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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 눅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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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백봉태 목사 (연희교회)
Scripture  : 눅13:1-9
Subject :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오늘 본문의 말씀 중에서 6절 이하의 말씀은 포도원에 심은 지 3년이 되었는데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 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통상적으로 무화과나무는 길가에서 자라기 마련입니다만, 이 비유에서 보면 포도원 주인은 한 무화과나무를 자기의 포도원에 심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무화과나무가 포도원 주인에게 아주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나무였음을 말합니다. 아마 그 주인은 그 무화과나무를 자기의 포도원에 심어 놓고 포도원을 돌보는 과원 지기에게 정성을 다해서 돌아보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원 주인이 그처럼 많은 신경을 써서 그 무화과나무에게 정성을 들인 것은 길가에서 자생하는 무화과나무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이 그처럼 무화과나무를 심고 나서 삼년 동안 열매를 맺을 때가 되면 찾아와서 혹시나 열매가  열렸을까 하고 살펴보았지만 그때마다 주인은 실망을 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처럼 포도원의 좋은 토양에 옮겨 심고  좋은 거름을 주고 정성을 다해서 가꾸어 주었는데도 그 무화과나무는 잎만 무성할 뿐 열매는 전혀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년 동안이나 열매를 구하기 위해서 찾아왔다가 실망만 한 그 주인은 이제 포도원을 지키는 과원 지기에게 “내가 삼년 동안이나 찾아와서 아직 열매를 하나도 얻지를 못하니 이 못된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려라. 어찌 땅만 버리겠느냐?”고 노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과원 지기는 주인에게 이렇게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인님이시여, 금년에도 한해만 그대로 두소서. 내가 다시 한번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그렇게 해서라도 만일 열매가 열면 다행이겠거니와, 만약 그렇게 해서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때는 찍어 버리소서.”

  예수님이 원래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유대 민족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포도원의 주인은 하나님을, 과수원 지기는 예수님을,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각각 가리키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은 마치 길가에서 천덕꾸러기처럼 자라다가 아주 토양이 좋은 포도원으로 옮겨 심은 무화과나무와 같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원래 애굽 땅에서 노예로 살던 민족으로서 많은 민족들 가운데 가장 작은 민족이었으며 가장 연약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땅에서 구원해 내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그곳에서 살고 있던 민족들을 다 쫓아내시고 그들이 나라를 이루고 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특혜를 입은 민족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그처럼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던 것은 그들이 그 가나안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 간에 사랑하는 삶을 살므로써 온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금지하신 우상을 섬겼으며 공의와 사랑이 넘치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만들지 못하고 그 사회에 불의와 착취가 가득한 불법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헛된 선민 사상과 종교적 자만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1000여년 이상의 세월 동안 그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유대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선민으로 대우하신다는 것이 무의미하고 유익이 없다고 하나님이 생각하시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때에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이 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오시고 그들 가운데서 사역을 하신 것은 그들에게 다시 한번의 마지막 기회를 주신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이스라엘은 어떻게 됩니까? 물론 그들 중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백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더 많은 유대인들은 끝끝내 자기들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헛된 영적 자만심 가운데 있으면서 예수님을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초대 교회가 전파하는 기독교 복음을 적극적으로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다가 끝내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40년이 지나서 그들은 로마 제국의 침략을 받아 완전히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조상 대대로 살아온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전 세계에서 유랑하는 민족이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일차적으로는 이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관련해서 예수님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여전히 적용이 되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원래의 이스라엘 민족을 참 감람나무의 가지로 비유하고, 우리 이방인들을 돌 감람나무의 가지들로 비유를 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은 열매 맺지 못하는 참 감람나무의 가지들이 꺾여져 나간 것으로 비유하면서, 우리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된 것은 마치 그처럼 꺾여져 나간 참 감람나무 가지들 대신에 야생에서 자라던 돌 감람나무의 가지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것으로 비유를 하면서, 우리 이방인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자만하지 말라고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희들도 회개치 않고 열매맺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아끼지 아니하시리라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서 우리는 원래 이방인에 불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이 땅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는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들이었으며, 하나님의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서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실족하여 넘어짐으로써 그들이 참 감람나무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기에 그들을 대신해서 돌 감람나무 가지와 같이 비천한 우리가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우리에게는 없으리라고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한해를 마감하면서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죄악과 우리의 불충(不忠)함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합시다. 무엇보다도 그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우리를 그래도 열매맺는 백성이 되기를 기대하시는 가운데 인내하시며 오래 참아 주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에 감사를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자로서 기도해 주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를 합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예수님의 은혜를 악용하거나 오용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오래 참아 주신다고 해서 안이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미련한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열매 맺지 못하는 우리를 그래도 또 한해 동안  용서해 주시고 또 다시 은혜를 내려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에 황송해서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고자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묵은 한해를 보내고 새롭게 새해를 맞이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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