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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따라 오려거든 / 마 16:22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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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나를 따라 오려거든
본 문 : 마 16:22 - 25
설 교 : 김철봉 목사 (사직동교회)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 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지금 21세기, 우리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념(사상, 종교에 기초하는) 조직체(또는 집단)가 무엇일까요?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한 때는 공포의 집단으로 무서운 조직력을 과시하였지요. 그러나 결국 스스로들 해체하고 말았습니다. 불교일까요? 아닙니다. 힌두교일까요? 아닙니다. 스리랑카는 75% 인구가 불교요, 25% 인구가 힌두교입니다. 소수민족인 타밀족들은 힌두교 분리 독립국가를 세우고자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57년 간을 무장 투쟁해 왔는데 이제 살육전을 중단하고 평화를 위한 협상 테이블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가장 강력한 조직력을 과시하고 있는 집단은 무었일까요? 예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입니다.

2001년 9월 11일 New York World Trade Center Twin Building을 무참하게 폭파한 자들이 "알 카에다" 집단이지요. 이들이 바로 전형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알라신을 위하여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전사들로 이념 무장이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성 전사들도 있고 심지어 10-14세 소년 전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확고한 전사들입니까? 이슬람권의 알 카에다나 체첸 전사들에 뒤지지 아니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군병들입니까? 이슬람권의 전사들과 우리들 주 예수님의 십자가 군병들을 비교한다면 과연 어느 쪽이 더 헌신적이고 더 자발적인 전사들일까요? 저는 요즘 이 점에 대하여 궁금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후 2003년 첫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물어 오십니다. "누가 나를 따르겠느냐? 나를 따라올 각오가 되어 있느냐? 나를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아느냐" 우리는 "leadership"(지도력, 사람을 통솔하는 능력과 기술)에 대하여는 관심이 많습니다. 강의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습니다. 사람들은 리더가 되고 싶어합니다. 주인이 되고, 대장이 되고, 사장이 되고, 머리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누구를 따르는 것"에 대하여는 관심이 적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기독교 신앙의 세계는 "따르는 일"이 훨씬 더 요구되고 있습니다. 따르는 일이 미덕입니다. 덕을 세웁니다.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잘 따르는 자"가 누구인지를 찾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따르는 일(followership)을 생각해 보십시다. 공부합시다. 배웁시다. 훈련합시다. 그리하여 정말 주님을 잘 따라갑시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남을 잘 지도하리라는 의욕도 좋으나 먼저 나를 잘 따르는 훈련부터 착실히 해 보거라" 그렇습니다. 주님을 잘 따르는 것을 잘 배웠을 때 다른 사람을 잘 지도할 수 있습니다. Tozer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을 잘 듣는 바로 그 사람, 하나님을 잘 따르는 바로 그 사람의 말을 들어라 그런 사람을 따르라"

주님을 따르라는 것은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따르다보면 그 분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내게 와서 배워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열심히 배우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 따르고 있는 것이 됩니다. 우선 많이 배웁시다. 공부 많이 합시다. 열심히 배우고 겸손히 배우고 꾸준히 배웁시다. 끝까지 배웁시다. 예수님으로부터 배웁시다. 예수님의 정체를 배웁시다. 그 분이 과연 누구 신지를 배웁시다. 예수님이 누구 시며 어떤 분이신 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감격할 것입니다. 흥분할 것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우리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드리고 대답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워 갔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남자"로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선생님(랍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선지자"라고 판단했습니다. 마침내 "메시야 구주"라고 깨닫습니다. 그 결과 물동이를 내버려둔 채 마을로 달려가서 이렇게 외칩니다. "내 인생의 숨겨진 비밀을 다 알고 계시는 그 분,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크신 분 메시야를 내가 만났습니다. 여러분도 다 나와서 한 번 만나 보십시오! 그 분은 야곱의 우물물보다 더 시원하고 신비스러운 생수를 가지고 계십니다.

요5:24, 25을 보십시다. 예수님은 너무나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주님을 따르라는 것은 그 분의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마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선생님 입장에서 볼 때 좋은 제자는 어떤 제자일까요? 선생님을 100% 신뢰하고 완전히 따르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 때 예수님을 어중간하게 따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멀찍이 따른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도망을 친 적도 있습니다. 미숙한 제자요, 부끄러운 제자들이지요. 제자는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자입니다. 스승이 걸어가셨던 대로 걸어가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제자를 보면서 그 스승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더 비중 두시지만 사람은 사람의 중심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외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예수님의 제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을 그려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쉬울 수 있습니다. 열 두 제자들도 예수님이 부르실 때 성큼 따라 나섰습니다.(마4:18-20)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되어 가는 것, 예수님의 제자로 다듬어져 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열 두 제자를 보십시오. 저희들끼리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기도 하였지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도 했지요. 도망치거나 실의에 빠져 낙향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되는 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풋내기에 불과합니다. 미숙한 초보자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도에 대하여 핵심을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입니까? 2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섰습니까? 그러면 우선 나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를 포기한다/ 나를 죽인다/ 나의 개성과 자아를 죽인다/ 나의 목소리를 죽인다" 이런 의미입니다.

