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사람을 입으라 / 엡 4:17-24

  • 잡초 잡초
  • 635
  • 0

첨부 1


설 교 : 김태복 목사 (홍익교회)
제 목 : 새사람을 입으라 
본 문 : 엡 4:17-24


새해에는 누구나 새로운 희망 속에서 새 출발합니다. 새해에 모든 분들의 소원은 가정이 평안하고 자녀들이 더 복된 길을 가기를 희망하고 사업이 번창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가장 큰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보면 성공같이 보이는 삶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삶은 결국은 불행으로 끝나지만, 아무리 인간적으로 보면 어려운 삶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느 날인가 복된 삶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신년새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된 한 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새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새해 아침에 새 옷을 입듯이 새사람을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옛사람'이란 말과 '새사람'이란 말이 나옵니다. 한 마디로 '옛사람'이란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을 말하고 '새사람'이란 '하나님께 돌아와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2003년도 복된 삶을 살고 싶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새사람을 입으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새사람을 입을 수 있습니까?

1.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본문 2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새 옷을 입으려면 먼저 더러운 옷을 벗어야 합니다. 더러운 옷 위에 새 옷을 입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갈 때는 깨끗한 옷, 새 옷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나가 사는 동안 방탕으로 더러워진 옷, 어둠이 옷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거지꼴이 되어 돼지 울간 옆에서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 돌아오니 아버지는 세상 죄로 더러워진 옷들을 벗기고 목욕을 시킵니다. 새 옷을 입힙니다. 금가락지를 끼워줍니다.

그렇습니다. 새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먼저 옛사람의 더러운 옷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옛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점점 내려가는 삶을 살게된다고 본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17-19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난 결과, 여섯 단계로 내려가는 삶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1)하나님을 떠나면 허망한 마음을 가지는 단계에 이릅니다.

'허망한'이란 단어는 '텅 비고, 헛되고, 목적이 없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몰아낼 때, 그들의 마음은 공허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공허한 마음에 세상의 것들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즉, 세상의 지위나 쾌락, 세상의 재물이나 종교로 채우려고 합니다.


(2)점점 총명이 어두워지는 단계에 이릅니다. .

'총명하다'라는 것은 파악하고 이해하고 인식한다는 것이요, '어두워진다'라는 것은 눈이 멀어 볼 수 없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그 마음에서 사라짐으로 하나님의 진리에서 점점 멀어짐으로 영적 세계에 대해서 무지해지고 깨달음이 사라집니다.


(3)굳어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는 단계에 이릅니다. 

마침내는 영적으로 병들기 시작하고 굳어지게 됩니다. 더 나가서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이르게 됨으로 하나님과 분리되고 단절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간이 병들면 점점 굳어지게 되고 나중에 간경화증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4)감각이 없어지는 단계에 이릅니다.

마음이 죄악으로 병들고 굳어졌으니 양심의 감각이 없어짐으로, 죄에 대한 분별과 감각이 둔해졌습니다. 노아 당시 사람들은 양심의 감각이 없더니 홍수로 심판을 받았고,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도 양심의 감각이 사라지니 유황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5)자신을 방탕에 방임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이제는 양심의 가책이 사라지니 죄에 대해서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육욕적인 삶에 맡겨버립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따라 살게 방임합니다.


(6)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욕심'이란 '탐욕, 탐심'등으로 더욱 더 많이 소유하려는 지나친 욕망을 말합니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을 다 쌓아놓고도 더 가지려는 갈망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욕망의 노예상태요,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허구한 날 욕심에 끌려 다니는 동물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 결국 이런 밑바닥 인생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탕자는 아무리 풍족하고 평안해도 아버지의 집이 싫었습니다. 아버지의 간섭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의 소망은 세상에 나가서 마음껏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집을 떠납니다. 처음에는 죄의식이 있었으나, 세상 친구들이 유혹하는 대로 따라 가다보니 점점 죄에 대한 용기가 생깁니다. 술과 여자와 도박에 맛을 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처음에는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탕진함에 대해 양심의 가책에 시려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는 그 죄의식도 사라지고 마음이 점점 굳어집니다. 나중에는 죄를 지어도 감각이 없고 양심이 마비됩니다. 마침내 방탕에 몸을 맡기는 삶이 계속됩니다. 술에 젖어 살면서 이 여자, 저 여자와 음란을 저지릅니다. 방탕의 노예, 방탕의 중독상태에 빠집니다. 마침내 돈이 다 떨어지고 알거지가 됩니다. 돈이 떨어지니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아부하던 술친구들, 온갖 아양을 떨던 여인들도 동시에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동네에서도 보면 그렇게 '형님 아우'하던 술친구들도 그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 때도 안 오는 것을 보입니다.

