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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계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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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 광양대광교회 신정 목사
제 목 :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본 문 : 요한계시록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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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주중에 돌을 맞이하는 아이의 감사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목사로서 가장 기쁘고 보람있는 일 중의 하나가 어린 아이를 위해 축복 기도 드릴 때 입니다. 정말 눈 처럼 뽀 얀 피부에 제 얼굴이 비칠 만큼 거울처럼 맑디 맑은 아이들의 눈동자를 볼 때 마다 "이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어떤 것일까"라는 설레임을 가져봅니다.

돌을 맞는 아이의 부모는 더욱 더 설레이는 마음이 들겠지요? 그럴 때 마다 저는 이 땅에 태어난 생명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돌을 맞이하는 아이의 미래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목사가 될지 아니면 사기꾼이 될 지, 대통령이 될지 아니면 거렁뱅이가 될지.....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앞으로 만들어져 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이 제 큰 아이 나리의 11번째 맞게 되는 생일 날입니다.
첫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이제 나도 아빠가 된다는 그 설레임은 정말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건만 지난 11년 동안 얼마나 멋진 아빠였는가라는 생각을 곰곰히 해 보며 그 때의 그 감격으로 아이에게 잘 해주지 못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빠의 사랑을 듬뿍 느낄 만큼 아이와 따뜻하게 대화 나눈 시간보다는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볼 때가 더 많았고, 제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만큼 아이에게 갚지 못했다는 안쓰러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어린시절 저의 남매는 생일을 맞을 때 마다 어머니께 교육 받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낳느라고 얼마나 큰 수고를 했는 줄 아니? 생일은 자기가 축하를 받고 자기가 선물을 받는 날이 아니라 낳아 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는 날이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교육받은 저와 제 동생은 생일이면 정말 그래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생일을 맞으면 온 정성을 다해 어머니께 작은 감사의 선물을 드리곤 했죠. 돈이 없어 뭘 살 수는 없었지만 우리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집에서 굴러 다니는 볼펜 한자루라도 구겨진 포장지에 싸서 어머니께 드리는곤 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값진 것은 아니었고, 어머니께 쓸모 없는 것들 이었지만 그런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생일을 맞이하는 제 딸 아이 나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 부모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가장 값진 선물일 것이라는 생각에 여러분도 동감하시죠?

이번 돌아오는 금요일은 우리 교회가 창립예배를 드린지 꼭 십년 째 되는 생일입니다. 오늘이 바로 창립기념 주일입니다. 생일을 맞으며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 처럼 오늘 우리는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열살이 되는 우리교회는 그동안 어떤 모습으로 자랐습니까? 또 앞으로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합니까?

저는 작년 가을 교회에 부임해서 지금까지 계속 이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드렸습니다. 십년동안 성장하여 오늘 이 모습으로 자라난 대광교회에 무슨 뜻이 있어서 이 부족한 종을 보내셨을까?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빌라델비아와 같은 교회를 만들어 갈 것을 하나님께 서원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빌라델비아를 우리 교회의 모델로 삼은 첫째 이유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라는 이름은 "형제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를 건립한 아탈루스는 그의 형인 유메네스가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왕이 되었던 자인데 왕이 되자 형인 유메네스를 생각하며 "형제의 사랑"이라는 이름의 도시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죽었다던 형이 후에 헬라로부터 살아 돌아오자 왕위를 사임하고, 형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당시 모든 부하들이 그에게 자기 형을 죽이고 왕위를 그냥 지키라고 권했을 때 그는 이를 강력하게 거부하며 형에게 왕위를 넘겨 주었다는 겁니다.

세상의 명예와 욕심이 사로잡혀서 물고 뜯고 다투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삶이 만연했던 시대였습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부모고, 자식이고, 남편이고, 아내고, 형제고, 친구의 우정이나 의리 따위는 헌신짝 처럼 버려지는 것이 인간들이 걸어온 역사에 남겨진 흔적들인데 아탈루스의 형제 사랑은 대단한 것이었고 그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가 바로 빌라델비아였습니다.

아탈루스의 사랑이 없었다면 빌라델비아는 온통 피바다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서 계시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요한 사도는 입을 벌려 말씀을 증거할 때 마다 사랑을 외쳤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이며, 또 예수님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가르침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한1서 같은 서신을 보십시오. 사랑이라는 단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전하고 있지요.

예수님의 제자 중 제일 맏형 노릇을 했던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베드로전서 4:8절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는 이 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요? 저주까지 하며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자기의 추한 모습을 덮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그가 어찌 주님 앞에 다시 설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실망하고 있는 베드로에게 먼저 찾아오셨잖아요.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 잡고 있을 때 찾아오신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며 모든 허물을 덮어주셨음을 베드로는 체험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 되고 있는 말씀이 바로 이겁니다.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그 뒤에 저 원수같은 놈만 빼고....이런 문구가 없어요. 모든 것을 사랑하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리석게 살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지혜롭게 살기를 원합니까? 지혜롭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 줄 아십니까?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는 잠언서 10장 12절에 보면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잠 17:9절에는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여러분 어떤 것이 지혜로운 삶이랍니까? 사랑으로 덮어주는 삶이라잖아요. 미가 선지자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사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항하는 것이 아니냐." 사랑하며 겸손히 행하는 것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랍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빌라델피아 교회가 칭찬 받는 교회된 것은 다른데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예요.