갈라디아서2:20은 본 구절 마16:24절의 가장 정확한 해석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고 자기 십자가, 내 몫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우리는 참 부끄럽습니다. 십자가는 무겁고,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하여 외면하거나 기피하면서 그래도 예수님의 제자인양 으시댈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나를 보시고 "너는 나의 제자로구나"라고 해 주실 까요? 십자가 없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일본서 활약하는 유명 운동선수가 자기가 선택한 아내와 아기와 태중의 아이 이 세 사람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자신이 책임지고 지고가야 할 십자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그렇게 경솔하게 처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노숙자들의 대모 강 형화목사(47세)는 계모의 학대, 고아 신세, 공장 노동자, 삐뚤어진 남편의 폭력적인 사랑으로 10년 간 폭력에 시달림, 자폐증 갖고 태어난 아들 태현이의 5년 간의 고통.... 도대체 몇 중의 십자가입니까? 5중의 십자가임에도 지옥과도 같은 삶을 이겨내고 끊임없는 사랑으로 남편을 변화시킨 그녀는 남편과 함께 13년째 걸인과 노숙자를 돌보면서 "예수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죽으면 주님이 살아납니다. 나를 포기하면 주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내가 낮아지면 주님 높아집니다. 내가 욕먹으면 주님이 영예로워집니다. 우리 각자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싫증내지 말고, 박대하지 말고 주님이 믿고 맡겨주신 것으로 알고 묵묵히 잘 지고 가십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구역에서, 주일학교에서, 찬양대에서, 전도대에서, 전도회에서, 성전건축에서, 주님의 제자답게 끈기 있게 변함 없이 지고 갑시다. 그리해야 진정 주님의 제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라는 것은 주님처럼 죽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떻게 죽으셨습니까? 죄도 없으신 대, 허물도 없으신 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극형을 받으셨습니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으나 순하디 순한 어린양처럼 자원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 우리가 이렇게 살게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아 나선 우리들의 최고 제자도는 바로 예수님처럼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자는 스승의 뒤를 따라갑니다. 스승 예수님께서 이렇게 죽으셨으니 제자인 우리들도 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지난 12월 30일 사우디 아라비아 밑에 있는 예멘(공화국)의 한 기독교 선교 병원에서 미국인 의료 선교사 3명이 이슬람 과격분자로 보이는 무장 남자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의사 3명중에는 여의사 한 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들 3인의 미국 의사들이 그 곳 예멘은 어제든지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기습 무장공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상식적인 정보를 알고서도 그 곳 선교병원으로 자원하여 가서 의술을 펼쳤다고 믿습니다.

노르웨이 출신 닥 웬들 선교사는 히말라야산맥 깊숙한 고산지대에서 선교에 헌신하다가 지붕에서 실족하여 하반신 불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본국에 후송되었으나 그 이듬해(1988) 휠체어를 타고 히말라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1988년 그 해 말 복부에 암이 발생하여 힘겨운 투병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방사선 치료를 위하여 본국 노르웨이로 송환이 되어 갔는데 눈물겹도록 놀랍고도 아름다운 것은 왕복 비행기표를 사서 갔다는 사실입니다. 치료를 받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듬해 1989년 웬들 선교사는 히말라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본국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던 그의 믿음과 헌신은 인도, 네팔 지역에 진출해 있던 각국의 선교사들을 감동시켜, 울고 또 울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각오해야 하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진정한 따름의 정신을 실천한 그리스도인 들이었습니다. 예멘에서 순교 당한 3인의 미국 의사들과, 히말라야 고산지대 부족들의 영혼을 사랑하여 그들을 섬기다가 하반신이 마비되고 결국 복부 중병(암)으로 이 땅을 떠나간 닥 웬들선교사를 보면서 그러한 믿음과 각오를 가지고 이 한 해도 부름 받은 가정과 교회의 섬김 터를 지켜 나갑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위대한 소망이 있음을 또한 기억하는 것입니다. 21절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이다" 25절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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