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의미있는 인생 / 시132:1-18

  • 잡초 잡초
  • 1713
  • 0

첨부 1


설 교 : 박정근 목사(영안교회)
제 목 : 의미있는 인생
본 문 : 시편132:1-18 


얼마 전에 대학을 갓 졸업한 한 청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앞길에 너무 많은 선택이 놓여 있어서 고민하고 있었어요. 유학을 가기 위해 외국대학에 원서를 냈는데, 통과가 됐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어떤 기업에 원서를 냈는데 그것도 합격을 했어요. 또 주위에서는 그의 재능을 인정해서 벤처기업을 창립해 보라고 얘기했습니다. 또한 그는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1년 동안 선교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기회가 찾아왔고, 그는 이 가운데에서 어떤 것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궁금해서 저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저에게 와서 그는 얘기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해야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하고 있습니다."라고요. 아마도 이것은 모두가 고민하고 있는 질문일 것입니다.

흔히 중년의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것은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회의에 빠지는 겁니다.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 왔는데, 내가 가는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일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40대 중반에 위기를 맞아서 직업을 바꾸기도 하고,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느껴보고자 배우자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결코 옳다고 할 수는 없지요.

청년과 중년만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자신의 영향력이 점점 사라지다가, 언젠가는 이 삶의 무대에서 떠나야 합니다. 과연 내가 살아온 인생이 올바른 것인가? 이런 회의에 빠지는 노인들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젊은 엄마들 역시 인생의 의미를 찾습니다. 집에서 아이들만 키우다 보면,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게 사는 것인지, 정말 이 아이들만 키우고 집에만 있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수많은 고민과 회의에 빠지는 엄마들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합니다. 청년, 장년, 노년, 주부, 직장인, 고용인, 고용주, 너나할것없이 우리 모두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방법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한번밖에 없는 인생! 의미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본문은 그 문제에 대한 아주 중요한 해답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시편 132편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다 지어놓고, 성전 봉헌식에 즈음하여 하나님 앞에 찬양으로 드린 간증입니다. 이 시편은 세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솔로몬은 과거를 먼저 이야기하고, 그 다음 현재를 이야기한 후, 미래를 얘기합니다. 1절에서 7절까지는 아버지 다윗의 업적을 이야기하고 있고, 8절에서 10절까지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마지막 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에 주실 축복을 열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랜 고생 끝에 성전을 지어놓고 솔로몬은 먼저 아버지 다윗의 헌신을 회고합니다.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만 해도, 하나님의 법궤는 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긴 채로 이미 20년을 지나고 있었어요. 하나님의 법궤가 적군의 진영에 20년이나 있는 동안, 하나님의 법궤를 기억에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법궤에 대해서 무관심했어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그러나 단 한사람,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도 하나님의 법궤에 대해서 마음을 쓰기 시작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오기로 작정하고 노심초사 고민합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셔오는 일이, 다윗에게는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일이었고, 삶의 우선 순위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맹세합니다. 2절부터 보세요.

  저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오기 전까지는, 내 침상에 올라가지 아니하겠고, 내 눈꺼풀이 닫히게 하지 않겠다고 얘기합니다. 액면 그대로 잠을 자지 않겠다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그것이 그의 삶의 우선 순위임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울이 다스리던 그 시대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궤에 대해서 무심했지만, 오직 다윗만이 삶의 우선 순위를 하나님께 두었고, 하나님의 법궤에 두었습니다. 그는 그 일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로 결심했던 겁니다. 다윗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헌신하자, 얼마나 놀라운 일이 생겼는가? 6절, 7절을 보십시오. 놀라운 변화가 이스라엘에 생겼습니다.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

주어의 변화입니다. 앞에는 '내가' 하고 다윗 혼자의 얘기를 합니다만, 6절부터 '우리가'로 바뀝니다. 즉,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법궤를 잊어버리고 있을 그 때에, 다윗 혼자 하나님의 법궤를 생각하고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에 자신의 삶의 우선 순위를 두고 헌신했습니다. 다윗 한사람이 헌신했더니, 그 동네뿐만 아니라 그 나라 전체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이것이 성전을 다 지어놓고 부른 솔로몬의 노래입니다.

