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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 바울의 인생 결산 / 딤후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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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딤후 4:6-8
제목 : 사도 바울의 인생 결산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삼거리교회

저는 어릴 때 불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할 때까지 8촌 이내에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지금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 예수를 영접했지만 말이다. 그러니 어릴 때는 불교 문화에 젖어 있었어요.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사람이 악하게 살면 저렇게 소로 태어나는 거야! 좀더 악하게 살면 뱀으로 태어난다! 그러니 착하게 살아야 해!' 이거 윤회설이죠? 얼마나 어리석은 사상인가?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신다. 인생은 단회적이라고. 단 한번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직선적인 삶이죠. 두 번 다시 어린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는 청년 시절이 되풀이되지 않아요. 특히 죽음은 연습이라는 게 없다. 한번 태어났다 죽으면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연습이 아니다. 나의 모든 인생이 실제 상황인 것이다. 오늘 하루하루의 모든 생활이 실제 상황인 거예요.
그러기에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인 손양원 목사님은 "오늘을 마지막 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오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면 이제 이 세상에서의 삶은 미련 없이 접어야 해요.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다. 인생은 단 한번 사는 것이기에 그분은 언제나 "오늘을 마지막 같이" 그렇게 여기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산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단회적인 인생을 아주 최선을 다해 살다가 이제 성공적으로 인생을 결산하고 있는 한 사도가 나온다. 바울이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7-8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의 결산인가? 아주 떳떳하게 디모데 앞에서 고백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아주 당당하게, 부끄러움이 없이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인생 회고는 오늘 한해를 접어 가는 우리에게, 단 한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되어진다. 우리도 바울 같이 인생을 결산하고, 한해를 결산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뿌듯하겠는가? 사도 바울은 세 가지로 자기 인생을 결산하고 있다.

1.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그랬다.

이 세상은 한 마디로 말해서 전쟁터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해서 싸우고, 종교와 종교간에 싸우고, 인종과 인종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정치적 싸움, 경제적 싸움, 문화적 싸움, 군사적 싸움 등등 하루하루가 전쟁 그 자체이다.
오늘 이 시대의 가장 긴밀한 전쟁은 정보의 전쟁이다. 그리고 세계 경제를 독점하기 위한 경제 전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누가 더 얇고 가볍고 다양한 기능에다 우수한 성능을 가진 휴대폰을 만드느냐? 전쟁이다. 오늘날에는 무엇인가 신소재, 신제품을 만들어 내지 아니하면 살아남기 힘든 경제상황이다. 때문에 이것을 경제전쟁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싸움들로 인해 오늘도 이 세상이 얼마나 살벌한 전쟁터가 되고 있는가?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의 사도 바울은 전혀 다른 차원의 싸움을 말하고 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꼭 생각하고 넘어가야 한다.