그것이 세상 인심입니다. 탕자는 나중에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는지, 어느날 보니, 돼지 울간 옆에서 사는 신세, 배고파서 돼지의 사료로 배를 채우려는 돼지 꼴의 인생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러분 중에 교회생활에 대해서 왜인지 염증을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주일날 와서 온 종일동안 교사나 찬양대, 구역장이나 어느 기관의 임원으로 매이다 보니 짜증이 납니다. 설교 듣는 것도 싫어서 어느 때는 설교 시간에 잡니다. 이제는 이러한 매인 생활에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주일날이면 잠깐 오전예배만 드리고 자가용으로 식구들과 콘도로, 스키장으로, 바다나 산으로 놀러가서 인생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오, 여러분들이여, 그 순간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탄이 틈타기 쉬운 때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그러한 마음 있을 때 사탄이 틈탔습니다. 다윗의 음란의 마음이나, 아간이나 게하시의 탐욕에 마음에 사탄은 틈타서 결국 그들을 밑바닥 인생까지 끌어내렸던 것입니다. 사탄이 넣어주는 그러한 옛사람의 마음을 과감히 물리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낭패의 길로 내려가고 맙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지 마십시오.

심지어 40일 금식하시는 예수님에게도 유혹하던 사탄입니다. 어느 누구도, 어느 성자나 목사나 부흥사도 사탄을 이길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기독교 주간지에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1977년 민족성회가 전국각지에서 열리고 있을 때, 경상도 어느 대도시에서 거물급 부흥사가 강사로 초빙되었습니다. 그 지방 준비위원 목사님들은 그 강사가 투숙되어 있는 호텔 특등실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호텔에서 심부름하는 여인에게 모목사님이 어느 방에 투숙했느냐고 물으니 그 여인이 깜짝 놀라면서 "그 분이 목사님이냐?"라고 의아해 하면서 "어제 밤, 그 사람이 여자 하나를 청하기에 데려다 주었다."고 하더랍니다.

준비위원들은 너무나 놀라서 즉시 집회를 중지했다고 합니다. 이 부흥사는 그런 큰 망신을 당했으면 40일 금식을 해서라도 그 죄를 끓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다가 '꼬리가 길면 잡히는 날이 온다.'는 말대로, 어느 여자와 간통현장에 잡혀서 종암경찰서에 구속되었다가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주기로 하고 풀려 나왔으나 한 달도 못되어 눈알이 튀어나온 타살 체로 발견되어 장례식도 쉬쉬하며 치렀다는 기사가 1980년 9월 13일자 「크리스챤신문」에서 실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습관이 굳어지기 전에 과감히 죄를 버리어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2003년도 새해에는 큰 은혜, 큰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옛사람, 그 헛된 욕망과 죄의 습관을 과감히 회개함으로 벗어버리시고 새 출발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새사람을 입으려면 먼저 심령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23절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고 했습니다. 이제 옛사람의 더러운 죄의 옷을 벗었습니다. 이제는 새사람을 입기 위해 먼저 속옷을 입는데, 그것이 심령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심령'이란 영어로 표현하면 'the spirit of minds'입니다. 즉, 마음의 중심에 있는 영이 먼저 새로워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의 깊은 샘은 영입니다. 영의 샘이 터져야 마음이 맑아지고 결국 육신도 맑아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새로워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될 때,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면서 영의 생명, 영의 기쁨, 양의 생수가 터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때 마음이 맑아지고 육신까지도 새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일찍이 철학자 푸라톤은 말하기를 "의사들의 가장 큰 잘못은 환자의 정신을 그냥 두고 육체만을 치료하려는 일이다. 정신과 육체는 하나이므로 분리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2300년이 걸려서야 마음과 육체를 동시에 치료하는 정신요법 약품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병이 신경성으로 생긴다는 것이 최근 의학계의 주장입니다. 코넬대학교 교수인 럿셀 세실 박사는 세계적인 관절염 권위자인데 그는 관절염을 일으키는 원인이 결혼의 파탄, 경제적인 재난, 고독, 근심 등이라고 했습니다. 현대 여인들은 열심히 화장을 합니다. 여자들이 바르는 화장품값만 해도 얼마나 비싼지, 살림 비용 중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화장을 많이 할수록 오히려 피부의 노화가 더 빨라진다고 합니다. 우리 여인들이 좋은 얼굴, 좋은 피부를 유지하려면 마음이 항상 밝아야 합니다. 