성전을 지었을 때, 솔로몬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의 마음에 얼마나 큰 보람이 있었겠습니까? "내 인생이야말로 의미 있는 인생이다!" 이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인생이 있을까요? 그런데 그는 의미 있는 인생을 노래하며 먼저 아버지 다윗의 공로와 그의 헌신을 얘기하는 겁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 앞에 이 성전을 복원한 것은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돌아보니, 내 앞에 믿음으로 산 선조들의 수많은 믿음의 조약돌들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다만 그 조약돌들을 밟고 지나온 것에 불과하다고 솔로몬은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먼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요.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은 어떤 것입니까? 원망의 역사의식입니다. 우리 정부를 보십시오. DJ 정부가 들어서더니,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이 YS 탓이라고 합니다. YS가 대통령일 때, 나라가 어렵고 IMF를 만난 것은 노태우 정권 탓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 마음속에 심겨져 있는 역사의식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좋게 바라보지 못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현재를 불행하게 살아가는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올바른 역사의식 속에서 과거를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역사를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인생이나 불행과 행복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현재가 불행한 사람들은 과거를 어떻게 보는가? 과거에서 불행한 것들만 뽑아내서 봅니다.

그래서 어떤 철학가는 인생을 낚시꾼에 비유했습니다. "인생이란 현재의 시간에 서서 과거의 연못에 낚싯대를 들이고 있는 낚시꾼이다" 옳은 말입니다. 과거라는 연못 속에는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나도 그 부모 밑에서 받은 상처와 섭섭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좋은 학창시절을 지냈다고 해도, 되돌아보면 불행과 행복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현재의 시간에 서서, 과거에 있었던 행복과 불행의 연못 속에서 무엇을 끄집어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늘 자랄 때 상처받은 것만 끄집어냅니다. 그래서 그 인생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학창시절에 늘 아이들에게 따돌림받았던 것만 생각합니다. 불행만 끄집어냅니다. 그 인생이 불행한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에 얽매여 오늘의 이 귀한 시간을 의미 없게 흘려보내고 마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이 의미 있는 삶이 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를 올바로 해석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솔로몬을 보세요. 왜 성전을 건축하기까지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왜 자신이 수고하지 않았겠습니까? 얼마나 몸부림치고 애쓰면서 그 성전을 완성했겠습니까? 정말 많은 고생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봉헌식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의 나를 살펴보니, 내가 이 모든 일을 이룬 것이 아니요, 아버지 다윗의 헌신이 그곳에 있었다" 고요. 할렐루야!
다윗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하들이 헌신했고, 온 백성들이 다윗의 뒤를 좇아 성전 지을 디딤돌을 다 만들어 놓아서 솔로몬 자신은 너무 쉽게 오늘 이 자리에 이르렀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봉헌식 드릴 때에, "내가 죽도록 고생했는데 우리 아버지가 해 준 것이 뭐냐! 저 백성들이 한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행복을 낚시합니다. 행복한 순간들을 끄집어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찬양하는 솔로몬의 모습! 이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 올바른 목표의식을 가져라

8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솔로몬은 과거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난 이후에, 현재의 삶에 치중합니다. 과거만 생각하면 의미 있는 생을 살 수 없습니다. 현재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오늘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내 인생을 몰고 가는가?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가? 이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솔로몬은 어떤 방향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까요? 솔로몬의 기도 속에서 우리 인생의 목표를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솔로몬이 성전을 다 완성했습니다. 지금 솔로몬이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 내가 성전을 완성했사오니, 주여, 당신의 법궤와 함께 평안하게 저 성전으로 들어가시옵소서!" 이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이 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을 성전 안에 가두어 두겠다는 생각이었습니까? 하나님은 성전에만 거하시는 분이란 뜻일까요? 결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성경 몇 군데를 찾아보겠습니다. 역대하 6장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이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지만 이 성전이 하나님을 모시기에 너무 좁은 것을 알았어요. 하늘의 하늘이라도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지은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렇다면 솔로몬의 "성전에 평안히 들어가소서!" 라고 한 기도는 무슨 뜻일까요? 이사야 66장 1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권고'라는 말은 '그 사람을 내가 돌아보거니와'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이 지은 성전에 거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내가 거할 곳은 심령이 가난한 자, 마음에 통회하는 자, 나의 말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는 자, 그 속에 내가 돌아보고 거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참으로 의미 있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거하셔야 할 줄 믿습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이제 일어나셔서 성전에 들어가소서!" 이 말씀을 오늘의 우리에게 적용시킨다면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셔서 제 마음 문을 여오니 제 속에 들어오시옵소서! 제 중심 보좌에 좌정하시옵소서!"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의미 있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는 의미를 상실한 허무함 속에 빠져 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 보세요. 지위, 재물, 학위 등 성공을 했지만 마음 중심 보좌에 하나님이 없다면, 언젠가 여러분은 인생이 얼마나 무의미했는가를 좌절과 고민과 낙담 속에서 느낄 것입니다.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모셔들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 다같이 따라서 기도 드립시다. "주여! 일어나셔서 제 중심에 들어오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 듯이 하나님의 법궤는 20년 동안 기럇여아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모셨어요. 하나님도 알아요.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중심에 있지 않고, 마음의 주변에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긴 하였으되, 내 마음 가운데 보좌에 좌정하시지 못하고, 저 가장자리에 모셔두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의 인생은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그들의 결말은 보지 않아도 확실합니다. 그들은 인생의 마지막날, 무의미한 인생을 산 것에 대해 한탄할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기도한 것입니다. "주여! 일어나셔서 내 중심에 들어오시옵소서!"