①먼저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
"선한 싸움"에서의 '싸움'은 헬라어로 '아고나'란 말인데, 이는 격투기 선수들이 싸우던 것에 빗댄 표현이다. 또 어떤 이들은 전쟁터에서 적군을 상대하는 싸움에 빗댄 표현이라고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싸움이든지 간에 그것은 생명을 거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이기지 않으면 자신은 죽어야 하는 절대 위기의 싸움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결국 바울 자신에게 주어진 그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는 생명까지도 걸어야 했던 그런 십자가의 길이었다는 것을 회고하는 말인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그 순간부터 사도 바울, 그 사명을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생명을 걸고 싸웠다. 이 복음을 전하는 그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가? 여러 번 옥에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태장을 맞았고, 한 번 돌로 맞았고 등등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는가? 한 마디로 바울의 인생 여정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그 인생이 그렇게 험난한 인생이었지만, 사도 바울 뭐라고 고백했는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그야말로 복음을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했어요. 순교를 각오하고 살았어요.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 그렇게 고백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6절). '관제'란 제물 위에 술을 부어서 드리는 제사를 의미한다. 자기를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로 묘사하고 있어요. 그 제물 위에 술을 부어 버리듯이, 그냥 양동이에다 자기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담아서 하나님의 제단에 확 부어 버리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 다시 말해서 오늘 이대로 복음을 전하다 죽어도 나는 좋다는 그런 마음이에요. 그런 마음, 그런 생각으로 바울은 하루하루를 살았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②나아가 바울은 가치 있는 것을 위한 싸움을 싸웠다.
"선한 싸움" 할 때의 '선한'은 헬라어로 '칼론'이라는 말인데, 이는 "가치 있는", "덕스러운", "멋진"이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의 싸움은 쓸데없는 싸움이 아니었어요. 덕스럽지 못한 싸움, 자기 이익과 욕심을 위한 그런 종류의 싸움이 아니었어요. 그는 가치 있는 싸움을 싸웠다. 정말로 목숨을 걸어도 아깝지 않는, 목숨을 버려도 될 만큼의 가치 있는 것을 위한 싸움이었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이 만난 그 예수님, 그분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이었어요. 한 마디로 예수님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님만 더 알고자 한다(빌3장)고 고백할 정도로, 그에겐 그렇게 소중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다. 그러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웠어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게 그렇게 좋았어요.
그래서 바울은 지금 고백하고 있다. 나는 오늘날까지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싸웠다. 그것을 위해 오늘 이 순간까지 나는 멋지게 싸워왔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인생 결산인가?
제가 부산 엄궁교회에서 주일학교 초등부를 맡고 있을 때 어느 날 알지도 못하는 청년 하나를 교사로 봉사하게 하라고 목사님 말씀하셨다. 이름은 정○○이었다. 연세대 2학년을 다니다 휴학하고 내려왔단다. 그래서 임시교사로 임명해서 봉사하게 했다. 그러다가 한 3개월 지났을까? 어느 주일날 이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그랬더니 지난 밤 토요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단다.
그 뒤에 들은 이야기다. 이 학생이 백혈병이었어요. 부모가 쉬쉬! 했는데도 결국은 이 청년이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되자 바로 학교 휴학하고 내려왔어요. 부모를 딱 앞에 두고 하는 말, "저도 다 압니다. 제가 백혈병이라는 것을. 이제 저의 남은 인생이 3개월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지금까지 공부하느라 주를 위해 한 일이 없습니다. 이미 사형선고가 내려졌으니 치료고 뭐고 필요 없습니다. 그냥 남은 인생을 주를 위해 마음껏 봉사하다가 가게 해주세요." 그렇게 해서 비밀리에 목사님과 의논, 교사로 일하게 된 것이다. 그걸 저에게까지 비밀로 했어요. 죽던 날 밤 부모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 가는데 그 얼굴이 그렇게 밝았다고 한다.
그 청년,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주를 위해 온전히 쏟아 부었어요. 사형선고를 받은 그 몸, 감당하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러나 아프다는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제가 전혀 모를 정도로. 그리고는 그냥 3개월을 혼신의 힘을 다해 충성했어요. 선한 싸움을 싸웠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이렇게 떳떳한 모습으로, 당당한 모습으로 인생 결산을, 한해의 결산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오늘 이대로 복음을 전하다 죽어도 나는 좋다는 이런 자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선한 싸움을 싸우자.

2.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그랬다.

인생은 하나의 경주로 비유될 수 있다. 우리는 그 나름대로의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바울은 자신의 삶을 마라톤 경주자로 그렇게 비유하고 있다.