데일 카네기는 말하기를 "근심은 아름다움을 망친다. 근심만큼 여자를 늙고 멋없게 만드는 것도 없다. 표정을 굳게, 턱을 오그라지게 하고 주름살, 찌푸린 얼굴, 부스럼, 여드름, 종기를 근심이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파고든다면, 영이 새로워져야 마음도 새로워지고 육신도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제 새 심령, 새 마음의 속옷을 입었습니다. 그 다음 새사람의 겉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 겉옷은 무엇입니까? 24절에 보면 "의와 진리와 거룩함"입니다.

아무리 심령이 새롭게 변했을지라도 우리의 겉모양의 삶이 의로운 삶, 진리의 삶, 거룩한 삶으로 나타나지 못하면 새사람이 속옷만 입고 겉옷을 입지않은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새사람이 된다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 하심과 우리의 힘씀이 합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경건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의롭게 살려는 연습, 진리를 따라 살려는 연습, 거룩해지려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새사람이 되는 순간에 의와 진리와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점입니다. 거듭 나기 전에는 죄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었는데 새 사람이 되니 유혹이 와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자기 혈기를 참지 못했는데, 새사람이 되니까 이상하게 혈기도 참을 수 있습니다. 남을 용서할 사랑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남을 불쌍하게 하는 마음이 울어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능력을 주시는 자 따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사는 연습, 진리를 따라, 거룩해지려는 연습을 계속하면 점점 장성한 성도가 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 많은 성도들이 믿음이 자라다가 멈춥니까? 하나님이 힘을 주시는 데도 경건의 연습에 힘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됩니다. 날마다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이 힘써야 할 경건의 연습 목표인 '의와 진리와 거룩한 삶'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삶을 말합니까?

다섯 가지 삶의 태도를 25-3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진실된 삶을 살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25절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사단은 거짓말의 아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거짓과는 상관없이 참되어야 합니다. 내게 손해가 있다 하더라도 진실하려도 힘써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탬플 대학의 러셀 콘웰 박사가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던 요인들은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백만장자 6백 명을 조사했습니다.

결론은 그들 모두 정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번 한 말은 꼭 지키고 빚을 꼭 갚으며 빌린 책을 돌려주고 솔직했다고 합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모습이며 모든 덕의 기초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떠한 손해가 올지라도 진실 하려고 힘쓰는 자를 도와주십니다. 진실하면 처음에는 손해 같지만, 나중에는 큰 이익이 따라 옵니다. 진실하면 신용이 따라 옵니다. 신용이 있으면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관계를 맺으려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거래처를 맺으려고 하니 많은 이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2)자기의 혈기를 다스리려고 힘써야 합니다. 

26-27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마귀는 분을 이용해서 성도들의 거룩한 삶을 깨뜨리려고 합니다. 분을 내면 죄를 짓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기 성격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혈기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따라 그 혈기를 잘 다스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혹 순간적으로 혈기를 참지 못하여 분을 냈다가도 해가 지기 전에 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분을 품은 채 밤에 하룻밤을 지내면 밤새도록 사탄이 그 틈을 이용하여 자기의 둥지를 틀므로 큰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어머님에게 꾸중을 들었거나 부부 싸움을 했거나 이웃과 다투었더라도 그 분을 속히 가라앉히고 할 수 있는 대로 그날 풀어버리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덕입니다. 