우리의 인생을 보람되고 참으로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은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중심에 거하실 수 있습니까? 기도로 마음속에 들어오시라고 소리 치면 들어오십니까? 아닙니다. 그 방법을 솔로몬은 9절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지금 솔로몬이 법궤를 모셔가면서 기도하며 제사장들에게 주문을 하는 겁니다.

다윗의 인생을 살펴볼 때,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시고 오는 것에 최고의 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오면서 한 가지 중대한 실수를 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궤는 반드시 제사장들이 메고 와야 되는데 (법궤는 길이가 126센티, 높이와 폭이 76센티니까 무거운 것이 아니었음), 다윗은 열정이 앞선 나머지 하나님의 방법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마음이 앞서서, 멋있는 수레를 짰습니다. 그 수레에다가 법궤를 실어오는데 소가 놀라서 뛰었어요. 그러니까 법궤가 떨어지려고 했어요. 그때 다윗이 정말 아끼는 웃사라는 신하가 그 옆을 따라가다가 법궤를 안 떨어뜨리려고 붙잡았어요. 그런데 법궤를 붙잡는 순간 웃사가 죽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시험에 빠지는데,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자기를 도와주려는 웃사를 죽였는가?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내 생각으로 하면 안됩니다. 다윗은 이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의 방법대로 법궤를 모셔오지 않았기 때문에 애꿎은 사람 하나를 죽이는 중대한 실수를 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마음 중심에 거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어떻게 마음 중심의 보좌에 앉을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배드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을 갖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 많이 한다고 하나님이 내 마음에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기도 나온다고 하나님이 내 마음에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의식이 다 좋습니다만, 그 의식에 중요한 것이 빠져버리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는 단 하나의 방법은, 주의 제사장들이 의를 입는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의롭게 살아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것,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말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직장생활 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아버지, 남편, 아내 노릇 하는 겁니다. 삶입니다. 우리가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을 즐거이 찬양하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은 우리 마음 중심 가운데 들어오신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여러분 스스로를 살펴보며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하나님은 여러분의 중심에 좌정하고 계십니까? 당신은 정말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십니까? 그 하나님의 방법대로 손해를 보더라도 사업합니까? 하나님 방법대로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자녀를 키우고 계십니까?

훗날 의미 있는 인생이 되기 위해 우리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목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올바른 섭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3. 올바른 섭리의식을 가져라

11절에서 18절까지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11절에서 18절은, 1절에서 10절까지의 내용과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2절 말씀의 "저가 여호와께 맹세하며"에서 저는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11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2절에서는 다윗이 맹세했고, 11절에서는 하나님이 맹세하십니다. 8절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라는 말씀의 응답이 14절에 나옵니다.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그래, 내가 들어가겠노라!"고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9절의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는 말씀에 대한 응답은 16절,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입니다.