①"나의 달려갈 길", 이는 정해진 길, 예정된 길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사명의 길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주어진 길, 이건 누가 대신할 수 없다. 자기가 그 길을 달려가야 되요. 누가 대신 뛰어줄 수 없어요.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사도 바울에게 허락된 정해진 코스인 것이다.
진정 우리 모두는 달려갈 길이 다르다. 우리 각자는 다른 사명을 가졌다. 다른 직분을 가졌다. 다른 환경, 다른 장소에서 내가 달려갈 길을 달리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고유한 길이 있어요. "나의 달려갈 길"이란 바로 그걸 말하는 것이다.
먼저 내가 달려가야 할 길의 길이가 서로 다르다. 어떤 이는 100m 달리기처럼 아주 단거리 코스를 달린다. 아주 짧은 단거리 코스를 뛰고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먼저 가더라고요. 그럴 때 참 아쉽다. 하나님께서 조금 더 살려 두신다면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사람인데, 그만 일찍 부름을 받더라고요. 단거리를 뛰느냐, 장거리 마라톤을 뛰느냐,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바울처럼 마라톤 코스를 달리는 사람이 있어요. 장장 7,80년을 달려요. 아주 긴 시간이지요. 일찍 가고 싶어도 하나님은 살려 두신다. 은퇴하고서도 살려 두신다. 그냥 오래도록 사용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달려갈 길의 길이가 서로 달라요. 하나님이 내게 정해주신 그 시간만큼 주를 위해 봉사하다가 오라 하시면 가는 것이다.
둘째로 내가 달려가야 할 길의 환경도 다르다. 어떤 이는 다른 사람보다 좀 수월한 길을 달린다. 좀 평탄한 길을 달리는 것 같아요. 별 어려움 없이 주를 위해 평안히 봉사한다. 그런데 또 어떤 이는 보면 아주 장애물 경주를 하는 사람 같은 그런 인생을 살아간다. 아주 험난한 길을 달려가요. 야곱과 같이 아주 험악한 인생 길을 달리는 사람이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을 보면 아주 짐을 많이 지고 달려요. 마치 군인들이 2,30㎏ 무게의 군장을 지고 달려가듯이, 그렇게 많은 짐,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달려요. 그만큼 더 중한 사명을 가지고 달리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내가 달려가야 될 길의 환경도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없어요. 하나님께서 내가 달려가야 할 길을 정해주시는 것이다. 이게 바로 사도 바울의 믿음이었어요. 그래서 말한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자기가 달려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자신이 달려가야 할 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봉사하는 것임을 그는 깨달았다. 그는 그걸 발견했기에 그 길을 달려감에 있어서 목숨을 내놓고 달려갔고, 옆에서 온갖 시기와 질투가 있었지만 큰 기쁨을 가지고 달려나갔던 것이다. 그냥 자기의 인생 전부를 거기에 걸고 그렇게 달려나갔어요.
여러분, 내가 달려야 할 길을 발견한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결산하기 위해서는 꼭 내가 달려야 할 그 길을 먼저 알아야 되잖아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코스, 그걸 내가 발견하고 깨달았을 때 우리는 거기에 내 생애를 걸고 주를 위해서 충성할 수가 있다. '이 길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길이야!' 하고 확신할 때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한 것이다. 나이 3,40이 되었는데도 내가 달려가야 할 그 길을 모르면 곤란하다. 나의 인생 전부를 투자해서 뛰어가야 할 그 길, 그 사명을 찾으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 역시 인생을 성공적으로 결산할 수 있는 것이다.

