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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누릴 복을 아십니까? / 신 33: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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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내가 누릴 복을 아십니까?
설 교 : 성완석 목사 (여수시민교회)
본 문 : 신명기 33장 24~29절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찌로다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명기 33장 24~29절

  주님앞에 드려지는 시간시간마다 우리의 심령이 날마다 새로운(뜨거운) 감격속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혜 받으면 날마다 새로워지는데 우리의 말과 생각이 새로워지고, 삶의 모습이 새로워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이것을 자신이 알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보고 알만큼 달라지더라는 거예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랬어요. 은혜받으니까 사람들이 새로워지고 아름다워 지는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은혜 받으면 우선 순위가 바뀝니다.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 달라져요. 이전에는 눈에 보이는 것, 세상것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은혜받고 나면 주님을 귀하게 여길 줄 압니다. 주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소중한 줄 알고, 주의 몸된 교회가 귀한 줄 알고, 주님이 주신 직분이 귀한 줄 압니다. 그래서 거기에 걸 맞는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쓰는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 있기에 주님앞에 드리는 시간이 귀한 줄 알고 힘들고 고달픈 환경속에서도 주님앞에 몸을 드리며 시간을 드리며 정성을 드리는 여러분을 주님이 가장 기뻐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환경은 각기 달라요. 직업이 다르고 생활이 다르고 셩격이 다르고 문제가 다릅니다. 그러나 똑같은 말씀을 통해서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각자 각자에게 실제적으로 적용되고 부딪혀오는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 속에서 나를 향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500. 1.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3. 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길지 않은 인생,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사세요.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짜증내며, 원망하며, 불평하며 사는 사람은 불행한 자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불행이 있다면 웃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든지 부자로 살든지 웃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불행과 고통속에 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가정이 웃음이 있는 행복한 가정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일터가, 믿음생활이 웃으면서 모여서, 주님 예비해 두신 은혜받고, 웃으면서 헤어지는 행복한 교회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마음속의 생각과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잠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속의 생각에 따라서 관계가 달라집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부터, 다른 사람과의 관계, 자기 자신이나 일과의 관계에서의 행복은 마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내 마음이 어두우면 세상만사가 어두워집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에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는 거예요. 욥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물질이나 환경은 외적인 만족을 줄 수 있지만은 내적인 만족과 참 행복은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이 세상에는 모든 것 가졌지만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를 향하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니라" 선언하십니다.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 앞에 문제가 있고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질병이 있고 한숨 쉴 일이 있을지라도, 이 땅위에서 나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행복한 자가 없노라" 선포하고 나아갈 때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이 내게 주신 행복의 길을 발견해야합니다. 행복의 길을 보지 못하면 불행의 길 가는 거예요.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서라도 나를 위해 준비된 행복의 길이 열려 있음을 믿음의 눈을 열어서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 두신 행복의 길을 믿음의 눈으로 볼 뿐 아니라 그 길로 가야 되요. 그래야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많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에서 자기를 계발하고 발전시킬 때 행복하도록 만들어졌어요. 제자리 걷는 인생은 행복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미 시작한 한 해에도 점점 나아져 가는 복된 인생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에는 증거가 나타나고, 열매가 맺혀집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때가 되어지매 자연스럽게 열매가 맺혀지고, 증거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몇 십년을 믿어도 죽은 믿음에는 힘이 없어요. 자신을 바꾸어 나갈만한 힘도 없고, 주변을 변화시킬 힘도 없는 거예요. 믿기는 믿는데, 열매가 없어요. 변화가 없어요. 늘 희망사항에 머무르고 마는 거예요. "그렇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어요. 초대 교회 시절을 보면, 오늘날 목회자들 보다 훨씬 못 배웠어요. 모든 면에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속에는 세상을 뒤집어 놓을만한 증거들과 능력이 있었더라는 거예요. 주님께서 그들 속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뜨거운 열정을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심령 속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혜받고, 속 사람이 변함과 같이 우리의 살아가는 태도가 바꾸어 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 새 능력, 새 은혜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미 복된 은혜의 자리에 나오셨으니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뿐 아니라 살아가시는 앞날에 하나님의 능력과 때를 따라 인도하심을 우리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시는 행복한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먼저 다자한 복과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복에 대하여 말씀을 합니다(24절). 