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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침체에서 벗어납시다 / 왕상 19: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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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열왕기상 19:9-14 
제 목 : 침체에서 벗어납시다
설 교 : 백장흠 목사 (독립문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벗어났습니다. 마침내 그 수치스러운 IMF 체제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영어 단어를 1997년 12월부터 알 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IMF 라는 단어입니다. 국제 통화기금이라는 말인데, 그 자금을 긴급으로 얻어 신청 한지 3년 8개월만에 완전히 졸업한 것입니다. 즉 지난 2001년 8월 23일자로 1억 4천만 달러를 상환함으로 IMF에 대한 빚 195억 달러를 완전히 갚았기 때문입니다.

IMF체제는 제2의 국치라는 탄식 속에서 우리는 빈부의 격차의 확대로 인하여 중산층이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외 종속성의 심화 성장, 동력의 상실 등 부작용을 가져왔고, 대기업들이 넘어지는 일들이 속출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도 무섭다는 IMF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경제 침체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잘 나갈 때에는 경제 성장이 연간 10%가 되었었는데 2% 대로 대폭 낮추어 잡게 되었습니다. IMF에 대 한 채무는 갚았으나 그 빚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넘겨진 상태입니다. 국민들의 조세 부담과 연금, 보험료 등 공적부담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민들은 지난번 IMF 때보 다 더 어렵다고 삶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우리는 어서 경제적인 침체 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침체입니다.

본문을 보게 되면 엘리 야가 심한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엘리야는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큰 역사를 이룬 사람입니다. 그는 단신으로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850명과 갈멜산 대결에서 승리를 가져 온 사람입니다. 그는 3년 반 동안 가물던 때에 무릎사이에 고개를 넣고 일곱번 기도하여 비가 내리게 한 사람입니다. 신앙의 대용사였습니다. 그런데 로뎀 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침체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즉 열왕기상 19:~에 와서 왕후가 내일 이맘 때에 죽고 살지 못할 네 생명으로 하여금 저 사람들 같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엘리야는 남방 브엘세바의 어느 산골 로뎀나무 아래에 엎드려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생명을 취하소서.주여! 내 생명을 취하소서”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육간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보여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라도 이런 침체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피곤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은 실패하였을 때보다 성공한 이후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성공하였다고 할 때에 태만하지 않아야 하고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영적 침체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1)믿음이 약하여 집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의 존하려 합니다. 현실에 민감합니다.

2) 절망감을 갖습니다. 나는 “열조보다 낫지 못하나이다”(왕상 19:4) 라고 탄식하였습니다. 그야말로 힘 과 기운이 다 빠져 버린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기쁨이나 행복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삶 전반에 걸쳐서 항상 피곤함을 느끼며 그 변화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삶과 하는 일에 대하여 아무런 재미가 없습니다. 삶에 재 미가 없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모든 조건을 다 갖추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노동도 재미가 있으면 오락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락이라고 하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차라리 노동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재미가 없다면 영적으로 침체된 상태인 것입니다. 재미가 없는 정도가 아닙니다. 영적인 침체가 오면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엘리야가 죽여 줍소서 라고 한 것은 최대의 절망 상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3) 의욕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하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가고 싶은데도 없습니다. 말도 하기 싫다고 합니다. 먹고 싶은 것도 없어집니다. 입맛도 없어집니다. 의욕이 상실되는 것 이것이 침체입니다. 기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교회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먹고 싶은게 많은 사람은 건강합니다. 살이 쪄서 적게 먹어야 하겠다 라고 다짐하여도 자꾸 먹고 싶다는 이는 알고 보면 건강한 사람입니다. 침체가 오면 먹고 싶지도 아니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분은 교회에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서 못 견딥니다. 나 좀 시켜 주세요. 이런 분은 영적으로 건강한 분입니다.

4)영적인 침체 즉 탈진의 초기 증세로 보여지는 것이 있습니다. 유머가 없어집니다. 평소에 잘 웃던 이가 웃지 아니하면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좋다고 웃는데 자기 자신은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이는 관심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세요. 젊은이가 잘 웃던가요, 노인들이 잘 웃던가요? 젊은이는 나무가지에서 잎새가 떨어져도 웃습니다. 말 한 마디하고 웃습니다. 어린아이는 더 잘 웃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은 분들은 웃음이 적습니다. 왜 이것이 노인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분은 항상 기뻐합니다. 좋아합니다.

