목사가 엄청난 치유의 은사가 있는 것처럼 전단지를 뿌려서 광고를 하기까지 합니다. 전단지 내용을 보고 제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이런 식입니다. "두통 치통 관절염 피부병 심장병 암 무좀 성병 만병통치 어떤 병이든지 나을 수 있음" 이런 식으로 쓰여 있던 것 같아요.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웃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전단지를 보고 실제로 성도들이 벌떼처럼 몰려 간다는 거예요. 이런 현실입니다. 그래야 성도들이 좋아하고, 교회에 몰려오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성장 최고주의. 무조건 성장하면 된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잘못된 성령운동은 굉장히 심각하다고 생각됩니다.
심지어는 모대학 기독교학과 교수가 성령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령이란 불교의 보살과 같이 득도한 존재로서 자비와 지혜의 여신"이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인 정현경이란 교수가 이렇게 주장합니다.
제가 이 내용을 보고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떻게 성령 하나님을 불교의 보살과 같이 득도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그 아래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말 우려가 됩니다.
저는 이 교수가 진짜 크리스챤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 기독교의 실정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꾸 무속종교, 도교, 불교와 짬뽕된 이상한 혼합주의 종교로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우선 성장하고 보자. 이런 생각에서 이런 변질된 복음, 복음이라고 붙여서도 안됩니다. 이런 짓거리가 나온 거예요.
잘못된 꿈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우리에게 꿈을 주실까요?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창조하셨느냐?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배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곧 우리 삶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허드슨 테일러라고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분이 있습니다. 이 허드슨 테일러는 15살때에 예배를 통해 중국선교의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명한 영국의 설교가인 찰스 스펄전은 15살에 예배를 드리다가 위대한 설교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칼빈도 20대 초반에 예배를 통해서 복음의 회복을 꿈꿨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배는 우리에게 꿈을 줍니다.
예배는 꿈을 주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배시간때 보면 조는 사람이 있어요. 지금도 졸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분명 하나님이 꿈을 주시고 계실 것입니다. 예배시간뒤에 그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꿈을 주셨는지 발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 예배는 우리가 초라한 모습으로 왔지만 하나님께서 영광을 주시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아주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말씀을 통해 꿈을 주시고, 그 꿈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소중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예배 중심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개인의 삶이 살아납니다.
우리의 모든 초점을 예배에 맞추십시오.
특히 우리 청년들은 더욱 예배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배에 모든 삶의 초점을 맞추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꿈을 주실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꿈도 주시고, 개인을 향한 꿈도 주시고.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예배를 회복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는 청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꿈을 주시는가?

두 번째는 기도할 때 꿈을 주십니다.
저는 하나님앞에 기도를 하면, 처음 기도제목과 기도가 끝나고 났을 때의 기도제목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몸이 아픕니다. 그래서 하나님 몸이 아픕니다. 하소연을 합니다. 몸이 아파서 못하겠다는 것이겠죠? 못하겠습니다. 계속 기도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변화 됩니까?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다시 하지요. 이렇게 되더라는 거예요. 회복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참 묘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힘을 주시고, 꿈을 주시더라는 겁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눅22:42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처음에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서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어떻게 변화가 됩니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 뜻을 말합니다. 다분히 인간적인 기도제목이 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런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비젼을 발견하기를 원한다면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발견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회복시키십시다.

그리고 쉬지말고 함께 열심히 기도하십시다.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 서부교회 청년들을 향한 하나님의 비젼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꿈의 도식 두 번째 단계는 꿈의 내용을 보여 주십니다.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세가지 비젼을 주셨습니다.
먼저 큰 민족을 이루겠다.

두 번째는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

세 번째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여러분, 이 꿈들이 이뤄졌습니까? 어떠했습니까?
다 이루어 졌습니다.
아브람은 실제적인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 그리고 요셉을 통해서 대민족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출애굽의 역사, 그리고 가나안 땅에 정착, 하나님의 약속이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지금은 영적 후손인 우리들에게 까지 그 축복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는 약속
어떻게 이뤄집니까?
창 17: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됩니다. 열국의 아비로 이름이 바뀝니다. 이름이 창대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부를 때면 항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렇게 부르지 않습니까?