믿음으로 사는 자는, 성령으로 사는 자는 자신이 복을 받을 뿐 아니라 받은 축복을 나누어주며 살 줄 압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유익을 끼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이 잘되면 육도 살고 교회가 잘되어지면 우리도 복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잘 되어지고 회사가 잘 되어지고 교회가 잘 되어지고 국가가 흥하여지고 이웃이 잘 되어지는 축복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를 통한 축복의 선포예요. 아직 광야 생활이 끝난 것이 아니에요. 가나안에 들어 간 것도 아니고, 요단강을 건넌 것도 아닙니다. 문제가 다 해결된 것도 아니에요. 무사히 가나안에 들어간다고 해도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앞날입니다. 현재도 어려운 환경이거니와 알 수 없는 앞날이기에 더 주님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될 것인데, 백성들은 눈만 뜨면 뭐 했느냐? 원망하고 불평하는 무리들이 많았다는 거예요. 복받을 일보다는 하나님 미워 하실 일만 골라서 하더라는 거예요. 이런 불만 많은 백성들을 인도해야하는 모세는 괴로운 거예요. 아무리 보아도 복받는 길과는 거리가 멀어요. 마당히 책망받을 백성들이고, 민족인데, 하나님의 명령은 복을 선포하라는 거예요. 아무리 보아도 현실은 아니지만 믿음의 능력을 의지하고, 장차 주실 복을 미리 볼 뿐 아니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내 자신의 모습을 아무리 돌아보아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모습보다는 싫어하시는 길로 갈 때가 많았더라는 거예요. 칭찬받고 복받을 일보다는 나의 허물과 얼룩이 아직도 많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아도 아니에요. 그러나 현재의 나의 얼룩과 허물과 우리의 실수를 탓하지 아니하시고, "너는 복있는 사람이니라!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 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 내가 너를 고쳐서라도 요긴하게, 능력있게 쓰겠노라! 아멘! 너희만큼 이 시대에 복받은 사람이 없노라! 믿음으로 장차 받을 복을 고백하고 선포하여라!" 애타는 마음으로 우리가 주님의 깊은 마음을 알기를 원하시더라는 거예요.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나 자신 뿐만이 아니에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녀문제 때문에, 가까운 가족들로 인하여 실망하기도 하고, 마음을 끓이기도 하고, 애가 타기도 합니다. 바꾸어 주시기를 기도하지마는 바꾸어지지 않는 모습 때문에 낙심하기도 하고, 기도하다가도 지쳐서 포기해 버릴 때도 있을 거예요. 그럴 때 기억할 것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의 눈을 보아야합니다. 수없이 거스리고, 거역했지마는 포기하지 않으시던 주님의 인내를, 징계와 채찍을 들어야 마땅한 때까지도, 애타게 기다리시며 참으시던 주님의 인내를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되요. 자녀도, 남편도, 주변에 내 속을 썩이며, 전혀 변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애태우는 사람일지라도, 현재의 모습이 아닌 앞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 안에서, 얼마든지 변화되고 바꾸어질 수 있는 미래의 복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미래를 보는 꿈을 잃지 않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나 공동체나 얼마나 앞을 향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비젼이 없는 개인이나 공동체는 후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을 현실로만 보지말고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난관이나 역경이 아무리 크고 무거울찌라도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능히 이기는 미래의 모습을 볼 뿐 아니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병자를 고치실 때마다 사용하신 말씀은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아직 안 이루어졌어요. 그러나 될 것이라는 큰 믿음이 큰 역사를 가져온다는 말씀입니다. 현실을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현실만 바라보다 보면 현실의 문제가 점점 커져 나중에는 문제 외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더 커 보이고 현실 문제는 자꾸만 작아집니다. 나의 당면한 문제에서 눈을 주님께로 옮겨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주실 미래의 모습을, 주께서 주실 좋은 결말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문제도, 남편의 문제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의 문제도, 지금 짐이 되고 아픔이 되는 사람도 형제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 바꾸어 질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은 쉽게 변화되는 존재가 아니예요.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시면 나도, 내 남편이나 자녀도, 내 이웃도, 바꾸어지고 변화 될 수 있고 우리의 역사도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주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고 나아감으로 변화된 미래를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보금자리가 견고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25절). 모든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정은 절대적으로 소중합니다. 가정의 행복은 믿음 생활과 직결됩니다. 행복한 가정은 단지 좋은 사람 만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나 자신에게도 그러하고, 상대에게도 완전을 기대하지 마세요. 예수 믿고 믿음 생활한다고 해서 한 순간에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지고 직분자가 되어지고 가는 길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성품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더라는 것이지요. 아직 변화되지 않은 부분들 때문에 때로 우리는 갈등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 성숙한 사람이 되고 능력있는 삶을 살고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기에, 우리는 실망하기도 하고 갈등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이 있다면 이 모든 일이 단순간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 모습 아무리 보아도 아직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점점 새롭게 변화시키시고 점점 성숙한 주님 닮아가는 온전한 모습으로 바꾸어 나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고, 열심히 사는 길에도, 인생살이에는 예고도 없이, 신호도 없이 보이지도 않게 찾아오는 질병도 있고 재난도 있더라는 거예요. 불안해 하지 마세요. 주님이 약속하시기를, 우리 보금자리를 철과 놋의 문빗장으로 잠가서 모든 흑암의 권세로부터 지켜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이 막을 것 막아 주시고, 물리칠 것 물리쳐 주시고, 이길만한 능력 주시고, 지켜 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담대히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능력 주실 뿐만 아니라 나의 처소가 되시고 영원한 팔로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7절). 순간 순간마다 사람을 만나고, 환경을 대할 때마다, 문제를 겪을 때마다, 위로 부터 주시는 능력 힘입고 새 은혜 받아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팔은 능하신 팔입니다. 치료하시는 팔입니다. 