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가자, 아니면 보내자 / 눅 10:1-11

  • 잡초 잡초
  • 300
  • 0

첨부 1


제 목 : 가자, 아니면 보내자
본 문 : 누가복음 10:1-11

새해 첫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듬뿍 받는 한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교회는 올해 “가자, 아니면 보내자!”라는 표어 아래 충성을 다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전도지로 파송하며 들려주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6절)에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어는 “내어 보내시며”와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힌트를 얻어 올해 우리교회 표어를 정했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선교, 교육, 봉사, 친교인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사명을 들라면 누가 뭐래도 선교의 사명입니다. 선교에서 중요한 두 가지 행위를 들라면, 역시 ‘보내는 것’과 ‘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가는 신앙인들로 넘치든지 아니면 보내는 성도들로 넘쳐야 합니다. 가지도 않고 보내지도 않는다면 교회는 이미 그 생명력을 잃은 것입니다. 올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점을 생각하며 직접 전도하러 나가든지, 아니면 전도하는 성도들을 도와 내보내든지 해야 합니다.

가야 합니다

전도는 되어지는 게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이 전도는 되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기에 자신은 움직이려 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를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5,6) 짧은 구절에 간다는 단어가 세 번이나 등장합니다. 두 번은 부정으로, 한 번은 긍정으로 쓰입니다. 두 번의 부정은 이방인을 위하여 보다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먼저 구원해야 할 절박함을 말하기 위해 부정으로 쓰입니다.

여기서 전도란 무엇인지를 분명히 규정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좋은 소식은 가져오는 것이고 산을 넘으며 공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전도를 하려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발이 아름답다고 찬양합니다. 그가 산을 넘음으로 무엇인가 이뤄졌다는데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그가 산을 넘었다고 하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물론 목적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목적이 전도라면 그가 넘은 산, 그가 넘은 강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넘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을 일이란 말입니다. 복음을 들고 길을 나섰다는 것 자체로 찬양의 대상이란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는 복음을 들고 가십시다. 작은 교회가 먼 곳에 선교사를 파송할 수는 없어도 이웃에게 발로 뛰며 전도할 수는 있습니다. 올해는 오늘 말씀처럼 사마리아나 이방인에게가 아니라 우리 이웃에게로 나아갑시다.

우리가 직접 나가 전도를 할 때 만만치 않을 것임을 이미 주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느 집에 가든지 먼저 그 집이 평안하기를 빌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 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13,14)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평안을 받아들일 사람보다 그렇지 않을 사람이 더 많을 것이고, 영접하기보다 영접하지 않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 상황을 만나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야만 합니다. 복음을 전하러 다녀야만 합니다. [막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교회건물이 전도하고, 교회의 물질이 전도하고, 목사이름이 유명하며 전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교회는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좀 원시적이지만, 나가서 전하는 것은 전도의 원칙입니다. 올해는 이 원칙에 충실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보내야 합니다

갈 수 없다면 보내야 합니다. 가는 게 최선책이라면, 보내는 것은 차선책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보면, 12제자는 직접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내신 분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차선책을 택했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파송자요, 제자들은 그 파송에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전도의 근원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오늘날 전도의 근원도 역시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엔 조금 양상이 달라 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보내는 자가 있습니다. 가는 자는 몸으로 헌신하는 사람이요, 보내는 자는 물질로, 기도로 후원하는 사람입니다. 가고 싶어도 몸을 온전히 헌신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보내는 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가는 것보다는 보내는 것이 더 어울리는 사람의 몇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① 복음을 직접 전하기에는 아직 미성숙하여 용기와 능력이 부족한 신앙인은 보내야 합니다.

② 직업상 시간을 내어 남을 만날 수 있는 여건이 아닌 신앙인은 보내야 합니다.

③ 몸이 건강하지 못하여 움직임에 불편함이 있는 신앙인은 보내야 합니다.

보내는 사람을 다른 말로는 헬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접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자가 바로 보내는 자입니다. 전도에는 직접 가는 자도 필요하지만, 바로 이런 헬퍼가 필요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11)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그 중에 합당한 자”가 바로 헬퍼입니다. 그는 전도자인 12명의 제자들을 맞아 그들을 위하여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제공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우리교회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① 기도로 후원함으로 보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블레셋을 맞아 싸웠고 모세는 아론과 훌을 대동하고 산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간 성도라면 모세는 보낸 성도입니다. 전도하러 나간 사람에게 영적 권세를 달라고 기도하는 후원자가 필요합니다.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성도의 기도입니다.

② 물질적인 후원으로 보내야 합니다. 전도를 하려면 물질이 필요합니다. 빵과 복음은 어쩔 수 없는 전달의 방법으로 맞물려 가는 수단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약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렇습니다. 올해 우리교회는 가는 자와 보내는 자가 조화롭게 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에 헌신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 우리 모두 똘똘 뭉쳐 가든지 보내든지 합시다. 멀리 이방과 사마리아는 못 간다 해도 이웃에게라도 복음을 전합시다. 한 달에 한 번은 전 성도가 직접 나가서 전도를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일년에 서너 차례 특별한 전도 프로그램을 가질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간 드리던 선교헌금을 보다 성의를 다하여 드려주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직접 못하는 사람들은 더 많이 드려주시기 바랍니다. 전도자는 가는 자이든 보내는 자이든 믿음의 성장과 평안을 선물로 받습니다(12).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가지 않으면 전할 수 없고 보내지 않으면 전할 수 없습니다. 열매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고 가는 것과 보내는 것은 우리가 할일입니다. 갑시다. 아니면 보냅시다. 할렐루야!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