또 세 번째 약속, 복의 근원이 된다는 약속은 어떻습니까?
마 1:1을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조상입니다. 이만하면 복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최대의 복이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바로 아브라함이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아브람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아주 구체적인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꿈을 주셨습니다.
누구에게나 꿈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한 사람들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꿈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순종하지 않았거나 둘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은 무엇일까요? 가장 원초적인 꿈은 부흥의 꿈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 이것이 부흥의 꿈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저는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이 구절을 읽으면서, 끓어오르는 비젼을 발견했습니다.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온 몸을 전율케하는 비젼.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
여러분이 이 구절을 읽으면서도 무심코 넘어갔다면, 여러분은 아직 하나님의 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왜 읽습니까?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읽습니까?  기쁨을 찾으려고 읽습니까? 복받으려고 읽습니까? 왜 읽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 아닙니까?

성경이 완성되지 않던 시절에는 하나님의 뜻을 꿈과 환상을 통해 보여주기도 하시고, 선지자를 통해 직접 계시해 주셨습니다.그러나 지금 성경이 완성된 이 시대에는 물론 그런 방법을 통해 주시기도 하시지만, 가장 기본적인 계시의 전달 수단은 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그냥 무심코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란 곧 우리에게 꿈을 주시는 것입니다. 현재 안위하는 삶을 살도록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앞으로는 이렇게 살아라. 희망을 주시지 않습니까?
성경을 읽다보면 우리를 전율케하는 꿈을 주시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항상 같은 구절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는 이 구절로, 어떤 사람에게는 저 구절로 비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롬 1:17 말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을 읽다가 종교개혁의 큰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젊었을 때 그렇게 방탕하게 살았던 성 어거스틴도 롬13:12-14 말씀을 읽다가 하나님의 비젼을 발견하고 그 방탕한 생활을 그만두고 거룩한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냥 무심코 읽는 것이 아니라 한구절 한구절 읽으면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번 수련회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평범하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능력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비젼이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해서 그런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듣는 중에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읽는 중에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기도 하십시오. 기도하는 중에 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좋은 직장 얻어서, 이쁜 마누라 얻어서, 또는 멋진 남편과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꿈입니까? 왜 좀더 멀리 못합니까? 왜 좀더 원대한 꿈을 꾸지 못합니까?
여러분중에 허드슨 테일러와 같은 위대한 선교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여러분중에 칼빈과 같은 위대한 종교개혁가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쩌면 여러분에게 이런 비젼을 이미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예배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그 비젼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비젼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단계는 꿈에 대한 확신입니다.
3절말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꿈을 향해 전진하도록 모든 여건을 만들어 주겠다. 이런 말씀 아닙니까? 모세를 부르실 때 장면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위대한 출애굽의 꿈을 주셨을 때, 모세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출애굽기 4장을 펴보세요.
출 4:1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도망자 주제에 무슨 말이냐,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확신하지 않고 있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면 꿈 때문에 흥분됨이 있습니다.