수렁에서 건져내시는 팔입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이 나의 처소가 되고 나를 붙들어 주시되 결국은 이기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디를 가느냐,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중심이 바로되고 순종의 열매가 있는 자에게는 모든 것에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주시며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창고와 손으로 하는 모든 일들이 복을 받는다고 하셨고 하늘의 보고를 열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보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생활속에 할 수 있으면 쉽게 편안히 살고 싶은 본능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위험할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없고 아무 위험이 없을 때 기도도 게을러지고 신앙도 긴장이 풀리고 주님께 의지하는 마음도 해이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관심이 많아지고 발걸음이 세상으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원인데 몸이 잘 움직여 주지 않습니까? 생활이 따라주지 않습니까? 은혜 받으면, 큰 은혜받고 깊은 은혜받으면, 마음도 몸도 영도 같이 움직여집니다. 은혜 받고 능력 받지 못하면 생각은 있고 마음은 있는데 손이 움직여 주지 않고, 발이 움직여 주지 않아요. 몸이 안 따라와요. 우리 가슴 깊은 곳에 주님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 싫어하는 것들 다 물리쳐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 원하시는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앞을 향해 달려나가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육신의 소욕에 매여 육신의 원하는 대로 사는 자가 아닌 영계를 바라보고 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안 그런척하며 살게 아니고요 이제는 나의 부족과 죄악과 허물까지라도 드러 내놓고 해결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에만 합하는 종 되어지면 걱정할게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가 불안해지고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없어서입니다. 그 어느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방황하며 비틀거리는 인생이 아닌 주님의 은혜받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전진하는 복된 인생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안에 만족이 있고 풍족함이 있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고백이 바로 나의 고백과 간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9절의 약속은 확고부동한 변치않는 약속입니다. 궁극적인 승리를 보장하는 약속입니다.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인물들이 있는데,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더라는 거예요. 우리와 똑같이 실수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약점이 있는 사람들이더라는 거예요. 일평생 흠없이 얼룩 없이 산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린 위대한 인물이오, 큰 은혜받은 사람이었지만 술로 망신당할 때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죽음이 두려워 부인을 누이동생이라 속이기도 했고요.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아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고 있지 않아요? 위대한 지도자 모세에게도 실수가 있었고, 성군이라 불리우는 다윗에게도 문제는 있었고, 바울도 예수믿는 사람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서던 자가 아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사용하셔서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더라는 거예요. 이것이 은혜예요. 내가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내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예요. 무엇인가 주님이 내게 깨달음을 주십니까? 해야 할 일거리를 보여 주십니까?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까? 먼저 주님의 뜻을 깨닫는 자가 복있는 자요, 깨닫는 대로 헌신하며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자가 참된 축복의 사람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시대에 할 일을 주셨다는 게 축복이예요. 일하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게 복이 아닙니다. 일 할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오. 일할 거리가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더욱 마지막 시대에 주님의 일을 위하여 쓰임받는 것이 더 큰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성공도 실패도 승리와 패배도 생각에서 부터 비롯됩니다. 우리 마음에는 울타리가 없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수없이 드나드는데 마음에서 실패하면 행동에서 실패하게 되고 영적 전쟁에서 실패하게 되면 실제 생활에서도 실패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해 버리고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1) 나를 향한 주님의 계획과 생각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보십시오. 주님은 나의 형편과 처지를 아실 뿐 만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아십니다. 환경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하나님께서 살리고자 하시면 살리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위대한 사람은 모두 큰 시련을 통해서 연단 받았습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단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17:3) 욥은 고백하기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이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아오리라" 지나고 보니 축복이더라! 아멘!


  나의 걸어가는 인생길에 연단이 많습니까? 속상하고 답답하고 낙심되고 끝이 안 보일 때라도 나의 나아갈 길을 아시는 주님께 매달리며 부르짖으면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고 응답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내가 믿음으로 살면 축복의 좋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이 크게 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고 소망 가운데 잘 인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꾹꾹 눌러 참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들려주신 약속을 붙드세요. 결국은 이길것이라고 하신 주의 음성을 들으세요. 주님이 이미 보장해 놓으신 승리를 믿음의 눈을 열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승리를 보장받은 자는 눈앞의 현실 때문에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지 않아요. 주어진 여건따라 웃고 우는 자들이 아닌 주님 때문에 찬양하며 사는 흔들리지 않는 행복한 성도, 행복한 가정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미 시작된 새해에는 한 번 잘 살아 보겠다고 어금니를 무는 결단보다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기대하고 엎드리는 믿음의 사람, 축복의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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