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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잊고 사는 지혜 / 빌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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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 3:12-16
제목 : 잊고 사는 지혜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삼거리교회

사람의 기억력에는 개인적 차이가 있다. 멀리서 찾지 말고 우리 가까운 데서만 찾아봐도 기억력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어떤 분들은 전화번호를 수백 개나 외운다. 그런 분에게는 전화번호부가 따로 필요 없어요. 그냥 '아무개 성도 전화번호' 하면 딱 튀어나온다. 또 어떤 분들은 집을 잘 찾아요. 저도 제법 잘 찾는 편이지만, 그런 분은 단 한번 갔던 집도 그대로 찾아낸다.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기억력이라면 괜찮은 편이라고 평가받는다. 대략 1시간 40분 정도 부흥 사경회에서 들은 설교를 그날 저녁 집으로 와서는 그대로 글로 옮겨 적어놓을 수 있다. 녹음 테이프 하고 비교해 보면 그냥 90%는 정확하다. 제가 도시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있을 때 주일날 450명 정도 되는 성도들이 예배를 마치고 나간다. 그러면 로비에서 딱 한번 인사하고는 그날 저녁 출석 체크를 저 혼자서 다 한다. 그러면 99%는 정확하다.
여러분들도 각자 개인적으로 잘 기억하는 어떤 면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을 잘 기억해서 기억력이 좋다고 평가받는 적이 있을 것이다. 확실히 기억력이 좋으면 세상에서 칭찬 받고 인정받을 일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익과 손해를 동시에 가져다준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 성도들의 경우 잘 기억하면 큰 축복이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 등은 잊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부모로부터, 여러 이웃들로부터 받은 바 은혜와 도움도 잊지 않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손해가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아픈 과거의 기억을 잊지 못해서 인생을 그르치기도 한다. 부끄러움을 잊지 못해서 평생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도 있다. 실패를 잊지 못해 두 번 다시 모험적 인생을 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잊지 못해서 손해를 가져올 때도 많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미리 아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적당히 기억하고 살도록 기억력에 차이를 두신 지도 모르겠다.
오늘 우리는 송년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한해 동안 기억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은혜로운 일들도 기억될 것이고, 고통스런 일들도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 분명히 하자. 우리 모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래서 복된 새해를 살아가기 위해 한해의 마지막 주일인 이 시간에 꼭 잊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살기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자.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도 말한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13절).

1. 그러면 사도 바울은 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라고 하는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13절). 여기서 "잊어버리고"는 헬라어로 '에필란다노메노스'란 말인데, 이는 과거의 기억이 자신의 관심을 빼앗아 진보를 방해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도 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나가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잊어버리라고 말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①우리가 잊어야 할 것을 잊지 않으면 신앙에 많은 장애를 주기 때문이다.
남에게 상처받은 것을 잊지 않으면 자기 신앙에 큰 어려움을 가져온다. 제가 아는 어느 젊은 한 여성도가 있었다. 그녀는 예수를 믿지만 마음에 평안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목사님께 상담을 요청하러 왔다. 목사님은 '혹시 마음에 누구를 용서하지 못한 일이 없는가?' 하고 물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학대해온 계모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계모로부터 참으로 가슴 아픈 일들을 많이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 학교에서 전도지를 돌릴 때도 계모에게는 한 장도 주지 않았단다. 미운 계모가 전도지를 받고 예수를 믿어 천국가면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은 그 여성도에게 '당신이 어머니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주님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고 충고했다. 그러나 그 여성도는 너무나도 쉽게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용서를 못 받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계모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요.' 그 후 그녀는 결국은 교회를 떠났고 불행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향해 가버렸다.
여러분, 남에게 받은 상처, 고통을 잊고 용서하지 않으면 이렇게 큰 신앙의 장애가 되는 것이다. 이 자리에 앉으신 여러분은 잊을 것은 꼭 잊어버림으로 여러분의 신앙이 뒤로 후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②우리가 잊어야 할 것을 잊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바울과 같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나아가야 하는데, 잊지 않으면 과거에 매이게 되고 과거 지향적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지요? '옛날이 좋았는데, 애굽에서 살던 때가 좋았는데.' 과거 지향적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언제나 과거에 자꾸 매인다. '옛적에 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어제 내가 그런 잘못을 했었는데, 옛적에 내가 실패했는데 또 한다고 되겠는가?' 과거만 자꾸 생각하니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어요?