②나아가 사도 바울은 자기가 달려가야 할 길을 끝까지 달렸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그랬어요. 여기서 '마쳤다'는 것은 경주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다는 의미이다. 마라톤을 하는 분들에게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중 중반 이상이 되면 아무 생각 없습니다. 그냥 완주하는 것, 끝까지 달리는 것 그것만 생각됩니다.'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중간에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자꾸만 나는데, 그걸 뿌리치고 끝까지 달리는 것이다. 특히 그분들에게 있어서 가장 불명예를 뭐라고 생각하는 줄 아는가? 중간에 포기하는 것, 그걸 가장 불명예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도 바울 시대에 마라톤 경주를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은 그거 사람 취급도 못 받아요. 가장 불명예스러운 사람으로 낙인 찍혀요. 바울은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말한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정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그야말로 끝까지 자기가 달려야 할 그 길을 다 달렸던 것이다.
마찬가지다. 경기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달리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한해를 달려오면서 중도에 포기한 분 없는가? 인생 여정을 달려오면서 중간에 포기한 분 없는가? 여러분, 다시 시작하십시오. 내가 달려가야 할 길을 끝까지 달려나가자.
선지자 요나가 어떠했는가? 그는 중도에서 탈락 직전에 있었던 인생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이 달려가야 할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갔었다. 그야말로 불명예로 인생 결산을 할 뻔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도 제2의 기회를 주셨다.
베드로가 어떠했는가? 그는 정말 중간 탈락할 뻔했던 인생이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여러 번 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해 사명을 버리고 고기 잡으러 고향 디베랴 바닷가로 갔었다. 그러나 주님은 거기까지 찾아가사 그를 붙잡으셨다. 베드로를 포기하시지 않았다. 그럴 때 베드로는 다시 힘을 내어 당당하게 인생 결산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나가는 경주자가 되었다.
여러분,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 인생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다시 시작하세요. 우리 끝까지 달려나가자. 면류관을 받는 그날까지 말이다.

3. "믿음을 지켰으니" 그랬다.

운동장에서 달리는 선수가 정해진 규율을 무시하고 달린다면 그건 어리석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1등을 했더라도 상이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경주를 하면서 믿음 없이 달려나간다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면류관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바울은 끝까지 달리되 믿음을 지켰어요.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유언서다. 실제로 바울은 로마 시에서 3㎞ 떨어진 오스티안 거리라는 곳에서 도끼로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받고 하나님의 품으로 가게 된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부터 이렇게 순교하기까지 길고 긴 시간을 달려오면서도 바울은 믿음을 끝까지 지켰어요. 이게 중요한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요, 보화 중의 보화이며, 가장 든든한 재산이다. 그래서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라고 했다. 이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잃는 것과 같다. 영생도, 구원도, 천국도, 하늘 기업도 다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날까지 적어도 믿음만큼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 길을 달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리는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1.4후퇴 때 있었던 실화 이야기다. 어느 어머니가 갓난아기를 업고 임진강을 건너 남하하려 하였다. 아기를 업고 강을 건너는데 비단옷, 돈, 폐물, 그것은 젖지 않게 하기 위하여 보따리를 머리 위로 높이 쳐들고 건넜다. 아주 물을 먹어가면서 애를 써서 겨우 건넜다. 건너고 나니 비단옷, 돈, 폐물은 잘 지켰는데, 업고 있던 갓난아기는 못 지켰어요. 업혀 있던 아기가 물 속에 잠겨 죽어 가는 것은 몰랐던 것이다.
여러분, 무엇부터 먼저 지켜야 했는가? 업고 있던 아기부터 제대로 하고 건넜어야 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꼭 지켜야 할 것은 지키지 못하고 쓸데없는 것은 지켰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여러분, 내가 제일 잘 달리고도 믿음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건 영원한 실패인 것이다. 내가 교회를 위해 온갖 일을 다했고 남보다 10배, 20배 충성했어도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인 것이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성공적인 인생 결산을 했다고 할 수 있는가? 믿음을 끝까지 지킨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 인생을 성공적으로 결산한 사람인 것이다. 여러분, 주를 위해 봉사하다가 중간에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중간에 믿음을 까먹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 자기 힘을 잘 비축하여 마지막 피치를 올려 승리하듯이, 우리 역시 인생 길을 달려나가는 동안 이 믿음을 잘 지키십시오. 살아 행동하는 믿음, 진리 위에 서 있는 믿음, 구원을 확신하는 믿음, 이 믿음 위에서 끝까지 충성하여 한해를 잘 결산하고, 인생을 잘 결산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자, 선한 싸움을 잘 싸웠고, 나의 달려갈 길을 잘 달렸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더니 무엇이 예비되어 있는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네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8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이 날이 기대되지 않는가? 이 날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인생의 결산, 한해의 결산을 잘 이루어 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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