사람이 흥분하면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합니다. 왜? 너무 허황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웃습니다. 미쳤다고 까지 합니다. 하나님이 꿈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흥분되었다가, 감격했다가,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냉담함 때문에 그 꿈은 시들해져 버립니다. 모세는 이런 점들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두가지 이적을 보여주십니다.
지팡이를 뱀으로 만드시고, 손을 문둥병이 걸리게 만드십니다. 이 이적을 보여주면 믿을 것이다. 그래도 믿지 않으면 하수를 떠다가 육지에 뿌리라 그러면 그것이 피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확신을 가지지 못합니다. "저는 말도 잘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그를 통해 말하면 될 것 아니냐. 확신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출4:19에서는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일꾼의 꿈의 성취를 위해 여건을 다 만들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또 4:31을 보십시오.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모세는 백성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며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백성의 반응을 보십시오. "백성이 믿으며"
하나님은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우리의 모든 여건을 충족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똑똑하고 잘나서 지도자로 만들고 출애굽의 꿈을 주신 것입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꿈을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오, 꿈을 실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미쳤다 할지라도 확신을 가지고 그 꿈을 위해 나아갔기 때문에 그 꿈이 실현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꿈을 향해 매진하도록 모든 여건을 조성하시고,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꿈을 결국 실현하게 만드시는 분, 바로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무엇입니까?
이 미국 땅을 주셨습니까?
아니면 북한땅을 주셨습니까? 아니면 중국을 주셨습니까? 일본을 주셨습니까? 세계를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장하시고 분명 여러분의 꿈을 실현하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처음 자동차를 만들 때의 일입니다.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물어보았답니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자동차를 만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랬답니다. "미친놈, 길도 없는데."  그런데 헨리 포드는 "금세기가 가기 전에 사람들은 내가 만든 차를 타고 다닐 것이다."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어떻습니까? 모든 사람이 차를 타고 다니잖아요? 하나님앞에 이런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욕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꿈을 붙들고 나가면 꿈이 실현됩니다. 비행기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라이트형제. 그들 형제가 뭔가를 뚝딱거리니까, 아버지가 그랬답니다. "미친놈들" 그런데 어머니는 오히려 영감있는 사람이었고, 격려를 해주었답니다. "너희들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비행기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이 이야기만 봐도 여자들의 능력은 참 위대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래요. 아이들을 잘 격려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집사람은 아이들을 자주 격려하는 모습을 보거든요.
우리 아들 최고다. 우리 딸 최고다 하면서 격려를 해줍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힘을 받고 더 열심히 뭔가를 해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격려하고 계십니다. 꿈을 실현하도록. 그러니 확신을 가지십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네 번째 단계는 순종의 단계입니다.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순종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꿈을 주셨다 할지라도 순종하지 않으면 그것은 필요없는 것입니다. 순종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순종을 요구하셨습니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희생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대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꿈을 꿉니다. 그러나 그 꿈을 성취하지는 못합니다. 그 이유는 꿈에 대한 댓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꿈만 꾸고 그 꿈에 대해서 값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뜬구름잡는 사람, 몽상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꿈의 성취는 대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취가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구원의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가를 지불합니다.