그들이 다른 교회들 보다 물질이 많아서 하나님께 더 많은 것을 드렸답니까? 능력과 달란트가 많아서 일할 일군들이 넘쳐났답니까? 교인들이 숫자가 다른 교회들 보다 더 많았답니까? 그게 아니예요. 8절 말씀 보세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그들에게는 큰 능력도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계시록에 나오는 다른 교회들 보다 적은 능력밖에 없었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내 말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했던 교회였습니다. 10절 말씀에서도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셨듯이 참고 인내하며 사랑하라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켰기에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셨다는 놀라운 선포입니다.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다가오는 원수를 이길 수 없습니다. 시험을 때를 넘길 수 없습니다. 보세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결과가 무엇인가를요. 그 결과는 9절에서 나와 있습니다. "끝까지 사랑으로 참고 견디면 그들을 괴롭히던 원수들이 도리어 그 발 앞에 엎드리게 될 것이며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겠다" 아멘. 아멘입니다. 이럴 때 여러분 아멘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와야 하는 겁니다.

시험이 다가오고 원수들이 괴롭힐 때 우리는 끝까지 사랑으로 참고 인내하며 사랑으로 덮어주라는 것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그게 시험을 이기며 원수를 우리 발 앞에 무릎 꿇게 하는 비결이랍니다. 맞서서 싸우고 똑 같은 방법으로 물고 뜯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덮어 주는 것이 오늘 빌라델비아가 칭찬 받게 된 이유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 중에서 꾸중이 없이 칭찬만 받은 교회는 2장 8절에 나오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 뿐인데 서머나 교회의 칭찬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끈한 칭찬이라기 보다는 좀 동정어린 칭찬이예요. 2장 9절 보세요.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그리고 권면한 말이 뭔가 하면 충성이죠.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물론 충성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라델비아교회는 서머나 교회와는 질적으로 다른 칭찬을 받고 있어요. 그 상급도 얼마나 더 멋진지 몰라요. 3장 8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열린 문을 누가 두셨냐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누구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2절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 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이 위에 기록하리라."
얼마나 멋집니까? 이런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겠답니다.

제가 워낙 좀 털털해서 뭘 잘 잃어버리고 다닙니다. 그래서 저랑 같이 사는 사람에게서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제가 자주 실수 하는 것 중에 차에 열쇠를 꽂아 놓고 내리는 게 있어요. 전에 타던 차는 잠금장치가 창문 옆에 달려 있어서 박스 묶는 굵은 노란 끈 같은 것을 창문 사이에 넣어서 그 고리를 이렇게 잡아 당겨서 차 문을 열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타는 차는 그런 고리가 창문 옆에 없어요. 그래서 제 기술로는 열쇠없이는 문을 못열죠.

언젠가 아이들하고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사러 갔다가 물건을 다 사고 차 있는 곳에 왔는데 열쇠가 없는거예요. 창넘어 차 안을 보니 그냥 꽂혀 있더라구요. 난감하죠.

쇼핑센터도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어 가던 저녁 늦은 시간이어서 열쇠 집들도 다 문을 닫았고.... 자동차 밧데리 가게도 문을 닫았더라구요. 야 이 일을 어떻게 하냐? 고민하는데 마침 그 쇼핑센터 앞에 큰 주차장이 있는데 그 관리소로 찾아갔죠.

"제 차 문이 잠겼는데 열쇠가 안에 있거든요. 혹시 차 문을 열 수 있는 곳 연락처를 아시면 좀 구할 수 있을까요? " 그랬더니 거기 주차를 관리 하던 분이 "제가 한번 가보죠" 그러면서 저를 따라서 차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 분이 와서 차에 손을 딱 대더니 정말 1초도 안 걸리더라구요. 철커덕 하고 문이 열리는겁니다. 저와 제 아내 입이 그냥 떡 벌어졌어요. 야! 저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자동차 터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듣고는 그냥 가더라구요. 수고비도 받지 않고.....

내가 열어보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안열리는 걸 어쩝니까? 그런데 열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자가 오니 1초도 안걸려요.

여러분들 앞에 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 봐도 열리지 않는 문이 있지요? 여러분들 앞에 막혀 있는 문이 뭡니까? 그게 건강의 문제인자도 있어요. 물질의 문제인 자도 있어요. 직장 문제 일수도 있고요, 그 막힌 문이 남편 인자도 있습니다. 시어머니일 수도 있어요. 자녀들이 그 막힌 문인 가정도 있습니다. 아무리 온갖 방법으로 쥐어 흔들어도 우리 힘으로는 열 수 없는 문 말입니다. 그 문의 열쇠는 주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그분께서 그 닫혔던 문 을 열어 주신답니다. 우리는 열 수 없던 그 문을 말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말씀을 끝까지 잘 지켜서 칭찬받는 우리 교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들 중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광양대광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사랑하십시오. 사랑을 나누십시오.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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