여러분,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잊지 않으면 사도로서 일하기에 부끄러울 지경의 사람이었다. 물론 그는 4-8절에서 고백하고 있는 대로 육체적으로 한다면 자랑할 것이 많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육체의 것을 내세우고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기는 더 내세울 것이 있다고 말한다. 바울 자신의 과거는 사실 한편으로는 참으로 화려하다.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존경받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뒤에는 이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인가? 교회를 열심히 핍박했던 사람이다. 그는 과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옥에 가두고 많은 사람을 죽인 그런 과거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는 예수님 앞에서나 교회 앞에서 참으로 민망한 과거를 가진 그런 사람이었다.
이제 바울 자신이 예수 믿고 난 다음 자기가 과거에 저질렀던 악행들을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웠겠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에게까지 따돌림을 당할 때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러기에 바울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기의 과거를 분명하게 잊고 살아야 했던 사람이었다.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를 잊지 않았다면 주님을 위해서 일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의 과거도 잊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도로서 가장 많은 일을 한 것, 삼층천에 갔다 온 일, 많은 성경을 기록한 일 등 이것들을 잊지 않으면 교만해져서 안 된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잖아요? 나의 과거의 자랑, 과거의 부끄러웠던 일들, 즉 뒤에 있는 것은 다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간다고 말이다.
오늘날 우리도 잊고 살아야 하겠다. 잊고 살 때 신앙에 장애가 없다.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리고 살아가자.

2. 그러면 이제 무엇을 잊어버려야 하겠는가?

①우리는 과거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큰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야 할 때가 있다.
옛 선배 목사님들의 말씀에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사실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은혜를 은혜로만 기억해 둔다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받은 바 은혜를 잘 간직하지 못하여 그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
제가 어느 교회에 있을 때 한 성도, 과거에 정말 큰 은혜의 체험을 했어요. 교통사고로 아내가 다쳤는데, 너무 심하게 다쳤어요. 머리 두개골이 갈라져서 그냥 육안으로 속이 훤히 다 들여다보였어요. 의식은 이미 잃어버렸고. 그래서 급히 병원으로 옮겼는데, 의사의 말이 빨리 준비하라고 했다. 그래도 이분은 포기할 수가 없어서 큰 병원으로 가자, 유명한 의사를 불러달라 야단했다. 그러나 벌써 아내의 상태는 인간 의술로는 도저히 불가능 그 자체였다. 손끝 발끝에서부터 벌써 검푸르게 변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살이 죽어가기 시작했어요. 이거 어쩌겠는가!
그러기를 사흘 지났어요. 이제 온 몸이 검푸르게 변했어요. 누가 봐도 이젠 정말 힘들어요. 의사들은 이제 정말 불가능하니 정리하자고 했다. 그때 그 성도,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하나님께 매어 달렸다.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날 기적이 일어났다. 검푸르던 몸의 색깔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아내가 의식이 회복되었다. 병원 의사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해 "만세! 만세!"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기적적으로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보통 사람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무 장애 없이 말이다. 이거 얼마나 큰 은혜인가!
자, 이렇게 남다른 큰 은혜를 체험했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하나님 앞에 더 겸손히, 큰 은혜를 받은 자답게 하나님만을 자랑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올바른 것이다. 그런데 그 성도는 언제나 자기는 과거에 이런 큰 은혜를 받은 자라고 내세운다.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말이다. 그 체험 때문에 자기가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제일 사랑 받고 제일 은혜 많이 받은 사람처럼 행동하며 다른 사람들을 깔본다. 그렇게 교만해졌어요. 아주 말이 많고 고집스런 사람이 되었어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봐도 그렇다. 큰 간증거리를 가진 사람들, 유달리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가서는 아주 거만한 사람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가? 잊지 못해서 그렇다. 그건 과거에 받은 은혜이지 오늘에 받은 은혜가 아니다. 오늘은 어리석게 살면서 과거 큰 은혜 받은 그것만 기억하고 사니 어떻게 발전이 있겠고, 어떻게 변화가 있겠는가!
과거의 큰 은혜 받은 체험이 나의 신앙에 방해가 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 때문에 교만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에 집착해서 살지 말아야 한다. 잊어버리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②과거에 잘 했던 일들을 잊어야 한다.
이를테면 성공적으로 살았던 일, 공로, 선행 따위를 잊어야 하는 것이다. 눅 18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바리새인은 매주 두 번씩 금식을 하고 기도도 꾸준히 하고 구제사업에도 헌신했고 율법도 잘 지켰음을 하나님 앞에 자랑했다. 그것도 세리와 비교해서 말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자기 자랑이 많을 때 신앙에 많은 해를 입는다.