히 11:24,25을 보십시오.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대가를 치룬 것 아닙니까?
공주의 아들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다. 고난받았습니다.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꿈을 꾸고 대가를 지불하고, 그래서 승리한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15살때 중국 선교의 꿈을 받고 준비했습니다. 중국을 연구했습니다. 음식도 중국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맨바닥에서 자는 훈련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위대한 중국선교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스펄전은 15살에 위대한 설교자의 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최고의 명문장가로 알려진 존번연의 천로역정을 백번이나 읽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수사법을 연구합니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설교가가 됩니다. 위대한 꿈의 성취자들에게는 항상 꿈위에 희생, 대가, 준비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대가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헌신하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사람들은 선교의 비젼이 있다. 선교사가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뭘 준비했는가? 묻습니다. '이제 준비하겠다.'고 말합니다.
중국 선교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한자도 잘 읽지도 쓰지도 못합니다. 일본 선교하겠다고 말합니다. 일본 관련 서적을 한번도 읽어본 적도 없습니다. 일본 문화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이 무슨 선교를 하겠습니까? 하나님앞에 꿈을 가졌다 한다면, 비젼을 가졌다 한다면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열심히 말씀을 통해 꿈을 받고 대가를 치루기 위한 훈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유학을 가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 3학년때 신학교 교수들중에 이정석 교수란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설교하시면서 제게 꿈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표현을 빌리 '거룩한 야망을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면서 그 꿈을 키워갔고, 영어공부도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래도 토플점수가 좀 부족해서 이왕 시작한 것 더 열심히 하자는 의미로 교회를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이 떨어저서 살아야 했습니다. 희생이 뒤따랐던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모든 일이 잘 진행되어서 이제 다음주면 출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학원을 다니면서 보니까 저처럼 30대 나이에 있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은 모두 20대 중반이나 후반의 나이에 있는 젊은이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다 꿈을 꾸고 있습니다. 유학가서 자기 분야에서는 일인자가 되겠다. 이런 꿈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느낀 점은 정말 우리 한국의 미래는 밝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본문 창 1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하나님의 꿈은 한사람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에는 동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목사님이 앞에서 아무리 부흥을 외쳐도 꿈을 외쳐도 함께 동행할 사람이 없으면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형제 자매들 모든 청년들이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같이 시작해야 됩니다. 혼자가지고는 안됩니다. 온 교회가 공동체적 의식을 가지고 함께 하나님이 주신 꿈 부흥을 위해서 나간다면 분명히 그 꿈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한자성어 중에 孤掌難鳴(고장난명)이란 말이 있습니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서로 협력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함께'라는 의식을 가지십시오. 힘들고 어렵더라도 희생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같은 배를 탔다는 심정으로 동역자 의식을 가지십시오.
그러할 때 분명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에게 큰 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당시 아브람의 나이가 몇살이었습니까? 75세 였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이 장수했다고 하더라도 75세는 그리 적은 나이는 아니였습니다. 그 나이면 족장으로서 평생을 편히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뭐가 부족하다고 떠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비젼, 온 몸을 전율케하는 하나님의 꿈, 그것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요엘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늙은이도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죽을 날만 바라보며, 자식들한테 호강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축복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주의 일 하면서 주님주신 은혜 받으며,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저는 언제 큰 은혜를 받냐면, 우리 나이 드신 권사님들, 나이드신 할머니들이 제 손을 잡고 격려해 주실 때 큰 은혜를 받습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한번은 한 권사님이 그때까지만 해도 성함도 잘모르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저의 손을 붙잡으시더니 뭔가를 쥐어 주세요. 보니까 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꾸깃꾸깃해가지고 그냥 손에 쥐어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손자한테 주듯이 그러세요. 그런데 알고보니까 나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담임목사님한테도 그러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중에 돌아가셨는데, 우리 목사님이 얼마나 눈물 흘리시던지. 저도 그때 울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먹어가는 나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쌓인 경륜과 경험으로 훨씬 위대한 일을 해 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 모습을 통해서 우리 젊은 사람들은 또 다른 힘을 얻게 됩니다.
여호수아 14장에 보면 갈렙이라고 하는 사람이 여호수아 앞에 나옵니다. 이 때 그의 나이는 85세 였습니다. 그런데 갈렙이 뭐라고 합니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래서 갈렙은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이 헤브론은 산악지대입니다. 그리고 장사중에 장사였던 아낙자손들이 점령하고 있는 곳입니다. 정복하기가 아주 어려운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갈렙은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탐꾼으로 보내졌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12명의 정탐꾼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이길 수 있다고 확신을 가졌고, 결국 두사람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됩니다. 여호수아는 앞에서 이끌고 갈렙은 그뒤에 서고. 영웅이었습니다. 이쯤되면 좋은 땅을 기업으로 받고자 할 수도 있었고, 그럴만한 권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쉬운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나이와는 상관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축복은 연령순이 아닙니다. 우리 서부교회는 젊은이나 나이드신 분이나 할 것 없이 주님이 주신 꿈 붙들고 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자주 교회 부흥을 외칩니다. 부흥이 안된다고 목회자를 탓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앉아서 놀고 먹으면서 부흥을 외쳐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꿈 부흥의 꿈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도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대가에는 물질적인 것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 대가에는 전도를 열심히 하는 것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 대가에는 정말 열심히 교회를 위해 봉사와 수고를 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 대가에는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삶의 정황이 다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방법도 다 다릅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주여,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 것입니까? 이시간 다함께 기도하실 때에 주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주여 나에게 꿈을 부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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