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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살리러 오신 예수 / 요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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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 : 요한복음3:17
◎ 일 시 : 2002년 12월 25일
◎ 제 목 : 살리러 오신 예수

경북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신 김성화 라는 분이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머리를 깎고 도를 닦으러 절로 들어갑니다.
많이 배우시고 강직한 선생님 출신이라 불교계의 안 좋은 관행을 바로 잡고, 개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불교계 안에 내분으로 인하여 이분이 교도소에 갇히게 됩니다.

복역 중에 교도서 안에서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대출해서 읽기 시작합니다. 스님이시기 때문에 주로 불경을 읽었는데, 어느날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주는 교도소 경비원이 자신이 신청하지 않은 신약성경을 넣어 주더라는 겁니다.

경비원은 불경은 다 대출을 해 가고 한 권도 없기에 심심할 것 같아 성경을 가져왔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고 있는데 한번 읽어보시지요?”라고 말하였답니다.
심심하다고 저 기독교 책을 보면 부처님을 배신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나무아비 타불만 수 천번 외우며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래도 옆에 있는 기독교 책에는 도대체 무슨 내용이 있을까? 궁금해서 읽어보기 시작했답니다.

그는 성경을 읽는 중에 누가복음에 나오는 나인성의 어느 과부가 남편을 잃고 아들하나에게 모든 소망을 걸고 살아왔는데 그 아들이 죽어, 과부는 통곡을 하며 아들의 시체를 관에 넣고 성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는데, 마침 예수님께서는 길을 지나가시다가 이일을 목격하시고는, 청년의 관을 멈추게 하시고,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시자.  죽었던 청년이 그 자리에서 일어난 내용을 읽으면서. 스님은 전율을 느끼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똑같은 내용이 불경 안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경에 보면 인도 구시라 성에 시다림이란 한가한 숲 속을 석가모니와 제자들이 함께 걷고 있었는데 한 젊은 과부가 통곡을 하며 울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석가모니가 사유를 물은즉 과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습니다. 이때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고을에 가서 한번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의 쌀을 한줌 얻어다가 죽을 끓여 먹이면 살아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젊은 과부는 기뻐서 뛰어 갔습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모든 집을 다 돌아 다녔지만 젊은 과부는 빈손으로 석가모니 앞에 섰습니다. "부처님 하루종일 돌아 다녀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그런 집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왔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석가모니는 “자매여! 생자(生子) 필멸(必滅)이라. 사람이 나면 반드시 죽는 것 인연 따라 일어나서 인연 따라 없어지는 것이니 너무 슬퍼 할 것이 없느니라”고 말하고 그 과부를 보냈다는 내용입니다.

죽은 자를 보자마자 살리신 예수님과 죽음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석가모니와의 한계를 그는 발견합니다.
불교는 돌고 도는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요 살리는 종교인 것을 발견하고 그는 지금 목사님이 되어 생명의 종교인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 님의 오신 목적이 죽은 자를 살리려 오심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 땅에 오신 예수 님은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셨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혹자는 예수 님께서 생명을 살리는 분이시고 살리려는 목적으로 오셨다면 다 살려야지 왜 몇 명만 살렸는가?  우연히 살아난 것이 아닌가? 어쩌다 보니 살아났고, 다른 사람은 목 살리는 것이 아닌가? 나인성 과부와 같이 아들 죽어 탄식하는 어머니가 어디 한 두 사람이었는가? 왜 그 많은 사람 중에 고작 세 명인가?(회당장 이이로의 딸, 나사로, 나인성 고부의 아들)라고 질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예수 님께서 세 명을 살리시는 일을 보면, 이런 질문이 불필요함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세 명의 죽은 자를 살리셨다는 것은, 그 분이 사람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의 명령으로 살아났습니다. 어찌 죽은 자가, 들을 수 있습니까? 아무리 청각이 마지막까지 살아 있다 하지만 숨이 끊어지면 청각도 끊어집니다. 아무리 불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중환자 실에 가보면 의식이 없는 환자도 기도해 주면 눈동자가 움직인다든지, 눈에 눈물이 고이는 현상을 볼 수 있지만, 죽은 자에게는 기도해도, 무슨 소리를 해도 아무런 현상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은 "소녀야 일어나라" "나사로야 무덤에서 나오너라" "청년아 일어나라" 명령하시니 죽은 자가 예수 님의 명령앞에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듣고 일어나는 것과 같이 일어납니다.

부처의 가르침과 같이 "생자필멸"이라고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 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은 죽음 저 넘어도 당신의 능력이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할 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않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예수 님은 다시 오시면 산 자뿐 아니라 죽은 자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 님의 행위는 "나는 사람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단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님께서 오신 목적 즉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분명히 "그로 말미암아" 즉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예수 님은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살리는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부처도 죽음 앞에 생자필멸(生子必滅)이라는 말로 사람을 위로했지만, 예수는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생자영생(生子永生)의 능력으로 영원한 소망이 되십니다.
성탄절은 생자필멸이라는 인간의 숙명 앞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생자영생을 선포하신 최대의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 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통해 이 진리를 다시 한번 확고하게 해 주셨으니, 성탄절, 부활절은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축제일이요. 명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줄 믿습니다. 이 믿음에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있을 수 없으며, 앞으로도 절대로 흔들릴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이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바로 2000년 전 오늘 예수 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어린이에게도, 청소년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좋은 날입니다.

외칩시다. "독생자 보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Happy birth day dear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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