15절에서 18절까지 나오는 '내가'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특히 15절의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마치 "얘들아, 너희가 정말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원하느냐? 그렇다면 나의 섭리를 믿어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내 허락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염려로 말미암아 현재를 망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미 있는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조금만 생각해 봅시다. 이 예배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입니까? 한번 지나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잖아요? 우리가 왜 현재를 의미 있게 살아야 되는가? 왜 사람들이 현재를 의미 있게 살지 못하는가?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입니다. 나의 노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자녀의 앞길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내 재산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염려하며 오늘을 헛되게 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인생을 보내고 싶다면 그 미래를 나에게 맡겨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은 내가 짊어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섭리하시고, 이 지구를 섭리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손대대까지 모든 인생을 눈동자와 같이 섭리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 믿을 때에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의미 있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서 골든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 작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부터 무력증에 시달렸습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하루아침에 인생의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 보였어요. 그는 상당히 유명한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몇 번의 자살을 생각하다가 마지막으로 그가 생각한 것은,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의사에게 찾아가기로 합니다. 의사인 친구에게 자기의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그 친구는 정신과 의사이자 상담가였는데, 그 의사가 아서 골든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일이 무엇이었나?" 생각한 끝에 아서 골든이 대답합니다. "어릴 때 바닷가에 살았는데, 파도소리를 들으며 갈매기 소리를 듣는 것을 참 좋아했어" 라고 말했어요. 그 의사는 다음날 10시에 만나자고 했어요.

그 다음날, 그 의사는 꼼꼼하게 적힌 네 가지 처방전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의를 주었어요. "이 처방전은 너무 중요한 거니까, 약을 시간 맞춰서 먹듯이 꼭 그 시간에 펴 봐야 한다" 라고요. 그리고 이 처방전을 아서 골든이 자란 그 바닷가에 가서 펴 보라고 했어요. 그는 처방전을 가지고 자기의 고향에 갔어요. 아침 9시에 첫 번째 처방전을 뜯었어요. 그 처방전에는 "여보게, 자네가 이 처방전을 열어 볼 때쯤이면 자네는 바닷가에 가 있겠군. 그곳에 앉아서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를 2시간 동안 조용히 들어보게" 하고 써 있었어요. 처방전에 신기한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하여튼 시키는 대로 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를 들었어요. 왠지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다 보니, 바다를 바라보고 어릴 때를 생각하고, 갈매기를 보는 동안 12시가 되었어요. 두 번째 처방전을 뜯어야 할 시간입니다.

두 번째 처방전에는 "지금까지 살면서 행복했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을 생각해 보라"고 써있었어요. 그는 눈을 감고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의 인생 가운데 행복한 순간들을 생각해 보았어요. 자살까지 마음먹었던 의미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과거에 행복했던 순간들이 많았음을 기억해 냅니다.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씨름하던 일, 수영하던 일, 저녁 늦게까지 놀고 있으면 어머니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와서, 손을 잡고 집에 데리고 가서 씻겨 주시고 밥상을 차려 주시던 일, 참으로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의 마음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어요. 오후 3시가 되었어요. 세 번째 처방전을 뜯을 차례입니다.

"지금부터 자네의 마음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그리고 자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동기가 무엇인지,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되씹어 보게" 라고 써 있었어요. 그는 몇 시간 동안 자기가 인생을 살아 온 동기와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나서 깜짝 놀랍니다. 아서 골든은 그리스도인이었어요. 당연히 자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바닷가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본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가득 차 있었어요. 그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글을 쓴다고 밥먹듯 얘기했지만,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었어요. 왜 글을 썼는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수입을 위해 글을 썼던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그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하나님과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며 탄식합니다. "하나님, 내 마음에 하나님이 안 계시군요. 하나님이 어느새 내 가장자리에 존재합니다!" 울다 보니 어느덧 저녁 6시를 맞았습니다. 마지막 처방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보게, 이제 자네의 죄를 자백할 시간이네. 자네가 자백할 죄들을 모래사장에 모두 써 보게" 그는 울면서 참으로 회개하며 모래사장에 글을 써내려 갔습니다. 올바르게 산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도 잘못 산 것이 많은지요. 아내와 자녀에게 잘못한 것,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했던 것, 쾌락을 위해 산 것, 이 모든 죄를 모래사장에 써내려 갔습니다. 그 처방전에 있는 대로 모든 것을 다 써놓고 한 곁에 물러나, 하나님께 이 죄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느새 바다에는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고 있는 그 때에, 아서 골든이 일어났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많은 죄들을 기록해 놓은 모래사장이 밀물에 깨끗이 씻겨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그 순간,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죄들을 용서하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일어나 주님을 찬양하며 삶의 의미를 다시 찾고, 그리스도인 작가로서의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이 간증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 가운데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어서 우리 인생이 의미 없이 보내지고 있습니까? 혹, 과거를 잘못 해석하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중심에 하나님이 안 계시고 가장자리에 계신 것은 아닙니까? 미래의 염려 때문에 현재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말씀이 축복되어서 여러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