예수님께서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그러나 그 뜻은 선행을 베풀 때 은밀하게 하라는 뜻이며, 또 착한 일을 하고 나서는 얼른 잊어버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착한 일, 훌륭한 일, 칭찬들을 일을 하고 나서는 빨리 잊어버려야 교만 마귀가 침투하지 못하고 더 좋은 일, 더 큰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자기 공적, 성공을 자꾸 기억하고 있으면 어떤 대가나 대접받기에 집착하게 된다. '내가 이런 일을 했는데 이 정도는 대접해 주어야지.' 그렇게 되면 현실의 내가 항상 불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잘 했던 모든 일들은 잊어버리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③과거의 실수와 실패를 잊어야 한다.
인간은 매사에 반드시 성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존재다. 그러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와 실패의 쓴잔을 다 마신다. 내용과 크기의 차이는 있을망정 실수나 실패를 모르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노아는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자다가 자기 아이까지 저주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는 마음으로 화를 내어 지팡이로 반석을 연거푸 내리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윗 왕도 남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그 남편까지도 죽게 한 사람이다. 선지자 엘리야도 나를 죽여 달라고까지 하였고, 솔로몬도 나이 들어 많은 첩들로 인해 우상까지도 들여놓았던 자가 아닌가? 선지자 요나도 편협한 민족애 때문에 불순종했고, 삼손은 어떻고, 베드로, 바울, 모든 주님의 제자들, 역사상 많은 위인들이 어떠했는가? 다 실수와 실패를 맛보았다.
만약 그들이 과거의 여러 실수나 실패의 기억 때문에 오늘 풀이 죽어있고 자신감을 상실하고 달려나가기를 주저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과거의 그런 모든 것을 회개하고 잊어버리고 힘차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갔던 것이다.
영국의 격언처럼 쏟아진 우유에 대하여 슬퍼해도 소용이 없어요. 지나간 실수나 실패에 대하여 아무리 괴로워한다 해도 다시없었던 일처럼 고치거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기억이 다시 생각나서 우리 마음을 괴롭게 하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그것들을 잊고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다시 일으켜 주신 주님을 생각함으로 그 과거의 기억들을 잊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④원한이나 미움도 잊어버리고 살아야 한다.
여러분, 마귀는 불필요한 과거를 자꾸 생각하게 한다. 억울했던 일, 나를 분노하게 했던 일을 자꾸 생각나게 해서 나로 괴롭게 만들고 잠 못 이루게 만들어요.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있었던 그 불쾌한 일을 생각하기만 하면 그냥 몸이 벌벌 떨리면서 감정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그 일이 생각나면 하루종일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하루를 다 보내고, 몇 일 후 또 그 일이 생각나면 또 괴로워하다 시간 다 보내고, 그러니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다. 또한 그 사람과의 문제도 더 해결하기가 힘들어져요.
이런 일들은 깨끗이 잊어버려야 한다. 잊어버리지 않으면 과거 억울했고 분했던 그 일에 붙들려 사는 노예 곧 종이 된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나에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화해를 이루도록 힘써야 한다.
그밖에도 우리가 잊고 살아야 할 것은 많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약점, 열등감도 잊고 살아야 한다. 회개했던 여러 죄악도 잊고 살아야 한다. 이렇게 잊을 것을 잊고 살 때 우리는 영적 진보를 이룰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어떤 사람이 캄캄한 밤에 술이 지나치게 취한 상태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고 밤새도록 노를 저었다. 팔이 아프도록 노를 저었는데 동틀 무렵 술이 깨서 보니 배가 제자리에 있더란다. 이거 어찌된 일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까 풀었어야 할 거룻줄(배를 붙들어 매고 있는 밧줄)이 육지에 매인 채로 노를 저었던 것이다. 그러니 배가 나아가겠는가?
그렇다. 우리의 과거가 새 출발하는 우리에게 그렇게 작용할 때가 많다. 저는 우리의 과거의 기억들은 나를 붙들어 매는 고무줄이라고 생각한다. 고무줄을 허리에 매고 나아가 보라. 얼마 동안은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고무줄이 점점 팽팽해지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원점으로 끌려온다. 그렇지요?
그러기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얽어매는 과거라는 고무줄을 풀어버리고 출발해야 한다.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한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가?
송년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나를 얽어매는 과거는 오늘로서 깨끗이 정리하고 빈 마음, 새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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