5)영적인 침체에 빠지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열정이 식어져서 사명을 회피합니다. 엘리야에게는 아직도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회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헌신의 마음이 점점 없어집니다.

6)경건 생활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엘리야가 기도하였다는 말이 없습니다. 경건 생활이 약해지면 세상과 타협하게 됩니다. 죄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그러기에 범죄 할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진 분은 없으신지요? 내가 지금 어떤 형편이던지 힘을 잃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에 매력을 상실하지는 않았습니까? 낙심한 분은 안 계십니까? 오늘 새 힘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침체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첫째,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먼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교만이 문제였습니다. 10절을 보세요. 자기 혼자만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열심히 특심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만 남았거늘 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약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공로를 내세우려고 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세의 위대함이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대로 “그 온유함이 지면에 승하더라”(민 12:3)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세도 백성들이 원망하면서 물을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반석에게 명하라 하였습니다. 말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갖고 있는 지팡이를 갖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하고 반석을 쳤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명령하는 것이 쉽습니까? 치는 것이 쉽습니까? 말만 하면 되는 것을 왜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칩니까? 여기에 교만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교만하다가 생긴 것이 침체였습니다.

어떤 유명한 실업가가 보스턴에 있는 유명한 필립TM 브록스 목사님의 사무실로 찾 아와서 아주 흥분된 얼굴로 신경질적으로 내뱉었습니다. 목사님 아침 신문을 보셨습니까? 나는 이제 망했습니다. 저의 이름이 났으니 어떻게 하면 됩니까? 묻습니다. 목사님은 그 사람을 진정시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려 보십시오. 나는 그 신문을 읽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그 신문을 보지 않거든요. 그 신문을 보는 사람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리고 본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제1면 과 만화정도만 읽습니다. 그 이상을 읽는 사람은 경제란이나 스포츠란을 읽을 것이고, 몇 사람은 여성란을 읽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이름을 읽은 사람은 1%도 안 됩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기사에 대하여 전혀 흥미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자기들이 읽은 것에 대하여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기사를 믿지 아니할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다 알 것이니 챙피해서 어떻게 하느냐? 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관심을 갖고 그 일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 생각하여 보세요. 교만할 이유가 없습니다. 잘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잘한 것이니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세요. 그렇게 해야 하고 혹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나를 더 훈련시키는 것이로구나. 더 기다려 보자. 그러면서 겸손히 인내해야 합니다.

한 건물의 입구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그분의 얼굴에는 주름이 많고 옷차림도 허름했습니다. 너무나 고생을 찌들게 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 꽃 몇 송이를 팔아서 생활이 될 것 같지 아니 합니다. 그래도 얼굴 표정이 밝고 주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건물 주인이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시기에 표정이 날마다 밝아 보입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을 합니다. “제 걱정을 트럭에 담으면 아마 100대 분은 될 것입니다.” 건물 주인이 묻기를 “그런 데 어떻게 즐겁게 사십니까?” “그 비결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 어려 운 일이 생기면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셨던 사흘을 생각하면서 사흘을 기다립니다. 사흘 이후에 죽음이 부활로 바뀌었거든요.” 이런 분들에게는 영적인 침체가 올 리 가 없습니다.


둘째,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4세기 교계의 큰 지도자였던 성 어거스틴이 완숙한 신앙의 경지에 들어가기 전의 일 입니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자기가 죽어서 천국의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천국의 문지기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진실한 크리스챤입니다 라고 대답하 였습니다. 그러자 문지기는 단호하게 당신은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당신의 머리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사상과 생각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그가 누구인지 판단합니다. 그러더랍니다. 깜짝 놀란 그는 꿈에서 깨어난 후 나는 크리스챤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리라. 다짐하여 성 어거스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무슨 생각을 하였습니까? 나만 남았습니다. 아닙니다. 아직도 신앙의 지조를 지킨 사람이 7천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단독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예수께서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십 니다.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인간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닙니다. 동료가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려고 하면 언제든지 동지는 있게 마련입니다. 다 적이 아닙니다. 다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성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악하다 악한 사람도 있지만 선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폐쇄증에서 자기 개방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 인가요? 건강이란 몸만 건강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건강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온전히 건강한 사람은,

1.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말을 해도 물이 반 컵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물이 반 컵 밖에 없네요 그럽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물이 반 컵이나 남았습니다 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소리를 들으면서 새가 운다 라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새가 노래 한다고 합니다. 같은 소리를 듣고도 운다고 하는 사람은 삶이 우는 삶이라는 말입니다. 노래한다는 것은 즐겁게 산다는 말입니다.

