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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 롬 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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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 정필도 목사 (수영로교회)
제 목 :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본 문 : 로마서  1 0 : 9~13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주 어릴 때는 벌거벗겨 놓아도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잘 놉니다. 그러나 아이가 돐을 맞고 일년 이년쯤 지나면 언제부터인가 옷을 벗겨놓으면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아이가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그 아이가 성장했다는 증거입니다.

누구나 이 세상을 살다보면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일이 잘 풀려 보란듯이 성공한 반면에, 자신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실패했을 때 자존심이 몹시 상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실패에는 작은 실패가 있고 큰 실패가 있습니다. 또 돌이킬 수 있는 실패가 있고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한 실패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특별히 잘나고 제 아무리 똑똑해도 전혀 실패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람도 언젠가는 실패할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해서는 안 되는 결정적인 실패 다시 말해서 돌이킬 수 없는 실패만 하지 않았다면 결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동네에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두 가정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가정에는 딸만 하나씩 있었습니다. 자연히 두 아이는 어려서부터 친구가 되어 매우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는 공부를 몹시 잘하여 일등을 놓치지 않은 반면에 다른 한 아이는 공부를 별로 잘 하지 못했습니다. 자연히 학교성적 얘기만 나오면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와 그 부모는 늘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두 아이가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던 아이는 당연히 일류대학을 지망했고, 그렇지 못했던 아이는 그 밑에 대학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둘 다 대학 입시에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공부를 별로 잘 하지 않았던 아이는 기대했던 것이 별로 크지 않아서 그런지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잘했던 그 아이는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합격할 줄 알고 큰 기대를 걸었는데 그만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보니 가족이나 본인으로서 보통 실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극한 수치심이 이 아이로 하여금 죽음을 택하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아이를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목숨까지 버릴 만큼 큰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그만한 실력이면 다음 해에 들어가도 될 것을 왜 이런 못난 짓을 해야 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람이 이런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평소에 작은 실패를 통해 부끄러움도 당해보고 또 다시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는 새로운 경험을 자주 해보는 것도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성공만 하고 실패를 모르고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져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게 되고 성품이 모나게 됩니다. 그러나 평소에 작은 실수를  자주 경험하다 보면 이를 통해 겸손을 배우고 인격이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 중에 사업의 실패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더구나 부도가 나서 피해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부끄러워하는지, 특히 교회에 장로님들이 이런 경우를 당하면 더 힘들어 하십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장로가 바르게 살지 못해 매를 맞는다고 생각할테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 일로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은 아닌가”....

사업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처럼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이 다 있습니다. 사업의 실패는 작은 실패일 뿐 결코 큰 실패가 아닙니다.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사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산으로 도피하거나, 부도가 났다고 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그러나 죽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습니다. 다시 회복할 기회가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 번 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여 기어코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을 꼽으라면 아브라함 링컨을 듭니다. 그러나 이렇게 존경받는 링컨 대통령도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이 되어 출세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22세 때 첫 번째 사업에 실패했습니다. 23세 때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했으나 실패했습니다. 24세 때 또다시 사업을 벌렸으나 실패했습니다. 34세 때 지방의원선거에 출마했으나 보기 좋게 낙선했습니다. 38세 때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습니다. 43세 때 재출마했으나 떨어졌습니다. 다시 46세 때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47세 때 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1860년 그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것입니다. 그때 그의 나이 51세였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 링컨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므로 위대한 꿈을 이루었습니다. 
인생은 경주입니다.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마라톤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현재 성공했다고 해도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실패했어도 실패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어제까지 성공한 사람도 하루아침에 실패자가 될 수 있으며, 어제까지 실패했던 사람도 어느 날 재기에 성공하여 예전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경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성공과 실패는 적어도 그 사람의 일생을 마칠 때가 되어야 알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를 돌이켜 보면 당대에는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사후 몇 십년 혹은 몇 백년 후에 재평가되어 성공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패했다고 해도 절대로 절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하면서 죄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고 사는 사람 정말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남의 것을 도적질을 하여 잘 사는 사람도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밤낮 노름에 빠져 사는 사람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가끔씩 TV 뉴스에서 주부 도박단이 경찰의 단속에 걸려 일망타진되는 장면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신의 얼굴이 화면에 나올까봐 옷으로 가리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으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또 창녀로 자신의 몸을 팔아 먹고사는 사람들도 정말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도 도무지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뻔뻔한 사람을 가리켜 좬창녀의 낯을 가졌다좭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부당한 방법으로 목적을 이룬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한때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부끄러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보니 전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뇌물로 구속되는 정치인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문제로 TV에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같이 부끄러워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치가 돈 안 들고는 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보니, 정당 사무실을 유지하는데만 몇 천 만원씩든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큰 부자가 아니고서는 검은 돈이든 흰 돈이든 가리지 않고 다 받게 된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구속되어도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재수 없어 걸렸다고 항변하며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끄러움 중에 가장 큰 부끄러움은? 


1.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라고 말씀하시면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23을 보면 좬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저 지나가는 말씀으로 하신 것이 아닙니다.
겉을 볼 때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고 목사 노릇 잘하고, 집사 노릇 권사 노릇 장로 노릇 잘 한 것 같고, 주의 일을 잘 한 것 같아도 막상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말씀을 듣고 망신 당할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2. 죄사함 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날이 있습니다. 그때 두 가지 책이 각 사람들 앞에 놓여질 것입니다. 하나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생명책이고, 다른 하나는 각 사람들의 모든 행실 즉 무슨 말을 했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 모든 순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기록된 행위책입니다. 사람들은 이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12:22이하를 보면,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사람을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고 고쳐주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이 사람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빈정거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의 망령된 생각을 아시고 좬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좭고 꾸중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떤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심문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는 많이 하되 꼭 필요한 말 외에는 많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2:15을 보면 좬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11,13절을 보면 좬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좭, 좬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아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될 것입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본문 9-1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좬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좭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참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살던 사람이 죄에서 돌이키고 악을 행하던 사람이 악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에스겔 18:21-23을 보면 좬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좭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과 자신만이 아는 죄가 있습니다. 드러나면 부끄러움을 당할  숨겨진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에서 돌이켜 바르게 사는 사람은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 한 분이 과거에 조폭의 두목이었습니다. 어느 날 대구의 한 교회의 부흥강사로 집회를 인도하고 나오는데 어떤 여자가 달려오더니 “목사님, 나를 모르세요?”하고 반가워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이 여자가 자신을 소개하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자신이 아주 오래 전에 자주 다녔던 기생집 마담이었다고 합니다. 이 여자는 예의도 없이 목사님을 붙잡고 외상술값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성도들 앞에서 이 무슨 망신입니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목사님은 그후로 강단에 서면 먼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고 합니다.

죄에서 돌이켜 바르게 살고 참회개를 한 사람은 과거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를 기억도 하지 아니하신다고 성경에 말씀하셨으므로 이 말씀을 믿고 그 죄로부터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의 양편에 두 강도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 둘은 똑같이 예수님을 욕했습니다((마 27:44). 그러나 나중에 우편강도는 돌이겼습니다. 누가복음 23:39-43을 보면 좬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 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형을 언도 받을 정도로 큰 죄인인 그가 잘못을 뉘우치고 돌이켜서 주님을 부르자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워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영광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수치를 당할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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