(3)선한 일에 힘써야 합니다. 

28절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적질은 남을 훔치는 것을 말합니다. 부동산투기나 고리대금, 이윤을 속이어 부당 이득을 챙기는 것 등, 정당치 않은 방법으로 남의 것을 가로채는 것도 도적질과 같습니다. 더 나가서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일하지 않고 먹고사는 것도 엄격한 의미에서는 도적질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일하는 목적을 자기들만의 행복에 두지 말고 약한 형제나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고 구제하기 데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년새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내게 물질 축복을 주셔서 선한 일에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라고 하신 후에 열심히 일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4)덕 있는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여기에 더러운 말은 중상 모략이나 악담이나 험담을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썩은 과일과 같습니다. 더러운 말은 단지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속에 있는 인격이나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제직은 다 좋은 데 말버릇이 나쁜 것이 문제입니다.

언제인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젊은 집사님 부부가 서로 말다툼하다 보니까, 아내가 너무 심한 말을 합니다. 남편이 견디다 못해 주먹질하려고 하니까 아내가 문 밖으로 도망쳤습니다. 남편이 쫓아가다 보니 어린 아들이 마당에서 벌벌 떨면서 서 있습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한다는 소리가 "그년 어디로 도망갔니?"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어린 아들이 한다는 소리가 "그년 저쪽으로 도망쳤어요."라고 하더랍니다.

그 때야 남자 집사님이 정신이 버쩍 들면서 "내가 너무 본이 안 되는구나." 라는 생각으로 그 때부터 말을 조심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더러운 말을 삼가야 합니다. 대신 덕을 세우는 말을 하고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축복하는 말을 합시다. 만약에 우리의 말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남에도 상처가 될 뿐 아니라 성령을 근심케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5)서로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31-32절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우리 속에 온갖 가라지를 심으려고 애씁니다. 근심과 불안, 두려움 뿐 아니라, 악독과 노함, 분냄과 떠드는 것, 훼방과 모든 악의를 심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단단히 지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이 십자가 마음,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용서의 마음으로 언제나 가득 차도록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에 따라 경건의 연습을 힘쓰는 자를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김성광 목사님의 설교에는 이런 간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정 집사님이라고 제멋대로 엉터리로 믿는 집사님이 있었답니다. 예배시간에도 늦게 왔다가 일찍 가고 믿음의 확신도 없었습니다. 십일조도 아까워서 그냥 예의 상 5만원씩만 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빚을 내서 식당을 했는데 그것마저 안 되었습니다. 게다가 아내가 도와주지는 않고 구역예배, 수요예배 등 교회 간다고 자주 식당을 비우자 불만이 생겨서 자꾸 싸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보건소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간염'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식당주인이 감염환자인데 누가 그 식당에 오겠습니까? 간염에는 약도 없습니다. 좋다는 약과 건강식품을 다 복용했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식당도 망하고 병들어 죽게 되었구나 생각하니, 하나님께만 매달리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물론이고, 수요기도회, 금요 철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때로 기도원까지 가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은혜 받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이제는 아내가 교회 일로 늦게 들어와도 화를 내지 않고, 자신도 열심히 충성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충성하면 할수록 식당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자 점점 그 액수가 많아지고 식당을 시작할 때 빌렸던 2,000만원을 7개월만에 모두 갚게 되고, 식당을 두 배로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보건소 가서 재검사를 하니 '이상 없다'는 결과까지 나왔습니다. 다른 병원에 가서도 검사를 받았는데 역시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풍족하게 채워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하나님께서 낮추시면 높일 자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아직도 옛사람 그대로 사는 자가 있다면 속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십시오. 그리고 새사람을 입었지만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 자들은 경건의 연습에 힘씀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은혜와 복을 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