2. 건강한 사람은 개인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 성실합니다. 믿음직스럽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좋습니다. 밥을 먹어도 맛있게 먹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입맛 없이 먹고 말하는 것마다 질리게 합니다. 매력 없다. 이것은 병든 인간입니다.

3. 분명한 목적을 갖고 사는 이들입니다. 목적이 있기에 활기가 있습니다. 강한 능력이 있고 삶 자체가 최선을 다하고 정성껏 살아갑니다.

4. 자신감이 넘칩니다. 소극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왜 그런가요?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다윗은 만만이요 사울은 천천이라 한 것은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자신감이 넘쳐 있었던 것을 보고 한 소리였습니다. 신앙에서 오는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바꾸어야 할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에서 나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때가 언제인가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때입니다. 어떤 때 뉴스에서 자녀들이 부모 의 책망을 듣고 자살하려고 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책망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사랑에 대한 의심 때문입니다.

엄격하고 아들에 대하여 적은 실수를 해도 매사에 책망하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들은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이 집 아들이 아닌 것 같다 친자식이 아닌데 나를 주어 다가 길렀나 보다 그러는 중에 아들이 병으로 누워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직장에 서 퇴근한 아버지가 병상에 붙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잠을 자지 아니하고 아들의 머 리맡에 앉아서 아들을 지켜보며 머리에 물수건으로 닦아줍니다. 신음 할 때에는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눈물을 흘리면서 내려다 보더라는 것입니다. 그제야 아들이 아 버지의 큰사랑을 깨닫고 병이 나았고 좋은 아들이 되었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낙심하고 지친 인자하신 손길로 엘리야를 만져 주시는 사랑입 니다. 심히 피곤하고 지친 그에게 떡을 먹여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아멘) 이 사랑을 깨달아야 영적 침체에서 벗어납니다.


셋째, 영적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사람이 오죽하면 죽고 싶다고 하였겠습니까? 극도의 영적인 침체에 빠져 있었습니 다. 그때 여기 섰으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임재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는 임마누엘 하신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 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능력이 나타남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힘으로 능으로 못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느니라 하였습니다. 구원은 말이 아니라 능력이 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여야 침체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기도하 지 않고 응답 받은 체험이 있어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능력이 임합니다. 지진이 있는 은혜입니다. 불같은 은혜 즉, 성령의 능력과 능력을 체험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임재 하셨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은혜를 체험하여야 합니다. 바로 세미한 음성입니다. 성경은 각기 다른 음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음성이요, 둘째는 사단의 소리요, 그리고 세 번째는 자기 정욕의 음성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소리나 세상 소식에는 민감하게 잘 듣는데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사단의 소리를 듣고 미혹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잊게 하고 세속적으로 살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하겠습니다. 엘리야에게 들려주신 세미한 음성은 무엇일까요?

1. 자리를 지켜라입니다. 9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섰느냐” 라고 묻습니 다. 사람이 자기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서야 할 데가 어디이며 앉아야 할 장소가  어디인지 알아야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위하여 사명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아야 합니다. 13절에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설 장소에 서야 합니다. 할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설자리에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2.할 일이 있다고 알려주는 음성이었습니다. 15절 “네 길을 돌이키라.” 낙심한 그 자리에서 돌이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도망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을 망각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힘이 있었던 삼손이 사사의 사명을 받고도 자기가 무엇 하는 사람인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살리고 민족을 구원하여야 할 사명을 잊어버리고 들릴라라는 여인과 함께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눈이 빠지고 비참하게 블레셋 사람에게 붙잡혀 다곤 신전에서 맷돌을 돌리다가 그의 생애를 마치는 장면이 사사기 16:1-27절에 나옵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낙망하고 죽으려 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임을 알려 주는 음성이었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일어섰습니다. 19절을 보면 거기서 떠나 사 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납니다. 엘리야는 새 힘을 얻었습니다.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협을 받습니까? 고독하십니까?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겸손히 자기 자신을 반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분을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무엇보다 영적인 깊은 은혜를 체험합시다. 주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명의 길로 능력 있게 걸어가는 승리로운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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